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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1:19-30 / 권위자 바나바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33:30 read : 10038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 十一․二十四)
성경을 읽는 중에 어떤 개인에게 대해서 이렇게 크게 칭찬한 구절은 다른 곳에서 별로 찾아보지 못할 줄 압니다. 그러나 여기 바나바에 대해서는『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과연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나바라는 이름은 자기의 본명이 아닙니다. 자기 본래의 이름은 요셉이올시다. 그는 구브로라고 하는 섬에서 태어난 유대 사람이요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예수를 믿은 후에 사도들로부터 바나바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라고 하는 이름은 권위자, 권위의 아들, 또는 권면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이 시간 바나바의 생활을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에도 저명하다 하는 이들은 자기 본 이름 외에 호라고 해서 별명을 가지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이름들은 혹 친구가 지어 주는 수도 있지마는 보통은 자기가 짓는 것 같습니다. 그리해서 별로 이 이름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별명들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특별한 별명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승리자라고 하는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베드로라 하는 별명을 주었습니다. 반석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옛날 한국의 풍속을 보면 남자들은 물론 이름이 다 있지마는 여자들은 특별한 몇 사람 외에는 별로 이름이 없었습니다. 아마 청년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흔히 아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렸을 때는 작은 놈이니 큰 놈이니 곱단 이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다 장성한 후에는 별로 이름이 없었습니다.
김씨, 이씨, 한씨라고 흔히 부르고 결혼하게 되면 아무개 처라고 한다든지 또 아기를 낳으면 아무개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의 많은 부인들이 이름을 갖게 된 곳이 있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게 되고 이름을 쓰려고 할 때에 이름이 없어서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 때에 붙여 준 이름이 다 좋아요. 반석이니 진실이니 성도니 신도니 하는 좋은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후에 다른 여자들도 다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여성들은 이름을 가지게 된 것만도 복음이 들어온 덕분이라고 볼 수 가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장성한 사람도 세례 받을 때에 성경의 이름을 주는 풍속이 있습니다. 그것도 뜻은 있어요. 그러나 우리 신교에는 그런 풍속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四장 三十七절에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어떻게 이와 같은 이름을 받게 되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 족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놓으니라』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초대 교회에서 오순절의 큰 은혜를 받은 후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밭을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놓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유무상통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이런 일을 한 모양인데 성경을 보면 특별히 바나바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한 사람이 더 있는데 그것은 아나니아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팔기는 팔았지만 다 바치지 않아 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바나바의 이름이 특별히 기록된 것을 보면 확실히는 모르나 바나바가 제일 먼저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양에『본이 말한다』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철저한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증거가 여기에도 나타납니다.
이분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는 것은 성령의 첫 열매인 사랑이 그 동기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성령이 충만하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착한 사람 바나바가 먼저 교회 안에서 이런 운동을 일으켜서 헌금과 봉사 운동의 격려자가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九장 二十六절에서 二十七절까지에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바울이 회개하기 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울은 철저한 바리새 교인으로서 우리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여 아주 핍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가두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까지 가서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려고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길가에서 만나 그 음성을 듣게 되었고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옛날의 사울은 죽고 새로운 바울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메섹에 들어가서 경건한 아나니아로부터 세례를 받게 되고 며칠 후에 새로운 힘을 얻어 예수님께서 과연 메시야요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에서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곳에 있던 유대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여 밤중에 다른 형제들의 도움으로 바울은 광주리를 타고 성밖으로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도망 오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도망을 왔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二十六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간첩이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저 녀석이 교회를 그렇게 핍박하더니 갑자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며 우리 가운데 들어온다고 하니 무슨 심리를 가지고 그러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바나바가 나섰습니다. 바나바가 이 사울을 먼저 접촉한 모양입니다. 모든 사정을 다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먼저 사울을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이 사람이 다메섹에 가다가 부활한 예수 님을 만났다는 것과 세례를 받은 일과 거기서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 하다가 핍박을 받아서 이리로 도망했다는 얘기를 다 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과거에는 우리 기독교를 핍박한 사람이지마는 이제는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으니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제서야 사도들과 예루살렘 성도들이 이 회개한 사울과 성도의 교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나바의 착한 성품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믿어 주는 성품, 전에는 실수했으나, 그것을 용서해 주고 용납해 주는 관용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복음은 어떤 사람이라도 변화시켜서 새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복음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인 바나바는 성경과 믿음이 충만한 가운데서 사도 바울을 용납하여 그로 하여금 장차 큰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바나바의 얘기가 오늘 아침 읽은 성경 본문 말씀 사도행전 十一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이 큰 핍박을 받아서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다음에 여러 성도들이 각처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다른 이들은 또 다른 곳으로, 이렇게 여러 곳으로 흩어져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다 유대 사람에게만 전도하였습니다. 빌립 외에는 말입니다. 그 때까지 믿은 사람들은 이 복음은 이방 사람까지 구원하는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같은 사도도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은 후에야 고넬료의 집에 가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던 때입니다.
그 때에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예수를 믿는 몇 사람이 당시의 큰 교회인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 와서는 유대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헬라 사람, 같은 이방 사람에게도 전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이방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방 사람들이 예수를 많이 믿고 회개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이방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들어오니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는 것과 그 형편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바나바를 그 곳에 파송하였습니다. 가보니 과연 많은 이방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에 바나바가 마음이 좁은 보통 사람 같으면 그런 현상을 보고, 이 사람들이 어제까지도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로 할례도 못 받은 자들인데 갑자기 예수를 믿고 열심히 기독교에 들어오고 있다고 하여 이들을 그대로 교회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우니 좀 더 두고 보아야겠다는 보고를 예루살렘교회에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큰 은혜를 받은 것을 보고 마음에 기뻐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 것을 기뻐하여 권면(勸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권면할 때에 단 한가지 말을 하였습니다. 『굳은 마음으로 주 예수께 붙어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예수에게 붙어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할례 받으라는 말도 안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지키라는 말도 안 했습니다. 그저 굳센 마음으로 예수그리스도로만 굳게 잡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안디옥의 교회가 더 크게 발전되어 이방사람 중심의 교회가 기독교 역사상 처음 생긴 것입니다.
여기에 바나바의 넓은 마음과 바나바의 착한 성품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바나바는 자기 혼자서 모든 사람을 인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할 사람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바울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에게 양해를 얻고 열심히 전도하다가 유대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하기 때문에 가이사랴로 피했다가 자기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로 가서 그때까지 약 八, 九년 동안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자기가 친히 먼길을 걸어서 길리기아 다소까지 가서 사울을 데려다가 두 사람이 같이 안디옥 교회를 봉사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읽어보면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제네바에서 윌리엄 화렐이라는 사람이 종교개혁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자기 혼자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에 마침 젊은 사람 존 칼빈이 지나가다가 제네바에서 하루를 지낸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칼빈을 권면하여 마침내 그를 제네바에 머물게 함으로써 종교개혁의 큰 역사를 이룰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울과 같이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교회를 봉사하는 가운데 문자 그대로 교회의 촛불이 예루살렘에서 이방 교회 안디옥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수리아 안디옥이 큰 부흥과 선교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때마침 유대와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서 많은 사람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듣고 안디옥 교회에서는 많은 선물을 거두어서 사울과 바나바를 시켜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얼마 후에는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바나바와 사울이 같이 안수를 받고 파송을 받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을 위대한 지도자로 내세운 이가 바나바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바울 뒤에는 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고 착한 사람 바나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얘기만 더 합시다. 이렇게 바나바와 사울이 같이 다니면서 외지 전도를 한 후에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고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나바나 바울이 첫번 전도지로 떠날 때에 젊은 사람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안 데리고 가느냐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마 마가가 크게 후회를 하고 자기 삼촌 바나바에게 와서 전에는 자기가 잘못하였으니 용서하시고 같이 가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용서해 주고 데리고 가자고 주장하였고 바울은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바라바와 바울은 성경에 기록한 대로 크게 다투었다고 하였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들도 다툴 때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서로 헤어졌습니다. 바울은 다른 청년 실라를 데리고 갈라디아 지방으로 가고 바나바는 생질되는 마가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이에 대해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편에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에서 보면 그는 일을 중심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청년을 데리고 가보아야 일이 잘 안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람을 중심해서 생각한 모양입니다.
젊은 사람이 한번 실수를 했으나 용서해달라고 하니 아주 버리면 되겠느냐, 다시 좋은 길을 열어 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갔는데 그 후에 마가는 바나바를 도와서 여러 곳에서 전도를 했고 바나바는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났는지 바나바에 관한 그 이상의 기록은 없습니다.
한편 마가는 베드로를 도와서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전도하다가 베드로로부터 예수님의 생활에 대한 예기를 자세히 듣고 제일 먼저 마가복음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그 후 사도 바울이 나이 많아서 늙었을 때에 마지막으로 쓴 디모데 후서 四장을 보면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꼭 데리고 오라』고 하며 마가는 매우 유익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레몬에게 한 편지를 보면『나의 동역자 마가도 너희에게 문안한다』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마가라는 청년은 그 때에 참으로 회개하고 좋은 일꾼이 되어서 사도 바울의 말년에는 그를 잘 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나바는 바울이 의심을 받을 때에 큰 지도자로 내세운 것처럼 이 청년이 의심을 받을 때에 도와주어서 큰 공헌을 하는 청년이 되게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우리가 아는 대로 천재는 아닙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아마 두 달란트쯤 받은 보통 인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온유하고 겸손했고 그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담백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권면해서 인재를 일으키고 교회의 화평을 도모하여 사랑과 봉사와 전도의 선구자로서 초대 교회에 위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보통 사람이라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해질 때에 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바나바는 우리 보통 사람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올시다. 우리 보통 사람의 신앙 생활을 크게 격려해주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十三장에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기록할 때에 이런 말을 기록했습니다.『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일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를 생각하며 이른 글을 썼겠습니까? 성경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쓸 때에 바나바를 생각하여 썼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바나바는 이렇게 착한 사람입니다. 또 바울에게 가장 큰 감화를 준 사람입니다.
신앙 생활에는 언제나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둘째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셋째로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인생 길을 걸어갈 때에 다른 사람을 돕고 격려해 주며 위로해 주고 권면해주는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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