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5: 1-13/소망의 하나님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40:47 read : 1069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十五․十三)
오늘 이 시간에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고린도 전서 十三장 마지막 절을 읽어보면 우리 사람이 세상에 살 때 항상 있을 것 세 가지를 가르쳤습니다. 믿음, 사랑, 그리고 소망입니다. 사람은 소망으로 살고 또한 소망이 있어야 삽니다.
어렸을 때에는 청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청년 시대에는 장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이렇게 우리는 언제든지 장래에 대한 소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어 아주 소망이 없어졌다고 하면 그이는 얼마나 가련한 사람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낙심할 터이고 타락할 것입니다. 그러게 되면 혹은 어떤 범죄에 빠질 수도 있겠고 좀 더 심하게 되면 정신에 이상을 일으킬 수도 있겠고, 아주 심하게 되면 소망 없는 사람이 되어 자살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다른 것이 없어졌다고 할지라도 소망만 그냥 남아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 소망의 줄 하나를 잡고 능히 모든 환난을 배제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왈츠라고 하는 사람의 소망에 대한 유명한 그림을 거의 다 보신 줄 압니다. 둥근 지구 위에 어떤 젊은 여인이 홀로 외롭게 앉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눈은 수건으로 싸맸습니다. 보지 못합니다. 그 가슴에는 비파를 안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비파의 줄이 거의 다 끊어져 있습니다.
오직 한 줄만 남아 있습니다. 뒤에는 희미한 별 하나만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우주에 외로이 혼자 앉아 눈을 싸맸으니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직 남은 줄 하나만 가지고 이 여자가 아름다운 음악을 타는 것입니다. 그 줄은 소망의 줄이올시다. 그 별은 소망의 별이올시다. 이 그림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에 여러 가지 줄이 끊어집니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사업이 실패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믿었던 줄이 끊어집니다. 하지마는 소망의 줄 하나만 우리가 그냥 붙잡을 수 있다고 하면, 그 소망의 줄 하나로써 능히 모든 것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성경에는 소망을 가리켜서 영혼의 닻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사람의 심령이 풍파 높은 대해를 지나갈 때에 어떤 때에는 큰 폭풍을 만납니다. 하지만 우리 생명의 닻줄을 깊은 바다 속에 붙잡아 매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풍파가 높다고 할지라도 우리 심령의 배는 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깊은 곳에 매인 닻줄은 소망의 닻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심령의 생활에 있어서 이 소망의 줄이 끊어진다고 한다면, 어떠한 유혹의 바람과 시험의 풍파에 휩쓸려가고 우리의 생활이 암초에 부딪쳐서 파선을 당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소망으로 살아야 하고 또한 소망이 있어야 삽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만히 살펴볼 것이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만 소망이 끊어져서 낙심과 절망에 휩쓸려서 생활의 파선을 당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 까닭을 가만히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소망의 기초를 잘못 두는 데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소망을 물질에 둡니다. 돈에 둡니다. 그것이 그만 없어져버리면 그 사람의 소망은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소망을 어떤 친구에게 둡니다. 그 친구가 그만 실패하면 소망은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지혜, 어떤 사람은 자기의 지식, 어떤 사람은 자기의 친척, 어떤 사람은 자기의 남편, 어떤 사람은 사람이 경영하는 기관, 사람이 경영하는 어떤 것이 소망을 둡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소망을 두면 언젠가 한 번 그것이 실패될 때에 그 소망의 줄은 끊어지고 맙니다. 성경의 말씀을 보면『너희들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사람에 속하는 모든 것은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으로 살며 또 소망이 반드시 있어야 사는데 우리가 이 풍파 높은 세상을 향해 갈 때에 우리의 소망의 기초를 어디에 두겠습니까?
『나의 소망이 주께 있나이다.』주는 나의 소망이 되십니다. 여기 말씀에『소망의 하나님이 너희들의 소망이 넘치게 하기를 원하노라』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불멸의 기초 위에 두어야 될 터인데 이 불멸의 기초는 어디 잇느냐?
오직 하나님 외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소망이올시다.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그 줄이 끊어질 수 없습니다.
이제 여기에『소망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말씀을 간단하게 몇 가지로 생각해서 우리가 소망의 깊은 자리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의 소망의 기초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품성, 그 공의나 그 사랑이 영원불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소망의 기초가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소만은 하나님의 불변의 품성에 둡니다. 하나님이 섭리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을 다스리시되, 자연계는 자연 법칙으로 하시고 인간은 도덕의 법칙으로 하십니다.
그리해서 대자연을 유지, 보호하시고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믿는 자의 소망의 기초가 됩니다.
또는 이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언약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름 지어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그런고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물 가운데 지나갈지라도 물이 너를 빠지게 하지 못할 것이고 네가 불 가운데 지나갈지라도 불이 너를 불사르지 못하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같이 할 것이다.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 된다.』여러 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소망이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와 같이 불변하시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섭리에, 하나님의 언약에 우리 소망의 기초를 둘 때에 어떠한 환경, 어떠한 처지, 모든 세상의 것이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소망의 줄은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소망의 하나님이라는 뜻은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의 소망의 저작 혹은 저작자라 하는 그런 뜻이 있는 줄로 압니다. 책을 저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실상 우리 믿는 자들의 소망을 만들어 주셨단 말입니다.
그것은 무슨 a라인고 하니 우리 믿는 자들의 큰 소망은, 믿는 가운데서 금생과 내생에 받을 큰 축복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생각해 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되었을 때에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장사한 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대속(代贖)의 사업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다시 오순절에 성신으로 우리에게 강림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받을 축복인 금생(今生)과 내생에 받을 이 축복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사람들의 소망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소망의 하나님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우리 믿는 자의 소망의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좀 전에도 말했지마는, 세상 사람들의 소망의 대상은 세상에 있는 줄 압니다. 세상의 모든 소망의 대상은 썩어질 때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과 같이 악한 자는 죽을 때에 소망이 끊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의 소망의 대상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요, 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요, 세상에 속한 데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소망의 대상입니다. 죽어도 그리스도요, 살아도 그리스도요, 죽어도 유익함이 된다고 하는 말리 그 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소망은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좀 더 알고, 그리스도를 좀 더 얻고,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그리스도와 합일되어서 열매를 맺고,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하나님 자체가 우리 믿는 사람의 소망의 세상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의 소망은 썩어질 수 없습니다.
넷째로, 소망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의 소망의 완성 자이시라는 뜻이 있는 줄로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을 완전히 이루어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소망 소망하지마는 그 소망이 이루어질 소망이 없다면, 그런 소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기루와 같이 눈에만 보이고 실상 이루어질 실재가 없다고 하면, 그 소망이 무슨 쓸 데 있겠습니까? 장래에 있을 일이면서도 완전히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참된 소망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이 앞으로 확실히 이루어 주실 날이 있습니다.
요한 一서 三장에 있는 말씀과 같이 언제 주님께서 나타나 실는지 알지 못하지마는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는 우리도 그와 같을 것을 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즉 금생과 내생의 소망이 온전히 이루어질 날이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믿는 사람의 소망은 참 소망임, 거짓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소망은 불멸의 소망으로 썩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산 소망으로 죽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그림자와 같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한 소망으로 이 세상의 소망만이 아니올시다. 우리의 소망은 넘치는 소망으로 적은 소망이 아니올시다.
二十세기를 흔히 여러 역사를 연구하는 평론가들이 평하기를 환멸과 절망의 세기라 이렇게 평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十八-十九세기까지는 진화론을 거의 다 믿었고, 과학이 발달하자 과학만 잘 발전시키면 진화론의 법칙에 의하여 인간 사회도 잘 진화되어서 온 세계가 평안히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세계가 되리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진화론과 과학의 진보로 세계에 평화와 행복이 온다고 하는 그 맹목적 소망도 결국 二十세기에 와서는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二十세기에 와서 보면 과학은 발전되었을지 몰라도 오히려 이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 세상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세상입니까? 무한히 진보되어 평안히 살리라고 믿었던 사람이 실제로 二十세기에 와 보니까 얼마나 추악하고 짐승만도 못한지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던 이를 환멸과 절망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작년 어느 날, 어떤 미군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정말 세계 정치가들이 하는 일을 우리 같은 범인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우리가 二차 대전 때는 다 선전하기를 추축국(樞軸國)인 독일, 이태리, 그리고 일본 세 나라만 때려부수면, 온 세계에 평화가 오겠다고 해서 전 세계가 다 들어 붙어서 특별히 소련과도 연합하고 중국과도 연합해서 이 추축국을 때려 부셨습니다.
그러면 으레 평화가 올 줄 알았는데 평화는 오지 아니하고 十 연도 못 가서 그보다 더 큰 원수가 나타났습니다. 특별히 이상한 것은, 전에 손잡고 함께 싸우던 그 사람들을 향해서 다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손잡고 때려 부셨던 독일이 이제는 재무장해야 되겠다. 일본도 재무장해야 되겠다.
이태리도 재무장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싸워서 때려 없애려던 이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전에 우리와 같이 싸우던 중국 사람이나 소련 사람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자, 이렇게 계속되다 보면, 우리가 이렇게 해서 중국과 소련을 때려 없애버렸지만 그 다음에는 전쟁이 없다고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여러분, 이 미군의 마음을 통해 二十세기에 사는 청년들의 깊은 환멸의 비애를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그 청년 한 사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청년들이 오늘날 그와 같은 환멸의 비애에 쌓인 줄 압니다. 사람의 지혜를 믿을 수 없습니다. 정치가의 정책도 믿을 수 없습니다. 환멸의 비애뿐입니다.
우리 한국 청년들은 모두 어떻게 생각했는고 하니, 일본만 망하면 우리 한국은 잘되리라 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八․一五에 일본이 망하고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어떤 장로님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뇌일혈이 생겨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해방은 되었건만 난데없는 三八선이 생겼습니다. 또 六․二五사변이 나서 많은 파괴를 당하고 사람도 죽었지마는 이 기회에 三八선이 없어질 터이니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는데 三八선은 없어지지 않고 겨우 휴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언제 통일이 될는지 우리 동포들은 폐허에서 허덕이며 그 심령 속에 당하는 고민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전 세계 인류들은 불안과 공포와 환멸과 절망의 깊은 못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둘려보고 아무리 땅을 내려다보아야 인류의 소망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인류의 소망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이제라도 우리는 땅만 보지 말고, 사람이 하는 일만 보지 말고, 눈을 들어 산을 보십시오, 우리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볼 때에 별을 볼 수 있고 소망의 새벽 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 여름 미국에서『오직 그리스도만이 온 세계의 소망이다』하는 그런 표어아래에서 세계 기독교 대회가 모이게 된 것입니다. 과연 온 세계 인류의 소망은 하나님의 독생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하는 일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볼 때 소망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의 생활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말한 것과 같이 세상의 여러 가지를 우리 소망의 대상으로 하였다가 그것이 없어질 때 절망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그 성품, 하나님의 그 섭리, 하나님의 그 언약을 믿고 의지할 때에는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하게 되든지 낙심할 수 없습니다.
왜? 모든 일이 합동해서 유익하게 되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와 같이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믿는 자를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겠다고 하는, 변치 아니하는 언약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자비와 긍휼(矜恤)과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낙심할 수 없고 절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언제든지 소망이 넘칩니다. 넘치는 소망을 가지고 어떤 환경이든지 어려운 것이든지 이기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인내가 최후 승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민족의 장래를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유엔만 늘 쳐다본다거나 또 미국만 늘 쳐다본다던가 또 우리 대통령만 늘 쳐다보다가는 낙심될 때가 많겠습니다. 사실 사람의 견지로 볼 때 이 통일이 언제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올시다. 이와 같으신 하나님이 우리 민족이 이와 같은 도탄 가운데 빠져 있는데 이런 상태로 영원히 그냥 부려두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신원 하여 주실 날이 반드시 속히 올 것입니다. 반드시 통일이 됩니다. 반드시 자유의 나라가 됩니다. 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우리 백성을 사랑하시는 까닭입니다.
전 세계에 대하여서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사상(四相) 회의를 열어 모여서 의논한다고 하지마는, 그것을 보다가는 우리는 절망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전쟁이 일어나기 쉽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세상 모든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가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심판이 있고 부활이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전 세계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한 마디만 말하고 그만 두겠습니다. 여러분, 밤이 다 어둡지마는 제일 어두운 때는 바로 재 밤 새벽이 되기 바로 전에 그 때가 제일 어둡다고 합니다. 제일 어두울 그 때에 하늘에 무엇이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새벽 별이 나타납니다. 제일 어두운 그 때에 새벽 별이 나타나듯, 이 세계가 이렇게 어둠고 온 인류가 절망과 비애에 빠진 이 때에, 새벽 별이 되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날 날이 가까워온 줄 압니다.
우리 개인생활의 경우를 볼지라도 모든 일이 그야말로 아득해지고 캄캄해질 그 때에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소망의 별이 비쳐 옵니다. 그런 까닭으로 세상 사람이 다 어둡다고 캄캄하다고 절망이라고 하면서 죽지마는, 제일 빛나는 소망이 우리에게 비쳐 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합니다. 어두운 것은 새벽 별과 새벽의 서광이 가까워 온 증거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와 같이 환멸과 절망에 쌓인 이런 경우에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 황폐한 강산에 헤매는 우리 동포들, 탄식하고 애타고 눈물 흘리지 말고 이런 때에 하나님께 돌아와 새 소망을 얻어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서 조국을 위하여 씩씩하게 싸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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