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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5:11-21/ 새로운 피조물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07:15 read : 10000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五․十七)
오늘 一九六二년 새해 첫 주일 아침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만근 수년 새 시대란 말을 우리가 점점 자주 듣게 됩니다.『우리는 새 시대에 산다.』『우리가 사는 시대는 새 시대가 되었다.』이런 말을 혹은 말로, 혹은 글로 자주 듣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의미는 물론 사람을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들어가서는 아마 다음의 몇 가지 요소를 내포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새 시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과학 혁명의 시대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는 줄 생각합니다. 사실 一八세기를 흔히「산업 혁명의 시대」라고 우리가 말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二十세기는「과학 혁명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줄 생각합니다.
그 뜻은 특별히 이 二十세기에 와서 모든 방면의 과학 발전은 인류 생활의 큰 변혁을 가져왔다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또 그것은 사실인 줄 생각합니다. 가령「통신」하더라도 옛날에 무슨 소식을 전하려고 하면 들을 써서 사람에게 말을 태워서 보내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신이 생기고 전화가 생기고 지금은 텔레타이프가 생겨서 원하기만 하면 우리 지구 어떤 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고 아마 三十분 이내에 온 세계에 그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이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연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한 그런 시대로 변한 것이 사실이올시다.
이것은 통신 방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역시 교통 방면도 그렇지 아니합니까? 옛날에는 빨리 간대야 말을 타고 재촉하는 길밖에는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가 있고 기차가 있고, 기선이 있고, 비행기가 있고, 제트기가 있고 아마 얼마 후에는 로케트를 타고 다니는 때가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지금은 꼭 가야 될 일이 있다고 하면 아마 거의 二十四시간 이내에 세계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을 만큼 교통이 발단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소위「메스 커뮤니케이션」(mass communication)시대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무슨 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에 전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가령 우리가 라디오를 통해서, 혹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중계 방송을 한다고 하면 여러 천만 명, 여러 백만 명에게 일시에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것은 좋은 방면의 선전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방면의 선전을 할 수도 있는, 하여간 일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은 소위「오토메이션」이라고 하여 점점 자동 기계가 발전이 되어서 기계가 기계를 운전하는 그런 시대로 점점 변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 여러 나라에 가 보면 어떤 상점에는 사람이 없지만 돈만 넣으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기계화 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과학의 공헌은 세계 인류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각 방면에 큰 변혁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五十년 전 시대와 五十년 후인 二十세기 중엽이 온전히 달라져서, 그런 의미에서 새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 새 시대의 또 한 가지 특색은 온 세계가 한 집단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일우(世界一宇)시대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큰 산맥 혹은 큰 강 혹은 큰 바다가 민족과 민족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을 자연적으로 막아버렸습니다.
그래서 큰 산맥이 가운데 있으면 자연히 산맥 이편에도 한 나라가 있고 저 편에는 딴 나라가 있어서 산맥 이 편의 나라와 저 편의 나라가 볼로 피차에 연락과 교섭이 없이 각각 독자적으로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큰 바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 말한 대로 교통과 통신과 모든 방면의 발전으로 말미암아서 이 천연 국경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먼 나라가 없습니다. 지금은 국경이 없습니다. 모든 나라가 다 가까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서로 연락하고 서로 접촉하게끔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二十세기에 와서 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 또 하나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온 세계 여러 민족들과 국가들이 서로 연락되어서 그야말로 이제는 세계 역사가 발족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한국의 역사 하면 다른 나라와 관계없이 한국 역사만 내려쓸 수 있었습니다. 혹은 일본의 역사 하면 다른 나라와 전연 관계없이 일본의 역사만 내려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에 十여 년 전에 六․二五가 일어났지만 우리 한국 사람만이 전쟁에 관련되었습니까?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十六 개국에서 군대가 이 땅에 와서 싸웠고 그밖에 많은 나라에서 원조 물자를 보내고 각 방면으로 협력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한국 땅에 전쟁이 일어났을지라도 단순히 한국 역사만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세계 역사가 같이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이 형편은 한국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방금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어 있는 콩고 같은 나라를 생각해 보세요. 저 아프리카 중심 지대 그 흑인 나라를 100여 년 전만 하더라고 그 흑인들은 자기네들끼리 싸우고 혹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세계에 아무 관련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자기네들끼리 싸우다가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콩고의 흑인들 가운데서 그 추장들 가운데서, 그 지도자들 가운데서 의견이 틀려져서 서로 분쟁이 일어나게 될 때에 온 세계 나라가 거기에 관련을 가지게 됩니다.
라오스 문제가 또한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월남 문제가 또한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어떤 한 민족이나 어떤 한 나라나 혼자서 살 수 없는 그런 시대를 당했습니다. 서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세계 역사 가운데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유엔의 역사」가 이 앞으로는 점점 크게 씌어질 단계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는 유엔의 지도 아래의 세계 평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온 세계가 유엔 기구의 지도 아래에서 평화를 잘 유지하면 온 세계는 발전과 번영의 기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면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떻데 되어서 세계 평화가 유지 못 되면 온 세계가 참혹한 전쟁에 다 같이 휩쓸려 들어가서 멸망을 받을 가능성도 또한 있는 것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우리 세계 인류 앞에 전개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목도할 수 있습니다.
또 그리고 특별히 二十세기 중엽에 와서 한 가지 일어나는 현상은 도시로 집중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도시 집중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 十九세기까지는 어느 나라든지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과 어촌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二十세기의 고개를 넘어와서 二十세기 전반기를 지나서부터 는, 특별한 현상인데 어떤 나라에 가든지 인구가 도시로 집중이 됩니다.
그것은 멀리까지 가 볼 필요 없이 남한에서 되는 현상을 보아도 우리가 목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남한은 三八선으로 인해서 좀더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서울의 인구가 요사의 듣는 대로 二五0만을 넘어서 거의 二백 六, 七0만에 가깝다고 하는 말을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아마 세계 제二차 대전 때 서울 인구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六, 七0만에 불과하였습니다. 二백만이 더 집중되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부산에 내려가 들으니까 부산의 인구가 一二0만이라고 합니다. 일제 시대에는 三十만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 현상은 우리 한국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같은 현상입니다. 바다 건너 일본으로 말한다면 동경이라고 하는 대도시 안에는 거의 一천만의 인구가 집중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뉴욕이나 런던에 九백만이라는 많은 사람의 수가 집중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 현상을 볼지라도 몇 도회를 집중해서 인구가 모이고 또 모이고 있습니다.
과한 문명과 가계 문명과 산업문명이 발달될수록 인구가 도회로 집중될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언하기를『이 앞으로 五十년 이내에 세계 인구는 대부분이 도회에서 살리라.』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이 현상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우리 앞에 전개됩니다.
하나는 우리가 도회에 모여 살게 되면 그것은 문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고 생활 수준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좀더 모든 생활이 편리하고 모든 좋은 일을 많은 사람이 다 빨리 배울 수 있는 그런 좋은 기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렇게 인구가 한 곳에 집중될수록 더욱 생존 경쟁이 격렬하여질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 도덕이 부패하여지기 쉽습니다.
또 특별히「매스 히스테리아」라고, 무슨 조그만 일만 생기면 많은 사람이 군중 심리에 움직여서 혹은 소란을 일으키고 혹은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각 나라를 불구하고 다 도시로 집중하여 살게 되면 전쟁이 안 나면 모르지만 원자 전쟁이 나면 다 고스란히 함께 죽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새 시대의 현상을 보면 계속해서 각 방면으로 발전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 시대를 뉴 프론티어(new frontier)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각 모든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기 위해서 우리 인류가 가장 머리 좋은 사람을 동원해서 힘쓰는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선을 발사합니다.
아마 오래지 아니해서 달나라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그 후에는 금성 같은 별에도 혹 갈 수 있지 아니할까 생각합니다. 이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계속하는 소위 우주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우주를 탐색하는 반면에 이 물질 가운데 있는 그 속 깊이도, 물질의 내부도 탐색해서 원자를 연구하고 그 원자의 힘을 알게 되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사는 시대를「원자 시대 」라고 말하게끔 되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지금 여러 잡지나 책을 보면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내부를 탐색하기 위해서 가진 애를 씁니다. 지구 속 깊이 들어가 보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가솔린도 발견해서 쓰고, 금, 은, 동, 철을 발견해 쓰고, 여러 가지로 많이 하지만 이 속 깊이 들어가 연구해 보려고 지질학자들은 힘을 씁니다.
또 바다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바다 속 깊이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오고 그 안의 자세한 지도를 그려내 오고, 어떻든지 해양학자들은 바다 속을 깊이 탐색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전의 사람들이 쓴 것만 보지 않고 우리 인류가 스스로 역사를 쓸 수 없던 그런 시대에 돌아가서 인류의 역사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각 방면으로 탐색을 합니다.
소위 고고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역사 과학 가운데는 점점 발전하게 되는 것을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는 심리학자들은 우리 사람이 무엇인가,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사람의 심리의 깊은 속을 찾아보기 위해서 각방면으로 새로운 연구를 계속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 결과는 우리의 지식과 우리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점점 확대하여 갑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 인간들이 원자 에너지를 이용합니다. 원자 에너지를 가지고 잠수함을 타고 다닙니다.
혹은 어떤 도회에서는 벌써 원자 에너지를 가지고 전기 불을 켠다고 합니다. 이 원자 에너지를 가지고 원자탄을 만들어 혹은 핵무기를 만들어 쌓고 있는 것을 우리는 신문을 통해서 자세히 읽고 있습니다.
자! 이 모든 현상이 과연 귀한 현상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간단히 생각해 보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새로이 발견된 지식과 이 에너지를 인류의 복리를 위해서 사용하면 온 인류의 생활은 향상되고 번영되고 또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이렇게 탐색하여 얻은 인류의 지식과 에너지는 잘못 쓰게 되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전 인류가 오히려 파멸을 당할 가능성이 우리 눈앞에 뚜렷이 나나나게끔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새 시대는 한 편에는 광명이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편에는 암흑의 구름이 덮이고 있습니다. 한 편에서는 소망의 빛이 비추입니다. 다른 편에는 절망의 검은 구름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한 편에는 생명이 보이나, 다른 한 편에는 사망이 우리 인류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 세계 인류는 명암(明暗) 양 세계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이 새 시대의, 二十세기의 인류들은 생과 사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새 시대를 바로 정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새 시대! 이 새 시대에 따르는 세기적 고민의 해결의 열쇠가 어디 있는가? 문제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이것을 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학 문명이 죄입니까? 아닙니다. 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옛날 시대로 돌아가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문제의 초점은 과학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자체에 있습니다. 시대는 변하였는데 인간은 옛 사람 그대로입니다 문제의 초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과학 문명의 혜택으로 생활의 양식은 변하였지만 사람은 옛 사람 그대로입니다.
비행기는 타고 다니지만 아직 그 속 사람은 케이브맨(cave ma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복은 입고 수염은 깎고 다이지만 그 속은 아직까지도 부쉬맨(bush ma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풀 사이에 사는 야만 그대로입니다.
욕심은 그대로 있고, 야심도 그대로 있고, 음란한 마음도 그대로 있고, 시기와 교만도 그대로 있고, 편협하고, 잔인하고, 우둔하고, 미련하고, 겉모양은 변했다고 하지만 그 속은 아직도 굴속에 살던 그대로입니다.
이런 케이브 맨이 말하자면 지금은 기관총을 쏘고 제트기를 조종하고 원자탄을 운반하게끔 되었습니다. 보세요! 유대 사람 六00만이라는 많은 사람을 학살하고도 죄가 없다고 하는 아이히만의 마음을 들여다 보십시오. 자, 이것이 새 시대를 당한 二十세기의 고민입니다.
한국의 고민도 요컨대 이 세계적 고민을 축소한 데 불과합니다. 한국에도 새 시대가 왔습니다. 과학문명이 수입되었습니다. 八․一五해방이 됨으로 새 시대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남한에는 독립이 되었고 자유가 있게 되었고 민주주의 시대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은 옛 사람 그대로입니다. 새로 받은 특권과 자유를 바로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치가는 집권을 바로 쓰지 못하였습니다. 국민은 자유를 바로 쓰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四․一九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五․一六혁명이 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문제의 초점은 국민 자체에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젊은 혁명 지도자들이 인간을 개조하여야 되겠다고 부르짖는 것은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요컨대 초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인간 개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정치혁명이 인간을 개조할 수 있겠느냐? 많은 법률을 제정해서 인간 기조를 할 수 있겠느냐? 극형에 처해서 인간을 개조할 수 있겠느냐?
국민운동으로 국민을 개조할 수 있겠느냐? 무슨 과학의 기술로써 인간을 개조할 수 있겠느냐? 교육으로 인간을 개조할 수 있겠느냐? 물론 교육으로 개선은 가능하지만 개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요컨대 이간이 인간 자신을 개조할 수 있겠느냐? 솔직히 대답하면 개조할 수 없습니다. 속담의 말과 같이 식칼에 제 자루를 깎을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의 말과 같이『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습니까?』사람을 다시 만드는 것, 인간의 개조는 사람을 본래 지으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죄로 더러워진 인간을 개조하기 위하여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이것은 사도 바울의 체험으로 간증하는 말입니다. 이론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악독한 사람으로 살기가 등등해서 사람을 죽이려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까닭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삭개오의 생활이 그러했고, 막달라 마리아의 생활이 그러했고, 성 어거스틴의 생활이 그러했고, 성 프랜시스의 생활이 또한 그러했습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은혜를 받고 체험을 얻은 분은 수두룩히 많은 줄 생각합니다.
새 시대는 새 사람을 요구합니다. 이 새 시대는 새로운 인간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어디 가서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이 새해 아침에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돌아와서 모든 죄를 자복하고 온전히 주님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서 우리가 주안에 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능력으로 우리의 심령을 어루만져서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십니다. 새 욕망을 주십니다. 새 즐거움을 주십니다. 새 사람이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드리는 것은 一九六二년 새해에 온전히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십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서 금년 일년 동안 주안에서 우리가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에게 새로운 사람으로 변하게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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