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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4:1-6/ 엡4:11-16/ 성숙한 신앙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28:42   read : 12911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옙 四․十四)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다시 말하면 신앙에 있어서 어린아이가 되지 않아야 하겠다고 여기에 사도 바울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얼른 생각하면 우리 주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듯합니다. 우리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할 것이 없습니다. 보는 면이 다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순진성과 부모를 절대로 의지하는 신뢰성을 보시면서 이것을 배우라고 하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지혜, 지식, 힘의 면에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그는 고린도 전서 十四장 二十절에『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했습니다.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권면을 하신 것입니다. 혹은 고린도 전서 十六장 十三절에『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혹은 구역대로『장부답게 강건하여라.』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강건하여라 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온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이 장성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장성해야 할 이유를 말씀드린 것인데 그것은 본문에 나타나 있는 말씀대로 우리의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 늘 있으면 사람의 궤술(詭術)과 간사(奸邪)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이 풍조에 밀려서 요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신앙은 반드시 장성해야 된다고 우리에게 권면하신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문에서 종종 어린이 유괴사건을 봅니다. 어찌해서 어린이들이 꾀임을 받습니까? 어린이들은 지혜가 부족하고 지식이 없으니 어떤 사람이 와서 사탕을 주면서 꾀이면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다가 유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실 신령한 안목으로 보면 오늘날 한국교계에는 신앙의 유괴사건이 종종 있습니다. 진리를 사실대로 모르는 철없는 교인이 사탕 발라 먹이는 거짓말을 듣고, 여기 은혜가 있다, 저기 은혜가 있다 하는 말을 듣고 따라가다가 가산을 탕진하고 심지어는 가정이 파탄되며 패가망신하는 이들을 우리가 종종 보는 것입니다.

말세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일어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신문지상을 보면 종종 미아사건이 있습니다. 실아(失兒)사건이 많이 일어납니다. 집을 잃은 아이들의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 아이들이 집을 잃습니까? 아이들은 무엇을 모르니 어디 가다가도 어떤 구경거리가 있으면 그것 구경하려고 따라다니다가 그만 부모를 잃어버리고 집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다가 그만 악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일생을 망치는 경우고 종종 봅니다.

그런데 영적 견지에서 보면 영적 미아사건을 종종 봅니다. 실아 들을 종종 봅니다. 좀 이상한 것이 있다고 하면 따라다니다가, 무슨 이적이 있다, 계시가 있다, 방언을 한다, 진동을 한다 하는 이상한 것을 따라다니다가 그만 길을 잃고 집을 잃는 철없는 교인들을 종종 보는 것입니다.

우는 사자 같은 마귀에게 삼 키움을 당하는 가련한 영혼들도 우리가 이따금 보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왜 장성하여야 합니까? 어린이들은 지혜와 지식이 부족할뿐더러 힘도 없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중세기에 유럽에 있는 여러 나라가 총궐기를 해서 십자군을 일으켜 성지를 점령하고 회복한 역사적 장관이 있습니다.

그 때에 어린이들이 감명을 받아 우리도 십자군을 조직하자 해서, 어린 아동십자군을 조직한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동들이 수천 명 모여서 무기를 들고 우리도 나가서 싸우자 하면서 먼 성지로 향했습니다. 그 뜻은 장합니다. 그 열심도 장합니다.

그러나 그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어린이가 어떻게 싸움을 하겠습니까? 대부분 다 사로 잡혀서 회회교의 종으로 일생을 보냈습니다. 많이 잡혀 죽었습니다. 아주 비참한 말로이었습니다. 십자군은 좋지만 어린이 십자군을 가지고 무엇합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때 십자가 군병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군병들이 되려고 하면 장성해야 신앙의 대장부가 되어서야 십자군을 조직하지, 신앙이 크지 못하여 어린아이 신앙 가지고 어떻게 십자군대를 조직하며, 이 악한 세계를 십자군대로써 정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실은 이 어린 십자군 같은 이들이 오히려 악한 세상 사람과 부딪쳐서는 그만 그 사람들의 유혹과 시험에 빠져서 자기 심령까지 잃어버리는 예를 종종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악마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사자는 강합니다. 악마는 강합니다. 악마를 대적하려고 하면 신앙이 장성해서 강건한 대장부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신앙으로는 이 악한 세대를 정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숙한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三장 十八절에『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장성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혹은 베드로 후서 一장 五절 이하에『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장성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누구나 다 자연적으로 장성합니다. 그리해서 二十세쯤 넘게되면 거의 누구나 어른이 됩니다. 성인이 됩니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꼭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심리는 十二-十三세쯤의 아이 심리만큼 자라고 더 자라지 못하는 사라도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六十, 七十세가 되어도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입니다. 신앙이 자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래 믿었다고 반드시 신앙이 장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믿었어도 신앙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신앙이 자라려면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음식을 바로 먹어야 됩니다. 운동을 하여야 합니다. 모든 건강의 법칙을 배워서 바로 자라도록 힘써야 합니다.

먼저 지적으로 장성하여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믿으며 어찌하여 내가 그런 신앙을 가졌느냐? 하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유물론적 사상, 무신론적 사상, 불가사의론 적 사상, 무신론적 실존주의 같은 것이 팽창한 이런 시대에 있어서, 내 신앙을 유지하고 더 나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종교서적을 탐독해야 합니다. 연구를 해야 합니다. 예배시가에만 참석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성경 공부시간에 들어가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체험적으로도 장성해야 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로 주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 심령이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내 마음속에 영접하여야 합니다. 주님과 신령한 가운데 동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내 마음속에 받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긴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내 마음속에 천국이 임재 해서 어디 가나 천국의 생활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체험적으로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머리로만 믿고 기도도 힘쓰지 않고 묵상도 힘쓰지 않는 까닭으로 심령의 체험이 부족해져서 항상 공허감을 느낍니다. 공허감을 느끼는지라 어디에 무엇 이상한 것이 있다면 따라가기 잘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은 실제적인 면이 있습니다. 윤리적인 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참으로 거듭나야 하고, 이것은 모든 성경의 도덕적인 교훈을 실제로 실천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내 생활이 날마다 성경해지고 진실해지고 사랑으로 나가고 용기가 있는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으로서의 품격으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장성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구체적인 실례를 몇 가지 들려고 합니다.
가령 아이들 때에 가지는 종교관념은 점점 탈피를 해서 장성한 어른의 종교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들 대에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혹 우리 할아버지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 四장에서 주님께서 가리 치시는 대로는『하나님은 영이시니 그에게 나와서 예배하는 자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는 높은 관념에까지 우리가 올라가야 합니다.

아이들 때에 천당이 어디 잇느냐? 천당은 하늘에 있지 뭐, 지옥이 어디 있느냐? 지옥은 땅속에 있지, 하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성경을 보면 사실 천당과 지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이쪽에 있으나 미국인에게는 하늘이 저쪽에 있습니다. 위와 아래가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 관념이 향상되고 장성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종교적 감정의 표현도 장성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이들 때에는 조금만 기쁜 일이 있어서 크게 웃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도 조금만 언짢은 일이 있으면 또 엉엉 웁니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이야 그렇습니까? 같은 감정이지만 같이 표현 안 합니다. 항상 한 가지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친구들 가운데서 장례식에 가서 슬픔을 표현할 때는 아이들과 같은 표현을 하는 이가 많이 있어요. 크게 웁니다.

제가 미국사람의 장례식도 참석해 보고 일본사람의 장례식도 참석해 보았는데, 슬프기를 같은 슬픔이지만 그이들은 그렇게 엉엉 울지는 않아요. 그 슬픔이 슬프기는 하나 그 감정의 표현이 좀 어른답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종교적 감정의 표현도 그와 비슷합니다. 가령 어떤 이들은, 좀 기쁘면 손뼉을 치고 춤도 좀 추어야 그 표현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또 죄를 회개하려면 엉엉 울면서 통곡을 해야 하는 건 줄 아는 사람도 있어요. 그거야 물론 어느 때 큰 죄를 짓고 회개할 때에 울면서 회개해야지요. 그러나 매일 저녁 통곡하면서 회개할 필요야 있겠습니까?

그런데 살펴보면 어떤 이들은 부흥회에 가서는, 손뼉도 치고 어떤 때는 춤도 추고 또 밤새도록 울고 해야 이번 부흥회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같은 종교적 표현이지만 좀 장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성경에도 손뼉 치자고 했다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요?

또 사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는 시내산에 가서 조용히 기도하는데 아론이 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기뻐서 손뼉을 치며 춤추고 놀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이 성경에 있다고 꼭 본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금송아지 앞에서 그런 것을 말아야 합니다.

사실 종교적 감정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미개한 족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의식에 춤추고 뛰어 노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두 곳에서는 손뼉 치고 춤추며 예배봅니다.

그것이 어딘지 아십니까? 영아 부와 유치 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十三장 十一절에『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성장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종교적 감정의 표현이지마는 우리가 이 방면도 장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배는 질서정연(秩序整然)하게 예배드리라고 신약에서 말했습니다. 경건히, 온유와 감사에 넘치는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종 장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소리를 듣건대 어떤 분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 데 대해서 오해가 있는 듯 싶습니다. 성령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선물입니다. 누구나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특별히 기도하다가 떤다든 지, 진동을 한다든 지, 정신없이 벌떡 넘어진다든지 해야 성신을 충만히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믿는 것은 잘못 믿는 것입니다. 잘 못된 신앙입니다.
지금부터 한 三十년 전에 평양 북천 여러 교회에서 어떤 부인이 기도를 하다가 성신 받았다고 하면서 떨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같이 떠는데「충만 충만 충만」하면서 떨었습니다. 이렇게 떨어서 그 여인은 나무 성신을 받았다 하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여인들도 그런 성신 받기 위해 기도하는데 그렇게 떨지 않고 다른 모양으로 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토끼 성신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네 성신이 옳다, 내 성신이 옳다 하여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 교회는 크게 어지러워졌습니다.

이런 풍조가 평양 북천 일대를 휩쓸려고 할 때에 평양에서 제일 유력한 선교사 마포삼열 박사가 이 현상을 보고, 이것은 절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사람의 감정으로 흥분하면 변태적으로 떨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회교에도 있고 다른 종교도 있고 원시종교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아버렸습니다.
사실 성령의 역사가 떠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여기 나이가 좀 많으신 분은 구경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경 읽는 구경하셨는지요? 경 읽을 때 대 잡는다고 하는 것이 입습니다. 그것을 아십니까? 밤새도록 북을 치면서 흔들리겠거니 하면 마지막에는 저절로 흔들립니다. 그러면 신이 왔다고 합니다. 그것 별개 아니고 변태심리 적 현상입니다.

여러분, 굿하는 것 구경하신 이들 있을 것입니다. 한참 북 치고 춤추다가는 무당이 벌떡 나가자빠지면 그 무당 신령한 무당이라고 합니다. 변태심리 적 현상으로 찬송가를 부를 때에도 이렇게 되겠거니 하여, 하고 또 하고 하면, 심리적 법칙에 의해서 떨기도 하며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성경의 열매는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것이 마음에 충만해서 생활하는 이는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입니다.

떠는 것은 일종의 변태적 현상이므로 그런 것을 기대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오래 계속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제가 종종 보는 대로 이런데 따라 다니는 이들 자칫 잘못하여 실수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분은 계시에 관하여 오해하고 있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계시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즉,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입니다. 자연계시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온 우주만물을 통하여 하는 계시입니다. 또 우리 육체 가운데서 이성과 양심을 통하여 그의 진리를 계시하는 것은 자연계시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 자연계시만 가지고는 인간이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연계시에는 구속의 원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시고 예수님을 보내시고 사도들을 보내어서 구속의 진리를 특별히 계시했습니다.

이 모든 계시는 신구약 성경 가운데 있습니다.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에는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살 때에 옳게 살고 옳게 믿는 모든 진리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 특별계시 외에 다른 계시가 사실상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쯤에 제가 어떤 청년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내용인즉,『목사님 제가 기도하는 중에 비몽사몽간에 계시를 받았는데 저의 동네로 일본 사람들이 큰배를 만들어 노를 저어 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한일회담을 반대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회담을 반대할 이유가 많이 있지요. 그러나 이런 문제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계시하시겠습니까?

무엇이 보이는 것, 기도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 혹 꿈 가운데 보이는 것들은 언제나 이성과 성경과 성령의 진리에 의해서 테스트해 봐야 합니다. 시험해 봐야 합니다. 그런 것은 계시가 아닙니다.

바로 三, 四일 전에도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자기는 지금 삼각산에서 기도하다가 내려오는 길인데 받은 계시를 목사님께 전하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어떤 계시를 받았습니까?』하고 물었더니『앞으로 三년 六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계시는 자연계시와 특별계시 중에 있습니다. 교회 역사를 상고해 보면 언제든지 새로운 어떤 계시 즉, 성경에 없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거의가 결국에는 그릇된 신앙노선으로 가서 거짓 신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계시를 알기 원하면 성경을 봅시다.

또 신유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이들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병 고침을 얻는 일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전능하셔서 인간의 약으로 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연적으로 여러 가지 다른 길을 주었습니다. 가령 약물치료법, 수술료법,(手術療法) 또는 정신료법 등입니다. 심리적으로 최면술을 걸어서 정신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안정료법, 전지료법, 영양료법, 등 여러 가지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병에 걸리면 병이 낫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다른 모든 자연법은 다 거부하고 나는 꼭 기도로만 고쳐야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병에 따라 다른 경우가 있어요. 약을 아무리 써야 낫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약을 쓰려 해도 못 쓰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보통 경우에는 다른 길로 힘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아닙니까? 다른 약은 안 쓰고 꼭 권능으로만 고쳐주시오 하는 것에는 이적을 구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적을 구하는 심리는 건전한 신앙적 태도는 아닙니다. 또 알 것은 자기 믿음으로 병이 났습니다. 아무개가 기도해도 자기 믿음이 없으면 낮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하였습니다.『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데려다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 제가 듣는 대로 요사이 병 고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안찰(按擦)을 한다든지 쓸어 준다든지 주물러 준다든지 때린다든지 이런 것은 꼭 신앙 료법(療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안찰 료법 이요, 안마 료법 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권능을 꼭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해도 병이 났습니다.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그리고 병이 대체로 낮지마는 낮지 않는 병도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낙심하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이 없어서 몸 가운데 있는 가시를 위하여 세 번씩 기도를 해도 안되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도 혹 그런 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병이 안 낫는다고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다른 면에서 은혜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아무리 약을 쓰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죽을병은 안 낫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은 세상에 살아갈 때 우리 육신은 대단히 귀합니다. 그러나 육신보다 더 귀한 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을 죄악 가운데서 구하기 위해 예수를 믿습니다. 영혼보다 병 고치기 위해서 예수 믿으면 그 신앙은 건전한 신앙이 못 됩니다.

나사로가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사는 줄 압니까? 그는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종종 살리신 것은, 예수께서 영생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임시로 살리신 것입니다. 육신은 아무래도 죽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항상 힘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버릴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미신을 버려야 합니다. 요사이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도 날 받기, 궁합보기, 관상보기, 손금보기, 당책(唐冊)보기, 점치기, 이름짓기, 또 금년에는 빨강바지 사다가 어머니 드리기, 어머니에게 바지 사다 주는 것은 좋습니다. 가 딸은 효녀입니다.

그러나 미신으로 하지 맙시다. 이 미신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제가 부족하지마는 성경과 교회 역사를, 三十년의 목회 경험으로 보아 몇 가지 힘쓸 것과 몇 가지 경계할 것을 말할 것이니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감정에 너무 치우치게 믿지 맙시다. 둘째는 이적을 구하지 맙시다. 이상한 것 따라다니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음란하고 이 패역한 시대가 이적을 구한다』고 책망했습니다. 계시를 구하지 맙시다. 성경을 보세요. 교회 외에 다른 집단을 따라다니지 맙시다. 언제나 이런 곳에서 신앙의 병통이 생깁니다.

셋째는 미신을 버리세요. 그리고 네 가지 힘쓸 것은 조화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보에 실천할 것 여러 가지 있는데 그대로 하세요. 첫째는 언제나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합시다.

둘째는 언제나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합시다. 새벽 기도회도 자기 교회에 나오세요. 셋째는 언제나 윤리적 생활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품격이 양성되어야 합니다.

넷째는 언제나 자기 책임을 감당합시다. 주부는 가정에서, 직공은 직장에서, 무슨 책임이든 책임을 감당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생활로 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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