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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3:1-12/ 소망의 능력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21:29   read : 11861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케 하느니라. (요일 三․三)

소망의 상징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닻입니다.
아무리 바다의 풍랑이 높다고 할지라도 닻이 튼튼히 바다 속 깊이 박혀 있으면 그 배가 풍파에 밀려가지 아니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고해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때때로 풍파를 만납니다. 때때로 환난도 만납니다. 아무리 풍파가 높다고 하지마는 튼튼한 소망이 있으면 그 풍파에 우리의 작은 배가 밀려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소망의 다른 한 가지 상징은 별입니다. 옛날 나침반이 없을 때에 밤에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은 오직 별을 보고 방향을 정한 것입니다. 혹은 밤에 사하라 사막 같은 사막 길을 가는 사람도 모래 사막에는 길이 없는 고로 오직 별을 보고 방향을 바로 찾아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 행로를 걸어갈 때 어떤 때에는 밤을 당하게도 됩니다. 환난의 밤, 질병의 밤, 혹은 슬픔의 밤, 고독의 밤을 지나갈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소망이 있으면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인생의 갈 길을 바로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한 가지가 소망의 상징은 날개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새가 나무 가지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 가지가 혹 썩어서 꺾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새는 어떻게 합니까? 날개를 펴서 공중으로 날아갑니다. 더 튼튼한 나무 위에 가서 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과 비슷하게 인간의 생활 가운데도 내가 의지하고 믿었던 그 나무 가지가 꺾어질 때가 있습니다.

건강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건강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돈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사업의 실패로 돈이 없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소망이 있으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떨어져 나가지 아니하고 소망의 날개로 어려운 역경을 이겨 나갈 수가 있다고 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인간생활에 있어서 소망은 필요합니다. 흔히 우리가 이 소망을 생각할 때에 한 가지 더 깨달을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전서 一장 三절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소망 가운데는 산 소망이 있고 혹은 죽은 소망이 있고 썩지 않는 소망이 있고 썩는 소망이 있으며 영원한 소망이 있고 일시적인 소망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산 소망, 썩지 않는 소망, 영원한 소망을 잡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속하는 모든 소망은 인간을 기초로 한 소망입니다. 이런 소망은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 구름 같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 가운데 삽니다. 허무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이들의 표어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인생은 허무한즉 먹고 마시자" 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도 지금의 사람도 그렇습니다. 서양 사람도 그런 얘기를 하고 한국 사람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향락주의에 빠집니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기는 좋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절망이 있습니다. 소극주의가 있습니다. 염세주의가 있습니다. 비판주의가 있습니다. 참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참 소망이 어디 있습니까?

요한 복음 十四장 一절에 예수 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먼저 말씀했습니다.

속죄의 주가 되시는 예수를 믿으라고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집, 영원한 집이 있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해서 옛날 시편 六十二편을 기록한 시인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우리의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세계에 두어야 합니다.

제일 먼저 이런 소망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생활을 깨끗하게 합니다. 영원한 나라에 갈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자기의 생활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부터 자기의 생활을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마는 우리의 죄를 온전히 회개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 소망이 분명치 않은 까닭입니다. 이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선한 싸움을 싸웁니다. 어떻든지 달려갈 길을 달려갑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이와 같은 참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나, 무슨 일을 당하든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왜?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둔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변하여 영광의 승리가 되게 하는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도 있게 하시고 모든 일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실패 가운데서 승리를 거두시게 하는 하나님이올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참된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에게는 절망이나 낙심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시편 四十二편을 기록한 어떤 시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모든 어려운 일을 극복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또 이와 같은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은 물론 이 현세를 위해서도 최대의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영국의 기독교 문필가 C.S. 루이스라는 분이 기독교에 관한 여러 책을 썼는데 그 가운데 「기독교인의 행위론」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저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역사를 읽어보면 현세를 위하여 가장 많이 일한 이들은 내세를 가장 많이 생각한 이들이었다." 내세를 가장 많이 생각한 이들이 현세도 가장 많은 일을 하더라고 했습니다.

로마 제국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큰 운동을 일으킨 사도들을 비롯하여 중고 시대를 건설한 위대한 인물들, 노예 제도를 영국 안에서 폐지시킨 영국의 여러 복음주의자들이 이 땅위에 큰 업적을 남긴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가득 찼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지금 믿는다고 하는 이들은 다른 세계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일에도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목적을 두라. 땅은 자연히 얻을 것이다. 땅에만 목적을 두어 보아라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사실 하늘의 소망을 분명히 가진 이가 현세에서도 봉사를 잘합니다. 왜? 바울의 말과 같이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는 주를" 아는 까닭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 이들은 땅의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까닭입니다.

또 이와 같이 영원한 소망만이 인생 행로의 마지막 걸음을 옮겨 놓는 이들에게 영원한 광명과 위로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인생 길을 걸어가는 행인들인데 걸어가고 가다가 마지막 걸음을 당할 때가 한 번은 반드시 옵니다. 이것이 인생의 현실입니다.

바로 지난 주간에도 우리 교우 중에 세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런 주님의 말씀에 소망을 둔 이들만이 마지막 걸음도 바로 갈 수가 있고 요단강도 담대히 건너가는 것입니다.

역대의 순교자가 칼날도, 화형 중의 불길도, 사자의 이빨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찬송을 부르면서 순교의 죽음을 당한 것은 오직 그들의 심령 속에 이 불멸의 소망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오직 이 썩지 아니하는 소망의 능력만이 사망을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된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케이 미술관에 가보면 프레드릭 왓츠라는 분이 그린 "소망" 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 복사 본을 보신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그 그림을 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어떤 약하게 보이는 여자가 하나 앉아 있습니다.

그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에 수건을 싸매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 여자의 손에는 조그마한 비파가 하나 있습니다. 그 비파의 줄은 본래 일곱 줄이었으나 여섯 줄은 다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았습니다. 캄캄해서 앞은 보지 못하고 여섯 줄은 끊어졌지만 이 여자는 한 줄을 가지고 비파를 계속해서 탑니다.

그 줄은 소망의 줄이올시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믿던 모든 줄이 끊어진다 고 할지라도 소망의 줄만 끊어지지 아니하면 우리 인간은 계속해서 모든 것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끝까지 끊어지지 아니하는 소망의 줄이 어떤 줄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께 둔 소망의 줄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의 줄을 다 붙잡았습니까? 이 소망의 줄을 붙잡은 이에게는 어떤 환경에 처하던지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병이 중해도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환난이 심해도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방이 캄캄해도 낙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새벽 별이올시다. 소망의 별이올시다. 언제나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요단강을 건너갈 때에도 영원한 생명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이 소망의 줄을 든든히 붙잡았습니까?

이 소망은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그 믿음, 인간의 생명은 죽음이 최후가 아니고 영원히 살아있는 영생이라는 것을 믿는 그 믿음에서 이 불멸의 소망은 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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