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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6:1-9/ 자녀에게 줄 믿음의 유산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53:30   read : 12593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六․七)

이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부모된 사람들에게 자녀들에게 귀한 진리를 잘 가르치라고 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어린이날로 지키는 주일이올시다. 혹은 꽃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아마 어린이들이 꽃과 같이 아름다우니까, 그런 이름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시는 모든 축복 가운데 아마 가장 큰 축복은 어린이들일 것입니다. 부모된 사람들이 다 그의 자녀를 귀여워하지만은 그 책임이 얼마나 소중하다고 하는 것은 또한 잊어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 어린이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예배하는 날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부모된 사람은 항상 아이들을 위해서 준비합니다. 어린 아기가 세상에 오기 전부터 해산에 대한 준비를 합니다. 점점 크게 되면 교육에 대한 준비를 합니다. 청년이 가까워 오면 결혼에 대한 준비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에는 자녀들에게 할 수 있는 대로 유산을 남기기를 힘쓰는 것이 부모된 이의 성정인 것입니다.

할 수 있으면 좋은 집도 남겨주기를 원합니다. 옛 사람들은 좋은 토지를 남겨주기를 원했습니다. 아마 지금 사람은 회사의 주식이든 돈을 할 수만 있으면 자녀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기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대하여 한가지 기억할 것은 이와 같은 유산은 다시 말하면 재산의 유산은 자녀가 받아 가지고 꼭 그대로 지킬지는 지내보아야 압니다. 또 돈을 주어서 그 돈이 꼭 자녀들에게 축복이 되겠는지 도 결국은 지내보아야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꼭 축복이 되고 늘 지닐 수 있는 축복, 유산 돈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구든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아침 그런 면을 잠깐 생각하기로 합시다.

전에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수로 오래 있던 블랙우드라는 박사가 계시는데 그분이 이런 서너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첫째는 누구든지 좋은 부모이면 그 자녀들에게 기쁜 기억의 유산을 남겨줄 수 있다. 어렸을 때의 생각이 기쁜 기억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누구든지 좋은 부모라고 할 것이면 그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조성시켜서 좋은 습관의 유산을 남겨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셋째는 높은 이상, 고귀한 생의 목표를 어린 자녀에게 분명히 보여줄 수 있으면 그것이 아주 귀한 유산이 될 것이다. 여러분, 이 시간 이런 서너 가지 면에서 잠깐 생각하고자 하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 된 사람들의 하나 하나를 이 시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기억에 대한 유산을 말씀 들이고자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이 기억이라고 하는 말은 가장 달고도 또 가장 쓴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지나간 것을 회상해 보면 어떤 기억은 매우 답니다. 달콤합니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매우 씁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기억은 매우 기쁩니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매우 슬픕니다. 아렸을 적에 가정에서 자라던 기억 중 어떤 기억이 내 머리에 남아 있나 지금 각각 생각해 보세요.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단 기억이 많은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 쓴 기억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기쁜 기억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개인의 어렸을 적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라났으니까 농촌에서 자라나던 여러 가지 경험이 제 머리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봄철에는 뒷동산에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고 옆에 있는 송림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뻐꾹새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쟁쟁하게 들리고 들에 나가면 보리밭에서 나와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아름답게 노래하던 종달새의 소리가 지금도 쟁쟁히 들립니다.

그래서 삼팔선만 열리면 내 고향에 가서 종달새 소리를 한번 더 듣고 죽으면 한이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아주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목화밭에 가서 목화를 따던 기억이 늘 납니다. 아마 여기 젊은 사람들은 목화가 무엇인지 잘 모를 분도 있을 것입니다. 솜 만드는 나무를 목화라고 합니다.

그것을 따는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또 시골에 있으니까 닷새에 한번씩 장이 섭니다. 아버지가 늘 장보러 가곤 하는데 한번은 장에 따라가서 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왔던 것이 어떻게 기뻤던지 지금도 기억납니다.

못 따라 가게 되면 점심을 먹고 아버지 오시는 길목에 나가서 기다립니다. 그 목적은 아버지가 오실 때에 엿을 하나씩 사다 주시곤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나기 전에 조그만 예배당이 촌에 세워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거기 가서 찬미 배우던 생각, 처음으로 키 큰 방 목사라고 하는 서양 사람을 보던 생각이 지금도 늘 납니다.

그이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라는 찬미를 저에게 배워줬습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어떻게 기쁜 기억이 많은지 모릅니다. 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밤새 더듬어 보아도 제 기억 가운데 우리 부모님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본 기억이 안 납니다.

저는 그것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또 매맞아 본 기억도 없습니다. 책망 받은 기억은 한번 특별히 생각나는데 그것은 언젠 고 하니 우리 어머님이 병중에 계실 때에 약을 다려서 잘 짜 놓았는데 뛰어다니다 그만 그것을 엎질렀어요. 단단히 책망을 받은 것 지금도 기억납니다.

물론 저에게 슬픈 기억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열 살날 때, 정월 열 나흗날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일입니다. 그 기억이 늘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여간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어렸을 적의 기억을 가만히 회생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참 감사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대해서 언제든지 감사하고 부모님이 극진히 귀여워하고 사랑했다하는 생각밖에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에 신문을 보니 소매치기 하다가 자수해서 온 분이 자기의 과거 수기를 신문에 발표했습니다.

그것을 잠깐 읽어보니 이 분은 볼래 진주의 어떤 부자 집 첩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기 기억에 세 살 적에 자기 아버지와 첩하고 싸움이 났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놓고서 싸우는고 하니 자기를 놓고 이게 내 아들이냐 아니냐 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은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업혀 둘을 내쫓았습니다. 어머니가 쫓겨 나왔습니다. 그것을 보니 그의 어머니가 행실이 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 화병으로 자기 어머니는 그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낫습니다.

그러니 아버지는 자기 아들 아니라고 내쫓았고 어머니는 홧김에 세상을 떠난 다섯 살 난 고아가, 이런 기억밖에 없는 고아가 어떻게 옳은 길 가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특히 귀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청년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 것을 이 시간에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문호 도스토엡스키가 어떤 저서 가운데 이런 글을 썼습니다.『좋은 기억, 특별히 어렸을 때의 가정 생활에 있어서 이 귀한 기억처럼 장래에 깊은 감화를 주는 것은 없다. 귀한 성스러운 기억은 최대의 교육이 된다.

그런 기억이 많은 사람은 최후까지 인생 길을 바로 걸을 수 있다. 그런 기억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는 그의 영혼을 기억할 수가 있다. 그 한 가지 기억이 그를 많은 죄악 가운데서 건질 수 있다.』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부모 되신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기쁜 가정의 기억이 남도록 좋은 기쁨의 유산을 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가정이 단락 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부부간에 싸움이 일어나면 제일 입장이 곤란한 사람이 누군 줄 압니까? 아들과 딸들입니다. 꼭 싸움할 일이 있으면 아이들 없는데 가서 해야 합니다. 아이들 있는데서 아예 싸우지 마십시오. 그것이 앞으로 아주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도 그런 좋은 기억의 유산을 주려고 할 것이면 우리 가정이 물론 경건하여야 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여러 가지 풍파가 일어납니다. 도 무리하게 아이들에게 욕한다든지 때린다든지 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대로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어떤 분이라도 성이 나든지 자기가 속상하면 괜히 애꿎은 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런 일을 한 기억이 더러 있습니까? 우리가 속 상하다 고 왜 아이들을 북 치듯 때린단 말입니까?

제가 주일하교 선생님들에게 말할 기회가 있을 대는 언제나 이런 말을 합니다. 혹 아이들이 예배당에 와서 좀 못되게 굴어도 그저 말로 권면(勸勉)하지 때리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 다음에 커서 내가 예배당 가서 매맞은 기억을 갖게 된다면 아주 좇지 않을 것이 아닙니까?

사실 내가 이런 말을 들었어요, 아이 적에 예배당에 가서 매맞고 와서 다음부터 예배당에 안 갔단 말입니다.

또 물론 어린이들에게 친절히 하며 장난감도 사다 주고 책도 사다 주고 했지마는 가만 지내 놓고 보면 가장 기쁜 기억은 어머니하고 어디 함께 가는 것이 제일 머리에 잊지 않고 마음에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좋은 구경을 갈 때는 부부간만 가지 말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전에 평양에 있을 때 보니 어떤 젊은 부부가 모란봉에 산보 가느라고 아이들을 다 재워 놓고 문은 밖으로 잠그고 갔습니다. 한참 있다가 아이들이 깨서는 아무도 없으니 자꾸 웁니다. 종일 울다가 기진맥진해진 다음에 부모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이 다음에 무슨 기억이 남겠습니까? 내가 들으니 어떤 애가 자기 동무에게 얘기하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 합니다.『우리엄마는 얌체야, 얼른 갔다가 온다고 하더니 종일 안 와.』

그런 어머니가 여기에는 없습니까? 그 아이의 기억에 무엇이 남겠습니까? 어머니는 나를 속인다. 그 영향이 이 어린이의 앞날에 어떻게 미치겠습니까? 여러분 어떻든지 아이들과 놀려도 같이 가고 예배당 올 때도 같이 오고 이렇게 해서 아이들 생각에나,

후에 남는 기억에『참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귀여워했지, 참 나를 사랑했지, 내 유년시절의 생활은 참 행복했어.』하는 기억이 남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유산을 주면 이 유산이 이 자녀들과 일생을 같이 해서 이 자녀들이 축복 받습니다.

둘째로 좋은 습관의 유산을 주라고 했습니다.

품성과 인격조성에 있어서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심리학자의 말을 기다릴 것 없이 우리가 다 상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은 심어서 행동을 거두고 행동은 심어서 습관을 거두고 습관은 심어서 품격을 거두고 품격은 심어서 일생의 운명을 거둔다.

꼭 그렇습니다.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쌓여서 품격이 됩니다. 결국 품격이 그 사람 일생의 운명을 주장합니다. 그만큼 습관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습관은 어렸을 적부터 한 가지 하고 두 가지 하는 행동이 모여서 습관이 되고 나중에 품격이 됩니다. 그러나 부모 된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양성해 줄 수 있도록 각별히 힘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하는 말도 자주 쓰도록 배워줘야 하겠습니다. 예의를 배워줘야 하겠습니다.

친절히 하는 것, 참말 하는 것, 무엇이나 정직하게 하는 것, 무엇이나 깨끗이 하고 정돈하고 살 줄 아는 것. 부지런한 것, 일찍 일어나는 것,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적은 것 같지마는 이 습관이 모여서 결국은 그 사람의 품격이 됩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어렸을 적부터 식기도 하는 것,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는 것, 주일이 되면 꼭 예배당에 가는 것, 이것이 습관이 되고 이것이 품격이 되어야 그 사람의 건전한 터전 위에 서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 나와서는 엄숙히 예배보는 습관을 양성해 줘야 될 줄 압니다. 왜 그런고 하니 예배당을 놀이터에 간 것처럼 생각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하는 말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기도 실에 앉기는 하지마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 사다 주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자꾸 사다 주면 아이들이 놀이터에 왔는지 예배당에 왔는지 분간을 못할 것입니다.

으레 히 그런 곳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적에 왔지 마는 예배당에 오면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에는 어른과 아이들이 같이 예배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성찬을 베푸는 것을 어린이 때에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깨닫지는 못하지만 그 엄숙한 기분을 어렸을 적에 배울 수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에게 순복(順服)하는 것, 윗사람을 존경하는 것, 자연을 사랑하는 것, 다시 말하면 꽃은 꺽지 말고 가꾸는 것, 새와 같은 것은 잡아서 죽이지 말고 잘 기르는 것,

특별히 국가에 대한 사랑의 관념을 넣어 주기 위하여 국기를 소중히 간수하고 국경일에는 국기를 내다가 띄우고 언제든지 국기를 볼 때에는 아이들이 엄숙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 등 좋은 습관을 이루도록 우리가 좋은 습관을 이루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히 좋지 못한 습관이 양성됩니다. 참말 하는 습관을 배워주지 아니하면 거짓 말하는 습관이 저절로 생깁니다.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 적은 물건이라도 남의 물건 가져오는 것을 용납하면 그런 버릇이 커서 이 다음에 어떤 도둑놈이 될는지 모릅니다.

미국에 부슈넬이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가 있는데 그분이 기독교 교양론 이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섰습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품격 조성에 있어서 아이들이 세 살이 나면 벌써 부모는 할 수 있는 일이 절반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옛날부터 동양에서 내려온 말 가운데 삼세기습이 지우팔십(三世奇習持又八十)이라 하는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벌써 세 살 나서 습관 된 것이 팔십에 나기까지 계속된다는 말입니다. 벌서 세 살 나기 전부터 좋은 습관이 양성되도록 힘쓰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말로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친히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남에게 인사를 깍듯이 하고, 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알고 예의가 있고, 친절하고, 봉사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부모가 실제로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습관의 유산을 남기고 있는가? 좋은 습관의 유산을 남겨 주도록 우리가 힘써야 되겠습니다.

셋째는 어린아이들이지만 고상한 이상을 주도록 힘쓰라고 했습니다.

고귀한 생의 목표, 내가 이 다음에 커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어린이지만 있어야 합니다. 고귀한 인격, 경건한 생활, 참 그리스도와 같이 고귀한 인격 혹은 성모 마리아와 같이 거룩하고 성결한 품성, 이런 고귀하고 높은 비전과 이상을 주도록 부모가 힘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어리지마는 그의 마음에『나는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하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합니다. 예수 님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비전이, 이상이 머리에 들어오게 되면 마치 크리스마스별이 멀리 동방 박사를 인도해서 베들레헴까지 인도한 것처럼 그 아이의 일생을 그 이상이, 그 신앙의 별이 그의 갈 길을 바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결국 어떻게 그런 고귀한 인격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가 있겠습니까? 아이들이 어디서 그런 것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부모가 고귀한 품격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지 아니하면 어린이가 그런 모습을 볼 곳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혹은 아버지로서 혹은 어머니로서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엄숙하고 고귀한 어떤 모습을 내 가정 생활에서 보여 줍니까? 여러분이 엄숙히 기도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본 적이 있습니까? 혹 여러분의 경건한 생활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줍니까? 청년들과 얘기해 보면 이런 말 많이 합니다.

그저 우리 어머니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는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기도 많이 합니다. 내가 이만큼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내 어머니의 기도 때문입니다. 결국은 그 어머니는 그 고귀한 기도의 모습을 자기 아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내가 전에 들으니 六․二五때 어떤 미국 군인이 어떻게 한국 교회에 와서 예배를 보는데, 여자가 기도를 하는데 말은 모르겠으나 어떻게 간절히 기도하는 그 기도 소리를 듣고 마음에 큰 감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뜻은 모르나 기도하는 음성과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아주 성스러워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제 경험을 가만 더듬어 보아도 우리 시골에서 한번은 예배볼 때에 어떤 영수 님이 일어나서 기도하는데, 무슨 말인지 어려서 잘 모르겠으나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어렸을 때 본 그이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제가 어렸을 때 처음으로 엄숙하고 경건하고 고귀한 얼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고귀한 생활과 인격의 모습을 부모들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우리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 어디서나 속일 수 없으나 가정에서는 더욱이 속일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는 다 압니다.

내가 어떻게 예수 믿는지 아이들이 다 압니다.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압니다. 어떤 젊은 사람이 내게 와서 자기 아버지께 대해서 얘기하는 것 들었습니다.『우리 아버지는 예수를 믿기는 하나 돈을 너무 알아요』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믿는지 자녀들이 압니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하는 것이 활동사진의 필름에 박힌 것처럼 어린이의 마음에 다 박힙니다.

이 다음에 그 사진이 그 아이의 일생에 영향을 줍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고귀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면 결국 내 자신이 참된 신앙 생활을 하고 온전히 헌신해서 자녀들이 우리 아버지는 참 경건한 분이다, 우리 어머니는 참 진실한 분이다. 하는 인상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아직까지도 온전히 헌신하지 못한 분이 계시면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오늘 새롭게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고 오는 내 자녀들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우리주보를 보면 매주일 두서너 분씩 세상을 떠나십니다. 장례식에 가서 주례를 할 때마다 문득 내 마음속에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 분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자녀들에게 줄 유산이 무엇입니까? 물론 돈도 있으면 좋지요, 그러나 실상은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기쁜 기억의 유산을 줄 수 있으면, 좋은 습관을 양성시켜서 좋은 품격을 유산으로 줄 수 있으면, 고귀한 생의 목표를 유산으로 우리 자녀에게 줄 수 있으면 이에서 더 큰 유산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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