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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1:1-15/ 지식의 근본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31:34   read : 1240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一․七)

이 교육주간에 우리는 특별히 청소년들과 학생들을 생각합니다. 구약성서 가운데 특별히 청소년 교육을 목적해서 쓴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잠언(箴言)입니다. 이 잠언은 구약성서 가운데 지혜 문학에 속하는 책으로서 그 표어는 지금 제가 읽은 이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라.』잠언 九장 十절에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여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경외한다는 뜻은 단순히 두려워한다고 하는 뜻만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존경의 의미가 있고, 의지하고 감사하며 사랑한다는 뜻이 포함된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말은 결국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도 하였고 또는 지식의 근본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이 두 가지 말은 온전히 뜻을 달리해서 사용하지마는 옛날에는 지혜라고 하는 말은, 그 뜻의 범위가 지금보다는 매우 넓게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존재 곧 자연과 인생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옳은 생활에 대한 노력의 총칭 곧 종교적, 철학적, 윤리적, 과학적 모든 지식의 총칭을 지혜라고 하는 말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학에서 최고 학위를 줄 때에는 어떠한 방면의 학문을 연구하였든지 흔히 철학박사의 학위를 줍니다. 그 철학이라고 하는 말의 근본 뜻은 지혜를 사랑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까지 지혜라고 하는 말은 학계에서는 고전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니라. 혹은 지식의 근본이니라 할 때의 그 근본이라고 하는 말의 뜻도 우리가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본래 히브리 원어에 레쉬드라고 하는 말인데 주석 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 말은 세 가지 뜻이 내포되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시작 혹은 첫 단계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모든 지식의 시작이니라 하는 말이 됩니다. 사실 모든 영어 성경은 제가 찾아보는 대로 다 이것을 시작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즉 비기닝(Beginning)이라는 말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둘째로 이 말은 기초 혹은 근본이 된다고 하는 뜻이 내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해서 우리 한국 성경을 번역할 때에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생각에 들어오기 쉽게 하기 위해서 근본이라고 하는 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셋째로 이렇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가 지식의 시작이요, 또 근본이 되는 것인즉 이 지식은 가장 선한 지식이요, 가장 중요한 지식이라고 하는 의미가 내포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에 이 세 가지 방면으로 해석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종교적, 철학적, 윤리적, 과학적 모든 지식의 근본입니다. 지식을 배우는데 무엇부터 먼저 배워야 되겠는가? 지식의 시작이 있습니다. 물유목말(物有木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인데 지식에도 시작이 있어 이 시작을 먼저 배워라 한다는 것이 그 뜻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식의 시작이 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를 먼저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주라고 하는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교훈은 신구약 전체가 역시 강조해서 주시는 교훈입니다. 신명기 六장 四절 이하를 읽을 때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예수 님께서는 이 말씀이야말로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 먼저 우리가 순종할 말씀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계속해서 이 말씀에 대해서 권면 하는 말씀을 읽어보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 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네 마음에 새길뿐더러,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되 언제든지 집에 앉았을 때나, 길을 걸어갈 때나, 누웠을 대나, 일어날 때나, 이 말씀을 강론해서 입으로 가르치며 입으로 가르칠뿐더러,

요새 말로 시청각 방법을 이용해서 손목에 이것을 써서 매어 달아 주어 기호를 삼게 하고 미간에 붙여 주어서 얼굴을 바라볼 때, 처다 볼 수 있게 하고 네 집 문설주에도 기록해 두어서 아이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할 때에도 이것을 보고 깨닫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는 모든 지식의 시작인즉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칠 때, 이 시작부터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산상보훈 에서 주님께서도『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하고 역시 같은 뜻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렸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를 우리 자녀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봄 밭에 잡초의 씨가 떨어지기 전에 진리의 씨를 옥토에 뿌려 주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에 선경을 먼저 가르쳐주고 다른 말보다도 기도를 먼저 가르쳐주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법을 가르쳐주고 성결(聖潔)히 생활하는 모든 일체를 우리 가정과 교회에서 반드시 가르쳐 주어야 될 것입니다.

중년이나 노년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를 배워서 새 사람이 되고 구원을 얻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마는, 어렸을 적에 이 말씀을 재워서 일생을 선한 열매를 맺으면 얼마나 더 귀한 일인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모든 지식의 시장인즉 시작을 먼저 가르쳐 줄 것을 우리는 기억하십시다.

둘째로 여호와를 경외함은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씀입니다.

지식의 기초라고 하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지식을 한 집으로 보면 집에는 기초가 있는데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될 만한 지식이 무슨 지식이겠습니까? 종교적, 철학적, 윤리적, 과학적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될 만한 지식이 어떤 지식이겠습니까?

여기 말씀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가 그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어찌해서 그렇습니까? 간단하게 생각하더라도 곧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지식의 대상이 많지마는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둘째는 우리 인간 자체에 대한 지식.

셋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 자연계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다른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된다고 하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내 자신을 바로 알 수 있고, 우리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계도 바로 알 수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고,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꼭 바로 알아야 나 자신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상사를 보면, 인간을 바로 보지를 못하고 바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인간을 너무 높이 보아서 인간을 신으로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소위 범신론적 인간관(汎神論的 人間觀)입니다.

인간이 곧 신이라고 볼 때에 인간은 우상화합니다. 일본의 신도주의(神道主義), 한국의 천도교(天道敎)를 비롯한 모든 인본주의 사상과, 그 밖의 인간을 우상화해서 숭배하는 모든 주의와 사상은 인간을 너무 높이 보는데서 인간을 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범신론적 견지에서 참 한 분이신 하나님을 모르니까 인간을 너무 높이 보아서 그릇된 사상에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야 인간을 바로 봅니다.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은 인간을 너무 낮게 보았습니다. 무신론적(無神論的) 유물론적(唯物論的) 인간관이 그것입니다. 무신론적 견지와 유물론적 견지에서 인간을 볼 때에 인간의 영혼의 존재는 자연히 없어집니다. 결국 인간은 물질로 된 육체뿐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인간이나 짐승이나 차이는 아주 가까워집니다. 인간은 조금 더 진화된 동물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을 낮게 보게 될 때에, 유물론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윤리사상이 생기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일종의 동물인즉 동물로 취급해도 관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짐승으로 본다고 하면 짐승은 사람에게 유익할 때에는, 쓰다듬어 주고 잘 먹이고 기르지마는 사람에게 쓸데없을 때에는 얼마든지 죽여 부려도 괜찮은 것처럼 유물론적 윤리생활과 윤리관이 마음 가운데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을 부인하게 되고 인간도 짐승처럼 어떤 정권에 유일할 때에는, 잘 쓰다듬어 주고, 어떤 정권에 해가 될 줄로 생각하게 될 때에는 마음대로 죽여 부려도 괜찮다 하는 윤리사상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을 너무 낮게 보게 될 때에 다시 말하면 무신론적 견지와, 유물론적 견지에서 낮게 보게 될 때에, 역시 유물론적 사회사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인간은 짐승에 불과한 것인즉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사상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독재사상과 전체주의 사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간을 이렇게 바로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모든 험악한 윤리사상과 사회제도가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처참한 학살과 숙청과 피에 물들인 사회를 조성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참 창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 인간을 바로 봅니다. 인간은 불멸의 영혼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인간을 바로 알고, 바로 볼 때에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게 되고. 자유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천부의 권리요, 인간은 누구든지 박애와 평등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근본사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런 사상에 기초해서 민주사회가 또한 이 땅위에 나타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됩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인간을 바로 압니다. 인간에 대한 지식을 바로 압니다. 그 뿐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자연도 바로 압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람을 한 신으로 본 것처럼 대체로 자연계도 신으로 보았습니다.(옛날에 특별히 그러했고 오늘날도 이 사상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범신론적 견해로써 자연을 보았습니다. 일월성신 금수초목이 다 신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해도 숭배하고 달고 숭배하고 나무도 숭배하고 돌도 숭배했습니다. 거기에 다 귀신이 붙은 줄 알았습니다. 영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자연계를 한 신으로 보게 될 때에, 그 가운데서 과학이 발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알 때에, 이 자연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이 피조물은 단순히 물질뿐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될 때에, 자연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되었고,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때부터 자연과학이 발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자연계도 바로 보지 못합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하세요. 이 과학의 발전에 전제조건 가운데 가자 중요한 것은 우주의 통일성과 일정한 법칙에 의지한 조직성에 대한 신념입니다. 물질의 성질은 어디나 같다. 지구에 있든지, 달에 있든지, 금성에 있든지 자연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온 우주에서 같이 운영된다 하는 신념이 없었다면 과학이 발전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주선을 우주에 발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념이 본래 어디서 왔습니까? 이것은 유일한 하나님을 알고, 유일한 하나님이 온 세계를 지으셨다고 하는 것을 알고, 이 유일한 하나님이 온 세계를 유일한 자연의 법칙으로 다스린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이 신념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다신론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신념이 일어나겠습니까? 무신론과 유물론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신념이 일어나겠습니까?

유물론이나 무신론적 견지에서 보면, 이 우주는 우연히 된 것뿐이고, 우주는 목적이 없고, 맹목적인 냉혹한 존재뿐입니다. 통일과 조직을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기초가 됩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인간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온 자연계를 압니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입니다.

여러 가지 지식이 다 중요하고 필요하지마는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지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二十세기는 과학의 세기로서 각 방면에 지식이 증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인간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주선이 지구를 돌고 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전세계의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제트 여객기는 지구를 축소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우리 인간에게 행복을 더할는지 의문입니다.

지식은 이와 같이 확대되어 가지마는, 이 세계가 전보다 좀더 선하여진 징조를 볼 수 없습니다. 지식은 많아지지마는 오히려 죄악도 그만큼 더 많아진다고 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흉악한 범죄율은 상승하고만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지식이 확대되고 많아진다고 해서 이 세계가 좀더 평화로운 세계로 변하는 그 징조는 볼 수 없습니다. 지식은 이와 같이 확대되고 과학은 발달되지마는, 반면에 불안과 공포는 우리 인간의 마음가운데 점점 더 많아집니다.

요새 우리가 들었지마는 중공에서도 핵무기의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에게 평화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오히려 불안과 공포를 더하게 하는 것입니까? 한국, 일본 같은 데는 며칠 안 되어서 죽음의 재가 날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지식이 많아진다고 불안과 공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과학적 지식 자체는 인간을 선하게는 못합니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은 불같아서 바로 쓰면 유익하지만 잘못 쓰면 인류에게 큰 참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제일 중요한 지식입니까? 이것만이 과학적 지식을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까닭입니다. 모든 지식을 바로 쓸 수 있게 하는 지식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이 가장 중요한 이유를 한 가지만 더 설명하겠습니다. 이 지식관(觀)이 인간의 가장 귀한 부분을 도와주고 결국은 구원합니다. 다른 모든 지식이 대단히 귀하지마는 이 모든 지식은 우리 인간의 육체를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건강을 증진하고 좀더 평안히 살게 하고 좀더 편리하게 살게 합니다.

그라나 여러분은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육체는 아닙니다. 영혼입니다. 우리 육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영원하지는 못합니다. 시간적입니다. 무상합니다. 언제나 썩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때에 손이 이렇게 귀하지만, 이 손도 언젠가 썩을 날이 있습니다. 여러 자매 님들 미안한 말이지마는 여러분의 얼굴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지마는 그 아름다운 얼굴도 언젠가는 썩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이 속에 있는 영혼입니다. 영혼은 불멸합니다. 영혼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이 불멸의 영혼은 구원할 수 있는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육주일을 맞아서 사랑하는 여러 학생들과 사랑하는 여러 청소년들은 특별히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은 모든 지식의 시작이니 이것을 먼저 배우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은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되는 것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는, 가장 중요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 지식의 기초 위에 모든 다른 지식의 전당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예술, 문리, 화학 각 방면에서 지식을 배우세요.

그러나 이 지식의 전당을 어떤 기초 위에서 배우느냐가 문제입니다. 철저한 신앙의 기초 위에서 이 지식의 전당을 지어야 합니다. 학문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산상보훈을 다 기억하시지요. 예수 님께서 산상에서 모든 진리를 다 그르쳐 주신 다음에 마지막에 무슨 말씀으로 결론을 맺었습니까? 집 짓는 사람의 비유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 집을 반석 위에 짓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 말을 듣기는 듣지마는 그대로 행치 않는 사람은 집을 지을 때 모래 위에 짓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처음에는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바람이 불고 비가 나리고 창수가 날 때에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넘어질 때가 없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식의 전당을 짓기를 힘씁니다. 학문의 전당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현대문명을 창조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컨대 어떤 기초 위에 이 학문의 전당을 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현대문명을 아무리 건설한다고 하지마는 이 모래 위에 지은 학문의 전당은 오래지 않아서 바벨탑과 같이 무너질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학문의 전당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위에 튼튼한 신앙의 기초 위에 지을 때에만 현대문명도 유지되겠고, 우리 개인 하나 하나의 생활도 비가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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