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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11:1-8/ 응보의 세계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38:14   read : 12126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十一․一)

이 말씀은 얼른 들으면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면 간단한 말씀이지만 깊은 영적, 도덕적 세계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여기 식물이라고 하는 말을 직역하면 떡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옛날에나 지금이나 애굽에는 나일강이 범람할 때에 식물인 곡식을 물위에 던져서, 관개를 해서 농사를 지으므로, 물위에 던져야만 가을에 많은 수확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한국과 같이 벼농사를 많이 하는 나라에서는 이 원리를 누구나 잘 아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봄에 나가서 불 위에 떡의 자료가 되는 종자를 뿌립니다. 그래야 가을에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여기 이 말씀은 파종과 수확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영적 세계에 있어서 선행과 본사와 희생이 있으면 오랜 후에라도 응보(應報)가 있을 것이라 하는 원리인 것입니다. 이런 원리에 대한 확신은 우리 동양 사람들도 옛날부터 공통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해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을 쌓는 길에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물론 보편적인 인과응보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주석 가의 말에 의하면 기 교훈은 이 원리를 가르쳐 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떡을 물위에 던진다고 하는 말은, 물과 같이 무심하여 반응이 없는 곳에서라도 선행하고 봉사를 잘하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때가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즉, 응보가 있으리라 하는 원리를 특별히 강조해서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떡을 물위에 던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좀 떠다니다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겠지요. 혹은 물고기가 먹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물고기는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반응이 없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시대에라도, 사회에라도 친절과 봉사와 희생의 생활을 계속하면 여러 날 후에는 아무래도 응보가 있느니라는 그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렇게 되는가? 물론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만 아시고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교훈은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그 모든 것을 다 깨달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 세계는 응보의 세계인 것을 확신하고 언제나 식물을 물위에 던지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 본문입니다.

또 응보를 받으려고 선을 행하라고 하는 것보다 이 세계는 응보의 세계라는 것을 기억하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하는 뜻이 여기에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인생의 가는 길을 한쪽으로 생각하면 적은 배를 타고 물을 건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건너냐 할 물은 거칠고 물결은 높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러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라도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서 언제나 친절과 사랑과 봉사와 희생의 떡을 계속해서 던지면서 인생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교훈이 본문에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인생항로를 지나신 길입니다.

주님이 지나간 그 바다에 풍파가 얼마나 높았으며 얼마나 험악하였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에서도 오히려 더 친절과 사랑과 봉사와 희생의 떡을 무심한 대중에게, 무심한 세상 사람에게 넉넉히 던지면서 지나간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시대에, 그런 사회에 있어서도 언제든지 이와 같은 생활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생활을 회상할 때에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생활에 반드시 응보가 있는 것은 오늘에 사는 우리로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六․二五사변 직후에 내가 어떤 의사를 만났는데 다음과 같은 경험담을 말해 주었습니다. 오래 전에 들은 것이지만 기억이 잘됩니다. 이 분은 六․二五가 나기 몇 달 전에 어떤 불쌍한 과부가 심히 않는 아들을 데리고 와서 이 아이의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남편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를 이대로 두면 꼭 죽을 수밖에 없어서 데리고 왔는데 이 아이를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제가 앞으로 기회만 있으면 은혜를 갚아 드리겠다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이 의사는 사실이 그런 것같이 보이고 불쌍히 보여서 중한 병에 걸린 이 아이를 비싼 약을 먹이고 비싼 주사를 놓고 여러 날을 치료하여 그 아이가 회복되어 완쾌되었습니다. 물론 이 일이 있은 후에 이 의사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지요.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달 후에 六․二五사변이 터졌습니다. 공산군이 서울에 들어왔습니다. 점령하자마자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을 전부 구속합니다. 이 의사도 잡혔습니다.

잡혀가서 그 사람들에게 여러 날 심문을 받으면서 시시콜콜히 묻고 고생을 당하는데 가만 형편을 보니까 아무래도 죽게 됐고 그렇지 않으면 운이 좋아야 북한으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전전긍긍 공포 가운데 그저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기에 가까운 때에 자기는 얼굴도 모르겠고 이름도 모를 어떤 젊은 사람이 오더니 자기를 잘 안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부르죠아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으로 환자를 천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가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유력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이라고 하였지만, 이 사람의 말로 의사는 결국 석방을 받고 풀려 나왔습니다. 그 후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몇 달 전에 그 과부라고 하던 아기 어머니의 남편이었고 실상은 공산당원으로서 서대문 형무소에 있던 사람으로 그 과부와 같이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과부의 얘기를 듣고는 이 의사를 적극 변호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어느 구름 속에서 비가 내려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험악하고 거칠은 세상이므로 오리려 우리는 더 친절과 사랑과 봉사와 희생의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요사이 우리가 신문을 읽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장래에 한 줄기 소망을 비추어 주는 좋은 뉴스가 종종 나타나서 많은 감명을 우리가 받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군인 가운데 강 재구 소령 같은 이는 자기 부하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몸으로 터지는 수류탄 위에 덮쳐서 자기는 죽고 부하들의 생명을 건져낸 갸륵한 얘기라든가, 또 며칠 전에 아현동 거리에서 되어진 일,

즉 행상으로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우리 동포 가운데 하나, 이 정엽 씨라고 하는 분이 七살 난 국민학교 一학년 학생이 달리는 차에 뛰어 들어가서 치이게 되려는 순간 자기가 뛰어 들어가서 그 아이는 건지고 자기의 생명을 희생한 그 일, 이런 모든 소식을 듣고 감격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우리 민족은 반드시 앞으로 축복 받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언제든지, 어느 날이든지, 여러 날 후에 응보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거칠은 바다와 같은 세상을 항해해 가는 우리로서는 이런 바다일수록, 아니 이런 바다인 까닭으로 용서의 떡을 던질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일제시대에 제가 신의주에 있을 때에 신의주 거리에서 적은 상점을 경영하던 한 믿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자본도 별로 없이 조그만 상점을 차리고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일본정부가 주동이 되어 만주 국과 합작을 하여서 압록강 댐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많은 저기가 다 거기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 삭주(朔州) 라고 하는 곳에 동양에서 제일 큰 댐을 만들지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신의주에서 작은 상점을 경영하던 이 청년이 그 댐 공사의 여러 물자를 용달 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많은 물자를 사서 용달 하는 가운데 이 상점은 三, 四년 동안에 힘 안 들이고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신의주 사람들은 다 놀랐지요. 그런데 그 배후에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미담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이 청년의 부친으로부터 들은 것입니다.

이 분의 아버지가 일찍이 촌에서 농사하면서 살았는데 한 번은 밭에 나가 일을 하다가 날이 저물어 어두워져서 자기 강냉이 밭을 지나오게 되는데, 그 밭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두운 때에 누가 남의 밭에 들어왔을까 이상하게 생각되어 그 밭을 헤치고 들어갔습니다.

들어가 보니 한 젊은 여자와 十여세 난 아이가 분주히 강냉이를 따서는 광주리에 담고 있었습니다. 바로 도둑놈이 눈앞에 있었지요. 그래 가까이 가보니까, 자기가 잘 아는, 그 동네에 사는 가장 가난한 과부인데, 이 과부가 자기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강냉이를 따고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 그의 생각에는 저들이 도둑질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분하게 생각되었으나 곧 이 분의 마음속에는, 그가 잘 믿는 분이고 후에 장로가 된 분인지라. 저 과부는 아무 것도 없는 과분데 얼마나 배가 고프면 강냉이를 따갈까 하는 불쌍한 마음이 생겨서 아무 말하지 않고 어서 딴 것을 다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돌아가라는 말 한 마디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에게도 얘기를 안 했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얘기를 안 했습니다. 그 후에 그 분이 그 곳에 살다가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겠고 또 농사를 지어서는 교육비를 당할 수도 없고 해서 신의주에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도 얼마 후에 그 동네를 떠났다고 합니다. 물론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근 二十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은 모릅니다. 그렇게 불쌍하게 자라난 과부의 아들이 그 후에 압록강 댐을 박는 일본 사람의 큰 회사의 사원이 되었더랍니다.

이 사원은 여러 가지 물건을 구매하는 책임을 맡았던 것입니다. 여러 상인 중에서 그 청부를 맡기는데, 이 청년은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잘 모르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아무 게 아들이라고 하는 얘기를 했더니 그 사원은 두 말하지 않고 내가 당신에게 다 맡긴다고 하면서 그 청부를 맡겼다고 합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거칠고 각박하고 어지러울수록 우리가 남의 죄를 용서하는 용서의 떡을 이 거칠 은 물위에 던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예수 님께서는 七十번씩 七번이라고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한 하신 것이 아니고 가지가 친히 용서해 주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던 스테반도 자기를 돌로 처 죽이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조금 전에 신문 뉴스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만 참으로 감사한 것은 서울에 사는 어떤 부인은 자기의 삼대독자를 죽인 살인강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살려 달라고 하는 진정서를 재판장에게 냈다고 하는 소식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왜? 반드시 응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을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찾을는지는 모릅니다.

남의 죄를 용서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죄도 남에게 용서함을 받으며 하나님께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친절과 감사와 봉사와 희생과 용서의 떡만 던질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서 생명의 떡을 이 거칠 은 물위에 많이 던져야 합니다. 왜? 이 거칠 은 물에는 빠져 가는 심령도 많고 굶주린 심령도 많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떡을 던지려면 어떤 때에는 참 무심한 물위에 던지는 것과 같은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던져야 합니다. 무심함으로 던져야 합니다. 언제 수확할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금년이 신교가 들어온 지 八十년을 기념하는 해이지만 사실은 언더우드 박사와 아펜셀라 박사가 一八八五년에 정식 선교사로 들어오기 전에 신교 복음은 저 북편 만주를 통해서 압록강을 건너 한국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일찍이 스코틀랜드 장로교에서 만주에 선교사 몇 분을 파송 했습니다. 봉천(奉天)에는 로스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중국에서 선교할 때에 한국 청년들이 봉천에 여행을 왔다가 그 선교사를 만나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기 시작한 유명한 얘기를 우리가 다 잘 압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꼭 사실인지는 모르나 사실이기에 이런 얘기가 생겼겠지요. 그 로스 선교사가 한국의 믿는 청년들과 같이 마가복음의 쪽 복음을 우리말로 제일 먼저 만주에서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전도를 위해서 전도 인을 시켜 이 책을 궤짝에 넣어 가지고 압록강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압록강에 와보니 우리 정부에서는 철저한 쇄국정책을 쓰던 때인지라 강변에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일체 왕래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아무리 이 책을 들여올래 야 들여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들여오지는 못하고 그만 그 책이 전부 압록강 물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 로스 선교사에 갔습니다. 그의 마음이 좋을 리는 없지마는 입맛을 몇 번 다시더니 얼굴을 들며 하는 말이, 과히 상심하지 맙시다. 내 생각에는 앞으로 압록강 물을 먹는 사람들은 다 예수를 믿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가운데도 압록강 물을 마시고 예수 믿으신 분 몇 분 계실 것입니다. 사실 해방 전까지 한국에 기독교가 제일 많은 곳이 평안북도였고, 평안북도 가운데 제일 많은 곳이 압록강 좌우 언덕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된 모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저 생명의 말씀을 전하면 어떻게 전파가 될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수확을 거두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를 해야 합니다. 아침에도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많은 때도 씨를 뿌리고 어두울 때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노방전도도 계속합시다. 문서전도도 계속합시다.

파송 전도도 계속합시다. 우리 개인전도도 특별히 힘을 습시다. 어떤 면으로든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나, 핍박하는 사람이나, 누구에게든지 언제, 어떻게 되어서 열매를 맺을는지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매달 첫 주일 저녁마다 세로 믿는 이들의 환영회가 있는데 그 때에 어떻게 되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물어보면 어떤 이는 그저 나 혼자 믿고파서 나왔습니다. 하는 이도 있고, 어떤 분은 방송을 듣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는 이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전도 지를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많기로는 어떤 친구나 어떤 친척의 권면을 받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개인전도가 제일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듣든지 안 듣든지, 저 사람은 뭐 예수를 안 믿을 거야 라고 생각하지 말고 안 믿을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전도해 보세요. 그 마음을 감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비와 긍휼의 떡을, 만하지 않는 물위에,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 인생에게 던지십니다. 대자연의 은택을 거저 주십니다. 오곡백과를 거저 주십니다.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을 거저 주십니다. 산해어별(山海魚鼈)을 그냥 주십니다. 봄 동산의 꽃을 그냥 주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햇빛과 비를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의 밭에 골고루 나누어, 우리 하나님은 아무리 무심한 인간들에게라도 이렇게 끊임없는 자비와 긍휼의 떡을 던져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는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라도 이 하나님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도 이 세상에 아무리 무심하고, 고마운 줄도 모르는 악한 사람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친절과 사랑과 봉사와 희생과 용서와 전도의 생활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이 봉사와 용서와 복은 전파에는 너무 타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길 것입니다. 우리는 장래도 모르고 내 행동의 결과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나 신비합니다.

수확은 그에게 맡기도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선한 씨를 뿌릴 뿐입니다. 수확이 속히 되지 않는다고 조급히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씨가 길가에 떨어진다고, 돌작밭에 떨어진다고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수확의 시기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빠른 기일 안에 수확을 주십니다. 어떤 때는 十년, 二十년 후에 수확을 주십니다. 아니 어떤 때에는 이 세대에 뿌린 씨가 다음 세대에 가서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 十四장 十三절을 기억하십니까?『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저희의 하는 일이 따릅니다. 어디까지요? 하늘나라가지 따릅니다. 꼭 기억할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응보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응보의 우주입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 때, 아무에게 행한 아무리 저은 일이라도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응보 되는 우주입니다. 이 우주에는 은밀한 중에 조용히 보시는 그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터키 사람들의 속담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선을 행하라, 물에도 던져라, 물고기가 모르면 하나님은 아시느니라.』하나님이 아시니 낙심하지 맙시다. 계속해서 선을 행하십시다.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하십시다.

잠언 十一장 二十五절에『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케 하는 자는 자기가 윤택하여지리라.』

예수께서 누가복음 六장 三十八절에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는 너희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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