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1-12/ 별을 따라 / 한경직 목사 2014-08-27 10:13:04 read : 15162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마태복음 2장 10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첫 크리스마스 계절에 하늘에 이상한 큰 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동방 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 그 별을 따라서 베들레헴까지 와서 아기 예수를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이 별은 보통 별은 아니었습니다. 새벽별이 되시는 메시아의 상징으로 나타난 줄 생각합니다.
사실 그리스도는 이 캄캄한 세상에 별과 같이 빛납니다. 그는 과연 이 가식과 허위가 많은 세상에 진리의 별이며, 이 시기와 증오로 가득한 세계에 사랑의 별이며, 이 불의와 부패로 찬 사회에 정의의 별이며, 불화와 분쟁으로 넘치는 이 지구 위에 평화의 별이며, 죽음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생명의 별입니다. 그리고 이 억압과 구속이 많은 현대에 있어서 자유로 빛나는 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과연 전 인류의 소망의 별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별은 누구나 본 것은 아닙니다. 오직 동방 박사들만 그때에 본 것 같습니다. 이 박사들은 당시에 점성학자로서 항상 밤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연구하던 이들입니다. 새로운 진리와 사실의 탐구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메시아의 상징인 이 별이 특별히 나타난 줄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별을 바라보는 생활입니다. 땅만 보지 않고, 하늘을 보며 위에 있는 것을 찾는 생활입니다. 육체와 물질만 생각하지 않고 물질 이상의 것, 육신 이상의 것을 찾는 생활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탐구하는 생활이 곧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입니다. 과연 신앙생활이란 위를 보며, 위에 있는 것을 찾는, 곧 별을 앙망하는 생활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바라본 것만은 아닙니다. 별을 보고, 별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별이 가리키는 메시아를 만나기 위하여 먼 순례의 길을 떠난 이들입니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나 별을 따라 그들은 길을 떠났습니다. 이것도 역시 영적 순례자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별을 보며 그 별을 따라 먼 길을 가는 순례의 생활입니다. 동방 박사의 앞에는 메마른 사막이 있었습니다. 험한 골짜기도 있은 것입니다. 태산준령이 가로막을 때도 있었고, 장강대하가 앞을 막을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박사들은 낙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약대를 타고 한 걸음 두 걸음 오직 별을 따라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신앙생활이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진리와 사랑과 자유와 정의의 별을 따르는 오늘의 순례자의 길에도 환난과 풍파가 있고, 유혹과 시험이 있으며, 애통과 고난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과 같이 낙심하지 아니하고, 쓰러지지 아니하고, 꾸준히 나아갈 때에만 우리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와 사랑의 별을 따라서 중단 없이 꾸준히 달려갈 길을 달리는 진리의 순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박사들은 별을 따라 마침내 베들레헴에 이르렀습니다. 별빛의 지시대로 새벽별의 실상이 되시는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수천 리 순례의 길을 지나 마침내 메시아를 만난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 것입니까? 오래 찾던 진리를 만나는 그 기쁨, 사모하고 바라던 주님을 만나는 그 즐거움은 문자 그대로 수무족도(手舞足蹈 몹시 좋아서 날뜀)를 하여도 오히려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신앙생활의 한 체험인 줄 생각합니다. 주를 만나는 기쁨, 우리 심령이 주를 만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주를 영접하는 기쁨, 주의 품에 안기는 기쁨, 내가 주 안에 있고 주께서 내 안에 계시는 기쁨, 주와 동행하는 기쁨이 영적 순례자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종종 부르는 찬송가의 한 구절과 같이,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루어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노래하자 내 지은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 기쁜 성탄에 여러분들도 주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심령 속에 주를 영접하여 여러분의 심령이 주를 만나는 이 성스러운 기쁨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박사들은 주를 만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서 예물을 드렸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 예물들을 여러 가지 상징으로 해석하려는 이들이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 줄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렸을 뿐입니다. 사실 그들은 그들의 몸과 마음을 먼저 드리고, 또 그 표로써 이 예물들을 드린 것입니다.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지식인가? 그것이 재능인가? 물질인가? 혹 자손인가? 우리의 가장 귀히 여기는, 내가 가진 가장 큰 보물을 주님께 드릴 것뿐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이렇게 권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이 기쁜 크리스마스 날에 온전히 헌신하여 마음이 새로워져서 변화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1971년의 성탄절을 비상사태 아래에서 맞고 있습니다. 국제 공산당들은, 특별히 북괴들은 언제나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 직장에서 내 책임을 바로해서 올바른 애국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이와 같은 거룩한 탄일에 주님의 상징이 되시는 크리스마스 별을 신령한 눈을 들어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별입니다. 사랑의 별입니다. 정의의 별입니다. 자유의 별입니다. 진리가 결국은 이깁니다. 거짓이 일시로 혹 사람을 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진리가 최후로 이깁니다. 한 조각 구름이 일시에 대지를 가릴 수 있지만, 항상 가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정의가 승리합니다. 언제나 자유가 승리합니다. 생명이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이런 확신을 가지지 아니하리오마는, 이러한 때에 우리는 더욱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는 주를 의지하는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이러한 때에 있어서 내 생활을 바로하며, 모든 방면에 우리 사회와 국가 생활에 있어서 빛과 소금의 책임을 바로 감당해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자연히 성탄이 우리 전 국민을 위해서 큰 축복의 계절이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이 기쁜 성탄을 저희들에게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독생자를 보내신 이 날, 주님의 밝은 그 별이 캄캄한 밤에 빛나는 이 날, 저희들은 주님의 얼굴을 다시 한번 앙망하며 영원한 진리와 자유와 정의와 사랑의 별을 바라보면서 이 거룩한 날 아버지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와 같은 날 여기 앉은 우리 교우들뿐 아니고 우리 온 국민들의 마음 속에 진리와 사랑과 자유의 별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우리가 다 이 진리의 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확실한 신앙과 신념을 가지고 모든 흑암의 세력과 싸워 이기면서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이 날 여기 나와서 예배하는 이들뿐 아니라, 가정에 계신 여러분들, 일선에 있는 국군장병들, 월남에 가서 있는 분들, 그리고 북한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이 날을 맞는 여러 북한 성도들과 애국 동포들 위에도 빛나는 이 별로써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새로운 신앙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을 온전히 우리 중심에 영접하는 이 거룩한 날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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