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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7:11-17/ 한 청년에게 주신 말씀 / 한경직 목사
2014-08-27 12:23:59   read : 19142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인도 미라주(Miraz, India)교회 창립 75주년 기념식과 또 특별집회에 참여하고 지난 수요일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그 교회에서는 75주년을 기념해서 교육관을 새로 짓고 이번에 봉헌식을 같이 하였습니다. 또 예배당을 증축하는 기공식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집회를 닷새 동안 가졌는데,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곳은 우리 한국과 한 가지 다른 것은 일기가 매우 더워서 오전 중에는 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저녁 대중 전도 집회는 운동장에서 했습니다. 사실은 너무 더워서 모기가 좀 많은 게 곤란했지만, 다른 건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서 보니 거기 여러 선교사들이 많이 와서 병원도 하고 전도사업도 하는데, 제가 놀란 것은 그 선교사들 가운데 우리 한국을 다녀가면서 우리 영락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갔다고 하는 분을 4~5인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락교회 사정을 잘 아는 이들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인도에는 인구가 3억이나 있습니다. 또 말도 여러 말이 있어서 관용어만 16가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영어가 사용됩니다. 제가 갔던 그 지방에는 ‘마라치’라고 하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교회가 물론 들어온 지 오래 됐지만, 그 나라에는 아직까지도 8할이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고, 기독교인의 수는 100명에 2사람 정도밖에 되지 아니하는데, 하나는 구교요, 한 사람은 신교라고 합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우리가 특별히 인도를 위해서 여러분께서 앞으로 기도해 주시고, 또 인도 전도를 위해서 앞으로 아시아의 교회가 힘을 써야 되겠다 하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특별히 본 교회에서는 ‘청년주일’로 지킵니다. 오늘 아침 읽은 성경 말씀 가운데 7장 14절 하반절을 다시 읽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죽은 과부의 아들에게 하신 말씀이올시다.

복음서를 읽으면 주님께서 장례식을 집례했다고 하는 말은 없습니다. 언제나 죽은 자를 만나면 다시 살렸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렸고, 죽은 나사로를 살렸고, 여기에서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또한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주님은 생명의 주로서 언제나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외쳤습니다. 첫째는 지금 말한 대로 죽은 자들에게 일어나라고 외친 것입니다. 둘째는 병든 자들에게 일어나라고 외친 것입니다. 가령 네 사람이 메고 온 반신불수에게 혹은 베데스다 호수가에서 38년이나 앓은 환자에게 일어나라고 외친 것입니다. 또 셋째는 자는 자에게, 배 밑바닥에서 자는 요나에게 일어나라고 한 것입니다.

신령한 눈으로 인간 사회를 볼 때에는 사실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이들, 병든 심령들, 자는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이런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외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그 영이 아주 죽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기록하였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하나님과 접촉이 없는 영혼,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지금도 주님께서는 일어나라 외치십니다. 그 영이 부활해야 합니다.

또한 둘째로, 죽지는 않았지만, 병든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신불수처럼 된 이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병들었으니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숨은 죄, 혹은 악한 습관으로 말미암아 선을 행할 수가 없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향해서 역시 주님께서는 일어나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와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또는 자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병도 없고 죽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혼수상태에 있습니다. 자기의 처한 환경도 모르고, 위기가 다가왔으나 위기인 줄도 모르고, 자기의 사명도 모르고, 옛날 요나처럼 자는 이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이런 이들을 향해서 주님께서는 지금도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잠을 깨야 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영적 죽음에서, 영적 질환에서, 그리고 영적 수면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왜? 우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청년시대는 일할 때입니다. 일하기 제일 좋은 때입니다. 일할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려고 하면, 이런 상태에서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옛날부터 많은 일을 한 이들은 청년시대부터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한니발은 28세 때에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로 쳐들어갔습니다. 알렉산더는 23세에 세계 정복의 길을 떠났습니다. 콜롬버스는 28세에 대서양을 처음 건넜습니다. 영락태왕은 18세에 왕이 되어서 만주와 한국에 걸치는 대고구려를 건설했던 것입니다. 요한 칼빈은 27세에 유명한 <기독교 강요>를 저술했습니다. 리빙스턴 같은 이는 23세에 선교사로 아프리카를 향한 것입니다. 스펄전 같은 이는 20세부터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대에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가정을 위해서도 청년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청년은 가정의 소망이요, 가정의 기쁨입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자는 상태, 병든 상태, 죽은 상태에 있으면 그 부모에게 얼마나 큰 민망한 일이 될 것입니까? 나인성 과부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였을 겁니까? 지금도 병든 청년들 때문에 가슴을 죄이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가정을 위해서도 그런 상태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서도 청년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전도, 교육, 봉사, 사회 정화운동 등 각 방면에서 교회는 청년들을 부릅니다. 일해야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도 청년들이 그런 상태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나라를 깨끗게 하며, 나라를 방어하며, 자유와 평화와 번영의 나라를 세우는 모든 책임이 청년들의 두 어깨에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조국이 청년의 각성과 용기를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세계정세를 볼 때도 역시 청년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70년대는 과학시대, 우주시대, 원자의 시대인 동시에 불안과 공포와 위험의 시대입니다. 사실 세계 장래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어두움과 악의 세력은 강합니다. 이런 세력과 싸워서 이기면서 공의와 자유와 번영과 평화의 세계를 수립하는 책임이 역시 청년들에게 있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은 조는 가운데서, 병든 가운데서, 죽은 가운데서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서 일어나서 일하는 청년들이 되려고 하면 반드시 다음 몇 가지 정신적인 무장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깬 사람은 눈을 뜹니다. 밝은 눈이 필요합니다.

보는 안경이 필요합니다. 보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요샛말로 비전(vision)이란 말을 씁니다.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청년들에게 필요합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겠는가? 내가 어떠한 크리스천이 되겠는가? 언제든지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먼저 분명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장래에 대한 비전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일단 그리스도에게 부름을 입은 후에는 그가 친히 기록한 대로 그리스도에게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음질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신 후에는 우리 하나하나에 대한 그리스도의 목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들겠다고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이 목표를 내가 분명히 보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달음질을 쳐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사명, 곧 할 일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또한 필요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냈는가?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특별히 무슨 일을 시키려고 나를 불렀는가? 내 일생의 사명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필요합니다. 여기 대해서는 선천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을 내가 깊이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특별히 즐거워하는 점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분명히 살펴서 이 사명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청년들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다 이와 같이 내 자신에 대한 비전, 내 사명에 대한 비전이 분명합니까?

그리고 내 교회에 대한 비전도 필요합니다. 약 10년만 지나가면 지금에 있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우리 교회 중심 인물들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장로들이 되고, 권사들이 되고, 집사들이 되고, 목사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어떠한 교회를 이루고 싶다는 이 교회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있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랑과 봉사로 뭉친 승리적인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습니까? 과연 3,000만의 구원선이 되고, 세계에 빛나는 등대가 되는 교회를 세울 것입니까? 혹은 그렇지 못하고 형식적인, 미지근한 냉랭한 교회로 전락하게 만들 겁니까? 여러분의 비전이 필요합니다.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성막에 대한 비전을 분명히 보고 내려와서 그대로 지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대해서도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그 비전을 시내산 꼭대기에서, 기도의 망대에서 분명히 보고, 이대로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참 모습을 다른 사람의 얘기로 듣지 말고, 성경 가운데서 분명히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 청년들은 교회에 대한 비전을 옳게 봐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청년들은 내 국가에 대한 분명한 비전도 또한 보아야 합니다. 어떤 나라를 세울 것입니까? 자유와 공의와 번영과 통일의 민주국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봅니까? 이 분명한 비전이 없으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나라가 어떤 독재주의적, 전체주의적인 국가로 전락할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나라를 이 땅에 세우려는가? 청년들이 분명한 비전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대한 비전도 또한 분명히 미리 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지구가 점점 말하자면 줄어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전 인류의 운명은 서로 교차되었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문자 그대로 하나요, 한 세계가 되고 만 것입니다. 어떠한 세계를 만들려는 것입니까? 자유롭고 평화롭고 번영하고 협동하며 진보적인 행복스러운 세계를 만들 것입니까? 혹은 혼돈과 빈궁과 노예와 전쟁과 상호파괴의 세계로 전락케 할 것입니까? 비전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청년의 전도도 암담합니다. 나라의 전도도 암담합니다. 세계의 전도도 암담합니다. 청년들의 분명한 내 자신, 내 나라, 내 교회, 내 세계에 대한 비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비전이 어떠합니까?



둘째로, 꼭 필요한 정신적 무장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신앙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청년들에게 위대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종종 큰 믿음을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군인 백부장의 큰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이런 믿음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보지 못했다고 칭찬했습니다. 혹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칭찬했습니다. 큰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성경을 읽어 보면 우리 주님께서 믿음이 작다고 나무란 적도 있습니다.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염려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책망했습니다.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에게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갈릴리 바다와 같이 풍파가 높은 이러한 시대, 이러한 세상에 사는 청년들에게는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노아의 방주와 같이 큰 배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배가 필요합니다. 작은 배 가지고 안 됩니다.

악마의 화전(花煎)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이런 세상에서는 큰 믿음의 방패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방패라고, 작은 방패 가지고는 안 됩니다. 큰 믿음의 방패여야 모든 원수의 화전을 소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폭풍우가 거센, 이러한 시대에는 큰 믿음의 날개가 필요합니다. 큰 믿음의 날개여야 모든 것을 초월해서 승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대한 위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은 능치 못한 것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과거나 현재나 신앙의 용사들이 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살고 싸운 것입니다. 그리고 승리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읽어 보세요.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서 이방 사람들의 길을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위대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내 자신에 대한 큰 믿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내 자신은 물론 부족하고 약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빌립보서 4장 13절을 기억하세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내 몸이 비록 부족하나, 성령의 전이 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을 기억하세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모든 원수를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같이 하실 때에 어떤 유혹이나 난관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27편 첫 절을 여러분 아시죠?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내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심령은 강하고 담대합니다.

그리고 내 민족과 국가에 대해서도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전에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여순 감옥에서 순국을 하면서 사형에 처하기 전에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우리 대한이 독립할 것을 꼭 믿는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했습니다. “대한이 독립된 때는 내 유해를 조국 땅에 갖다 묻어 달라.” 그 믿음이 꼭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내 나라와 내 민족에 대한 이런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북한 땅을 공산도배에게 일시로 빼앗겼지만, 반드시 북한을 통일해서 자유의 깃발이 날리고, 통일된 민주국가가 이루어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한 조각 검은 구름이 청천백일을 일시는 덮을 수 있지만, 오래는 가리울 수 없는 것입니다. 자유와 정의는 반드시 이깁니다. 통일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청년들은 우리 민족과 국가에 대한 위대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민족이 비록 약소민족이란 말을 듣고, 혹은 후진국가라는 말을 듣지만, 장래에 우리 민족도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선진국가의 대열에 참여할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내 민족 내 국가에 대한 큰 믿음이 또한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하는 청년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무장 한 가지 더 말합니다. 그것은 도덕적 성실성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모랄 인테그리티(moral integrity)’, 이 도덕적 성실성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거듭나라고 말했습니다. 새로 나라고, 중생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기독 청년의 생활을 진실, 순결, 근면, 이상 세 가지로 무장해야 합니다. 재능이 필요합니다. 지식이 필요합니다. 기술을 배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아니됩니다. 이거 다 있고 진실해야 합니다.

어떤 청년은 이런 거 다 있는데, 진실에 실패해서 패배한 청년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이런 거 다 있는데, 순결에 패배했어요. 정욕의 시험을 못 이겨서 일생을 그르치는 청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이런 거 다 있는데, 그저 게을러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청년을 많이 봤습니다. 이 세 가지 진실, 순결, 근면, 이 세 가지 도덕적 성실로써 나를 무장해야 됩니다.

옛날 요셉이라는 청년의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었어요? 그는 위대한 신앙 안에서 어떤 환경에서나 이 세 가지 곧 진실, 순결, 근면으로 일관했어요. 그는 종의 몸으로서도 진실하고 충성된 종이 되었어요. 그는 독신 청년으로도 정욕의 모든 유혹을 물리쳤어요. 그는 감옥에서도 부지런히 일해서 모범적 죄수가 되었어요. 이 도덕적 성실이 꼭 필요합니다. 이 부패와 부정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기독 청년들은 이 점에서 빛과 소금이 반드시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과거 근 40년 교역생활에 많은 젊은이들, 많은 청년들과 상대해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크게 일하는 이도 여럿 있습니다. 크게 성공한 이도 여럿 있습니다. 그 사람들 생활을 가만히 보면 다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일어나서 온전히 새 사람이 되었고, 비전과 큰 믿음과 도덕적 성실성의 진리를 우리 청년 중에, 우리 교회 청년 하나하나가 주님의 이 부름을 듣고, 이 시간 주님께 나와서 새 사람으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특별히 청년들의 심령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이 음성을 우리가 다 듣고 조는 가운데서 병든 가운데서 죽은 가운데서 일어나는 축복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밝은 눈, 위대한 신앙, 성실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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