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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47:6-12/ 장성과 열매 / 한경직 목사 2014-08-27 14:57:53 read : 24466
오늘 아침에 읽은 에스겔 47장에는 선지자 에스겔이 본 하나의 환상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환상 가운데서 보니, 한 작은 샘이 예루살렘 성전 밑으로 솟아납니다. 처음에는 그 물이 적게 나왔지만, 그 물이 흐름을 따라서 점점 많아지고 점점 깊어져서 큰 강이 됩니다.
이 강이 동편으로 향해서 흐릅니다. 예루살렘 동편은 나무가 별로 없는 황막한 광야뿐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강이 동방을 향해서 흘러가게 되니 강 좌우편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장성하게 되었고, 또는 그 나무는 여러 가지 종류의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 환상은, 혹은 비전(vision)은 신약시대에 와서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운동의 확포와 그 축복을 보게 됩니다. 복음운동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처음에는 작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하늘의 성소에서 시작이 되어서 이 광야 같은 세상에 생명 강으로써 전 세계에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해서 강 좌우편에는 나무가 많이 자라게 되었고 또는 이 나무들은 많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여기 앉아 있는 우리, 곧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말하자면 이 생명 강변에 심어진 나무와 비슷합니다. 사실 성경은 종종 우리 믿는 사람들을 나무에 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혹은 시편 92편에는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생명 강변에 심겨진 나무, 혹은 여호와의 집에 숨겨진 나무의 특색은 두어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왕성하게 자라는 모습이올시다. 또 하나는 그 나무에 열리는 갖가지 열매입니다. 오늘 아침, 이 장성과 열매에 대해서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장성’을 생각하십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자랍니다. 산 나무는 자랍니다. 죽은 나무만 자라지 못합니다. 특별히 지금 이 5월이란 계절은 풀과 나무가 잘 자라는 때입니다. 어떻게 빨리 자라는지 그저 하루 저녁 자고 나가 보면 우리 예배당 뜰에 심은 나무도 퍽 더 자라났습니다. 성경에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종종 장성하라고 하는 권면을 우리가 읽어 봅니다. 가령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하였습니다. 혹은 에베소서 4장 15절에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 곧 그리스도시니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장성해야 합니다. 장성은 생의 법칙이올시다. 생명이 있으면 장성합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는 약 20여 세까지 장성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 장성이 그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자신은 계속해서 장성해야 합니다. 특별히 다음 두어 가지 면에서 계속해서 장성해야 합니다.
첫째는, 지적인 방면으로 계속해서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계속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연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독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특별히 현대와 같은 과학시대에 있어서는 매일 새로운 사실과 새 진리가 발견됩니다. 새로운 지식을 우리는 계속해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남자들만이 아닙니다. 여자들도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청년들만 아닙니다. 중년들도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노년들도 계속 배워야 합니다. 사실 죽기까지 배우는 것은 배워야 합니다. 여러 다른 책도 많이 읽으려니와 특별히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이 지적인 방면에 장성하지 못해서 몇 해를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보면 종종 미신에 빠지고, 사교에 끌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민망한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적으로 장성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지적인 방면에 불신자보다 앞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는 항상 교육을 중시합니다. 학교 교육, 교회 교육, 사회 교육을 통하여 지적으로 장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둘째로, 아주 중요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도덕적 혹은 영적으로 장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라. 지식을 더하라. 절제를 더하라. 인내를 더하라. 경건을 더 하라고, 형제 우애를 더 하라고, 사랑을 더 하라고,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계속해서 장성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장성의 표준을 성경은 분명히 말해 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장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이르기까지 장성하라는 것입니다. 혹은 너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온전한 것같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좀더 온유한 사람, 좀더 겸손한 사람, 좀더 의로운 사람, 좀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좀더 담대한 사람으로, 좀더 성결한 사람으로, 좀더 사랑의 사람으로 장성하라고 우리에게 권합니다.
지적인 방면과 이 도덕적, 또는 영적 방면이 같이 균형 있게 장성해야 합니다. 가령, 우리 인간이 머리 하나만 장성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형입니다. 다른 몸도 균형 있게 같이 장성해야 합니다. 사실 현대인의 모습은 지적 방면으로는 굉장히 자랐는데, 도덕적, 영적 방면에는 아직도 자라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현 20세기에 사는 전 인류의 고민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적인 방면은 크게 자라서 달나라를 왕래하고, 제트기로 여행을 하고, 원자탄 수소탄까지 많이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사용하는 인간의 도덕적, 영적 상태는 아직까지 유치원 애들과 비슷합니다. 아직까지 석기시대에 살던 사람 이상으로 별로 장성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세계의 현실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얼마나 위험할 겁니까? 마치 어린애들이 비행기를 운항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어린애들이 수류탄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권총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불장난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는 전전긍긍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70년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이 도덕적, 영적 성장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70년대에 무엇보다도 정신혁명이 필요합니다. 영적 장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도 요한을 생각할 때 자연히 우리는 사랑의 사도란 생각이 먼저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니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곧 사랑이신 까닭이니이다”
이 사랑의 사도를 우리가 먼저 연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복음서를 읽어 보면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본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과 야고보 형제의 별명을 지어주실 때에 ‘우레의 아들’이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보니 우락부락하는 성질이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복음서를 읽어 보면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그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 어떤 촌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가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 사람을 미워합니다. 이들이 다 유대 사람이다 보니 민족적 편견을 가지고 한 집도 들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을 보고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께 진언한 얘기, 여러분 아마 기억할 것입니다. “주님, 그저 하나님께 기도를 해서 불을 내리어서 이 동네를 전멸시키도록 그렇게 합시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이 동행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오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와 같은 성질도 변해서 사랑의 사도라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그렇잖아요? 우리가 사도 바울을 생각할 때 얼마나 덕과 사랑을 겸한 위대한 사도로 우리가 존경합니까?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래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주 표독한 사람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을 굉장히 미워했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같이 공모하고 도와주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믿는 사람을 전멸하기 위해서 믿는 사람을 발견만 하면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심지어 예루살렘뿐만 아니고 다메섹에까지 가서 믿는 사람을 잡아오게 만든 사람이올시다. 아주 무서운 독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점점 자라서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불의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장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장성합니까? 지적으로 장성합니까? 또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장성합니까? 여러분의 품격이 좀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해 갑니까?
여기 앉은 청년들, 여러분의 육체에 피가 잘 장성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지적인 방면도 장성해야 하고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같이 장성해야 합니다. 덕이 자라야 합니다. 영이 자라야 합니다. 인격이 자라야 합니다.
여러분, 장성의 비결이 뭘까요? 영적인 장성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다 잘 압니다. 몇 가지가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야 장성합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생명수를 흡족히 받아야 장성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물에 비유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에 우리의 영이 장성합니다.
또 우리가 장성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물론 영양이 좋아야 장성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도의 젖을 사모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배워야 합니다.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살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또 물론 좋은 공기가 필요하죠. 요새 우리 한국에도 소위 공기 오염 문제가 대두가 됩니다. 사실 이 공기가 더러워진 오염문제는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특별히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실 영적 견지에서 이 공기 오염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더러운 공기로 가득합니다. 더러운 사상, 더러운 풍속, 더러운 오락, 더러운 음악, 더러운 유행, 온갖 더러운 공기 가운데서 우리 믿는 사람들도 살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 믿는 사람도 이런 공기 가운데서 자연히 물이 듭니다.
여러분, 깨끗한 공기를 마실 때가 어느 때입니까? 여러분이 기도할 때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할 때입니다. 성도와 교제를 가질 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묵상하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물론 운동도 필요합니다. 여기 아기들을 보면 굉장히 활동합니다. 그런 가운데 아기들이 빨리 자랍니다. 우리도 아무것도 안 하며 예수 믿은 사람은 자라지 못합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한 가지 기억할 것 있죠. 병이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제 선친, 우리 아버지께서는 왼팔에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 보긴 모르죠. 그러나 옷 하는 사람들은 알죠. 어떻게 그렇게 됐느냐고 물어보니까, 어렸을 때 자랄 때에 왼팔에 병이 생겼어요. 왼팔이 크질 못했어요. 병이 나면 못 자랍니다.
여러분이 장성하지 못하면 여러분의 신앙생활 가운데도 아직까지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습니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를 겁니다. 어떤 분에게는 교만일거요. 어떤 분에게는 원한이나 혹은 남을 미워하는 생활, 어떤 분에게는 음란한 생활, 내 생활에서 아직까지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우리 가운데 선천적으로 키가 좀 작은 이들이 아마 있는 줄 압니다. 선천적으로 키 작은 건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의 키가 작아서는 아니됩니다. 우리 영은 키가 커야 합니다. 장성해야 합니다. 좀더 원만한 인격, 좀더 고귀한 성품, 좀더 평화와 사랑의 인물로 장성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생활을 하여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시라” 혹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것이니라” 좀더 그리스도를 닮으라.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성품, 그리스도의 정신, 그리스도의 사상, 좀더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장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사실 장성의 목적은 열매 맺기 위해서 입니다. 장성한 나무는 자연히 열매를 맺습디다. 우리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장성하면 자연히 이것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성경에 보면 이 열매를 대략 서너 가지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성령의 열매를 가르쳐 줍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 이것은 우리 마음 속에 맺는 열매입니다. 혹은 품격을 통해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둘째로, 성경에 보면 행실의 열매를 맺으라고 또한 권면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그 당시 모든 사람에게 권면하기를 “너희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이것을 행동으로써 행실로써 나타나게 열매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1절에 보면 의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습니다. 의로운 행실로써 열매를 맺으라고 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0절에 보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라고, 착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라고, 마음의 열매뿐 아니고 착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셋째로,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전도와 봉사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여러분 다 기억하죠? 어떤 분이 나와서 씨를 뿌립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집니다. 어떤 씨는 돌짝밭에 떨어졌습니다. 어떤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떨어진 씨는 하나도 열매를 못 맺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씨는 옥토에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씨는 혹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열매는 전도와 봉사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열매입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좋은 사업을 많이 해서 사회와 국가에 큰 혜택을 미치는 이러한 열매를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 방면에 우리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깨끗한 행실로써 진실하고 근면하고 청결하고 의로운 깨끗한 행실로써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뿐 아닙니다. 전도를 많이 하고 좋은 사업을 많이 해서 큰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 개인을 중심해 생각해 왔지만 다른 편으로 하나의 지교회 혹은 교회를 나무에 비유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 영락교회를 한 나무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영락교회가 과거 25년 동안 지금까지 장성해 왔습니다. 장성해 왔으면 우리 영락교회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금년에 특별히 전도대회를 열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생각할 때에는 우리 하나하나는 이 영락교회라고 하는 큰 나무에 달려 있는 하나의 가지입니다. 나무가 아무리 크지만 열매는 가지에 맺힙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열매를 맺어야 영락교회가 열매를 맺습니다.
제가 지난 1월 중에 미국 어떤 교회에 가보니 그 교회는 이런 풍속이 있습디다. “새해 첫 주일에 모든 교인들에게 카드를 나눠 주어서 금년 1년 동안 당신네들이 다 적어도 한 사람이나 혹 두 사람 전도할 사람을 작정하시오.” 작정하는 카드를 다 줍니다. 그래서 새해 첫 주일에 그 카드를 받는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기가 가지고 하나는 교회에 내고, 그리고 1년 동안 자기가 목표한 그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이와 교제하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이렇게 해서 1년 동안 꼭 그이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내는 그런 풍속이 있습니다.
우리 영락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지금까지 없었는데 이번 25년 만에 한 번 그렇게 전도 카드를 여러분에게 나눠올릴 생각입니다. 여러분 다 받으셨죠? 주보받으실 때 그 뭐 있습디까? 전도 결심서라고 여러분 다 받으셨죠? 오늘 이 주일, 우리가 이 25주년을 계기로 해서 특별히 전도대회를 계기로 해서 6월 8일부터 서울에서 전도대회가 있겠는데 아직도 서너 주일 있어요. 서너 주일 앞두고 우리 꼭 한 사람이나 혹은 두 사람 그 이상도 좋죠. 꼭 목표를 하고 내가 이번 전도대회를 계기로 해서 꼭 그이를 하나님께 인도하기로 결심하십시다. 그 결심을 확실히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그 결심서를 나눠준 겁니다.
여러분, 오늘 나가시기 전에 찬송 부르는 동안이든지 연보하는 동안이든지, 그 전에도 미리 한 번씩 생각하라고 말씀했으니 여러분 생각이 다 있을 거예요. 또 여러분 친척이나 친구 가운데 몇 사람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가시기 전에 거기 꼭 쓰세요. 나는 아무아무에게 전도할 사람 이름을 쓰고, 마지막에 내 이름을 쓰고 점선 있는 데 절반을 찢어서 위에는 내가 가지고, 잊어버리기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래것은 여러분이 다 나가다가 각 문에 통을 다 배치해 두었는데 그거 다 문에 있는 통에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까? 25년에 이거 첫 번으로 영락교회에서 누구든지 이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 아침에 결심을 한다고 하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축복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좀더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향해서 장성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가 전도와 봉사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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