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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현장에 선 세계교회 지도자들 /오하이오 교회에서 목사 형제 총격
2016-03-04 11:21:49   read : 46399
















분단 현장에 선 세계교회 지도자들, 평화를 기도하다

WEA 세계지도자대회 셋째날… 판문점·임진각 찾아

▲2일 WEA 세계지도자대회 참석자 80여명이 3개조로 나뉘어 DMZ공동경비구역을 둘러보고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참석자 중 일부가 북측 판문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파주=강민석 선임기자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쪽으로 50㎞ 지점. 차로 1시간정도에 불과한 거리에 북한이 마주 보이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엔다바 마자바니(남아공) 목사는 적잖이 놀란 듯했다. “분단의 현장이 이렇게 가까울 줄은 몰랐습니다.”

2일 동족상잔과 국토분단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곳, 경기도 파주 진서면 공동경비구역(JSA) 내에 위치한 판문점을 세계 복음주의교회 지도자들이 찾았다. 판문점을 둘러싼 지름 800m의 공간. 이곳 JSA는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248㎞의 분단선 중 유일하게 철책이 걷힌 곳이다. ‘공동경비’라는 말 그대로 남과 북의 협력을 전제로 한 지역이지만 팽팽한 긴장감만 감돈다. 이날 세계복음연맹(WEA) 세계지도자대회 참가자 80여명은 판문점을 돌아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악화일로에 있는 남북관계 탓인지 판문점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대남확성기를 통해 북측의 음악이 웅웅 들려왔다. 지척에서 마주보는 남북 병사의 시선은 차가웠다. 글린 카펜터(뉴질랜드) 목사는 “같은 민족인 양국 청년들이 경직된 자세로 서로를 노려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며 안타까워했다.

WEA 관계자들은 판문점 내 장성급 회담이 이뤄지던 T2막사를 찾았다. 북의 도발로 2009년 3월 이후에는 이곳에서 회담이 진행된 적이 없다. 회담장 안에서 군사분계선은 효력이 없지만 중앙테이블 위를 가로지르는 마이크 선이 남과 북을 극명하게 나누고 있었다. 통제에 따라야 하기에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WEA 관계자들은 각자 선 자리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WEA 총무 겸 대표 에프라임 텐데로(필리핀) 감독은 “1989년 6월 아는 목사님의 초대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분과 함께 비무장지대를 처음 방문했다”며 “남과 북이 서로 대적하고 있는 상황과 그 이유를 알고는 꾸준히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텐데로 감독은 “27년 만에 복음주의 리더들과 다시 이곳을 찾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는 것이 뜻 깊다”며 “세계교회는 하나님께 남북의 통일을 구하는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파주 사목리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으로 이동했다. 실향민들이 북에 두고 온 부모와 가족을 그리는 망배단 앞에서 누스 레이마스(인도네시아)목사는 “실향민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꼭 남북의 평화로운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망배단 너머로 멈춰선 채 녹슬어 가는 경의선 증기기관차도 WEA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기차는 6·25전쟁 중 폭격을 맞아 멈춰선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돼 있다. WEA 글로벌유스무브먼트 콜린 파이프(영국) 위원은 “녹슨 기차를 보니 분단의 기간이 매우 오래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일 대표로 참가한 티모 플리친스키 목사는 한국군 포로들의 귀환 통로였던 자유의 다리를 건너며 “이제는 휴전이 아니라 종전, 분단과 갈등이 아니라 통일과 협력의 시대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람을 마친 WEA 관계자들은 남북 간 대화의 문이 열리고 복음적 통일이 이뤄지길 기도했다.

WEA는 이번 세계지도자대회 기간 중 북핵 도발을 규탄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세계교회의 연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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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 외쳤던 하나님의교회 원동에서 떠나라"

원주 하나님의교회 입주저지비대위, 20일 하나님의교회 규탄 집회



어머니 하나님을 추종하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강원도 원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건물을 매입한 이후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극기야 하나님의교회는 원주에서 떠나라며 거리 집회에 나섰고, 하나님의교회측과 주민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송주열 기자의 보돕니다.

[리포트]

하나님의교회 입주저지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0일 원주시 원동사거리에서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 종말론을 유포한다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을 들고 하나님의교회 규탄 집회를 가졌습니다.

집회에는 원동아파트 주민 50여 명을 비롯해 하나님의교회피해자모임, 원주시기독교연합회 관계자, 몇몇 원주시의회 의원들이 동참했습니다.

집회 참석자들은 “하나님의교회는 원동과 원주에서 떠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에게 하나님의교회의 실상을 알렸습니다.

[현장음] "지구 종말을 외쳤던 하나님의교회 원동에서 물러나라"

[인터뷰] 문진영(52세) / 원동 아파트 주민
"원주의 평온하고 조용한 아파트에 이런 종교가 들어온다해서 주민들이 힘을 모아서 이렇게 나왔습니다."

집회가 끝난 시각, 주민들의 회의 내용을 녹취하던 하나님의교회 신도가 발견 돼 주민들과 하나님의교회 신도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현장음]
"핸드폰에 뭘 찍었는지 저희가 확인만 하고 드릴께요. 삭제하지 마시고.."
"삭제 안해요"



원주시 원동 아파트 단지에 내걸린 하나님의교회 입주 반대 현수막.

원동 아파트 주민 75%가량이 하나님의교회의 입주를 반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교회측이 주민들을 회유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됐습니다.

[녹취] 지역 주민 A씨와 하나님의교회 신도 통화 내용 일부
주민A : "전화를 하지 마세요 앞으로.."
하나님의교회 신도 : "그래서 만나려고 전화를 했어요."
주민 A : "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하셨는지 제가 역추적을 하겠습니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하나님의교회에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원주지역 교계도 하나님의교회 입주 저지를 위해 힘을 보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김종군 목사 / 원주시기독교연합회장
"2차 서명운동을 또 벌이고 있습니다. 또 한번 시장님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원동 주민들과 함께 기독교연합회 산하 목사님들이 이런 집회를 가지려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지난해 8월 공매로 나온 지하1층, 지상5층, 연면적 2,931 제곱미터 규모의 구 LH 원주사옥 건물을 30억 원에 낙찰 받은 바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원동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교회 입주저지비대위가 꾸려졌고, 거대 종교단체 진출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과 주차문제 증가, 포교활동에 대한 부담감 등의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교회 입주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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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주의 목회 신화를 포기하라

목회 본질과 그 진지함을 나누는 책

크리스찬북뉴스



▲ <성공주의 목회 신화를 포기하라> / 유진 피터슨 지음 / 차성구 옮김 / 좋은씨앗 펴냄 / 260쪽 / 8,500원

신간을 서평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난 책을 살피는 일도 소중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번역된 지 10년이 넘은 묵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나는 다시 읽어야 할 책을 책장에 따로 구분해 놓는다. 그 책들은 틈날 때마다 몇 번이고 뒤적여 본다.

영화에 미친 사람은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아니라 영화 하나에 며칠이고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반복해서 영화를 보는 동안 그의 눈은 화면에 비친 영상이 아니라 카메라앵글을 따라가며 감독의 마음을 읽는다. 책도 마찬가지리라.

어느 날 성경책 한 권만 들고 작은 섬으로 떠난 감리교 신학자 정경옥처럼 서탐(書貪)에서 벗어나, 오직 한 권의 책을 들고 떠날 수 있다면. 그런 책 중 하나가 <성공주의 목회 신화를 포기하라>(좋은씨앗)가 아닐까 싶다.

내가 유진 피터슨(이하 유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교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것을 날카롭게 비판해서가 아니다. 목회자들 심성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우리 안에 있는 개인의 야망과 목회적 소명을 구별해 내서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진의 힘은 성경을 읽어 내는 통찰과 그것에 바탕을 둔 목회적 진지함에 있다.

내 책 읽기의 편협함이나 부족함 때문인지, 나는 지금까지 이만큼 목회 본질에 다가선 내용을 찾아보지 못했다. 한국교회 미래가 불투명하고 어둡다는 진단은 이제 흔해 빠진 이야기가 되었다. 교회와 관련한 각종 조사 수치를 보면서 우리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위기감마저 둔해진 지금, 또 하나의 비판이나 분석이 아니라 목회의 본질과 그 진지함에 눈을 돌리는 일이 절실하다.

야망의 공간, '다시스'

이 책은 요나서에 대한 유진의 해석이다. 그는 사명자 요나를 통해 목회자들 깊은 곳에 감추어진 목회적 야망을 모조리 긁어낸다. 그 목회적 야망은 이상적 항구도시 '다시스'로 번역된다. 욥바에서 3,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스페인 항구도시 다시스는 세상의 금은보화가 가득해서 사람의 욕구를 충족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왕상10:22).

유진에게 다시스는 단순히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도망가려 한 곳이 아니라 사명자들 가슴에 꿈틀대는 야망의 공간이다. '더 좋은 목회를 위해', '하나님께 더 크게 영광 돌리기 위해' 등의 명분을 내세우며 끊임없이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달려가는, 우리가 꿈꾸는 도시다.

오래전 베네딕트 수도사들은 '정주서원(定住誓願)'을 하였다. 5~6세기 당시 많은 구도자들이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더 좋은 스승과 더 완전한 수도원을 찾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모양이다. 정해진 장소에 우직하게 머물러서, 그곳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며, 어떠한 상황과 환경의 동요에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마음을 붙들어 매는 것이 바로 정주하는 삶이다. 이들은 그런 삶을 서약했던 것이다.

예수님도 열두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눅9:4)고 하시지 않았던가. 한곳에서 영혼을 살피는 안정된 시선을 잃어버리고 다시스로 떠나는 순간, 교인들은 목회의 단순한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하지만 유진은 "그들은 내가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내가 그들에게 주어진 목회자였다"고 고백한다.


"모든 교인들은 거룩하게 만들어진 영혼들이다. 성령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한 거처로 정하셨다. 내가 그 현장에 도착하기 오래전에, 이미 성령님이 거기에서 활동하고 계셨다. 나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역에 나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유진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만큼 교인을 살피고 심방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인다. 가정을 심방하든 병원을 심방하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먼저 갈릴리로 가셨듯이 앞서 그곳에 계심을 믿으며, 그분께서 무엇을 행하시며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인다.

유진의 목회는 내 사역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심방의 중심을 나에게서 주님께로, 성령께로 옮기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 우선 심방 기도를 심방을 받는 당사자가 하도록 권했다. 익숙지 않은 일이어서 교인들이 의아해했지만 자신과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종종 그들의 마음과 입술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 심방에서 느낄 수 없는 은혜였다. 내가 도착하기 전 이미 저분의 심령에서, 그리고 이 가정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목회자라면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유진은 목회자가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물러서는 목회"를 알려 준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관계를 맺으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시도록 "비켜설 줄 아는 목회" 말이다. 나는 이 대목이 책의 백미라 말하고 싶다.

자신의 야망을 향해 달리는 이들에게 기도와 묵상이 필요하다. 그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머물던 3일의 시간이다. 유진은 이것을 '아스케시스'(경건 훈련)란 말로 표현한다. 묵상과 기도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살피는 공간이다.

기도가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영혼의 호흡이다. 다니엘은 그 숨결 같은 기도를 중단할 수 없어서 차라리 사자 굴에 던져지는 쪽을 택하지 않았던가.

기도와 묵상은 '니느웨'라는 특정한 사역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한다. 유진도 사역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을 사역을 유지하기 위한 쓰레기 같은 일로 여겼다. 우리로 말하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웃음 지으며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는 일. 연세 드신 어르신들을 부축하는 일. 예배 순서자를 미리 확인하고 많은 행사를 준비하고, 편집하는 일. 예배 후 불편하신 분을 댁에 모셔다드리는 일들 말이다.

그런데 유진은 사역을 위해 처리되어야 할 쓰레기 같은 항목들이 거룩의 재료임를 깨닫는다. 설교를 준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소그룹을 인도하는 일에 비해 하찮게 여겼던 일이다. 그 일은 니느웨에 있다. 좌우 분변 못하는 12만 명이 모여 사는 니느웨 사역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도 다시 니느웨로 걸음을 돌이켜야겠다. 설교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새벽마다 휜 허리로 폐지를 모으시는 권사님께 따뜻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야겠다.
서중한 목사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울 공항동 대성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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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십자가 철거 반대’ 목사 부부, 불법 행위 혐의로 12∼14년 중형

중국의 교회 십자가 강제철거 조치에 반기를 든 중국인 목사 부부가 불법행위와 부패 등의 혐의로 12∼1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AP통신은 28일 현지매체인 저장르바오(浙江日報)를 인용, 저장성 법원이 지난 25일 바오궈화 목사와 그의 부인 싱원샹에게 각각 14년형과 12년형을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저장성 진화시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들이 신도들을 불법적으로 조직해 정부에 탄원서를 내게 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어지럽혔고 약 220만 위안(4억1600만원)에 달하는 헌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비리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이들 부부가 교회운영 과정에서 장부 조작 등 회계부정을 저지른 점도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따라 이들 부부로부터 개인재산 60만 위안(1억1300만원)씩을 몰수하고 각각 10만 위안 상당의 벌금도 부과했다. 법원은 이들과 함께 불법행위를 저지른 신도 등 10명에 대해서도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중국 법원과 언론은 그러나 바오 목사 부부가 십자가 강제 철거에 반대해 왔다는 점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AP통신은 최근 2년여 동안 중국 당국이 기독교도가 가장 많은 저장성에서 교회에 설치된 십자가 수백개를 건축규정 위반 명목으로 철거했다고 보도했다. 저장성 당국이 2013년부터 십자가 철거 캠페인에 나서 현재 1200개 교회의 십자가가 강제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독교 인권단체인 ‘차이나 에이드’는 이와 관련, “바오 목사를 기소한 것은 그가 십자가 철거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면서 “그와 신도들을 형사처벌한 것은 종교적 탄압”이라고 주장했다고 A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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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교회를 떠난 이유

뇌병변 장애인 김호영 씨…"누구도 옆에 앉지 않았다"

최승현 기자

이 일기는 뇌병변 장애인 김호영 씨의 일기 원문을 옮겨 온 것입니다. 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원문을 최대한 수정하지 않고, 띄어쓰기와 오탈자 일부만 고쳤습니다. -편집자 주

2006년 9월 24일.

(교회) 사람들은 (나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그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옆에는 항상 아무도 오지 않아서 대화를 잘 하려고 하지도 않고 내 옆자리에도 잘 앉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여기까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들한테 왜 내 옆엔 아무도 안 앉고 대화를 하지 않느냐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말이다.

물론 그것 때문에도 목사님과 많은 얘기를 했지만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다려 보자는 말씀만 하셨다. 그렇게 2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중략) 내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에 있는 교인들인데 과연 내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아무쪼록 내가 교회에 없어도 소망부는 늘 하나님의 축복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

2007년 8월 26일.

내가 교회를 가지 않은 지도 오늘로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원래 생각은 1년만 쉬고 다시 교회를 나가려고 했는데, 그것도 교회 사람들 하기 나름인데, 내가 한두 주 교회를 나가지 않을 때는 나에게 연락이 오더니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만큼 교회 사람들은 나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왜 교회를 그만뒀는가?

다 그 사람들이 잘못해서 내가 그만둔 것 아닌가. 그러나 그 사람들은 자기들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모두가 내 믿음이 약해서 그럴 것이다. 아무리 믿음이 강하더라도 어느 한 단체에서 차별을 당하면 그 단체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교회에선 믿음으로 극복하면 된다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교회를 다니라고 하지만, 하나님만 보고 다니지는 않는다. 거기 사람들을 보고 다니지 그러니까 교회 사람들이 이 교회 저 교회 옮기는 것 아닌가.



▲ 김호영 씨는 마침 일기를 쓰고 있었다. 몸이 불편하지만 18년 동안 한 손만으로 꿋꿋하게 일기를 써 왔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부산 영도에 사는 김호영(40) 씨는 10년 전 교회를 떠났다. 교회에서 외로웠고,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

김 씨는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중증 장애인이다. 흔히 말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어머니 조수선 씨는 아들이 태어난 지 100일 정도 되던 때, 병원에서 주사를 잘못 맞아 장애가 생겼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게 40년을 살아왔다.

혼자서 움직이기 어렵고, 의사소통도 어렵다.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충분한 도움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두 해 다니다 적응 못 해서 나온 게 아니다. 10년 넘게 교회에 다녔고, 교회 행사도 곧잘 따라다녔다. 교회 문화에는 익숙해졌지만, 교인들 무관심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어머니 조수선 씨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 가면 아침에 가서 저녁에 올 때까지 혼자 앉아 있는 거예요. 청년부들이 같이 얘기도 하고 점심 때 되면 밥도 챙겨 먹여 줘야 하는데, 밥만 갖다 주고 마니까 결국 혼자서 밥 먹어야 되고요. 그렇게 혼자서, 말 건네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한 교회를 8년 동안 다녔어요. 결국 스스로 교회에 안 나가려 하더라고요. 8년 다녔으면 정이 들 만도 한데…."

외삼촌이 선교사고, 어머니도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 집안이다. 외삼촌마저 "교회에서 그런 대접 받으려면 차라리 나가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게 교회를 떠난 지 10년이 흘렀다.



▲ 김호영 씨의 어머니 조수선 씨. 조 씨는 오랜만에 온 손님이 자기 얘기를 들어줘 호영 씨의 기분이 좋다고 했다. 김호영 씨의 얼굴은 시종일관 밝았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세상과 소통하고 싶던 김 씨의 바람, '날개 잃은 천사의 꿈'

김호영 씨를 만나러 2월 27일 부산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니 마침 김 씨가 일기를 쓰고 있었다. 1998년부터 김호영 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써 왔다. 초면임에도 김 씨는 기자를 매우 반가워했다. 조수선 씨는 낯선 이의 방문이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은 불편하지 않다. 옆에서 말을 옮겨 주는 어머니가 없으면 대화하기도 힘들고, 스스로는 걷지도 못한다. 몸이 불편한 와중에도 한 손가락으로 열심히 타자를 쳤다. 책장 한쪽은 그가 18년 동안 쓴 일기로 가득차 있었다. 일기장 제목은 '날개 잃은 천사의 꿈.'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아요."

조수선 씨가 일기장을 보고 있는 기자에게 말했다. 조 씨의 말대로 김호영 씨가 18년간 써 온 일기에는 외롭고, 힘들고, 답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감정 표현이 많았다.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외면한다고 말했다. 몇몇 이들과 인터넷 채팅으로 대화를 나눴지만, 만나고 나면 끝이었다.

"한 번 왔다 가면 끝이에요. 만나 보고 나면 자기들도 실망한 모양이더라고요."

김호영 씨에게 필요한 건 '사람'이다. 김 씨와 10대를 함께 보낸 친구들은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사회생활을 하고 싶지만, 장애라는 장벽은 높고 단단했다. 대학은 입학을 거부했고, 관공서는 김 씨가 갈 만한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지역 복지관 사람들, 물리치료사, 장애인 스포츠인 '보치아' 팀원 정도가 전부였다.



▲ 김 씨 일기장의 제목은 '날개 잃은 천사의 꿈'. 누군가 만나 이야기하고 싶고, 놀고 싶은데 주위에 사람이 없다. 일기장에 답답하고 힘든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교회 사람들이 김호영 씨를 떠난 이야기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정용균 목사(부산장애인전도협회)가 김 씨를 만나는 자리에 합석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교회에 가면 큰 바다 속 외딴 섬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 곳에 몰아 놓고 뭔가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교회에 나가는 건 대부분 관계 맺기 위해서다. 정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 목사는 지역 중증 장애인 100여 명을 복지관으로 '집합'시키지 않고, 가가호호 돌아가며 방문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김호영 씨 사연도 정용균 목사가 김 씨 집을 자주 드나들며 세상에 알려졌다. 정 목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 필요한 장애인들과의 인간 관계라고 말했다.

최근 기록을 찾다가 2010년 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교회를 떠난 지 4년째 되던 해다. 김호영 씨는 한쪽 벽을 빼곡히 채운 건담 프라 모델과 피규어를 가리키며 '교회 가는 것보다 건담 만드는 게 더 재밌다'고 말했다. 다시 교회에 나갈 생각은 없냐고 묻자, "없다"고 답했다.

2010년 9월 24일.

교회를 안 나가고 있는 지 몇 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내가 나가지 않아도 다시 오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른 교회에서는 안 나오면 집에 찾아와서 얘기를 하면서 교회로 다시 인도하려고 할 것인데 우리 교회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도 없고 말이다. (중략) 난 사람들이 좋아서 교회를 다녔던 것이지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라고 다닌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만을 위한 믿음이니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은 없겠지만 장애인을 데려왔으면 최소한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장애인들을 왜 교회로 오라고 초청을 하는가. 그냥 편하게 집에 있게 놔두지 말이다. 교회를 가도 옆에 앉는 사람은 없고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는 사람도 없다. 이건 무슨 왕따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인가. 옆에서 해 줘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옆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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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사기 혐의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항소심 재판 전망

검찰, "사실 오인, 양형 부당" 주장 VS. 박옥수 측, "새로 다툴 내용 없다" 주장



- 검찰, "사실 오인, 양형 부당" 주장 VS. 박옥수 측, "재판에서 다툴 새로운 내용 없다"

▣ 조혜진 앵커>

수백억 대 주식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아오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이번 주에 열렸는데요.

검찰의 9년 구형에도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려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번 재판은 박씨의 혐의 입증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송주열 기자와 항소심 재판 전망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송기자, 항소심 재판 현장에 다녀오셨죠?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 송주열 기자>

신도들을 상대로 비상장주식회사 A사를 통해 수백억 대의 투자 사기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는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씨가 23일 오후 4시 쯤 광주고법 전주지원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박 씨는 우산으로 취재진을 막아선 신도들의 비호를 받으며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항소심 재판은 당초 예정된 오후 4시보다 1시간 가량 늦어진 5시에 시작됐는데요. 박씨를 따르는 신도들이 법정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박옥수 씨의 무죄 판결 직후 인 지난해 9월 법원에 즉각 항소 했던 검찰 측은 원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로 인한 것이라며 박씨의 유죄를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옥수 씨 변호인 측은 원심에서 혐의에 대한 공방이 이루어졌고, 이번 재판에서 다툴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맞섰습니다.

또, 주식사기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별도의 변호사를 선임해 변론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항소심 재판 첫 심리는 40분가량 진행됐고, 다음 달 29일 2차 심리에서 증인 심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 조혜진 앵커>

검찰이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못하고 항소했다는 얘긴데, 법원이 어떤 부분에 대해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를 했다는 얘긴가요?

■ 송주열 기자>

박옥수 씨가 피소 된 것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사기 등의 혐의때문인데요.

법원은 지난해 9월 검찰이 제시한 근거만으로는 문제가 된 비상장회사 A사의 설립과 운영, 주식 매각 등의 과정에 박 씨가 관여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박옥수 씨와 같은 혐의를 받았던 기쁜소식선교회 출신의 A사 경영진들의 범죄 사실만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검찰은 박옥수 씨의 무죄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며 사실 오인과 양형 부당 등의 이유로 즉각 항소했던 겁니다.

▣ 조혜진 앵커>

그렇다면 이번 항소심 재판은 박씨가 주식사기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됐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 되겠군요.

그런데 박 씨가 이외에도 다른 혐의 관련해서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고요 ?

■ 송주열 기자>

네 그렇습니다. 박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관 돼 수사선상에 오른 사건이 6-7건 정도 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중에 330억 원대의 배임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쁜소식선교회 강남교회 건물 오른편 공터에는 일부 보도 블럭이 깔려있고, 나머지는 비포장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곳은 농지로 사용해야 하는 땅인데 불법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 뒤쪽 산으로 길이 나있고, 이곳 역시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기쁜소식선교회 강남교회 소유의 우면산 도시 공원지역 부지로 산림을 훼손하거나 주차장으로 무단 사용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취재결과 기쁜소식선교회 강남교회는 지난 해 3월 농지법 위반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산림 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을 당했고, 지난해 12월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박옥수 씨는 거액의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박옥수 씨는 330억 원 대의 배임, 횡령, 탈세 혐의로 고발당해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중입니다.

검찰은 교회 돈으로 들어가야 할 자금이 박씨를 비롯해 가족들과 측근들 계좌로 입금된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밖에도 박 씨는 미국의 A 대학 설립 운영목적으로 외화 1,300만 불을 신고없이 송금했다는 혐의로 수사당국이 외환거래법 위반 여부를 수사 하고 있습니다.

수백억대 주식사기 혐의로 이목을 끌고 있는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씨가 각종 실정법 위반으로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신도들도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조혜진 앵커>

그렇군요. 한국교회 주요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기쁜소식선교회 박옥수 씨와 관련된 의혹과 혐의들이 재판과정에서 명확히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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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 교회에서 목사 형제 총격

목사인 형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동생 체포
유영



▲ 사망한 윌리엄 스쿨러 목사.

미국 오하이오주 침례교회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목사가 사망했다. 오하이오 지역 언론 는 "오하이오 데이턴 침례교회 성베드로선교침례교회에서 총격범이 목사 윌리엄 스쿨러(70)의 사무실로 들어가 총을 발사해 목사가 숨졌다"고 보도했다.

한 증인은 스쿨러 목사가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동생 다니엘 스쿨러(69)가 따라 들어갔으며 그 뒤 총성이 울렸다고 증언했다. 피해자의 동생은 현재 살해 사건에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상태다. 당시 교회에는 20명이 있었으며 목사 외에 다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니엘은 그동안 교회 재산을 두고 윌리엄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을 기소하거나 공격해 왔다. 교회는 목사였던 형제의 아버지가 1973년 사망할 때까지 목회하던 교회였다. 다니엘은 아버지 사후, 계속해서 본인에게 일부 지분이 있으며, 정당한 재산 가치를 일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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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풀러신학교 구조 조정 왜?

신학교, 시험에 들다



▲미국의 신학교들이 경제 침체 여파와 신학생 감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구조조정에 들어간 풀러신학교(왼쪽)와 2013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루터신학교 전경.


미국 최대 신학교인 캘리포니아주 풀러신학교(총장 마크 레버튼)가 최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과정의 통합, 캠퍼스의 폐쇄와 축소, 비즈니스모델 개발 등 구체적인 조치가 나오고 있다. 풀러신학교는 수년 전부터 신학생 감소와 재정 위기설이 돌았다. 26일 풀러신학교에 따르면 다음 달 25일 기존의 한국어 과정인 목회학 박사과정(D.Min.)과 선교대학원 한국학부 프로그램(KSSISP)을 통합해 ‘뉴 코리안 센터(New Korean Center)’를 시작한다.

학교 측이 국민일보에 보내온 보도자료에 따르면 뉴 코리안 센터는 전 세계에 흩어진 한인교회의 미래를 모색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센터 출범 이전에 발표한다. 센터 원장에는 안건상 박사가 임명됐다. 안 박사는 선교사로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신학교 교수로 활동했다. 이후 풀러신학교에서 성경과 선교학 교수로 사역했다. 기존의 5개 학위 프로그램(MA, ThM, DMin GM, KDMin, DMiss)에 대해서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학교 측은 “학위는 동일하게 유지되고 현재 과정에서 공부를 지속해 나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며 “뉴 코리안 센터의 설립은 여러 해에 걸친 심도 있는 검토와 계획을 거친 결과”라고 밝혔다. 학교는 지난해 8월 구체적인 이행 팀을 구성하고 구조 변화 과정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통합으로 기존 2개 한국어 과정에서 총 6명의 직원과 교수들이 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인 사이에선 ‘그동안 영어권 선교대학원에 비해 큰 수익을 안겨준 한국어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분위기가 역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에는 목회학 박사과정 모집을 담당하던 서울 사무소가 폐쇄되면서 구조조정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었다.

또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어 과정은 영어권과 비슷하게 학생 감소가 뚜렷했다. 그동안 미 정부가 신학교 유학생이나 종교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억제한 데다 미국의 신학교를 졸업한다 해도 과거에 비해 갈 곳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강화된 비자 정책은 풀러신학교뿐 아니라 한국인 유학생이 많이 가는 미국 내 신학교에도 여파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풀러신학교는 현재 운영 중인 7개 캠퍼스 중 2개에 대해서도 구조조정을 단행키로 했다. 새크라멘토 캠퍼스는 오는 6월 말까지 완전 폐쇄키로 결정했으며 콜로라도 캠퍼스는 행정 기능만 유지할 예정이라고 최근 마크 레버튼 총장이 졸업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혔다.

학교는 비즈니스 모델도 개발키로 했다. 레버튼 총장은 “작금의 미국 신학교가 직면하고 있는 역사적 변화는 재정적 도전을 던지고 있다”며 “학교는 다양한 분야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발전시킬 전문가를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풀러신학교는 1947년 저명한 라디오 복음전도자인 찰스 풀러와 보스턴의 한 교회 목회자였던 해롤드 오켄가에 의해 설립됐다. 그동안 목회자와 선교사, 학자, 전문 복음사역자들을 배출했다. 한국어 과정 목회학 박사과정은 95년 김세윤 교수를 중심으로 설립돼 지금까지 1500여명의 한인 목회자들이 입학했다. 현재 800여명의 한인 신학생이 재학 중이다. 북미신학교협의회(ATS)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풀러신학교 전체 학생 수는 총 3258명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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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회 출석률 현황에 대한 7가지 놀라운 사실

문화선교연구원, 처치리더스닷컴 인용 소개



▲한국의 한 교회 예배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문화선교연구원이 처치리더스닷컴(churchleaders.com)을 인용해 '미국 교회 출석률에 대한 7가지 놀라운 사실(7 Startling Facts: An Up Close Look at Church Attendance in America)'을 소개했다. 다음은 켈리 섀턱(Kelly Shattuck)이 쓴, 미국 교회 출석률에 대한 7가지 사실과 그 요약.

1.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미국인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이는 여론조사 기관들이 분석한 결과의 절반에 불과하다. 갤럽과 같은 여론 통계회사들은 인구의 40%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는 분석을 지난 70여 년간 발표해 왔다.

이는 사람들이 밝히는 입장과 실질적인 입장의 간격을 일컫는 '후광 효과(Halo Effect)'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인들은 투표 및 교회 참석과 같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는 과잉으로 보고하고, 음주와 같이 덜 바람직한 행위는 최소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 현재 어떤 지역교회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이전에 다녔던 교회에 여전히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동향이 보여 주는 것은, 미국인들이 말하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 간에 끊긴 고리가 있고, 덕분에 교회는 존재하지도 않는 회복성·탄력성이 있는 곳으로 사회 문화에 각인됐다.

2. 미국의 교회 참석률은 점점 더 감소하고 있다

1990년에는 20.4%의 미국인들이 정통 기독교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었으나, 2000년 들어 그 비율은 18.7%, 2004년 17.7%로 각각 감소했다. 1990년에서 2004년 사이 교회의 출석자 수는 꽤 비슷하게 유지되었다는데, 그 사이 미국 인구는 18.1%인 4800만 명 증가하였다. 성도 수는 동일할지라도, 전체 인구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

교회 유형에 따른 출석률 추이를 봐도 미국의 복음주의·자유주의·가톨릭 모두 감소하고 있다. 2000년에서 2004년 사이 가톨릭교회는 가장 큰 11%, 자유주의 교회는 10%, 복음주의 교회는 1% 각각 감소 했다.

정반대 분석 결과도 있다. 바나그룹(The Barna Group)은 1996년 37%였던 출석률이 천천히 증가해 2006년 47%에 도달했다고 발표하면서, 성경 읽기 같은 다른 핵심적 종교행위와 함께 가정교회 출석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남침례회 에드 스테처(Ed Stetzer) 선교연구센터장도 "교회 밖에서 영적 활동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제자 양육과 공동체 모임의 장소로 지역교회가 아닌 다른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3. 미국에서 단 하나의 주(state)만 인구보다 교회 출석률이 증가하고 있다

하와이주에서는 전체의 13.8%인 130만 명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2000-2004년, 미국에서 유일하게 인구 증가보다 빠른 교회 출석률 증가 추이를 보인 주(state)였다. 아칸사스, 오클라호마, 사우스 캐롤라이나, 테네시와 같은 주는 하와이보다 높은 출석률을 보였지만, 인구 증가 추이를 겨우 따라가고 있다.

4. 중형교회들은 작아지고, 소형 및 대형교회들은 성장하고 있다

전체적 출석률은 감소 중이지만, 성도 1-49명의 소형교회와 2천 명 이상의 대형교회의 몸집은 커지고 있다. 1994-2004년 소형교회는 16.4%, 대형교회는 21.5% 증가하며 12.2%의 인구증가율을 크게 상회했다. 하지만 성도 수 평균 124명의 중형교회(100-299명) 크기는 1% 감소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에드 스테처 박사는 "오늘날 대형교회는 소그룹과 공동체를 강조하면서 소형교회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한다"며 "성도에게 양쪽의 좋은 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션 맥뮬랜(Shawn McMullen)은 <작은 교회의 잠재력>에서 "소형교회는 대형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친밀감을 조성한다"고 말했다.


5. 40-190년 된 교회들의 평균 성도 수가 감소하고 있다

1920년대 지어진 교회를 제외하고, 1810년에서 1960년대 사이 개척된 모든 교회들이 2003-2004년 성도가 줄었다. 가장 큰 감소세를 보인 곳은 1820년대 세워진 교회로 1.6% 감소했고, 1940년대 교회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반대로 1970년대 세워진 교회들은 성장세를 보였다. 30-40년 된 교회들은 0.3% 성장했다. 이 증가세는 1980년대는 1.7%, 1990년대 3%로 증가한다. 기존 교회들의 출석률 감소는 교회 건축에만 관심 있는 리더십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6. 새로운 교회를 짓는 것은, 인구 증가를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4가지 중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

2000년과 2004년 사이 복음주의 교회들의 순수한 증가치는 5,452곳이었다. 이는 새롭게 지어진 교회에서 문을 닫은 교회의 수를 차감한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와 자유주의 교회는 총 2,200곳이 감소했음을 고려하면, 복음주의·자유주의·가톨릭의 순수 증가치는 총 3,252개 교회이다.

그러나 2000-2004년 교회가 미국 인구 증가를 따라가기 위해 필요했던 순수 증가치는 13,024개였다. 현실적으로 약 1만 곳의 교회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이 간극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다. 특히 개척교회야말로 교회의 성장과 전도의 도구로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를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미국은 점점 더 많은 수의 교회가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스테처 박사는 기존 모델을 따라하지 말고 지역의 필요에 맞춘 '맞춤형 교회'를 개척하라고 조언한다. 지난 5년간 개척교회들은 1990년대에 비해 의도적으로 작은 규모로 세워지고 있는데, 젊은 세대는 친밀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작은 교회를 점점 선호하기 때문이다.


7. 2050년이 되면 미국의 교회 출석률은 1990년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유지된다면, 2050년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미국인은 1990년의 20.4%의 절반인 11.7%, 2020년에는 15.4% 정도로 하락할 것이다.

명백한 것은 미국교회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33만 명의 미국 기독교인들을 사용하고 계시고 사용하길 원하신다. 상처 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을 하나님께 데려오고 또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강건케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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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제암리 참변에 대한 미국 언론 보도

독립 반대한 <뉴욕타임스>와 한국 상황 널리 알린 테일러 기자
옥성득

삼일운동에 대한 <뉴욕타임스> 보도를 먼저 검토하고, 이어 대표적인 학살 사건인 '제암리 사건'에 대한 여러 미국 신문 보도를 비교해 보려고 한다. 2014년 2월 27일 <연합뉴스>에 소개된 로버트 워드의 기사도 검토하여 제암리 사건을 재정리하려고 한다.

1919년 3월 당시, 삼일운동에 대한 <뉴욕타임스> 입장

3·1 독립운동은 미국 언론에서 4월 말부터 보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전에 <뉴욕타임스>는 3월 20일 자 사설 'Egypt and Korea'을 게재하고 한국의 독립을 반대했다. 아마도 서울에서 3월 6일부터 <경성일보>와 <서울프레스>가 시위 사태를 보도하고, 일본어 신문들도 보도하기 시작해 이미 한국의 '소요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보도는 아직 안 하고 있었다.

이 사설은 국내에 별로 소개되지 않아 전문을 사진으로 공개한다. 원본에는 기사가 두 줄로 길게 되어 있었으나, 오려서 세 줄로 만들었다.



▲ 1919년 3월 20일 자 <뉴욕타임스> 사설.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한국의 자치와 독립에 반대했다.

사설에서 이집트와 한국의 자치를 반대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본국인 지도자들이 행정 경험이 없으므로 자치할 수 없다. 지식인 지도자들이 행정 경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둘째, 무정부 상태보다는 질서유지가 더 낫다. 각 나라의 무정부 상태는 지역 평화를 깨고, 이는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

따라서 사설은 결론적으로 "현재로서는 본국인 자치를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면서, 개화된 외부자가 그 나라를 계속 다스리는 것이 최선이다"고 주장했다. 합방 이후 10년간 지속된 일본인들의 '조선 통치'에 대한 선전이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국이 필리핀에서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은 자치와 독립을 외치는 본토인 목소리를 수용하기 힘든 외교적 현실 가운데 놓여 있었다.

참고로 한국의 성공회나 천주교도 이와 동일한 입장이었다. 두 교회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반대하고 일본의 통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성공회 트롤로프 주교는 1919년 9월 2일 서울역에서 신임 총독 사이토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를 테러리스트라 비판했다. 역에서 사이토를 환영한 천주교의 뮈텔 주교는 강우규를 암살범으로 규정했고, 총독의 초청을 받아 몇 차례 만찬을 즐겼다.

뮈텔은 3월 1일 이후 시위 사태에 대해 비판하고, 23일 용산의 신학교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하자 이를 진정시켰다. 6월 4일에는 서울 20사단 신인 사단장인 조호시의 환영식에도 참석했다. 종교인들 중 뮈텔이 가장 총독부를 지지하고 친일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뮈텔 주교 일기 6, 1916~1920> 참조]

<뉴욕타임스> 3월 30일 자에는 2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보낸 '대한독립위원회'가 베이징미국대사에게 보낸 청원서 전문을 실렸다. 이는 지린성에서 대한독립의군부가 2월 10일 '대한독립선언서'(조소앙 작성, 한때 무오독립선언서로 잘못 알려진 것)를 인쇄하여 중국 각지와 해외에 발송한 후, 베이징에 있던 대한독립위원회(Korean Independence Committee) 위원들이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을 대표하여 주중미국대사에게 한글로 제출한 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일본에서 2·8 독립선언문이 있었다면, 중국에서는 독립의군부의 2·10 독립선언서가 있었다. 그리고 이 청원서가 제출되었는데, 이 문건도 아마 국내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듯하여 전문을 올린다.



▲ 독립기념관에 있는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 그림.

위원회는 미국 대통령 윌슨의 자결권 천명을 감사하고 이를 한국에 적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청원서는 역사적 상황을 개관하면서 일본과 한국의 합방 과정이 불법적이라는 사실과 일본의 통치 10년간 한국인이 비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당시 두 번이나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으나 이를 저버리고 합방을 강행했는데 이는 국제법 위반이다. 합방은 매국노 이완용 한 명의 뜻에 불과했으며 총칼 아래 행해진 강도질이었다. 합방 후 기독교인들은 특별히 탄압을 받았고 살해되었으며 갖은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당했다.

설교를 위한 허가증이 필요했고 예배당을 짓기 위한 허가를 받아야 했다. 황실의 많은 농토는 일본척식회사의 소유로 몰수되었고 한국인 농부 대신 일본 이민자에게 배분되었다. 한국인 농부들은 만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으며 추위에 수백 명이 굶어죽었다. 일본 정부는 결혼 정책을 자유롭게 하여, 성 윤리가 무너지고 조혼이 빈번하고 10년간 8만 건의 이혼이 발생했다. 일본인들이 한인 14~15세 소녀들을 중국 도시에 창녀로 팔았다.

총독부는 아편청을 만들어 아편 재배를 권장하고 중국에 밀수출했으며, 한국 청년들 다수가 아편에 중독되었다. 교육은 중학교 수준 이상을 금했으며, 선교사들이 세운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했다. 합방 후 한국에는 도서 출판이 현저히 감소해 읽을 책이 적었다. 이런 '분서갱유'는 한국 문화 말살 정책이었다. 일본의 여러 만행은 각국 영사관과 선교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제 하늘의 섭리로 유럽의 1차 대전이 끝나고 윌슨이 모든 민족의 자결권을 주장하는 시점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미국이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 1922년 3월 5일 자 <워싱턴타임스> 기사.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이 문건을 미리 받고도 보도하지 않았다. 3월 20일 사설이 실린 후, 한국에서 일본의 만행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청원서를 공개했다.

<연합통신> 테일러 기자, 제암리 학살 사건과 3·1 운동 보도

미국의 정책과 달리 한국 내 미국인 중에는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미국인도 많았다. 기자와 선교사들이었다. 1919년 4월 15일 발생한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은 <연합통신> 서울 특파원 테일러(Albert W. Taylor) 기자가 4월 23일 보낸 기사를 바탕으로 <뉴욕타임스> 1919년 4월 24일 자에 '일본군 한국인 학살'로 간단히 보도되기 시작했다.

테일러는 만세 시위 전날인 2월 2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아들 브루스가 태어날 때, 한국인 간호원이 침대 아래 숨겨 놓은 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일본 경찰 눈을 피해 이를 <연합통신> 동경지국으로 보내 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제암리 사건도 취재하여 전 세계에 알렸다.

테일러는 학살 사건 다음날인 4월 16일 자신의 차(운전사 중국인 임씨)로 미국 부영사 커티스(Raymond S. Curtice)와 선교사 언더우드(H. H. Underwood) 목사와 함께 현장을 1차 방문했다. [4월 21일자 커티스의 보고서는 김승태·박명수, "제암리교회 사건과 서구인들의 반응," <한국기독교와 역사> 7 (1997년 8월), 101~102쪽을 보라.]

이어 19일에는 영국 대리총영사 로이즈(W. M. Royds)와 함께 2차로 방문하고 조사했다. 이때 장로교회의 에비슨(O. R. Avison) 의사, 게일(J. S. Gale) 목사, 감리회의 하디(R. A. Hardie) 목사가 테일러 차에 동승했다. 모두 영국계(캐나다) 선교사였다. 그날 일본 감리교회의 스미스(Herron Smith) 목사, 지역 담당 장로사 노블(Noble) 박사, 케이블(Cable) 목사, 빌링스(Billings) 목사, 베크(Beck) 목사도 오토바이를 타고 방문했다. 로이즈도 주일영국대사관에 보고서를 올렸다. 이어서 프랑스 측도 조사하고 보고서를 올렸다.

외교관과 선교사들 보고서와 별도로 테일러를 통해 미국 신문에 삼일운동 관련 기사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4월에는 평양 모우리 선교사의 체포 사건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되었다. 테일러가 보낸 6월 1일 자 동경발 기사는 6월 5일 캔자스(로렌스, 웰링턴, 차누트, 허치슨), 텍사스(브라이언), 네바다(르노), 오클라호마(모스코기)의 신문 7개에 게재되었다.

6일에는 캔자스(위치타, 피츠버그), 미주리(세인트루이스), 뉴욕(로체스트), 노스캐롤라이나(하이포인트) 등 5개 도시의 신문으로 확산되었다. 두 달 동안 40회 정도 보도되었다. 보도의 중심지 캔자스 주에서는 17회로 거의 모든 도시의 신문에 실렸다. 한 예를 보자.

▲ <Lawrence Daily Journal World>, June 5, 1919.

신문은 제암리교회에서 35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한다. 제암리 외에 3개 마을에서 교회가 더 불에 탔다. 영국영사 커티스나 미국부영사 로이즈의 보고서에는 37명 사망으로 나온다.

만세 시위 사진 촬영하고, 제암리교회 사건 조사한 캐나다인 의사 스코필드

세브란스병원의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Frank Scofield) 의사는 3월 1일 만세 시위가 발생하자, 탑골 공원 주변을 자전거로 돌면서 시위 사진을 몰래 촬영했다. 그는 시위 참가 중 부상한 중환자들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자 그들도 찍었다. 대부분 헌병과 군인들의 대검에 손발이 잘리거나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스코필드 의사는 가을에 쓴 세브란스 병원의 보고서에서 독립 선언으로 발생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4월 17일 제암리교회 사건 소식을 듣고, 18일 자전거를 가지고 9시 열차 편으로 수원까지 갔다. 자전거를 타고 사건 현장에 도착한 그는 사진을 찍고 조사하였다. 경찰은 그가 자전거를 준비한 줄 모르고 현장까지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는 18일 오후 수촌리도 방문하여 부상자들을 돕고, '수촌리 잔학 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여름에는 한국의 실상을 일본 관리들에게 직접 설명하기 위해 도쿄를 방문했다. 수상과 대담하고 많은 지도자들을 만나서 충분히 토론했다. 그는 가루이자와와 고텐바에서 열린 선교사 대회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일본에 있는 동안 그는 일본이나 미국에서 출판하기 위해 한국 소요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 책을 저술했다. 이 289페이지의 원고를 제목으로 1920년 뉴욕의 한 출판사에 보냈으나, 출판사가 원고를 소실하는 바람에 출판되지 못했다.

그 원고에는 아마 시위 현장, 시위 후 일본군의 경비, 부상자에 대한 사진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추측하기에 스코필드는 그 원고의 일부와 사진들을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에 몰래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출판한 다음 소책자는 프랑스 조계에 거주하던 크로푸트(J. W. Crofoot)가 뉴욕에 보내어 미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팸플릿에 실린 많은 사진들과 세브란스병원 입원 환자 사진들은 스코필드 의사가 찍었을 것이다.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 웹 페이지에 없는 다음 사진 한 장을 보자. 사진을 보면 세브란스병원 외과 간판이 보이고 오른쪽에 한국인 간호원이 보인다. 일본 군경의 대검에 왼팔을 잃은 나이 든 남자 환자가 치료를 받는 장면이다. 스코필드 의사가 아니면 찍기 어려운 사진이다.



▲ 이것이 '시혜적 동화' 정책인가?

스코필드 의사나 테일러 기자가 찍은 것으로 짐작되는 제암리 피해 상황이다. 집과 양식이 불에 타서 가을까지 '수원군 이재민 구호소'에서 양식을 배급받아 살아야 했다.



▲ 제암리 피해 농가(위)와 수원군 이재민구호소(아래).

제암리교회에 대한 노블의 보고서

사건 후 수원 지방을 맡고 있던 북감리회 감리사 노블 목사가 연회에 보고한 내용을 보자


"제암리교회에서는 교인 23명이 학살되면서 생긴 공포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장면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고, 교회 예배 참석자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총 334명의 신자 가운데 173명이 죽거나 투옥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남아 있는 자들은 다른 지역의 신자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적 열정을 가지고 있다. (중략) 그들은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주님께 진실하겠다'고 말한다." (Noble, "Report of Noble, Superintendent of the District of Suwon," , 1919년)

제암리 사건 다룬 1922년 <워싱턴타임스> 기사는 사실인가?

그런데 2년 전 2014년 2월 27일 <연합뉴스>는 다음과 같은 1922년의 <워싱턴타임스> 기사를 발굴해 소개했다. 제암리 사건을 다루는 이 기사는 여러 언론에 소개되었고 지금까지 사실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내용과 상관없는 사진들과 소문을 사실처럼 소개하여 글의 신빙성을 떨어트리고 있다. (Robert L. Ward, "Women Slain in Wholesale Executions As Japan Holds Korea in Slavery with Gun and Bayonet," (March 5, 1922).

미국인 사업가 워드는 1919년부터 3년 동안 극동 아시아에서 직접 본 일본의 만행을 한 달간 일요일판에 4회에 걸쳐 연재하며 일본과의 전쟁을 대비할 것을 주장했다. 이 기사는 '일본이 총과 대검으로 조선을 노예로 삼고 있을 때 98명의 여성을 대학살했다'는 제목의 시리즈 두 번째 글이었다.

한국인이 일본의 폭정 아래 산업 노예가 되었으며, 도로, 학교, 무역, 법정 모든 영역에서 동경의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 이를 소개하는 이유는 현재 일본이 비밀스럽게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도 당시 한국, 만주, 시베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황인종 독재자인 일본에 의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고 전했다. 그 무자비한 폭정의 예로 자극적인 사진 두 장을 실었다. 이 신문을 본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들과 역사학 교수들은 기사 내용이 '간도 참변'과 수원 '제암리 집단 학살 사건'을 묘사한다고 보았다.

과연 그러한지 워드의 기사를 요약해 보자. 1904년부터 1921년까지 한국과 만주에서 벌어진 일본의 만행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1) 러일전쟁 후 1905년 일본이 총칼로 고종을 협박해서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이어서 양위시키고 곧 강제로 병합했다. 2) 기미독립선언문의 일부를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한다. 3) 일본인이 법을 이용해 한국인의 산업을 적산 몰수하듯이 탈취하고 독점했다. 4)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강화하고 목사 안수 허가제를 실시했다.

5) 출판물 검열 제도 강화. 6) 3년 전 제암리 사건 때 이십여 명을 교회 안에 몰아넣고 사살하거나 대검으로 죽인 후 기름을 붓고 불태웠으며, 접근하는 두 여자도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7) 당시 다른 세 마을에서 3개 교회도 불에 탔다. 8) 3·1 운동 참가자들을 고문했는데, 손가락 중지에 줄을 묶고 거꾸로 매달아 놓고 고문하기도 했다.

9) 여학생 참가자들은 연행하여 옷을 벌거벗기고 모욕하며 고문한 후 성폭행했다. 10) 눈 가린 한국인들 약 1미터 거리에서 총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는데, 총살 후 살아 있는 자는 생매장했다. 11) 이 처형 장면을 내가 멀리서 촬영했는데, 이 기사에 실린 사진은 직접 촬영한 것이다. 12) 수천 명이 투옥되었는데, 800명 정원의 한 감옥에는 2,100명의 정치범을 감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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