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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교정 2024-06-18 08:00:28 read : 10469
설교의 교정(1)
역시 율법적인 설교를 교정하는 훈련을 한 번 더 해보자. 율법적인 설교란 할 일을 말해주지만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또한 할 수 있도록 해준다해도 어디까지나 자기의 인간적인 힘으로 하도록 말한다. 신자는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하면 인간의 냄새만 풍기게 된다.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것을 그냥 선물로 준다.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소망이다.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았으며 성령과 함께 하늘의 모든 보화가 내게 주어졌음을 믿으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고 복음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는가. 내 속에 주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라. 그리고 그대로 움직이라. 그러면 복음적인 삶이 진행된다. 아래의 설교를 이러한 입장에서 분석해보고 스스로 수정해 보라.
시 119:161-168 마음의 평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평안, 참 평안입니다. 이사야 9:6에 보면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쟁과 갈등을 깨고 샬롬을 만드셨습니다.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만이 참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 평안 큰 평안 마음의 평안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평안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1.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163절을 보면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7:21을 보면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겐 평강이 없습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악 가운데 가장 큰 악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각이 떠나고 마음이 떠나고 삶이 떠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죄짓고 악을 행함으로 성공하고 부자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행복입니다.
2.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166절에서 시인은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라고 했고 167에서는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68절에서는 "나의 모든 행위가 주의 앞에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은혜 받은 성도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받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이 있다면 평안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감격스럽습니다. 겸손해집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166절에 보면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고 했고 큰 평안을 입은 자에게는 "장애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5:7을 보면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빛도 어두움도 평안도 환난도 하나님이 만드시고 주관하십니다. 평안을 주시는 분도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큰 평안을 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 법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5:11을 보면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내게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어떤 장애물이 일을 가로막을지 예견도 예측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물으라. 내게 부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참 평안 큰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평> 여기 있는 모든 내용들이 다 신자로서 해야 할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냥 하라고만 한다면 십계명을 주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를 설명하면서 계명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더 큰 부담만 설교를 통해서 주게 된다. 죄를 멀리해야 하는데 멀리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도 다 잘 안다. 그런데 그럴 마음이 안 일어나고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대답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게 해 주신 일이 무엇인지 이 문제들에게 관해 물어 보라. 그러면 제대로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 대답을 찾아 적용시켜주는 것이 설교자의 할 일이다. 이렇게 고쳐보면 나을 것이다. 물론 본문을 읽어보면 내용이 여기의 대지와는 다른 내용이 많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일단 여기에 실린 대지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정해 보도록 하는 것이 훈련 상 좋겠다. 그리고 더 나은 대답도 찾아보도록 하라. 요지만 적으면 이러하다. 여기의 요점은 이것이다. 복음적인 설교는 우리가 노력해서 앞으로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것을 깨닫고 그것을 의지해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시 119:161-168 마음의 평안
이 시의 저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누가 하나님을 그처럼 경외하고 누가 그처럼 성령을 받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그것을 받아 참 평안을 소유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이 사람보다 백 배는 더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백 배나 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 자체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어 성령을 모신 사람들이 아니던가. 이 사실을 알고 믿고 누리자.
1. 내 안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죄를 멀리한다
2. 내 안의 그리스도를 인해서 모든 복을 다 소유했다
3. 내 안에 부어진 사랑으로 하나님을 늘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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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교정(2)
이번에도 율법적인 설교를 교정해 보자. 율법적인 설교란 하라고 말하거나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설교 듣는 사람의 개인적인 힘으로 그 요구 사항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복을 준다는 약속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 하라는 명령만 준다면 다시 무거운 짐만 얹어주는 셈이 되고 만다.
엡 4:1-8 평화로운 교회
분쟁과 불화, 그리고 다툼이 가득한 교회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기도 어렵고 위대한 인물을 키워낼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교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교회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베드로, 바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들은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살기 이해 노력하고 힘쓰는 곳입니다.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사랑하시기 때문에, 필요하시기 때문에,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고 일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삽시다.
2. 사랑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했습니다. 겸손, 온유, 인내가 솟아나는 샘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부드럽고 참아줍니다. 사랑은 그윽한 눈빛과 온유한 소리로 주고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떠나면 행동이 거칠어질 뿐 아니라 언어도 거칠어지고 사나워집니다.
사랑의 최고 공식은 주는 것이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랑했습니다만 더욱 사랑합시다.
3.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 이치를 교회론에 적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몸도 하나, 성령도 하나, 주도 하나,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 하나님도 하나, 그러므로 너희도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울은 교회가 하나되는 중요한 조건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평안의 매는 줄"이라는 말과 "성령에 의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될 때 평안과 평화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다투는 자"입니다. 싸우고 싶게 만들고 뭔가 불평스럽게 만듭니다. 세계 평화를 말하고 남북통일을 말하고 교회평화를 말하려면 내가 먼저 자신의 언어를 희생하고 자신의 의견을 희생할 줄 아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평> 흔히 보는 율법적인 강해설교이다. 그냥 본문의 의미를 문장의 뜻만 가지고 해석한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명령을 줄 때는 에베소의 앞부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엄청난 축복과 능력을 언급한 다음에 그 힘을 의지하고 행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 곧 복음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행할 일만 말한다. "부름에 합당하게"행하기 싫고 "사랑"하지 않고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싫은 신자가 어디 있는가? 하고 싶지만 할 힘이 없는 게 오늘날 신자들의 현실이다. 그 내용대로 할 수 있도록 설명하면서 하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바울의 의도가 전달되는 것이다.
본문 처음에 "그러므로"라는 말이 나온다. 그것은 그 앞의 내용과 연결되었다는 말이다. 즉 3:20의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를 의지하고 말해야 한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 말씀대로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가 내 안에 계심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요지만 복음적으로 바꾸도록 노력해 본다면 아래와 같다. 얼핏보면 아무 차이가 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내 속에 있다고 믿는 것과 순전히 내 힘으로 의를 행하려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성령이 계심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평화로운 교회
평화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서 능력으로 역사 하신다. 이 사실을 믿고 나아올 때 평화로운 교회는 시작된다.
1. 평화의 능력을 주신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
2. 사랑의 능력을 주신 그 부름대로 사랑하라
3. 하나되는 능력을 주신대로 힘써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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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교정(3)
설교 중에 가장 흔한 것이 율법적인 것이다. 그것은 할 일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어떠한 신자가 훌륭한 신자인지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여전히 말하지 않고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는가? 그 방법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을 믿어야 한다. 다음의 설교를 읽어보고 어떻게 고칠지 생각해 보라.
딤후 2:20-21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
일찍이 초대 교회의 위대한 선교사였던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에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깨끗하게 하는 것일까요?
1.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시 24:3-4에 보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냐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으며"라 했습니다. 또 마 5:8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확실히 하나님은 깨끗한 양심을 가진 바른 사람을 원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귀히 쓸 수가 없어요. 마음의 청결은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죄악을 청산한 새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나 사도들은 모두 "회개하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깨끗한 양심은 회개한 양심을 말합니다. 회개하여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분명히 하나님이 귀히 써주십니다.
2.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이사야 57:15에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케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18:12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은 그를 붙들어 써주시므로 성공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즉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들어 써주십니다. 히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0:31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리. . .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잘한 다윗은 하나님이 당신 맘에 합하다고 인정하여 들어 써주셨고 불순종의 길로 나가버린 사울은 버려져서 왕의 위에서 그 가문이 떨어질 뿐 아니라 패가망신의 저주를 받고야 말았습니다.(행 13:22-23, 삼상 15:22-23)
결론: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은 1) 회개하고 새사람되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며, 2)겸손한 사람이며 3) 전적으로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평>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설교의 형태이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겠는가? 어떻게 하면 겸손해 지겠는가? 본래부터 인간은 마음이 깨끗하지 않다. 겸손하지도 않다. 게를 보고 똑바로 걸어가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많이 인용해도 모두 율법적으로 하면 할 수 있는 길이 없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예수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도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되라고 하거나 어떻게 하라고 할 때는 반드시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예수께서 죄를 가져갔음을 믿으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예수의 영을 영접하고 그의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을 믿으면 겸손해 진다. 자신의 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해 주신 일을 강조하고 그것을 적용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만약 본문에 그런 내용이 없다하더라도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 그 본문을 해석해 주어야 한다.
본래의 분위기를 살려서 복음적인 설교를 만들어보자. 요지만 바꾸어 보면 이렇게 되겠다.
논지: 예수께서 하신 일을 자기 것으로 삼는 이는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인물이 된다. 귀히 쓰시는 그릇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가 나를 새롭게 하셨음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며 그 믿음으로 행동해야 된다.
1. 예수의 마음이 내게 주어졌음을 믿을 때 마음이 깨끗해진다
2. 예수의 마음이 내게 주어졌음을 믿을 때 겸손해 진다.
3. 예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볼 때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믿음은 예수께서 하신 일을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서 보는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보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힘이 자기 속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그 힘으로 이루어나갈 것이다. 예수를 믿을 때 그리고 그 믿음을 늘 유지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나를 귀한 그릇으로 여기시며 모든 아름다운 것을 담아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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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교정(4)
이어서 계속 부정적인 주제를 다루어 보겠다. 부정적인 주제의 특징은 하지 말 것을 지적하면서 할 것은 말해주지 않는 점이다. 설교 도중에 할 일을 말해 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논지와 요지에서부터 할 일이 분명해져야 한다.
막 7:6 바리새인의 입술 모습 세 가지
바리새인이 어떤 이들인지 잘 알거니와 그들의 입술에 대한 성경의 표현을 음미하면서 헛되고 거짓된 입술로 경건의 모양만 갖추고 사는 우리들이 정결한 입술로 변화 받아야 할 것이다.
1. 입술로는 공경하나 마음은 멀고 (막 7:6)
그릇의 겉은 깨끗하나 속은 더러운 외식하는 자들임 (막7:3)
사람의 교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위선자들임 (막 7:6)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하고 있음 (마 12:13)
스스로 의롭다고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미움을 받음 (눅 16:15)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가 아닌 그 중심을 보시는 분임 (골 3:25)
2. 입술로는 가르치나 행치는 않고 (마 23:3)
무거운 짐을 묶어 어깨에 지우되 자신은 손가락도 까딱 안 함 (마 23:4)
주님은 친히 모든 일에 본을 보이심으로써 가르치셨음 (요 13:15)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저주를 받았음 (막 11:14)
들고 행치 않는 자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임 (마 7:26)
예수님만이 무거운 짐 진자들의 짐을 벗겨주실 분이심 (마 11:28)
3. 입술로는 기도하나 응답은 없고 (마6:5)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없음
자기 과시와 교만으로 가득 찬 기도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심 (눅 18:14)
바리새인들의 의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 (마 5:20)
우리의 기도는 입술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드릴 것 (고전 14:15)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에 있음 (고전 4:20)
결론: 바리새인처럼 입만 살아있는 가증한 자리에서 떠나 우리 입술의 고백과 교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온 몸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증인이 되자.
<평>
결론의 부분이 시작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설교는 여기서 그치면 안되고 어떻게 하면 결론의 내용대로 될 수 있는지 말해주어야 끝이 난다. 그러니까 전체 요지는 도입 부분에서 간단히 말한 다음에 새로 바리새인과 다른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들으려는 게 결국 바리새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을 극복한 신자의 모습이요 그렇게 되는 방법이다.
막7:6 신자의 모습 세 가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선해지려고 할 때 최상의 모습은 바리새인이다. 성경은 그들이 입술로는 공경하나 마음은 멀고, 입술로는 가르치는 행치 않고, 입술로는 기도하나 응답이 없다고 선언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을 영접하여 그의 힘을 받는 것이 신자의 삶의 첫 단계이다.
1. 신자는 마음으로 공경한다.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만 선행할 힘은 없다
선행을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안 믿으면 못한다
신자라 해도 안 믿으면 자기 힘으로 선행한다
예수께서 변화시킨 것을 믿으면 마음이 새롭게 된다
그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공경한다
2. 신자는 말로서 공경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
바리새인은 찬양해도 입술로만 한다
신자는 성경의 말씀을 입으로 시인한다
입으로 시인하여 마음으로 믿는다.
믿는 자는 그 믿음대로 말을 한다
그 말은 감사와 찬양이다
3. 신자는 행동으로 공경한다
세상사람은 말로만 위해준다.
무거운 짐을 지우되 자신은 손가락도 까딱 안 함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음
믿는 자는 그 능력이 자기 속에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행동하며 하늘의 열매를 맺는다
결론: 신자라도 하나님을 잊고 자기 힘으로만 산다면 잘해야 바리새인 수준이지만 자기 속의 성령을 의지하고 행하면 작은 예수의 모습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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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교정(5)
이제부터는 주어진 설교를 더 나은 설교로 교정하는 연습을 하겠다. 이번 것은 저명한 한 목사의 한 설교를 가지고 해 보겠다. 이 분의 여러 좋은 설교 중에 잘 안된 것 하나를 골라 보았다. 그것은 주제가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하지 말아야 할 내용을 말해줄 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말하지 않는 게 문제이다.
본문: 막 4:38 믿음이 약한 제자들 모습 세 가지
성경에는 믿음 약한 제자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는 바, 오늘 풍랑 만나 배 위에서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약한 이들의 믿음이 강해져서 그리하여 주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것이다.
1. 물결을 만나 두려워함 (38절)
광풍과 물결 앞에서 자기들이 죽게 되는 줄 알고 두려워했음
귀신을 향하여 명령하신 주심은 자연에게도 명하실 수 있음 (막 1:25)
물결은 주님과 함께 있는 위협할 망정 삼키지는 못함(38)
주님은 폭풍도 잔잔케 하시며 위협을 제거하시는 분이심(막 8:26)
무서운 풍랑보다 더 무서운 능력의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을 것(막 4:41)
2. 예수의 옆에서 당황해 함 (38절)
제자들은 광풍만 생각했지 함께 계신 주님을 생각지 않음
주님이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물결 때문에 죽는 줄 알았음
늘 돌보심과 보살핌을 입으면서 감사보다는 원망이 앞섰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심 (요 14:1)
어찌하여 무서워하며 어찌하여 믿음이 없는가고 책망하셨음(막 4:40)
3. 예수의 능력에 의아해 함 (41절)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서로 수군거렸음
귀신을 향해 명령한 후 복종했을 때도 역시 서로 궁금해 했음 (막 1:27)
믿음 없는 제자와 군중을 향하여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심 (마 17:17)
주님의 기적 앞에서 해야 할 말은 위대한 신앙고백뿐임 (마 27:54)
주님의 능력 앞에 가져야 할 당연한 자세는 경건한 두려움임 (눅 5:8)
결론: 믿음이 약한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와 같이 약한 믿음의 소유자가 아닌지 반성해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이 있는 자 믿음이 큰 자가 되는 축복을 받자.
평> 제목이 부정적이라 함은 긍정적인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제목이 부정적이면 요지도 다 부정적이다. 잘 못하는 것, 해서는 안 되는 것 등을 많이 말하고는 해야할 일은 자연히 적게 말할 수밖에 없다. 주제가 부정적이니까 그렇다. 그러므로 같은 내용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꾸어서 주제를 잡는 훈련이 필요하다. 같은 본문으로 이렇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믿음이 약해질 때 할 일
1. 물결을 만나 두려울 때 주를 깨운다
우리는 자주 극복하기 어려운 물결을 만난다
주는 폭풍도 잔잔케 하시면 위협을 제거하시는 분이심
무서운 풍랑보다 더 무서운 능력의 주가 함께 하심을 믿을 것
주가 지금 내 속에서 일하고 계심을 확신하라.
2. 그 예수로 나를 통해 명령하게 한다
예수의 겉 사람은 우리와 같았다.
그의 성령을 따라 그는 믿음으로 명령했다.
오늘 그 성령은 예수와 함께 내 속에 계시다
문제를 향해 예수와 함께 명령하라
3. 예수 능력의 열매를 기대하며 나아간다
예수의 명령으로 바람과 바다도 순종했다
같은 일이 지금도 예수와 한 몸된 나를 통해 일어난다
말했으면 믿으라 그리고 열매를 믿음으로 바라보라
믿음은 바라는 것을 미리 보고 있다.
믿음으로 보는 것은 현실에 나타난다
결론: 예수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 14:12) 삶 전체는 믿음의 훈련장이다. 믿음대로 생각하고 말하라. 마음을 채우라. 그러면 열매가 반드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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