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를 메고” 2001-12-13 16:29:11 read : 15689
수 3:1~6 설교자 : 강석영
주일낮예배 설교(2001. 5. 27, 3부예배) "언약궤를 메고" 수3:1-6, 찬송:354,375장
우리나라는 3-4년 전부터 IMF사태를 거치면서 온 국민들이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IMF 직후에는 나라경제가 마비되고, 멀쩡하던 회사들은 쓰러지고, 실업자는 100만명을 넘었습니다. 금융시장은 거의 붕괴되었고, 몇 명의 투자자들은 자살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전에는 잘 들어 보지 못했던 '노숙자'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깨어진 가정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은 IMF 위기를 1년반 만에 극복했다고 주장하지만, 지금도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이 국가 부도사태의 후유증은 많은 분야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공부문과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산업 전반의 불황과 경제적 좌절감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우리가 강남이라는 특수한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피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국민들의 가정생활이 너무나 큰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고, 헛된 공약과 거짓말로 국민들을 실망시켜 왔습니다. 정경유착으로 회사를 확장시켜 온 재벌들의 탐욕과, 방만한 족벌경영등으로 부실화된 기업들의 엄청난 부채는,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죄없는 국민들이 다 떠 안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현실은 어떻습니까? 참으로 암담합니다. 학교교육이 황패해지고 있다는 소식과, 자녀교육을 위해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거기에다가 우리를 더 참담하게 만드는 것은 종교계의 모습입니다. 다른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병들고 희망이 사라질수록, 교회는 더 깨끗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교회'에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교회를 굉장히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세상이 교회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우리 교회들이 이 시대의 빛으로, 우리 사회의 소금으로 존재하고 있습니까? 최근에 들어오면서 대형교회들의 이야기가 신문의 사회면을 가끔 장식합니다. 다른 얘기들은 다 그만 두고라도, 이 말만은 꼭 해야겠습니다. 북한사회도 아니고, 재벌상속하는 것도도 아닌데, 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합니까?
지금 박노항원사의 병역비리 수사가 진행 중에 있는데, 들리는 말로는 리스트에 오른 사람의 상당수가 크리스챤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죄없는 자가, 완전하게 깨끗한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의 시대 상황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지적하고 또 지적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이 10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탱한 저력을 한마디의 단어로 분석했습니다. 그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불란서말입니다. 직역하면 '귀족의 의무'라는 뜻입니다.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는 ''지위가 높을수록/지도층이 될수록 더 많은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좋은 전통이 전해져 내려 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유럽사회를 지탱해온 정신적 뿌리였습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전쟁 때, 영국의 앤드류왕자는 해군의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습니다. 그의 역할은 함정의 주위에 떠 있으면서 전함으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대신 맞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겠다는 것입니다. 가진 자와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은 사회를 유지해 주는 가장 아름다운 미덕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바로 서구사회의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리더가 되는 사람은 모범이 되어야 하고, 그것은 자기자신의 절제와 희생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절제와 희생이 없는 리더쉽은 결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천년 전에 유대땅에 살았던 한 목수 청년이 있습니다. 왜 예수라는 그분이 역사상 수십억명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구세주라는 고백을 듣고 경배의 대상이 됩니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낮고 천한 몸으로 오셔서, 죄인들과 같이 고통스런 모습으로 살다가, 가장 비참한 십자가 형틀에 자신을 완벽하게 희생시키셨습니다. 그분의 평생은 절제와 희생이셨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형제와 이웃의 잘못과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자기 몸을 희생타로 드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여호수아 3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감하고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입니다. 애굽에서의 400년 노예생활을 벗어나서, 40년 동안을 황량한 시나이 사막에서 방황하던 백성들이,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과 희망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 보십시오. 지금 그들의 가슴속에는 새시대를 향한 꿈과 기대가 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이 요단강입니다. 지금은 요단강이 그리 크거나 깊지 않지만, 여호수아 당시만 해도, 3:15에 기록된 것처럼, 강물이 강언덕을 넘치고 범람할 정도로 깊고 물살의 흐름이 센 강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수확기의 요단강의 수위는 4m정도이고 홍수때 범람하면 그 범위가 수백m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은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치면 200만명이 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야 요단강을 건널 수 있겠습니까? 그많은 사람들이 헤엄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뗏목이나 배가 있을리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여호수아같은 지도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사흘"을 그곳에 머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민족적인 대사건을 앞에 두고 기도하며, 강을 건널 지혜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영적으로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이루기 전에 먼저 우리의 성결함과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아름답고 복된 가나안땅에 들어갈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깨끗해야 합니다. 온갖 더러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마음의 때들을 씻어 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니라"
모든 준비를 마친 여호수아는 마침내 제사장들에게 명령합니다. 우리 함께 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내린 명령의 내용은 두가지입니다.
①언약궤를 메고 ②백성에 앞서 건너라 .
첫 번째로 언약궤를 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언약궤는 법궤 혹은 증거궤라고도 합니다. 언약궤 안에는 세가지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았던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 그리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입니다. 두 돌판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만나 항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어떤 곤고한 경우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고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꾀나 연구, 지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령한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0의 말씀과 은혜와 권능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두번째 명령은 "백성들의 앞장을 서서 건너라"는 것입니다. 맨몸으로 위험한 강을 건너야 하는데 제사장들이 먼저 강물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앞서"라는 말은 '선두에 서라'는 의미입니다. 국방부의 통계를 보면 6.25 당시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그룹은 소위계급, 소대장들이었습니다. 소대장들이 목숨을 걸고 선두에 서야만 소대원들도 돌격할 수 있습니다. "백성에 앞서"라는 말의 진정한 뜻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너희 제사장들이 먼저 목숨을 걸라'는 것입니다. 3:14 이하에 보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강물에 발을 딛는 순간, 요단강물은 흐름을 멈추었고, 마침내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 새 시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16C 종교개혁의 중요한 모토 하나가 바로 만인제사장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이 세상 앞에 제사장들로 서야 합니다. 세상이 어둡고 시대가 어려울수록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 소중해 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나라가 지금 몹시 어렵습니다. 정치/경제/사회/교육계 전체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미래도 희망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먼저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이 먼저 제사장적 리더쉽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야 합니다.
리처드 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에는 조나단이라는 이름의 갈매기가 등장합니다. 그는 항구의 더러운 쓰레기장을 오가며 먹이를 찾기에 혈안이 된 친구 갈매기들을 떠나, 더 높이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 마침내 창공을 높이 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높이 날으는 자가 가장 멀리 볼 수 있다" -
그렇습니다. 인생의 쓰레기들과 죄악의 오물들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면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높은 하나님의 꿈과 믿음의 비젼들을 품고 비상해야 합니다. 더 높은 세계로, 약속의 새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야 합니다.
성도님 여러분!! 우리 함께, 말씀의 언약궤를 메십시다. 은혜의 언약궤를 메십시다.
하나님의 권능의 언약궤를 메십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먼저 이 나라와 백성들의 선두에 서서, 이 나라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어둠과 불신앙과 두려움의 요단강을 건넙시다. 타락과 분열과 무기력의 강물도 우리가 먼저 건너 가십시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독교적인 사명입니다. 이것이 이 나라를 새롭게 할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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