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뿌리를 깊게 2001-12-13 20:05:59 read : 17013
2001년 3월 18일
마 13:31-32
다른 어느 해 보다도 그렇게 눈이 많이 오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이제 날씨가 제법 따뜻한 완연한 봄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경계를 정하셨고, 낮과 밤을 구별하셨으며, 날들을 나누어 4계절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은 이 4계절을 한 해 한 해 살아감으로 연륜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금년 봄은 우리에게서 또 한 해의 봄으로 그냥 지나가 버리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새로운 신앙의 봄이 되어야 합니다. 봄이 되면 나무에서 움이 돋고 잎이 나며 꽃이 피는 것은 열매를 위한 목적이 있는 변화입니다. 잎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은 열매를 위한 출발신호인 것입니다.
변화는 기독교의 이상입니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변화는 목적이 있는 변화입니다. 얼어붙고 침체된 동토의 신앙에 봄이 와 언행심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도 훈풍처럼 부드러워지고, 행동하는 것도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며, 생각하는 것도 싱싱하고 푸르게 바꾸어져야 합니다. 내적인 변화, 상태의 변화, 존재의 변화로 입체적인 변화가 와야 합니다.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는가
여러분은 지금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고 계십니까? 별 볼 일 없고 하찮은 존재로 이해하십니까? 남다른 재주 하나 없는 처지, 그래서 낮은 자존감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로 이해하십니까? 혹은 위대한 존재로 이해하십니까? 아니면 비록 지금은 위대하지 않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희망에 대한 믿음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런 희망은 분명 갖고 있지만, 그러나 그 희망이 이루어질 지에 대해 문득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까? 희망을 생각하면 마음이 밝아지다가도, 구체적 가능성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두워지십니까?
자신은 어떤 마음으로 살고있는가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계십니까? 몹시 어두운 마음으로 사십니까? 밝은 마음만으로 살고 싶은 바람은 있지만, 정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도무지 자신이 안 생기십니까? 혹은 밝은 마음으로 사십니까? 그러나 밝은 마음이다가도, 어떤 순간 갑자기 쓸쓸하고 허한 마음이 되지는 않습니까? 그리하여 한결같이 밝은 마음으로만 살고 싶은 바람을 가지십니까? 하지만 아마도 그런 일을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바로 자신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또한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향하여 오늘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힘을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너희가 하나님나라 운동의 운동원이라면, 그리 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신비로운 것이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간결하게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다"(욥 8:7) 아니 이는 개역성경의 번역이 더 낫겠습니다. "네 처음 시작은 심히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으로 성장하는 신비, 이것이 오늘 본문이 전하는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작은 것의 가치
사람들은 대체로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 차, 큰 집, 큰 교회, 큰 나라 등 큰 것을 좋아합니다. 작은 것은 가치가 없고, 큰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입니다. 작은 것을 가치 있게 봅니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그와 관련된 성경 말씀을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가장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눅 16:10)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큰 일의 가치를 부정하는 바는 아니지만, 우선 작은 일의 가치를 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최후의 심판 기사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40)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와 하나님이 동격인 셈입니다.
또 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 닢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이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헌금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막 12:43). 부자들이 많이 헌금하는 것보다,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 헌금을 훨씬 소중하게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 그가 받을 상이 크다"(막 9:41)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찮아 보이는 물 한 잔의 친절을 그리도 크게 여기시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장을 보면 하나님이 택하시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권력을 갖고 있고, 가문이 훌륭하고, 지식이 많고, 잘난 사람보다는 어리석고, 비천하고, 멸시받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을 더 많이 택하신다는 겁니다(고전 1:26-28). 곧 큰 사람보다는 작은 사람을 택하여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예수님의 탄생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땅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었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허름한 말구유에서 말입니다. 이에 대해 선지자 미가는 다음과 같이 예언한 바 있습니다. "너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다."(막 5:2)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는 겁니다.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되며,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작은 것을 나타낼 때는 늘 겨자씨만큼 작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마 17:20) 그러니까 겨자씨는 가장 작은 것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면, 가장 큰 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풀의 길이가 약 3미터 가량 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으로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가장 하찮아 보이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으로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가장 상한 마음이 가장 기쁜 마음으로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두 마음 사이에 가로 놓여있는 그 엄청난 거리,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멀고 먼 거리, 그 요원한 거리, 그 거리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거기에 이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해 보이지만, 아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가능성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란 바로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이 누릴 위대한 은총이요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 나라란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곧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께 자신의 삶의 주권을 맡기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늘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금 자신의 볼품 없음으로 낙망하는 사람에게, 오늘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시는 겁니다.
최근 타임지는 금세기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 100명을 선정해 발표하였는데 그중 한 명이 미국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 여자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로서 매일 그의 프로를 보는 이는 1400만 명이나 됩니다. 132개국에 위성으로 중계되고 있습니다. 그가 한번 책을 추천하기만 하면 일약 베스트 셀러가 됩니다. 장애인 대학 보내기 캠페인을 벌였더니 순식간에 100만 불의 성금이 모금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윈프리는 아픔이 있는 여자입니다. 1954년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손을 전전하며 상처투성이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물 속에서도 성경을 매일 읽고 암송하며 위로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아픔과 슬픔과 비애를 독서로 달랬습니다. 심지어는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장학금을 추천하여 주었고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습니다. 윈프리는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이렇게 훌륭한 100명중에 한 명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명을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남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무엇이든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여야 할 사명이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남보다 지혜가 많다면 그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남보다 물질을 많이 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남보다 더 건강을 받았다면 남을 위하여 건강을 사용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아픔을 주셨다면 그것은 사명입니다. 그 아픔을 통하여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라고 하시는 명령입니다. 한 여인은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마약을 한다고 말할 때 윈프리는 "나도 사생아로 태어나 어렸을 때 강간을 당한 적이 있어요"라고 1400만 명이 보는 앞에서 솔직하고 담대하게 이야기함으로 동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내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남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라는 사명이라고 그는 늘 말했습니다.
셋째, 남보다 가슴 설레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미치도록 좋은 것이 사명입니다. 마음속에 불타는 소원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사명입니다.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가장 작아 보이더라도 가장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재되어 있는 왕성한 생명력
오늘 본문이 전하는 두 번째 메시지는, 생명력을 구비하는 문제입니다.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가 풀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왕성한 생명력입니다. 씨가 작고 크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왕성한 생명력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이 작고 볼품 없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왕성한 생명력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그 생명력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외적인 형편이나 조건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래서는 작은 씨가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없지요.
한편 그 생명력은 어디에서 비롯됩니까?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임재해 계십니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임재해 계신 그분을 찾아 들어가 만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들어가 만나는 일, 그것이 바로 기도이고 찬송이고 예배이며 혹은 명상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왕성한 생명력, 그것이 가장 작은 씨가 가장 큰 나무로 성장하는 열쇠인 것입니다. 그 생명력을 구비하기 위해, 우리는 늘 하나님을 호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전하는 세 번째 메시지는, 새들이 깃들 수 있는 나무로 성장하는 문제입니다. 작은 씨가 큰 나무로 성장하니,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합니다. "가시나무"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가시나무에는 새들이 왔다가 상처만 입고 돌아가지만, 겨자나무에는 새들이 와서 충분히 쉬는 것입니다. 작은 씨가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큰 나무가 되는데, 어떤 나무가 되는가의 문제가 마지막으로 남습니다. 가시나무가 되는 사람이 있고, 겨자나무가 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나무에 가까우십니까?
여러분! 인생의 나무에 새들이 날아들고 있습니다. 그 새들이 여러분 안에서 편한 쉼을 얻습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 사람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성한 생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심신이 피곤하여 그에게 찾아가면, 그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제공받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소개받습니다. 그의 온유하고 넉넉한 기운에 의해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인생의 열매가 열리고 있습니까?
지친 새들이 편히 쉬게 하자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의 축복을 받기 원합니다. 왜 우리는 그분의 축복을 받으려 하는 겁니까? 우리가 축복을 받기 원하는 오직 하나의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받은 축복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을 나누라고, 우리에게 주신 그 기쁨을 나누라고, 피곤한 이웃에게 우리에게 주신 그 안식을 나누라고, 지친 새들이 찾아와 편히 쉬게 하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는 겁니다. 그럴 수 없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은 내릴까요?
우리 교회가 축복 받기를 원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만 잘 되고 큰 교회가 되고 우리 교회의 이름이 날리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을 사랑을 한껏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까?
나의 형편과 처지는 작은 씨와 같이 초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여 그 분의 생명을 공급받음으로 말미암아, 이 작은 씨가 자라납니다. 마침내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뿌리깊은 나무, 흔들리지 않는 나무, 푸르고 울창한 나무, 그늘이 그윽한 나무, 풍성한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나무, 그 나무에 지나가는 새들이 찾아옵니다. 그 새들이 편히 쉽니다. 새 힘을 얻어 다시금 제 길로 날아갑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그런 나무와 같은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말합니까? 그들이 여러분에게 찾아오고 싶어합니까? 혹 가시에 찔릴까봐 피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잘 모르고 찾아왔다가 상처만 입고 돌아가지는 않습니까?
영국 런던의 테임즈 강변에 있는 재판소의 뜰에는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이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포도는 영국에서 가장 맛이 좋고 또한 많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이 포도나무를 번식시켜 널리 보급하기 위해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포도나무와 조금도 다른 점이 없는 겁니다. 그래 자세히 그 나무를 살펴봤더니, 이 포도나무의 뿌리가 강 밑바닥에까지 뻗어있더라는 겁니다. 뿌리가 강 밑바닥에까지 뻗어있어 늘 충분한 수분을 빨아들일 수 있는 조건, 그것이 바로 이 포도나무의 맛과 양의 비결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혼의 뿌리를 깊게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조건이 겨자씨와 같이 작고 초라한 상태입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황량하고 어두운 상태입니까? 결코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런 조건과 마음을 더 사랑하십니다. 놀랍게도 그런 조건과 마음을 더 귀히 여기십니다. 다만 여러분 내면 깊숙한 곳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께 여러분 영혼의 뿌리를 깊게 내리십시오. 영국 테임즈 강변의 포도나무와 같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으로부터 생명의 자양분을 끊임없이 공급받으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 안에 왕성한 생명력을 구비하십시오. 그 힘을 사용하여 겨자나무와 같이 성장하십시오. 생명 강가에 심어진 뿌리깊은 나무, 흔들리지 않는 나무, 푸르고 울창한 나무, 그늘이 그윽한 나무, 풍성한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나무와 같은 인생을 일구어 나가십시오.
지친 영혼들을 찾아가자
그러한 여러분에게 지친 영혼들을 초대하십시오. 아니, 지친 영혼들을 찾아가십시오. 아니, 지친 영혼들이 여러분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 이웃에게 하나님의 안식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십시오. 그러한 여러분을 하나님은 더욱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하늘 나라를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벅찬 감격으로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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