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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대로 기업을 주라! 2001-12-14 11:00:23 read : 14838
본문말씀 : 민수기 26장 52-56절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 교단 산하 신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전주에 있는 한일 장신대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광주에 있는 호남 장신대학교, 부산에 있는 부산 장신대학교, 대구에 있는 영남 장신대학교, 대전에 있는 대전 장신대학교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서울 장신대학교를 거처 광나루에 있는 장로회 신학대학교까지 일곱 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감사한 것은 한 교단 산하에 일곱 개 학교가 있는데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체제를 갖춘 학교로 발돋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학교에 도착하면 각 학교의 총장과 이사장이 우리를 환영하였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자료와 보고서, 또는 여러 가지 것들을 일일이 보여 주면서 지난 일년동안 학교가 얼마나 발전하였고 성장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학교의 재산이 얼마요, 학생 수나 교수 수, 그리고 직원들과 학교의 년간 계획 등을 자세히 보고해 주었습니다. 물론 우리 교단 산하의 학교들이 재정적으로 아직은 크게 모자라 빚을 지고 있는 학교가 대부분이었으나 총장들을 비롯한 학교의 운영 책임자들이 상당한 의욕과 발전을 향한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둘렀던 장로회 신학대학교가 금년이 설립 100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선교협력센타를 새로 건립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100년을 감사하는 다체로운 행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 크게 섭섭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학교가 이번에 100주년을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면서 명예박사를 주었는데 외국 사람 한 사람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학교 당국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답이 궁했습니다. 우리 학교가 배출한 세계적인 목회자들도 많고 인정할 만한 목사들이 많이 있는데 100주년을 보내면서 겨우 외국 사람 한 사람에게만 학위를 주는 것은 학교가 자가 당착에 빠진 것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학교가 길러낸 세계적인 목회자들이 줄비한데 그들은 무시하고 외국 사람에게만 학위를 주는 것은 사대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했거나 교회를 너무 모르는 교수들의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책임자가 깊이 사과를 하여 그 정도로 그쳤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한국의 신학교가 한국의 목회자를 무시하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마 이것은 비단 이 학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가족을 무시하거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가치나 됨됨이를 제대로 평가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선지자는 자신의 고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잘못입니다.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돌보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된 도리요 제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전도하게 하기 위하여 파송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 중에 특별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5절과 6절에 "예수께서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지역으로 가지말고 먼저 내 민족 내 동포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얼핏 들어보면 다른 민족에게는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금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먼저 어디부터 전도해야 하는지 그 순서를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멀리 가서 다른 민족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 여기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해외에 여기 저기에 선교사를 보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해외선교도 열심히 하고 또 국내선교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해외선교는 열심히 하는데 국내선교에 대해서는 힘을 쏟지 않는다 이것은 문제입니다. 해외선교도 열심히 하고 국내선교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웃들에게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믿지 않는 가족을 전도하는 일에는 힘을 쓰지 않는다 이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이 순서입니다.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으로 이방인들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 동포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이스라엘민족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스라엘만 구원받고 다른 민족은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0장 6절의 말씀을 통해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아주 특별하게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로마서에 보면 자기 민족을 위하여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고 기도하였습니다. 자기 민족이 구원을 받는다면 자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향한 바울의 뜨거운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도 출애굽기에서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라고 하여 '내 민족의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 주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사람들도 자신의 민족을 위해 자기 영혼을 걸었습니다. 민족을 향한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생명을 걸만큼 간절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 성도가 자기 민족을 사랑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고 바울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 성도가 자기 가족을 돌보고 사랑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여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더 악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자기 가족을 잘 돌보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가족을 위하여 자신의 신체의 일 부분을 제공하는 뜨거운 사랑을 가진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가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이거야말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악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바로 그런 자들을 향해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는 가족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족을 잘 돌보는 것입니까? 가족이 편안하게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 것 그것이 가족을 돌보는 것일까요? 물론 이것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과 함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영원하고 참 생명을 주는 구원의 문제입니다. 진정 가족을 잘 돌보는 길은 그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믿음 안에 살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가족 중에 잃어버린 양, 우리 친척 중에 잃어버린 양, 우리 친구 중에 잃어버린 양, 우리 이웃 중에 잃어버린 양, 그 양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셔서 먼저 예루살렘에서부터,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을 위해 기도하십시요. 친척을 위해 기도하십시요. 특별히 아직도 여러분 가족 중에 예수 믿지 않는 가족이 있으면 눈물로 기도하십시요. 그리하여 올해는 정말 여러분 모든 가족들이 다 예수를 믿어 구원 얻어 영과 육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여 성도가 은혜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정이 끓어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어디를 가야 가장 효과적으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목사님께 여쭈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그 다음 날 다시 찾아오면 해답을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이 여인이 목사님을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그 여인에게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세상에 있는 누구보다도 가장 절실히 지금 당장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이름을 여기에 적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젊은 여 성도는 그의 선교지가 어디인지 알고 싶어 성급히 목사님의 서재를 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종이를 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당신의 아버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당황하였습니다. 먼 곳에 있는 잃어버린 양을 전도하려고 너무나 열을 올린 나머지 집에 가까이 있는 사람을 등한히 해 버렸음을 늦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버지를 주기적으로 방문하였고 아버지의 불편한 몸을 시중하며 아버지에게 모든 사랑을 쏟았습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족을 돌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여 한 사람의 믿음은 마침내 가정을 구원하게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10사람, 아니 100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보다 자신의 가족을 전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전도에는 성령이 함께하셔서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전도합시다. 그러면 언젠가는 온 가정이 다 믿음에 거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시면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자였지만 늘 공허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께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삭개오의 집에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를 영접하였는데 주님은 삭개오에게만 구원이 임하였다고 하지 않으시고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신 것입니다. 분명 예수를 영접하면 그와 그 가정에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특별히 10장 2절에 보시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믿고 섬긴 것이 아니라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온 집안이 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온 가정이 예수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청주북부교회의 김왕택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원래 대처승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스님이었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왕탁이라고 지었습니다. 큰 방울소리, 즉 큰 목탁소리라는 뜻입니다. 큰스님이 되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처승의 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서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데 5월 어버이주일에 들은 목사님의 설교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효도라는 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기름진 음식으로 대접해 드리고 용돈을 자주 드리는 것도 포함이 되지만 그보다 더 귀한 효도는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이다'이런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우리 부모님은 틀림없이 지옥에 갈텐데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정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40일, 대처승인 아버지를 위해 40일 작정기도를 결심하였습니다. 첫날과 끝날 그리고 매주 금요일 그리고 매일 아침은 금식하기로 했습니다. 40일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3일 금식기도에 들어갔습니다. 3일째 끝나는 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금식기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감동이 되어 교회에 나오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제 대처승인 아버지를 교회에 나오게 해야 하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아버지를 위해 똑같이 40일 작정기도를 시작했습니다. 40일 기도를 '아버님, 저와 함께 교회에 나가시죠'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이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웠습니다. '애야, 내가 어떻게 교회에 나가니? 한번 바꾸어서 생각해봐라. 너라면 가능하겠느냐? 너나 열심히 다니거라' 했습니다. 이 분은 기도를 더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7일 금식기도, 그리고 또 3일 철야기도, 그리고 10일 심야기도. 기도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대처승 아버지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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