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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능력
2001-12-28 16:39:24   read : 19065

행 8:4-8
일시: 11/04/2001(주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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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교회가 크게 박해를 받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렇게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면서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들 중에 빌립은 사마리아 성(城)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무리는 빌립이 하는 말을 열심히 듣고, 또 한 마음으로 그의 말을 좇았습니다. 그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에 대해 오늘 살펴보며 신앙적인 교훈을 함께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은 전도(傳道)합니다(4절).
본문에는 박해를 받아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殉敎)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 장엄했습니다. 그들은 두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과,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을 스데반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스데반은 확고한 믿음에 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것이 화근(禍根)이 되어 결국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죽으면서도, 그는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에게 살인의 죄를 돌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스데반은 죽으면서 이렇게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그 후,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가 너무 심해지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흩어져서 다 뿔뿔이 제 갈 길로 가 버린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그들은 그것은 '신앙의 신비'라고 느꼈을 겁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처럼 많이 받고, 또 신앙의 신비를 여러 번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다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 정신없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얻으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소위 흩어진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즉, 전도(傳道)를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들의 전도(傳道) 내용은 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5절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城)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전도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5절). 내가 예수를 믿고 받은 바 은혜와 복을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겁니다. 주님이 가슴에 살아있는 사람, 주님과 늘 교제하며 활력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주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복음(福音)을 전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여러분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십니까? 여러분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까? 받은바 은혜가 크다고 느끼십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있는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받은 복음(福音)을 이제는 다른 이에게 전할 때입니다.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삶을 살게 합니다. 믿음의 삶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싱싱하게 살 수 있고, 인생의 하반기를 의미 있게 살 수 있게 합니다. 박두진 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맑고 깊고 아름다운 분"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면 우리도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맑고, 깊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밥 뷔포드라는 사람은『중간휴식(Halftime)』이라는 책에서 중년(中年)을 위기가 아닌 기회의 시기라고 말하며, 이때는 "생의 성공(成功)에서 생의 의미(意味)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시인(詩人) 단테의 말대로 "모든 사람은 삶의 숲에서 길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황하는 영혼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안내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傳道)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마치도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그 인생이 견고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 여러분이 아끼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전하면 됩니다. 그리고 전도의 열매가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잘 돌보십시오.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 믿고 구원 얻게 만드는 것이 먼저 믿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교회는 사회봉사 단체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배우는 곳입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집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목회에서 <기도와 전도>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더욱 기도와 전도에 역점을 두려고 합니다.

한 때 저는 전문대학 교목(校牧)으로 있을 때, 원로 장로님이셨던 학장님이 저에게 전도를 너무 강조하셔서 그것을 고상(高尙)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많은 대학생들에게―그것도 학생 데모가 극심했던 80년대에―교회 나가라고 일일이 면담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신입생은 가서 반드시 주보를 가지고 와야 되고, 100% 복음화(福音化) 시키라는 겁니다. 저는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하면 반발을 사게 된다"고 말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기독교에 대해서 가르치면 됐지, 나도 대학교수 못지 않게 공부했는데 왜 나에게 교수 같이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하라고 하지 않고, 전도하라고 하는지 저는 속으로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때 그 학장님이 사실 매우 야속했습니다. 저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학장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그 당시 70대 중반이었습니다. 당신이 학교를 세운 이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시간이 너무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여러 가지 사회 봉사, 선교사업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잘 안된다고 하면, 그 어떤 사업도 사실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은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도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을 하게 된 것도,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서게 된 것도, 또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게 된 것도 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말씀한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전도하지 못하면 복음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열심히 기도하며, 전도의 열매를 맺도록 매일 마다 힘쓰시기 바랍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14절에 보면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들이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안수하였는데,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복음의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능력이 나타났습니까?

① 더러운 귀신들이 나갔습니다.
7절 앞부분에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귀신이 나가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좇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현대의 귀신 또는 악마는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두 가지 예만 들어봅니다.
미국의 성공회 신부요, 융 학파 정신분석가인 존 샌포드는 "왜곡(歪曲)된 자아(自我)야말로 악의 주된 원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왜곡된 자아는 건전한 요소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이 왜곡된 자아가 바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복음이 그 안에 들어갈 때, 왜곡된 자아, 상처받은 과거의 기억이 치료될 수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마(惡魔)가 거하는 곳은 지옥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靈魂)이며, 죄인의 잔인함과 약자(弱子)와 빈자(貧者)의 고통으로 거죽이 갖춰지고 속이 채워지는 그림자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봅시다. "악마는 여러 가지 악인(惡人)의 모습으로 현현(顯現)한다. 사랑을 결여한 채 오로지 지식만을 추구하는 지식인,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짓말쟁이, 매사를 의심하는 사람, 냉소적인 인물,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공동체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고립을 즐기는 개인주의 자 등등." 하지만 그리스도를 모셔들이고,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게 되면, 누구나 지옥―사랑 받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② 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7절 뒷부분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또 병자를 고치는 일이 예수님의 목회에 있어서 세 가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치유 목회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병 고치는 이야기가 성경에는 많이 나오는 겁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의 병이 말씀의 능력으로 고침 받는다고 성경은 증언(證言)합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오후 3시에 규칙을 따라 성전에 들어가다가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그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뛰어 서서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가 고침 받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5절에 보면,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소경이 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영접함으로써 새로운 비전(眼目)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 앉은뱅이가 걷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힘으로 살지 못하던 유약(柔弱)한 사람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의지(依支)하여 일어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은, 죄 용서함을 받고 깨끗해졌으며, 이웃과 함께 살 수 있는 자격(資格)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또 귀머거리가 듣게 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에바다)는 말이며,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절망하던 사람이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이처럼 엄청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심어줌으로써 그들이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힘있게 되어, 새로운 삶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전도자의 사명을 다 합시다.

3. 큰 기쁨이 있게 되었습니다.
8절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쁨이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경험함으로써 얻는 기쁨을 말입니다. 사도행전 13장 52절에 보면,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음으로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기쁨>은 <성령>과 같은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성령 받으면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은 <기쁨>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도 기쁜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맛이 납니다. 얼마 전 만난 어느 택시 기사(38세, 2 년 전에 직장에서 실직)는 자기가 택시 기사가 되고 나서 인생을 새로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55세 된 어느 선배 기사는 딸 둘이 있는데, 큰 아이는 연대 대학원, 둘째는 이대에 다니는데, 회사에 갔다내는 돈 내고, 집에 생활비 주고, 딸의 옷을 사주려고 1만원씩 모으며 좋아하는 그를 보며 많은 걸 배운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하며 정신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영감(55세된 기사)이 바로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도 작은 기쁨을 가져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은 잠시 가질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으로 인하여 얻는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기쁨이 될 때,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다른 말로 만족(滿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주님 품안에서 얻는 만족이 참된 만족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이사야 66장 11절에 보면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적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豊盛)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성탄 찬송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릅니다. 또 영국의 조셉 스웨인 목사는 1791년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찬송 82장)라고 찬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기쁨이요, 나의 소망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여러분은 믿음에 우뚝 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복된 삶입니다. 기독교는 축제와 기쁨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데도, 교회 생활을 하는데도, 삶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살면서 기쁘고 즐겁게 삽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 15:10)고 했습니다. 예수와 함께 살며, 이웃과 친지와 가족들에게 절망을 소망으로, 우울을 기쁨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능력의 주 예수를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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