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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임마누엘
2001-12-28 20:30:35   read : 19874


본문 : 마1:18-25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있습니다. 그 불가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2차 대전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나치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하나님, 당신은 살아 계십니까? 살아 계시다면 왜 침묵하고 게십니까?"라고 외쳤습니다. 하
나님은 나치가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이는 것을 못 보신 것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400년의 세
월 동안 고통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호소를 하나님이 모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대로 두신 것이 아닙니다. 신체의 조건도 나이도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원
하시면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일 뿐 아니라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의 옛날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임금님이 난을 만나서
신하들과 서민 복장을 한 채 피난길을 나섰습니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위험한 길
이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이르러 한 농부의 집을 찾아 며칠 유하자고 청했는데, 고맙게
도 그 농부는 이 일행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기꺼이 맞아들여 얼마동안 정성을 다해 대접했
다고 합니다. 임금님은 이 농부가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정세가 회복이 되어 환궁
하게 되자 임금님은 여전히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그 동안 신
세를 많이 졌소. 내가 이 은혜를 갚아야 되겠으니,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 말해 보시오. 들
어주리라" 그랬더니 농부는 말했습니다. "제게 무슨 별다른 소원이 있겠습니까? 보시다시피
먹을 것도 넉넉하고 몸도 건강합니다. 여태껏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 갈 것
입니다."하고 농부는 사양을 했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기어이 소원을 말해 보리고 거듭거
듭 청했습니다. "굳이 그러하시다면"하고 농부는 마지못해 대답합니다. "며칠 후면 제 환갑
입니다. 아이들이 정성을 모아서 잔치를 해 준다고 하니 제가 초청을 하거든 왕림해 주십시
오." 임금님은 착하고 욕심 없는 농부의 사람됨에 탄복하면서 "알겠소"하고 약속을 했습니
다. 며칠 후 환갑날, 농부의 집에는 난데없는 임금님의 대행차가 이르렀습니다. 그 환갑잔치
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농부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이 농부가 예사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사방에서 예물이 바리바리 들어왔습니다. 명예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농부는
엄청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집에 임금님이 다녀갔다고 해서 기념비까지 세
웠다 합니다.
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 같아서는
그만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행복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만하면 항상
웃고 살아도 되겠는데 풀죽어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이럴까? 축복 관념이 잘못되었습
니다. 행복관이 잘못되었습니다. 가치관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관이나 행복관 자
체부터 중생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화되지 않고, 이것이 복음화되지 않는 한 평생
토록 얼굴 펴고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
서도 아직도 축복관은 예나 다름이 없습니다. 옛날 사람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 가치관도
도저히 예수 믿는 사람의 그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소원이 예수 믿는 것과 관계가 없고,
그 사람의 행복관이 아예 예수 믿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복음의 첫 페이지가 무엇입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는 소식이
과연 여러분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준 일이 있습니까? 있어야 기독
교인입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존재의 문
제입니다. 소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소원 성취 여부도 아니요, 내 깨달음의 문제도 아니
요, 내 지식의, 내 교양의, 내 인격의 문제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문제는 하나님과 나
와의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문제입니다.
제 힘으로 걸을 수도 없고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시인은 "그 이
름"이라는 제목으로 예수의 이름을 노래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그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 속에 있는 그 비밀을 깨달은
자의 입 속에는 꿀송이처럼 달콤함이 있고, 예수의 이름을 듣는 귀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울리고, 그 마음속에는 기쁨이 솟아나야 합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성탄절이요, 연말의 바쁜 계절이기 때문에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따
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며, 때로는 깊은 감격과 기쁨, 그리고 은총을 느
끼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 보스톤 가까운 곳에 작은 도시 소머빌에서 성
탄절을 맞아 시청 앞에 아기 예수의 탄생 장면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뜻하
지 않게 어떤 장난꾼이 아기 예수를 훔쳐 가는 바람에 큰 곤욕을 치르게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멀리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하여 찾아온 동방박
사와 들에서 달려온 목자들의 모습까지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심지어 포대기도 말구유도 다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없었습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도, 트리도, 즐거운 음악
도, 그리고 맡은 선물을 받게 되어도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입니
다. 그런데 소모빌 시청 앞처럼 지금도 예수 없는 성탄절을 즐기지 않나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싼타클로스와 성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분명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는 임마누엘이라는 말입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의 히브리
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란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의 의미를 깨닫는 날
이요, 그 뜻을 바로 이해할 때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 신기한 예수의 이름은 인간의 머리나 혹은 땅에서 비롯된 이름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친히 그 뜻을 풀이해 주신, 즉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름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
이라 하니라"(마1:21)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주님께서 받으시기에 가장 적합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아들을
가장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
갈 때, 이 예수의 이름을 들고 나가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우리를 영접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의 이름 앞에 두려워 떨게 됩니다.
특별히 그 이름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는 유일한 처방이 됩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여기서 문제의 초점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나아가 이 구원을 통한 주님과 자기 백성
과의 관계입니다. 자기 백성이 없는 주님은 예수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 자가 없는데
구세주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 백성이 없는 예수는 무의미합니다. "그
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리라" 여기서 자기 백성이 누구입니까?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 그
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시민권을 허락한 자격증은 우리의 선함이 아니라 악함
이었습니다. 나의 훌륭한 공로가 아니라 나의 비참함이었습니다. 나 홀로 일어섰던 강함이
아니라 넘어지고, 깨진 상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찾고 병들고 약한 자를 불러 자기 백
성으로 삼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첫째로, 예수는 말구유에 나심으로 온 인간의 아픔과 더불어 임마누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말구유에 나심으로 인간의 비천과 가난과 처참한 환경
에 동참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여기서
"함께"는 "동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똑같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땅에 오신 이 임마누엘 사건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무한한 아픔이요 슬
픔이요 괴로움이었으니 우리에겐 무한한 꿈과 희망이었습니다.
땅과 하늘을 다스리던 하나님의 외아들이 말구유 침대를 덮은 볏집 한 오라기를 쥐고 있
으나, 그 손은 바로 얼마 후 소경들의 눈을 어루만져 뜨게 하고 문둥이를 쓰다듬어 깨끗하
게 하고 막힌 귀를 열어 주며 폭풍 이는 그 바다를 진정시킬 그 손이었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던 그 입술이 지금 나즈막히 어머
니를 찾고 있으나, 그 목소리는 얼마 후 귀신들을 꾸짖어 쫓으며 죽은 자를 일으킬 바로 하
나님의 웅장한 그 음성이었습니다.
한 발로 땅을 밟고 한 발로 하늘을 딛던 하나님의 발이 지금은 추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
으나, 얼마 후 그 발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될 발이었고 마침내 갈보리 십
자가에서 못 박힐 그 발이었습니다.
이 성탄절 임마누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처지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내 곁에서 내 아픔과 함께 하실 약속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임마누
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생활전선에서 일하다 받은 상처와 땀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도 어린 시절부터 땀흘려
일하셨습니다. 온갖 세상 풍파 속에서 알아주는 이 없이 외로워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
께서도 광야에서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우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난으로 슬퍼하
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가족을 잃고 종종 괴로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 주님께서도 일찍이 육신의 아버지를 여의셨고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핍박으로 번민하고 비방으로 마음이 녹고 배신과 풍랑으로 고
통받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배 안에 주님이 동행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
와 함께 있다. 내가 너와 동행한다. 나는 너를 지키는 임마누엘 너의 하나님이다. 두려워하
지 말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임종의 자리, 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나를 지킬
수 없고 나와 동행할 수 없을 때에도 임마누엘 하나님은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십니다.
여러분, 이 시간 이 분 곁으로 가시지 않겠습니까? 이 분께 나아가는 데는 화려한 치장이
필요 없습니다. 누구든지 이 모습 이대로 베들레헴 아기에게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가 누어
있던 그 풀더미를 씹던 소들도 예수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어떤 실수
와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은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목자들도 평상시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걸치고서 그에게 경배하러 갔습니다. 그들이 새
옷을 갈아입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는 기사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행동을 단정히
한 다음에, 사업에 성공을 한 다음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내 모습 그대로 가난한
마음, 사모하는 심령을 원하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에게 임마누엘이 되셨습니다.
결혼식에서 기뻐하는 신랑 신부 뒷방에는, 딸을 키워 시집보내는 아버지 어머니의 서운함
이 있습니다. 양아들을 맞는 잔칫상 뒤에는 자식을 떠나보낸 친부모들의 마음과 눈물이 있
는 것입니다.
구원을 선포하는 성탄절 저 넘어 하늘에서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낸 하나님의 아픔이 있
습니다. 그저 성탄절을 우리는 마냥 즐거운 축제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십자가 사건
을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성탄절은 인간의 멸망에 동참한 임마누엘 사건입니다.「승리의 생활」이라는 신앙 잡지 73년 12월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추운 크리스마스날 밤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만삭이 된 채 신음하면서 마침 산너머 사는 선교사 친구의 도움을 받으러 눈길을 걷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선교사가 있는 곳까지는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작은 다리가 놓인 도랑이 있었습니다. 거기까지 이르자 여인은 진통이 심해져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다리 밑에 주저앉아 결국 나무 판자 위에 예쁜 아들을 순산하였습니다. 아기를 덮어 줄 것은 입고 있는 치마와 저고리뿐이었습니다. 산모는 옷을 하나 하나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어 찬바람을 막도록 했고, 마침 옆에 흩어져 있는 가마니를 모아 아기를 쉬게 하고, 자기는 기진하여 쓰러져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 선교사 부부는 한국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려고 차를 타고 다리
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가 고장이 나서 고치고 잇는데 어디서인지 아기의 울음소
리가 들려왔습니다. 선교사 부인은 깜짝 놀라서 다리 밑을 조심스럽게 내려다보았습니다. 거
기엔 갓난아이가 치마에 쌓인 채 울고 있었고 곁에는 한 여인이 벌거벗은 채 얼어죽어 있었
습니다. 부인은 아이를 데려다가 간호하여 결국 아이는 살았고 그 집에서 자랐습니다. 어느
덧 소년이 된 이 아이는 종종 어떻게 자기가 이 집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이 12번째 생일인 크리스마스 때 모든 것을 다 얘기해 주었습니다. 소년은 자
기 어머니 무덤에 가보자고 선교사 부인께 부탁하여 함께 그곳에 갔습니다. 부인께서는 멀
찌감치 떨어져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무덤가로 가서 울면서 기도한 후 그는 옷을 벗기 시
작했습니다. 멀리서 보고 있던 부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설마 다 벗어버리진 않겠지 동상에 걸릴텐데, 그러나 그
소년은 옷을 다 벗어 무덤을 덮고는 벌거벗은 몸으로 무릎을 꿇고 눈 속에 떨고 있었습니
다. 부인이 달려가서 옷을 다시 입혔는데, 소년은 "엄마, 엄마는 이것보다 더 추웠지요"라고
소리치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소년은 자기 어머니의 크신 사랑을 알았습니다. 자기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이 자기를 살려주었다고 울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돈 몇 푼 줬다고 사랑이 아닙니다. 쓰다 남은 돈 몇
몇 푼 던져 주었다고 구제했다는 착각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의를 포기하시고 죄인과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입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물질이 아닙니다. 아가페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명
예, 의, 다 버릴 때에만 가능합니다. 임마누엘입니다. 이것은 창조적인 역사입니다. 오늘 임
마누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온전한 창조적인 역사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요
셉이 그를 영접하여 보호하고- 이런 장면들을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전부가 이적입니다.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의롭다 하는 사랑입니다. 아가페- 말없이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여기
에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엄청난 고난이 있고, 하나님의 희생이 있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우리를 멸망할 죄인의 자리에서 살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곤욕을 당하셨고,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는 창에 찔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등을 상했던 모든 채찍은 하나님의 가슴
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마를 찔렀던 모든 가시는 하나님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손발을 누볐던 쇠못은 하나님의 가슴을 못질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신음케 했던
모든 슬픔은 하나님의 심장을 찢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는 독생자를 주시고 그를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케 하시므로 확증시
켜 주셨던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죄인이라고 생각할 때, 조인 중에 괴수라고 할 때, 그리
스도는 임마누엘이 되십니다.
셋째로,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번역한즉" 이 말 속에 우리는 무한히 큰 기쁨과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히브리말인데, 이 말은 그 당시 평민들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던 그러한 말로 번
역을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에서 왕이 거지가 되었다는 의미 이상의 엄청난 비하를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동류에서의 위치나 값의 변동이 아닙니다. 완전히 상상을 초월
한 존재양태의 변화요, 엄청난 평가절하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사상을 밑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하에서도 대통령이 어떤 평민과 악수를 나누거나
식사를 함께 했다 하면 그것은 큰 뉴스가 되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일이 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자리까지 내려오신 하나님, 날 위해 옷을 벗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십시다. 임마누엘을 번역했던 것처럼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세 나라 말로 기
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메시야 뿐만이 아니고 전세계의 모든 사람에게도 메시
야가 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성탄절 임마누엘 사건은 유대 땅 베들레헴의 축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축제입니다. 여
러분이 이 성탄절기에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주님께서는 그곳에 번역되어 나의 자리
로 내려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적이고 나약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은, 벌떼처럼 밀려오는 페르시아 대군이 무서워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군사들에게 "제군들이여, 농작물이 많은 곳에 추수할 것이 많은지라. 고기장수는 결코
천 마리의 양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함께 손을 잡고 무찌르자"하며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
다.
한 기습부대의 장군이 난공불락의 금성 철벽같은 적군의 성벽 아래서 "군사들이 저 요새
를 뚫고 들어갈 수 있겠소?"하고 묻는 대왕의 질문에 "폐하, 자 성벽 아래도 햇볕이 비취겠
지요?"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물론 비칠 것이요" 그러자 장군은 "폐하, 태양 빛이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뚫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임마누엘 예수, 이 신비한 이름은 우리의 사건에서 불가능이라는 낱말을 제하
여 버릴 것입니다. 도무지 지워버릴 수 없는 실수나 과오가 있다 할지라도, 임마누엘 하나님
이 나의 손을 붙들고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주시면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임마누엘 그 무한한 힘, 이 시간 우리 마음속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사건을 마음으로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옛날 이야기
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죄인 너를
의롭다 하노라- 우리에게 계시하고 계십니다. 임마누엘은 오늘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우
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저 말구유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아들이요 너
는 내 딸이다- 이 구체적인 사랑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그를 영접
하게 될 때에 나는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를 믿고 그를 영
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가정의 일원이 되는 것입
니다. 이제 내 앞에 어떤 일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
의 생활 속에 경험하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확증을 주십니
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여기에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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