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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있는 설교법
2002-01-15 16:22:03   read : 50367

설교를 흥미로 채우는 법 - 빌하이벨스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불행을 느끼고 있다. 가정이 이상적이지 못할 수
도 있다. 또는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 과중한 일에 억눌려 있을
수도 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 때,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의 메뉴에
대한 식욕을 억누른다. 설교자로서 내가 할 일은 복음의 향기로 근심 걱정으로 여윈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설교할 때 끊임없이, '사람들이 내게 기울이는 미약한 주의를 어떻
게 유지하고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주의를 오래 끌지 못한다. 주일에 교회 휴게실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나는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빨리 거룩한 예배로부터 미식축구나
야구 또는 돈 벌이와 정치 문제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 가는가를 보고 놀라게 된다.
따라서 나의 한 주동안의 주요한 책임 중 한가지는 설교를 가지고 그들의 주의를 끄
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적절성을 알아 보기 위해서 내 설교 자료로 하여금 "그래서요?" 테스
트("So what?" test for relevance)를 거치게 한다. 성경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성
경은 적절하다. 그러나 나는 설교를 성경만큼 적절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할
일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람들이 떠나면서, "그래서요?"가 아니라 "알았습
니다"라고 말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하는 방법이 지성과 감정과 의지
에 설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성에 설교하라

신학은 지성에 도전한다. 나는 많지 않은 사람들만이 신학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아마도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일 것이다 : 그들이 자기들의 삶의
배후에 있는 세계관-삶의 철학-을 살펴보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설교할 때 그들로
하여금 계속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고자 한다.

나는 나의 설교를 통해서 사람들의 이해를 넓혀 주고자 애쓴다. 나는 사도신경 시
리즈 설교를 하는 중에, "천지를 만드신"이라는 문구에 대해 설교했을 때 그렇게 했
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를, 경험적으로 식별 가능한 법칙에 따라 작
용하는 폐쇄 체계(a closed system)로 본다.

그렇다면 "천지를 지으신"이라는 표현이
어디에 맞는다는 말인가? 유물론자들과 자연주의자들이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
기 때문에, 나는 폐쇄 체계에 대한 대안을 조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발견
했다. 나는 자연 과학과 이론 물리학을 건전한 신학과 연결시킨 좋은 설교를 가지고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지성에 접근하는 것은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성을 사로잡으려고 애썼다 나는 그들의 생각과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 그들이 복음
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씨름했다.


의지에 설교하라

의지에 설교할 때,나는 반응을 기대한다. 나는 사람들이 설교된 바에 기초해 행동
하기를 원한다 목사인 나는 부흥회 설교자보다 더 점잖고, 덜 요구적이 되기가 쉽다.
여러 해 동안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에 모든 것을 얻거나
잃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대개 어떤 굉장히 큰 조치보다는 방향이 올바른 작
은 운동을 기대한다.사람들의 의지란 자연히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작더라
도 방향이 올바른 운동을 격려하는 말씀과 예화를 선택하려 애쓴다. 나는 의도적으
로 격려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대개 사람들은 "도전"보다는 격려에 더 잘 반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야단치는 것 보다는 자극과 격려를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사람들에게 감당할 만한 말씀을 제공하려고 애쓴다.

의지는 교활한 피조물이다. 의지는 때로는 격려를, 때로는 도전을 받을 필요가 있
다. 의지에 설교하는 데 있어서의 비결은 어떤 종류의 자극이 여러분의 설교 대상들
에게 가장 빠른 효과를 나타내느냐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감정에 설교하라

얼마 전에, 나는 거부 당하신 그리스도에 관해 설교하고 있었다. 그렇게 친숙한 주
제는 설교를 듣는 사람을 졸게 만들기 쉬운 주제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흥미를
추가할 수 있었을까? 감정이다.

나는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전후(戰後)에 겪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나는 처칠의 팬이다. 그래서 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그의 엄청난 영향력을 회상
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딱딱 소리를 내는 라디오에서 그의 유명한 연설에 귀를 기
울였다고 말했다. "우리는 해변에서 그들과 싸울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
을 것입니다!" 폭탄이 떨어지고, 대공화포 소리가 들리고, 밤하늘을 가로 질러 비취
는 서취라이트의 섬광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불독 같은 결단은 우리가 그 끔찍스러
운 시기를 통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처칠은 전쟁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선거가 실시되
었을 때, 놀랍게도 처칠은 낙선했다. 처칠이 행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람
들은 그를 수상으로 선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아주 조
용한 목소리로, "그는 거부당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동안, 그들은 거부가 의미
하는 바를 깊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감정을 끌었다. 처칠이 거부된
사실이 그들의 마음을 언짢게 만들었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그들의 감정을 예수 그
리스도께서 거부당하신 사실로 옮기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것이었다.

혹자는 우리가 지성을 희생하여 감정에 호소할 수도 있다고 정당한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로서는 사람들의 감정을
교묘히 이용하기보다는 그 감정을 잊어버리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순전히 지적인
문제는 지나치게 무미건조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은 생명을 더해 준다. 감정은 사람
들을 반응으로 인도한다. 사람들은 감정과 일체가 된다.

유머는 감정을 유도하기 때문에 내 설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유머
는 놀라운 종이나 무서운 폭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필립 브룩스의 설교에 대
한 정의 -설교는 인격을 통해 전달되는 진리이다 -가 옳다면, 나는 유머를 통해서
진리를 전달해야 마땅하다. 내가 유머를 즐기기 때문이다.

유머는 또한 설교 중에 정신적인 휴식을 제공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따금씩 휴
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유머는 설교의 매력을 더하는 방식으로 휴식을 제공한다.
잠깐 동안의 웃음이 지나간 후에, 사람들은 더 큰 만족을 얻을 준비를 갖추게 된다.
또는 어떤 것-커다란 기침 소리 같은-이 설교의 분위기를 어지럽힐 때, 훌륭한 유머
가 담긴 말대꾸가 사람들의 주의를 설교자에게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설교자가 되라

설교할 성경 본문이 내가 일생 동안 다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나는
설교를 다 했다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전혀 없다. 그러나 나는 내 설교의 무미건조
한 부분들을 공략한다. 한 동안 시리즈 설교를 해 온 경우에, 나는 때때로 이렇게 생
각한다. '가만 있어봐. 이건 정말 무미 건조하군. 여기서 빨리 벗어나서 피해를 최소
로 줄이자!'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성경적인 자료와 씨름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잠재의식 속에서 재미없는 것으로 무시해 온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나는 주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설교자와 청중 모두를 지
루하게 만들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새로운, 독특한 각도를 발견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다 나는 본문의 호기심을 일으키는 측면을 발견할 때, 내가
할 말에 대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더 쉽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해가
가면 갈수록 내 설교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나는 내 생각을 재미있게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은 모든 설교자에게 있어서 끝이 없는 과업이다.

아이디어들이 나를 자극해 준다. 나는 김이 빠지기 시작할 때 사람들과 대화하기
를 좋아한다. 대화는 사람들과 삶과 신앙에 관해서 계속 흥분하게 해 준다. 또한 대
화는 설교에 흥미를 더하는 방법들을 제공해 준다. 왜냐하면 대화가 나를 세상 풍조
에 밝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주일 저녁에 열두어 명 되는 사람들을 우리 집에 초청해 커
피와 디저트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한다. 나는 단지 사람들을 불러 그들의 흥
미를 끄는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할 뿐이다. 나는 그들이 어디 출신이고, 무엇
이 그들의 흥취를 자극하고, 그들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 는가를 듣는 것을 좋아한
다.

그런 대화들은 종종 서로의 이해를 풍성하게 해 준다. 언젠가 판사와 의료 윤리학
교수가 함께 자리에 앉았을 때, 대화 내용이 낙태로 바뀌었다. 그 교수는 밀워키의
낙태 병원을 경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시행했다. 그는 의료 윤리에 관심을 가
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판사는 가족들의 복지를 다룬 오랜 경험을 근거로 그 대화
에 개입했다. 이어지는 대화는 우리 모두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게 재미 있었던 것이 언제나 내 회중을 즐겁게 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
의 음악적 취향이 회중의 취향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비록 내가 유럽 역사에 큰 관
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별로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덧붙여, 나는 전형적인 남성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반면에, 나의 교구민들
대부분은 당연히 여자들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취향과 관심사가 기준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나는 단
지 나와 꼭 같지 않은 사람들을 흥미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해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또는 항상 눈을 열어두어야 한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 「글래머 (glamour)」나
「미즈(Ms)」같은 잡지를 후딱 넘겨보곤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때때로 나는 설득
력 있게 잘 쓴 기사들이 세속적인 사고를 들여다 보는 창문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다. 나는 종종 노트를 한다. 나는 흥미 있는 자료를 접촉함을 통해서 세속적인 생각
을 접하고 세상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내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예화들을 산출해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는 것에 관심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동의할 필요가 없다. 전부를 다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사를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사람들
에게 재미있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
아야 하는 것이다.


("현대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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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선포에 있어서 말이 한계를 지니고 있으나 여전히 말은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는 설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말이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지나치게 되면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또 아무리 효과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일지라도 너무 많이 자주 말을 하게 되면 더 말의 위력을 잃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성서 주석적인 설교를 듣기 위해 개혁자들에게로 사람들이 몰려들던 개혁시대의 상황과 그 이후 개신교회의 설교가 전성기를 이루었던 17, 18세기의 상황과 오늘날 우리의 상황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개혁자들의 설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하였다고 할 정도로 말씀에 굶주려 있었다는 사실이 그 첫 번째 요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자들이 회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교를 했을 때 청중들의 반응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을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교부들 시대 이후에는 처음으로 청중들은 자신들의 말로 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개혁자들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청중들이 몰려들게 된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 설교와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개혁시대의 상황과는 아주 정반대의 상황에 처해있다. 발달한 매스미디어와 서적의 범람으로 오늘날 우리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리기는커녕 너무나 많은 설교를 접하고 있어 웬만한 설교로써는 만족을 하지 않게 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우리의 상황은 말씀이 없어서 굶주렸던 개혁 시대와는 정반대로 말씀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복음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말씀을 듣지 못해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설교를 너무 많이 듣기 때문인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자라도 많은 설교를 하게 되면 자연히 그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설교의 전성시대가 가능했던 또 다른 요인은 개혁자들의 청중들과 17, 18세기의 청중들에게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즉 그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대중들이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이 그리 왕성하지 못했으며 신문이나 그 밖의 대중 매체들이 발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설교자들은 그 지역 제일 가는 지식인이었는데 대중들은 설교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만 들은 것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설교자가 지니고 있던 여러 가지 지식들을 배웠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발달한 대중매체는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어느 분야든 간에 그 분야의 전문가의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여 지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각 분야에서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양의 최신 정보를 전해들어 그들이 지니고 있는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즉 강단은 더 이상 지식적인 욕구를 총족시켜주는 장소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영화, 음악회와 각종 오락 프로그램들은 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감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웬만한 설교로써는 교인들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히려 설교자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곧 예배와 설교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현대적인 상황은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와 설교는 다른 어느 곳에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인간의 본연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하고 바로 그것은 진정한 복음의 축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지켜져야 할 것이 설교를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주일 예배에서 한 번만 정식 설교의 형태로 설교를 하고 다른 예배에서는 다른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에서는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새벽 기도의 정신과 진행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 "초대교회의 일과 기도에 대한 역사적 연구: 새벽기도의 역사적 모형을 찾아서" 신학과 사회. 제9집. 1995년을 참조할 것).



주일 오후 예배는 찬양 예배로 대체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부교역자에게 맡길 필요가 있으며, 수요 모임은 철저히 성서 연구 모임으로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 또 설교를 아껴야한다는 것은 설교를 절대로 길게 하지 말라는 의미가 된다. 목회자의 설교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짧게는 15분에서 길어서 25분을 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지 귀한 것은 귀하게 아껴서 사용할 때 그것은 귀한 것으로 받아드려지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 다음으로 고려되어야 할 점은 설교의 방법이다.

설교가 단순한 복음의 내용 전달이나 혹은 성서 말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선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역사를 새롭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설교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그런 효과를 내는 것으로 선포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가장 적당한 설교 방식은 이야기체식 설교가 될 것이다. 말로 하는 것 중에 청중들을 끌어 들여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바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체식의 설교란 이야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기본 구조인 기(초기적 문제발단), 승(문제의 심화), 전(극적인 전환), 결(대단원) 혹은 설정된 상황과 문제 발단, 해결을 위한 탐구, 해결, 새로운 상황의 구조를 지닌 설교 양식을 의미한다.



 



설교 사역 갱신을 위한 실천적 방안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어버린 현 개신교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예배와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과 성찬에 대한 철저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서야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와 목회 사역을 해야 하는 설교자들이 설교의 갱신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으로 제안하는 것이 설교 클리닉이다. 이 설교 클리닉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여럿이 그룹을 만들어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며 전문가를 초대해서 클리닉을 받게 되면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노력하지만 노력만큼 설교 사역의 발전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그것은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설교 클리닉은 각자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구체적인 처방을 내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역량과 목회적인 상황들이 고려되는 가장 이상적인 설교 갱신을 위한 방법이 될 것이다.



설교 클리닉을 통하여 설교자의 현장 설교와 연관된 모든 것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교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틀림없이 많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복음을 올바로 선포하여 열매맺는 사역이 될 것이다.







"예배학적 측면에서 본 설교의 문제점과 갱신을 위한 제안" 이라는

이호형 박사의 글 중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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