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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 특별인터뷰
2002-01-15 22:39:48   read : 26828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본지는 5월 10일 서울 일원동에 있는 밀알학교에서 홍목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2시간 남짓한 인터뷰 중에 자신의 목회 철학과 한국교회를 향한 애정어린 충고를 거침없이 쏟아 놓았습니다. 하늘 상급을 내다보고 이 땅의 권리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는 그의 너무나 ‘당연한’ 고백이 너무나도 ‘특별하게’ 다가온 인터뷰였습니다. 많은 일 가운데 본지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신 홍정길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편집자 주>


▶ 인터뷰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뵙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이 많은 모양이죠. 그 동안 목사님의 목회자로서의 발자취도 알고 싶고, 목회를 마치고 한국교회에 많은 귀감이 되어 주신 부분들에 대하여 알고 싶어합니다. 목사님에 대하여 후배들이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목사님의 목회 사역은 어떻습니까?

- 저는 남서울교회 외에 다른 경험이 없습니다. 오직 남서울교회에서만 목회하였습니다. 저는 전도사 경험도, 부교역자 경험도 없습니다. CCC에 있다가 건국대학교에서 한 2년 정도 있었고, CCC를 나와 1975년도에 남서울교회를 개척을 했죠. 그리고 거기서 20년 9개월을 목회했습니다. 지금은 남서울교회 원로목사로 되어 있습니다.

▶ 한국교회는 목사님이 은퇴한 것을 신선하게 받아들입니다. 특별히 조기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라도 있습니까?

- 은퇴할 생각까지는 없었습니다. 저희들이 처음부터 장애인 학교를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도를 받아서 오다 보니 뒤로 물러설 수 없도록 장애인 학교로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이 학교를 짓기 위해서 몇 년을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소문났다시피 이 학교를 짓는 과정에서 이해를 못한 분들이 워낙 거세게 반대를 했기 때문에 일이 참 지지부진했습니다. 그 때까지도 제 생각은 장애인 학교를 하나 잘 지어서 드리는 것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겠다 그렇게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1996년도 2월 마지막 주간에 조용히 기도하러 갔다가 확신을 받았습니다. ‘네가 건물을 짓는 것보다, 네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하면 안 되겠느냐?’ 하는 요구를 듣고 금요일에 제가 결정을 하고, 토요일에 아내와 의논하고, 주일에 당회의 통과를 받고, 그 다음 주에 이임 설교를 하고 나왔습니다. 의논을 하면 도저히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남서울교회에 감사한 것은 교회가 주님의 뜻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교회가 흔쾌히 받아 주었는데, 한 가지 단서는 20년 이상 목회를 했으니까 장로교 법에 의해서 ‘원로목사’라는 이름을 달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추대식을 한 적도 없고, 그 날부로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미리부터 은퇴할 생각이 있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 그런데 지금 나와서 남서울은혜교회를 하고 계시잖아요?

- 제가 나와서 교회 개척의 모델을 여러 개를 세워보았습니다. 어떤 교회는 오전에 예식장의 빈 시간을 이용하여 교회를 개척하고, 또 수지 가는 곳에 레스토랑을 빌려서 주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개척교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척교회 형태가 너무 천편일률적입니다. 비싼 돈을 주고 건물 빌려서 의자를 놓고 꾸며서 개척을 하는데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모델을 생각하는 중, 중동고등학교 강당을 빌려서 개척교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학교가 어려워져서 그 학교를 인수해 달라는 서울시 교육청의 간곡한 권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했는데 그 건물이 삼성으로 넘어갔습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선수금까지 주고 그 학교의 부채를 갚고 해 볼까도 했는데 그 학교의 동창들이 반대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공증까지 받아서 서류만 집어 넣으면 우리 소유가 될텐데 그걸 안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 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잘 할 사람이 있으면 누구라도 가져가도 좋다’고 했는데 결국 삼성이 인수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서울시 교육청에 묻기를 ‘만일 학교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목사님, 몇 년 전부터 자폐아 학교를 지어 준다고 약속해 놓고 예산이 없어서 짓지를 못했습니다. 이것 좀 해 주세요’ 하고 조르더라구요. 그런데 그 전에 사실은 우리 교회에 자폐아를 가진 가정이 다섯 가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분 중에 한 분이 제가 중동고등학교를 인수한다고 하니 제게 울먹이면서 항의하더라구요. ‘목사님, 다른 학교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폐아를 위해서는 서울에 학교 하나가 없습니다. 학교를 하려면 자폐아를 위한 학교를 좀 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니, 자매님, 이미 당회에서 결정이 났는데 다음 단계에 꼭 그 학교를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되던 가운데 서울시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기도 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헤어졌거든요. 그런데 결국 그 기도가 승리한 것 같습니다.

▶ 참… 그래서 중동고등학교는 삼성에 넘어가고 자연스럽게 밀알학교가 생기게 되었군요. 그리고 여기서 교회도 하시게 되었구요.

- 그렇죠. 그 때 중동고 강당에서 하던 교회를 밀알학교로 옮겨 오게 되었죠. 그런데 그것도 재미있는 것이 이 일을 막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는 ‘너희가 교회가 없으니까 교회를 빙자해서 학교를 짓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공격을 했어요. 그래서 이 앞에 ‘이 건물은 종교 건물인가? 교육 기관인가?’를 묻는 프랭카드를 써붙여 놨습니다. 그런데 수서에 있는 유영기 목사, 합신 교수인데 그 분이 저를 찾아와서 ‘모두 다 예수님 교회 아닙니까? 목사님은 교회가 없고, 성도들은 많은데 저희들은 교회는 덩그렇게 지어 놓았는데 성도가 없습니다. 합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교회 이름이 은혜교회였죠. 그리고 우리는 그 교회 흡수해서 들어가자고 했더니 앞에 남서울이라는 말을 붙이자고 했습니다. 은혜라는 말이 추상명사이니까 지역 명을 꼭 붙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남서울은혜교회가 되었죠. 모두 의도적으로 된 일이 아니고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들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 제가 어제 다른 목사님과 통화하며 ‘홍정길 목사님과 인터뷰를 한다’고 했더니 목사님께 꼭 두 가지만 물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하나는 목회자들이 평소에 목회하다가 반드시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데, 목사님은 무슨 문제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고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당회에서 장로와 목회자와의 갈등인데, 그런 갈등이 개척교회에는 덜 하여서 홍목사님도 개척교회를 하셨으니 비교적 갈등이 적었겠지만 그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 먼저 목회 슬럼프 문제입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슬럼프라는 것을 모르고 거의 앞만 보고 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그 슬럼프를 모를 수 있었던 요인이 있었다면 제가 재미있는 취미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음악회에 잘 갑니다. 그 시간만큼은 일단 모든 것을 잊어 버리죠. 그리고 박물관, 미술관을 잘 다닙니다. 외국에 가면 꼭 방문합니다. 거의 25∼26년 다녔어요.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 박물관을 많이 가 본 사람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가서 즐깁니다. 그러면 일단 내 일을 잊어 버리고 몰입할 수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것이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영적인 부분 하나를 얘기하라고 하면 제가 젊은이들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KOSTA를 15년 전에 만들었고, 실제로는 20년 전에 MIT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생 한 영혼, 한 영혼 만나 가르치는 일을 하면 그게 그렇게 신이 납니다. 영혼을 보고,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기쁩니다. 현재도 중국 북경의 대학생 양육을 음으로 양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에 매이지 않게 합니다. 교회에서 계속 반복되는 일을 훌쩍 떠나서 내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보니까 존 스토트라는 분도 새 보는 것을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이 쓴 책 중에 “새”(The Bird)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한국에 와서도 자신은 새 보는 것을 즐긴다고 해서 조류학자 한 분과 새를 보러 다녔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몰입할 수 있는 좋은 세계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도 기뻐하시는 분야의 일을 개발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여 저는 목회 슬럼프를 겪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지나치게 하다 보면 그것도 목회자로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요?

- 그렇죠. 지나치면 빠집니다. 그러나 저는 천성적으로 어디에 매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이든 ‘내 것이다’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이 학교도 165억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손봉호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밀알복지재단이 가장 건강하고 정직하다고 여겨 그 쪽으로 귀속을 시켰습니다. 법적으로 저희 교회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재산을 갖지 않는 것이 제 삶에도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인들에게도 우리가 나그네 삶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르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그래도 혹시 설교 같은 데서 슬럼프는 없으셨습니까?

- 설교는 슬럼프가 있습니다. 언제 슬럼프를 경험했는가 하면 안식년 갖다 오니, 1년을 쉬다가 설교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식년 동안 제가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의 산골에 들어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설교도 간격을 두고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다 놔버렸더니 다시 설교할 때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한 교회에서 17년 목회를 했지만 무엇이든지 능동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슬럼프를 모르는 편이지만, 그러나 설교 슬럼프가 찾아오던데요...

- 그리고 저는 강해설교를 하기 때문에 역시 슬럼프가 없습니다. 그냥 성경 본문만 보면 자연히 풀려갑니다. 그래서 설교 슬럼프가 없었다고 봅니다.

▶ 당회원과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 제가 당회 문제는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형제들과 의논하는 것처럼 당회를 합니다. 남서울교회도 그랬고, 은혜교회도 그렇습니다.

▶ 20년 동안이나요?

- 예.

▶ 그래도 목사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섭섭하거나, 당회원들이 목회자같이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거나 성숙하지 못한 면은 없지 않았습니까?

- 그런 부분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줘야죠. 그런데 한 가지는 다른 교회하고 남서울교회가 차이가 있는 것은 남서울교회는 초창기부터 개척해 왔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양육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제 생각도 아니고, 장로 생각도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생각이라는 확신만 주면, 서로 양보합니다. 장로님들이 그것을 입증하면 제가 양보하고, 또 제가 입증하면 장로님들이 양보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 제가 보기에 오늘날 한국교회의 당회 문제가 큰 문제로 보입니다. 특히 장로교회에 더 심하죠. 비교적 개척한 분이나, 성숙하게 목회하는 분들에게는 갈등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문제가 많습니다. 홍목사님께서는 객관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지요? 목사님 문제입니까? 장로님 문제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구조적인 문제인가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갈수록 독립교회도 많아져 가고 심지어는 장로를 안 세우는 교회도 있습니다.

- 목사, 반대 받아야 합니다. 반대가 없는 목회는 브레이크가 없는 차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목사들이 반대하는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의 전제는 ‘나는 하나님처럼 완벽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반대를 당하면 그 문제에 대해 유심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 저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을 하죠. 제안한 문제에 잘못된 것은 없는가? 거듭해서 생각해 봅니다. 그 중에 내가 잘못된 것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서울교회의 경우, 같이 의논을 하다가 제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얼른 시인을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어떤 경우에는 신앙적으로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것은 의논하면 더 안 되죠. 그럴 때 목사가 고집을 피우면, ‘우리 목사님이 고집이 없는 분인데 고집부리는 것을 보니 뭔가 있는가 보다’라며 양보를 해 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적은 문제나, 또 합리적 제안에는 장로님들 생각에 많이 따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제가 고집을 부립니다. 교회를 옮기는 문제, 학교 짓는 문제 등입니다. 예컨대 이 밀알학교에 160억 원이 들었는데, 지금 또 120억 원을 더 들여야 공사가 끝납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학교를 지으려고 해도 이렇게 좋은 위치에 허가가 잘 안 납니다. 그래서 최대한 개발하여 장애인들이 우리 집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꾸며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안에는 실내체육관, 음악홀, 수영장, 미술실, 발표실 등 종합 복합관으로 조성됩니다. 장애인들에게 이런 복합 건물이 주어진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짓자고 할 때 남서울교회 때부터 함께 지내던 장로님들 가운데 이렇게 얘기한 분도 있어요. ‘목사님, 목사님하고 목회하면서 다 좋았는데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남서울교회는 850명밖에 안 들어가는 공간에 꾸역꾸역 밀어넣어서 1,300명이 들어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넉넉하게 의자 놓고, 그리고 주차 문제도 없는 그런 교회를 평생에 한 번만 지으면 안 됩니까?’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제안이 있어서 그것을 당회에 한번 붙여 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 의견을 따른 사람이 8이요, 내 의견을 따르는 사람이 2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회에서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님의 생각도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 큰 교회 많고, 너무 좋은 교회 많은데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그리로 가면 됩니다. ‘우리들은 좀 불편하게 살자’고 했습니다.

▶ 현재 한국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서 여기에만 그렇게 많이 투자하지 말고 다른 지역에다 투자하여 더 넓게 장애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 예. 이게 학교로서도 근본적으로 부족합니다. 장애인을 위해서 땅을 구한다는 것과 건축허가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안 지어 본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모릅니다. 제가 3년 멱살을 잡혀 가면서 이 일을 했습니다.

▶ 목사님을 보면 청빈하고 섬기는 이미지를 느낍니다. 전에 작은 차를 타시어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셨습니다.

-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요. 지금은 큰 차를 탑니다. (웃음).

▶ 그 때 마음이 어떠셨습니까? 혹 마음으로는 큰 차를 타고 싶지는 않으셨습니까?

- 그 차는 제가 산 것입니다. 남서울교회에 있을 때에 차는 자기가 선택해서 타자고 했습니다. 교회가 일방적으로 모두 해주기 때문에 목사는 신발 하나도 심지어 속 내의 하나도 누가 사준 것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차만이라도 목사 마음대로 사자고 했더니 교회에서 OK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얼른 가서 프라이드를 샀습니다. 제가 pride가 없는 사람이어서 프라이드가 필요했습니다. (웃음).

▶불편하지 않았어요?

- 저는 한국의 도로가 넓고 차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다면 큰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큰 차를 갖고 있는 분을 욕하거나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죠.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그냥 바퀴만 굴러가면 되죠. 이번에도 차를 살 때 소나타를 샀는데 제가 사고를 냈습니다. 얼음길에 범퍼를 부딪혀서 차가 나갔는데 우리 교회는 5년이면 차를 바꿔 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차가 6년이 되었는데, 사실은 한 10년 타려고 작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나서 들통이 난 것입니다. 북한에 갔다 온 사이 고장이 없는 차라면서 약간 큰 차를 사주었습니다.

▶ 목사님, 장애인학교 일 외에 북한 분유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 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92년부터 시작했는데 10년째 북한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해야 할 일이기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 동안 얼마나 도와 주셨어요?

-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분유하고, 어린아이 옷하고, 400만 불어치 보낼 것입니다. 또 이번 월요일에 밀가루 1,000톤하고, 옷 100만 불어치 보낼 것입니다. 한목협 등 여러 단체가 모금을 해준 것입니다.

▶ ‘한국교회’를 자꾸 말하면 부정론자들의 글 같은 인상이 있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건강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 1984년도에 영국 런던에서 간디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상처리가 잘되었고, 간디라는 사람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또 간디의 위대함이 잘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간디 영화를 보고 무엇보다 받은 충격적 도전은 ‘영국은 위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간디가 옳으니까 옳은 간디에게 무릎을 꿇더라는 것입니다. 힘이 있으면 그렇게 하기가 힘든 것인데 영국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니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은 얼마든지 사울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옳은 것을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 때문에 죽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진리를 살리는 것보다 우리가 가진 힘을, 돈을, 숫자를 즐긴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리 대신에 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언론대책위원회의 발상입니다. 우리의 잘못을 지적당하면 잘못된 부분에 대한 조사는 하나도 없이, ‘가만두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참 어렵다고 느낍니다.

▶ 그러나 틀림없이 한국교회에 대한 오해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복지부장관이 ‘기독교가 실질적으로 우리 나라 복지 문제의 75%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이나 언론들이, 심지어 기독교인마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 퍼센트를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밀알복지재단에서 강남 복지관을 위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녀복지과장이 식사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는데, 그 첫 마디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기독교 기관에서 위임을 한다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무작위로 투표를 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것인데 기독교가 한다니 가슴이 철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개신교에서 하는 복지 시설 쳐놓고 제대로 하는 것이 있어야죠?’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숫자 많은 것 가지고 마음 놓으면 안 되는 것은, 복지 시설의 모리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그 말도 이해를 하지만, 분명히 기독교가 옳은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각 교회들마다 지역을 섬기고 돕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평가받아야 하는 수준보다 낮게 평가받는 것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선교의 장애물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 그것에 대해서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평가에 대해서 우리가 왜 신경을 써야 합니까? 정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이 몰라줬다고 개신교에서 발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해 나가야 되는 겁니다. 옳고 잘하는 것은 사람들이 결국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뭐 했다고 우리 입으로 스스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하라고 한 곳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몰라주면 우리에게는 알아 주시는 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런 정신이 없기 때문에 소문을 냅니다. 그래서 숫자는 많고, 결국 흉내는 내지만, 주님 사랑하는 깊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 그리고 외부에 교회가 부하게 보이는 것은 일부 초대형교회들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작은 교회들입니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거기에다 이 부정의식 때문에 선교가 되지 않는 등의 이중적인 피해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그러나 목회가 더욱 어렵고 힘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목회자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대 교회든, 작은 교회든 의욕 상실에 걸리는 그런 환경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교회 정화가 될 수가 없습니다.

▶ 조금 좁혀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 기독교 선교에 위기가 왔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물어도 선교적인 위기가 왔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부패의 문제인지, 목회자 다산의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목사님께서는 그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너무 종합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목회자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목양의 사명을 주셨으니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도덕적인 인프라가 구축이 안 되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에 힘을 실을 수가 없습니다. 그 부분이 우리에게 큰 약점이죠. 개신교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 맞습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그 은혜에 감사한 순교적 사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목회자와 한국교회에 자기 성찰이 부족합니다. 어떤 때는 설교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저 사람이 자기 삶을 비춰보고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설교 밑에서 평신도들도 똑같이 살아갑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교인으로 대표적으로 칭송을 받고 있으나,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 옷 로비 사건이나, 대형 교회 세습 사건이나, MBC 사건 등으로 인하여 기독교가 더욱 부도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도 최순영 장로 구명 운동에 가입하지 않으셨습니까?

- 네, 저도 최순영 장로 구명운동을 할 때 가입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인을 했지만 후에 방향이 틀려서 ‘이러면 난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제가 사인한 이유는 최순영 장로에게 최소한 자기 변호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라는 것에 제가 사인을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초점을 맞춰놓고 밀고 가면 자기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충분히 자기 소견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차원에서 제가 사인을 한 것입니다.

▶ 이제 교회 세습 문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 저는 한국교회의 세습 문제는 한국교회를 망치는 중요한 타락의 징후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 지도자를 세운다는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 안에는 자기 아들이나 사위에게 물려 주든지, 아니면 중간에 한 사람을 끼어 넣어 그 다음에 아들에게 물려주는 징검다리 형식의 세습이나, 아니면 내 아들과 네 아들과 바꾸기 형식의 세습 사상이 만연해 있습니다. 안정된 교회의 목회자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초창기에는 오히려 좋은 뜻으로 세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아들에게 주는 것은 곧 자기가 물러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은퇴를 한 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상이 한 두 개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생각이란 점에서 심각한 것입니다. 목사 아들들은 대개 신학을 하는데 개척교회를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 목사님은 자제를 몇이나 두셨습니까?

- 아들만 둘입니다.

▶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등 온 가족이 미국에서 삽니다. 대학갈 때는 컴퓨터 공학(computer science), 건축(architecture), 경제학(econo- mic)하더니 4년만에 골치 아프다고 이코노믹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달라스 신학교를 갔습니다. 제가 가란 말도 안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안 되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휘튼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둘째 아이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작은 교회 목회자도 마음으로 대형교회 목회자를 그리고,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똑 같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성경이 허용하지 않는 영적 권위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심지어 자신의 초상화를 일정한 장소에 걸어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 저는 큰 교회는 나쁘고, 작은 교회는 좋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큰 교회는 아무리 제자훈련을 잘 해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저도 그러고 있습니다. 어느 단계만 지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담임 목사가 개개 신도들의 영혼을 일일이 터치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부교역자들의 보고에 의해서 교인들을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골방에 전기가 켜진 것을 끄러 가는 사람은 담임목사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입니다. 그런데 한 영혼에 대해서 담임이 모른다는 말입니다.

제가 1984년도에 런던 바이블 인스티튜트에 갔을 때 그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당시에 존 스토트 목사님이 교회가 1천명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저는 목회한 지 8년만에 2,700여 명이 되었는데, 500명 딱 넘어가면서 모르겠어요. 그래서 1년 안식년 하면서 그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가? 영혼들을 향해서 목회를 해야 할 터인데, 영혼을 모르는 목회, 영혼 구원에 깊은 터치가 없는 목회, 그것이 고민이었습니다. 그러자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온 목사들이 ‘그것도 고민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지금 안 모여서 얼마나 힘든데…’라는 겁니다. 그러자 존 스토트 목사가 말하기를 제 고민이 옳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존 스토트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주일에 가봤습니다. 존 스토트는 주일예배가 딱 끝나고 나면 줄이 끝도 없이 긴데 하나 하나 악수를 하면서 교인들의 안부를 다 묻는 것이었습니다. ‘벨기에에 간 딸은 어떻게 지냅니까?’ ‘나토에 간 아들 군대 생활은 잘 합니까?’ ‘아니 지금 당신 옆에 기도한다던 전도대상자는 요즘 마음이 어떻습니까?’ 그것을 보고 저는 그 다음부터 교회를 갈라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교인수가 적게 모이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현재 저희 교회는 3,200∼ 4,00O명 모입니다.

그래서 요즘 큰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고민해 봅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 때의 축복은 굉장합니다. 왜냐하면 교인 500명 될 때까지는 새벽기도회 때 전 교인을 다 한 사람, 한 사람 놓고 기도했습니다. 새벽 4시부터 오전 8시 30분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남서울교회 초창기 멤버의 이름은 그 아이들까지 이름을 압니다. 그러면 교인들이 ‘어떻게 압니까 애들 다 컸는데?’ 하는데, 새벽마다 기도를 했더니 입에 배어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500명 딱 지나니까 안 됩니다. 입력이 넘친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보는 마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대교회가 성공한 교회라는 의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지금부터 1천년 전에 어떤 교회가 가장 컸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때 누가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지도 모릅니다. 누가 훌륭한 부흥사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때 거렁뱅이 몇 사람 데리고 다닌 프란시스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20세기에서 목자의 심정으로 남을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헨리 나우엔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사람은 장애인 몇 사람 데리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 책을 읽으면 영혼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감동이 옵니다. 이 분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 그런 점으로 보면 목사님도 실패자시군요? (웃음).

- 실패자죠. 지금 여기서 장애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장애인이 한 230명 정도 됩니다. 여러 장애인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한 3천명입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실패자입니다.

▶ 커지고 싶다고 해서 커지고, 작아지고 싶다고 해서 작아지는 것은 아닌데, 커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내 능력으로 소유했으니까 내가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옳은 말씀입니다.

▶ 그래도 목사님께서도 큰 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밀알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우리 교회는 귀하고 좋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프로젝트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제가 꼭 권면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교회 사유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권리가 커지면 권리를 얻기 위해서, 시체에 까마귀가 모이듯 달려드는 사람들이 생기는 법입니다.

교단이라는 기구가 힘을 가지니까 목숨을 걸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붙잡게 되고, 기득권을 잡기 위해 싸우고, 한 번 붙잡았으면 놓지 않으려고 죽도록 싸우게 됩니다. 권리가 없어야 합니다. ‘정말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자세가 아니거나, 또 나를 부정하지 않으면 나도 욕심이 납니다.

▶ 그렇게 되는 데는 나이 문제도 있고, 영적인 훈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목사님께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셨습니까?

- 신앙생활 시작하면서부터 제게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저는 주께서 나를 위하여 천국에 예비하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누리는 것들에 대해 미련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무엇이든 훌훌 털어버릴 수가 있었고, 지금도 이거 아니면 죽겠다는 것이 없습니다.

▶ 한국교회를 염려하다 보면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교회의 사이비 이단 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빠진 숫자도 엄청나고 그들의 재산도 엄청납니다. 그들이 특히 중국, 러시아, 미국 등에 선교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거기에다 사이비 이단 문제가 터지고 나면 전도의 문이 막힙니다. 이들로 인해 교회의 윤리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점입니다.

- 저는 그것을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싶습니다. 이단은 필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단 나와서 정말 기독교가 진리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고, 또 바른 교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사탄은 반드시 우리하고 비슷한 사이비를 가지고 공격을 하도록 만듭니다. 가령 영국이 크리스천 국가로서 세계의 패권주의를 즐기고 있을 때, 비록 산상수훈을 잘못 이해하였지만, 간디가 아침마다 산상수훈을 읽고 그것을 통하여 싸웠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이비 이단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기독교가 사랑을 말하지 않으면 실존주의자들이 사랑을 말하게 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 그러니까 교회가 교회되는 운동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제가 할 일은 교회 한두 개라도 바른 교회가 되는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고 바른 교회가 세워지면 사이비 이단은 사라진다고 봅니다.

▶ 장거리적으로는 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거리적으로는 이단을 초기에 붙잡으면 예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한 노력이 한국교회에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것을 위해 기독교 연합기관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이단문제만큼 교회가 연합할 수 있는 좋은 요소가 없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공동대처가 잘 안 돼서 안타깝습니다.

- 사이비 이단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는 안 되어도 언론대책위원회 같은 문제는 잘 되지 않던가요? (웃음). 옳고 그름은 문제삼지 않고, 이익인가 손해인가가 행동하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 되고 있습니다. 진리인가 비진리인가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 후배들에게, 또 한국교회에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 주십시오.

- 언제 제가 나이가 이렇게 들었고, 언제 이렇게 선배가 되었고, 언제 생각지도 않은 사이에 영향력이 생겼고, 이럴 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생깁니다. 후배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할 뿐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한국교회가 상승무드를 타고 성장기의 특혜를 다 누렸는데 이제 은퇴할 때를 눈앞에 두고 이 비참한 모습의 교회를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너무도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후배들이 이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에 어떻게 자기 마음의 등불을 밝힐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남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 목사님의 모습이 한국교회의 바른 목회자상으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내 집 물이 맑아야 골짜기 물이 맑아지고, 골짜기 물이 맑아야 강물이 맑아지고, 강물이 맑아야 바다가 맑아질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를 살리는 것으로 믿습니다. 한국교계의 등불이 되시어 더 많이 가르쳐 주시고 더 많이 채찍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삼경 sam5566@hanmail.net
월간 <교회와신앙> 발행인,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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