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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의 차이
2002-01-29 13:15:55   read : 27466

사도행전 4 : 1~12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대용품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대체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옛날에는 가죽제품을 쓰기 위해 반드시 동물의 가죽을 벗긴 후 수많은 공정을 거쳐 가죽 제품이 완성되었지만, 이제는 인조가죽이 생겨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가죽이 아닌 합성 섬유로 가죽의 성능과 모양을 유사하게 만들어 냅니다. 옛날에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다니면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유리로 다이아몬드처럼 만들어 내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얼마 전 장미꽃 조화(造花)를 보았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까이 가서 봤더니 향기까지 나는 것입니다. 정말 만져보지 않으면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버터를 꼭 먹어야 하는데, 동물성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몸에 좋은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되, 맛은 동물성 기름으로 만든 것과 똑같은 버터를 만듭니다. 그 버터의 상표명이 'I can't believe can not butter' 우리말로 '야! 이것이 버터가 아니라니 믿을 수가 없네!'입니다. 이름이 좀 길죠? 그런데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 모릅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미 수입이 되었는데, 정말 버터와 똑같은 맛을 냅니다.
수많은 대용품과 모조품이 쏟아져 나와서 진짜를 구분하기 힘든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대체품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창시된 초창기만 해도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단순했습니다. 모두가 신앙생활하기 위해 모였고, 복음이 뚜렷했고,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핍박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고 교회에 모여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는 대체품이 많아졌습니다. 교회는 출석하지만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러나 큰 건물을 자랑하는 교회 속으로 가 보면, 사람의 논리가 진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얄팍한 술수와 인간의 능력이 하나님의 능력을 대신하고 있으며, 정신통일이 믿음을 대체하며, 나의 요구가 기도를 대체하고 있고, 나의 열심이 하나님의 뜻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신앙생활을 딱딱한 종교생활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은 종교입니다. 놀라실 지 모르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종교라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모든 종교에는 한가지 기본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힘과 내 노력으로 하나님을 찾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근본은 내가 중심입니다.인간중심인 인본주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 힘으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진정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에 나오긴 하지만 종교생활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물어야 할 심각한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계십니다. 사도행전 4장 1절에서 12절까지는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의 특징을 몇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종교생활의 특징을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1) 잘못된 교리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종교생활에는 잘못된 교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인간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굉장히 멋있는 것 같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적인 교리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소설가가 쓴 책이 아닙니다.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갑골학을 전공해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쓴 책입니다. 한문학의 원조인 갑골학을 아무도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런 그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선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유교의 근원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유교란, 한 정치가가 백성을 꼼짝달싹 못하게 다스리기 위해서 만든 종교 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의 학설로 인정받기 위해 자기의 지혜를 총동원해 정치와 타협해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공자, 즉 잘못된 교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과감히 선포한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교회에 나오면서도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 이면에는 잘못된 교리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사람이 만든 것을 그들은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지도자들이 그러했습니다.

40년을 앉은뱅이로 살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기쁜 일입니까? 그러나 여기 있는 지도자들은 그들의 기쁨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바라볼 때마다 그들은 잘못된 교리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증거를 제자들의 질문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잘못된 교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이 사람의 소경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때문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잘못된 교리를 책망하시며,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성전을 맡은 지도자들, 종교 지도자들, 교회와 성전에는 나왔지만 그들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속에 어떤 잘못된 교리가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를 바라볼 때마다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저주하고 무시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된 것을 보면 부모가 어지간히 죄를 지었구먼!" 하고. 그래서 이들에게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을 한번도 불쌍하게 여기질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태도입니까? 앉은뱅이가 일어났는데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람을 핍박한단 말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이름으로는 섬겼지만, 마음속 깊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한국 교회에 수많은 교인들이,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과 전통과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주일날 예배드리고 말씀 듣는 것 따로, 생활하는 것 따로 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리켜 신앙생활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생활이라고 부르십니다.

교회에 매일 나오고, 새벽기도 드리고, 설교는 듣는데, 그 가정에 변화가 없습니다. 직장생활에 전혀 기쁨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덕(德)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교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저 교회 마당만을 밟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지적해 주십니다.



2) 이기주의

겉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굉장히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들어가면 자기 자신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 중심입니다. 내가 복 받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내 사업 잘되기 위해서 십일조를 바칩니다. 나의 자손이 잘 되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고난받고 차라리 가난하게 살더라도, 저의 이름은 낮아지게 하옵시고 하나님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이런 마음이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없다고성경은 얘기합니다.

여기에 나타난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평생 예배만 드리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화가 나서 베드로와 요한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협하고 핍박했습니다. 이들은 명색이 제사장들로, 예배를 인도하고 성전을 맡았던 자들입니다. 앉은뱅이가 40년 가까이 그 성전에 있었는데,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제사장들이 그 앉은뱅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겨우 돈 몇 푼 던져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아닌, 이름도 모르는 베드로와 요한이라는 어부 출신이 오더니,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고 명하니까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제사장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기의 체면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있던 사람이 일어났으면, 나의 체면이 조금 구겨졌다고 해도 그 일을 기뻐해야지,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들을 감옥에 처넣는단 말입니까? 이것이 종교생활의특징이라고 주님은 지적하십니다. 모든 종교생활의 특징은 마음 한가운데에 하나님이 아닌 내가 앉아 있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정말 경계하며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하나님, 혹시 나의 영광을 위해 목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교회가 커 가니까 성도들이 선물을 많이 주고, 존경하고,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예산이 늘어나기 때문에, 목회 하는 것은 아닙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피를 말리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혹시 종교생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이 그러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성전 맡은 자들이 그러했다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일을 행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저와 여러분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여러분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누가 앉아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나는 못살아도 좋으니 내가 가진 것 다 바쳐서라도, 하나님의 이름만 드러날 수 있고 복음만 전파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들을 요즘 말로 하면 노회장, 총회장, 지방회장, 목사님, 장로님, 안수 집사님 등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종교생활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했는데, 종교생활의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특징이 무엇인지 본문을 살펴봅시다.



1)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삶이 참 신앙생활입니다. 부활을 말할 때, 그저 예수님의 부활만 얘기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와 연관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구상에서 부활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나사로의 부활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부활했을 때, 어떤 몸을 받았습니까? 그는 옛날에 가졌던 똑같은 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살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런 부활이 아닙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런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었다가 사신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몸을 가지고 부활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병들지 않고, 시들지 않고, 늙지 않는 몸이 성경에서 의미하는 부활입니다. 4대 성인 가운데 세 분이 예수님을 흉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쳤던 것을 석가도 가르칠 수 있고, 공자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또한 불경을 보면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도덕적인 삶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석가와 공자도 좋은 삶을 살았고, 소크라테스도 많은 철학과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았던 3대 성자 모두가 예수님을 흉내내지 못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그래서 3대 성인의 무덤은 그대로 있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지금도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만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언젠가 그렇게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가르침입니다. 어느 정도 신앙생활한 사람은 여기까지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고는 있습니다. "당신이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아멘! 제가 앞으로 부활할 것도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문제는 많은 성도들이 여기에서 멈추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과거의 부활을 믿고, 다가올 미래의 부활도 믿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의 문제는 '현재의 부활'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道) 전함을 싫어하여


그리고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현재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친히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게 자신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제자를 갈릴리 호숫가로 찾아오셔서, 그 새벽에 생선을 구워주시며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아시지 않습니까?"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미래에 부활할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오늘 이렇게 선포합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나서, "이 앉은뱅이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나사렛 예수, 그러나 죽음에 머물지 않으시고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오늘 이 사람을 낫게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앉은뱅이를 우리 마음 안에 가지고 살아갑니까? 얼마나 수많은 죽음을 체험하며 살아갑니까? 남모르게 환히 웃는 것 같아도 마음속에 낙담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고, 조그만 상처에도 슬퍼합니다. 남편이 조금만 속을 썩여도 인생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성경에서는 무엇을 말씀합니까? 바로 이런 죽은 마음속에 현재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과거에 역사하셨고, 미래에 우리 몸을 부활시킬 뿐만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삶에 역사 하여 부활을 느낄 수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지금 당신의 삶 속에 예수님이 당신의 삶을 부활시킬 수 있으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신앙생활을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담하지 않고, 고난 가운데 있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로마 감옥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몰매를 맞으면서도 감사했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성도들을 사랑하고, 자기를 치는 자들을 향해 주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고, 미래에 내가 부활할 것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그의 삶 속에 부활을 체험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부활의 삶을 매일매일 체험하는 것입니다. 목사라고 해서 매일 편안한 줄 아십니까? 아마도 목사에게 사탄이 가장 많은 공격을 할 것입니다. 때로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이렇게 힘차게 설교하고 나서도 월요일에 풀이 죽어 "하나님, 차라리 나를 지금 데려가 주십시오!" 고백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아무 이유도 없이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또 다른 체험을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소생시켜 주시는 체험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일으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왜 교회에 와 앉아 계십니까? 혹시 매일 반복되는 종교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 모두 종교생활을 청산하고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합시다. 오늘 여러분이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실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부관계, 누구도 다스릴 수 없는 자녀문제를 하나님은 해결하십니다. 누구도 구제할 수 없는 여러분의 사업을 하나님은 일으키시고, 마른 뼈들로 군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에 간섭하실 줄 믿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하루는 제가 다니는 학교에 큰손님이 오셔서 채플 시간에 간증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명함을 보니 굉장한 분이었습니다. 여러 직함 중 기억나는 것은 산타클라라 밸리 메디컬센터의 병원장이었습니다. 그 병원은 미국에서 꽤 유명한 병원이어서 아주 유식한 사람으로 기대하였는데, 놀랍게도 그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의 간증 시간이 되어, 강대상이 다 치워지고 마이크를 앞에 놓고 휠체어에 앉은 한 작은 노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처음 불구인 것을 알았을 때는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머스큘러 디스트로피, 즉 근육축소증을 앓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전에는 엄마가 시중을 다 들어주어서 몰랐는데,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다른 아이들은 다 공을 차는데 자기는 찰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자라 열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자기 병의 심각성을 체험적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만 16세였으니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어떤 모임에 가도 자기에게 호감을 가지는 여학생이 한 명도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내가 살아 무엇하겠는가?"

그러던 중 그는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좌절에서 돌이켜서, 자신처럼 이렇게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그들을 치료해 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산타클라라 밸리 메디컬센터의 병원장이 된 것입니다. 환자들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주의 복음으로 수많은 환자들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그는 놀라운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도 그곳의 원목으로 남았습니다.
병원장이 원목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원목으로 남아 수많은 사람을 전도하다가 저의 학교에 와서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었고, 그는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만믿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앞으로 부활할 것만 믿는 것이 아니고, 그 부활하신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에 자신을 사용하셔서 깨우시고, 부활시키실 수 있음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생활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살아나야 합니다. 부활해야 합니다.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 가운데서 주님께 부활을 구하십시오. 낙심과 쾌락만 좇아가는 삶에서 부활을 구해 보십시오. 종교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 앞에 부활을 믿으며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 수 없다는 마음 상태에서, 내가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우리를 부활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을 삶의 기초로 삼는 삶

11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시편 118편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또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시편 118편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바라보며 '이날은 즐거운 날'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 건축 당시에 야사(野史)로 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전 건축을 맡은 세파트가 있었는데, 산 위에서 돌을 잘라내는 석공과 그 돌을 운반하는 사람들과 설계도대로 돌을 잘라서 맞추는 석공들입니다. 산 위에서 돌을 설계대로 잘라서 주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쓸모 없는 돌 한 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돌을 골짜기로 굴려 내버립니다. 그런데 돌을 다 놓고 건축을 하려고 보니까 돌 하나가 없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주춧돌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산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돌이 굉장히 중요하니까 빨리 해서 보내라고 연락을 합니다. 그런데 내려보냈다는 겁니다. 그 중의 한사람이 기억을 합니다. "우리가 버린 돌 있지? 혹시 그것 아닌가?" 그 돌을 고생고생해서 가져와 보니, 바로 주춧돌이었습니다. 그 돌을 그 자리에 놓으니까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이 아름답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위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을 머릿돌로 주셨다고 얘기합니다. 겉으로 보면 이 세상의 왕들이 다스리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다스리고, 한 국가가 다스리고, 기업가가 다스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한번도 이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그들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스리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돌을 버려버렸고, 쓸모 없다고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부활시켜서 그를 들어 다시 이 세상을 세우셨다고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훗날 모두 다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심판대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심판하십니까? 돈을 많이 벌고 박사 따면 점수 많이 주고, 돈 못 벌고 공부 못하면 점수 적게 주실까요?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기준은 단 한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토대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쌓는가, 아니면 다른 것에 쌓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다 말씀하시고 이 비유를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집을 짓는 자다. 그런데 두 종류의 집을 짓는다. 한 종류의 사람은 모래 위에 짓고, 한 종류의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 그 집이 아무리 화려해도 적어도 한번은 폭풍이 올 것이다. 그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되 심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다 이와 같으리라"

여러분이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주어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님만을 이 세상의 머릿돌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외에 쌓은 선행, 예수님 외에 쌓은 지식, 예수님 외에 쌓은 그 모든 재물은 이 세상에서는 환영받을지 몰라도, 저 세상에 가면 하나도 남을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을 착각합니다. 착하게 산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이것보다 더 확실한 말씀이 있을까요? 불경을 읽어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어보셨나요? 저는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압니다. 스님에게 "스님, 제가 성경을 읽어도 될까요?"하고 물어 보십시오. "좋지!" "스님, 제가 교회에 나가도 될까요?" "좋죠!"
목사에게 물어 보십시오. "목사님, 제가 절에 가도 될까요?" 이런 질문을 한 후에 한 대 안 맞으면 다행입니다. 목사라면 절대로 절에 못 가게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왜 그렇게 편협하게 예수 아니면 안 된다고 할까요? 왜 그럴까요?
우리는 정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없으면 틀렸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화살을 쏠 때 과녁이 없으면 다 명중된 겁니다. 과녁이 있으면 과감하게 빗나갔다고 얘기할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을 지으신 분입니다. 이 세상의 진리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이 땅에 찾아오셔서 "내가 하나밖에 없는 진리요, 내가 하나밖에 없는 길이요, 내가 하나밖에 없는 이 세상의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정답을 선포하셨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10년, 20년 동안 다니고, 집사, 안수집사, 장로, 목사의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뭔가를 하는데 예수님을 기초로 하여 쌓아올리지 않습니다. 절에 한 번 가보십시오. 목사보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 가운데 하루에 8시간씩 기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 교회로 모두 몰려가고, 그런 목사님에 대해 자랑합니다. 성철 스님은 18년 동안 등을 한번도 땅에 대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힘으로 가능합니까? 그렇게 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심판 날에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로 말미암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삶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내가 과연 내 생각과 지식과 상식을 따라 믿는가? 내 유익을 따라 믿는가? 아니면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반석이신 그 분 위에 내 인생을 지었는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이 땅을 찾아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을 기초 놓기 시작한다면, 본문 말씀에서는 한 가지 놀라운 일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 있는 삶을 말씀합니다. Transformation!

종교생활은 고정되어 불변하지만, 기독교 신앙생활은 언제나 변화하는 것입니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지난달과 이번 달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달라진다고 말씀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18절,19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옛날에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변화입니다. 여러분은 변화되어 가고 계십니까? 영안 교회에 나오신 이후 더 좋은 남편이 되었습니까? 더 좋은 어머니와 아내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종교생활이 아닌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에 탐 스키너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주먹세계의 대부입니다. 뉴욕을 주먹으로 제패했는데, 그는 놀랍게도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흑인으로 태어났는데 뉴욕의 주먹세계에 뛰어들어서 성공했습니다. 판검사도 그의 앞에서 함부로 말을 못했습니다. 그가 주먹으로 그렇게 유명해졌을 때, 차를 타고 가면서 라디오를 켰는데, 이런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예수는 모퉁이 돌 예수는 모퉁이 돌 너희들의 인생이 아무리 화려해도 예수 위에 쌓아지지 않은 인생은 다 떠내려가리 다 쓸모 없으리 이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 세상의 구원자 장차 이 세상을 통치하실 예수, 예수는 모퉁이 돌!


알고 보니 이전에 교회에 다니며 배웠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그 찬송이 그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주먹세계를 떠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는 각오를 하고, 그의 동료들에게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Evangelist가 되었어요. 미국의 수많은 청소년들을 주님 앞에 돌아오게 한 유명한 Evangelist, 탐 스키너!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변화되는 겁니다. 족보를 묻지 않고,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어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만 한다면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남은 생을 종교생활 하는 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생활 하는 자가 되도록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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