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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코란 그 갈등의 뿌리 찾는다
2002-02-17 23:25:31   read : 22408

유일신의 계시를 담은 두 성서는 모두
청렴한 삶-내세-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실세계에선 왜 무력충돌이 난무하는 것일까


Kenneth L. Woodwar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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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의 상인 마호메트는 정기적으로 산에 올라 금식과 기도를 행하는 독실한 가장이었다. 40세이던 어느날 그는 히라山의 동굴에서 기도를 올렸다. 그때 천사 가브리엘이 홀연히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마호메트여, 너는 알라의 사자(使者)이니라.” 그리고는 “읊으라!”고 명했다. 음유시인의 재능이 없었던 마호메트는 못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천사가 그를 뼈가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마호메트는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알았다. 다시 한번 가브리엘이 낭송을 명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마호메트의 입에서 아름다운 시의 첫 구절이 흘러나왔다. 그 시들은 훗날 코란으로 집대성됐고, 오늘날 전세계 약 13억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알라의 영원한 ‘계시’로 숭앙되고 있다.

약 1천4백년 전인 그때까지 아랍인들은 대개 부족신을 숭배하는 다신론자들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처럼 유일신의 역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성경에 비교될 만할 경전도 없었다. 유대인의 히브리어, 힌두인의 산스크리트어에 해당하는 성스런 언어도 없었다. 무엇보다 유대교·기독교 신자들과 달리 그들에게는 신이 보낸 선지자가 없었다.

그러나 선지자 마호메트가 출현해 서기 632년 사망할 때까지 그가 읊은 시구(詩句)로써 아랍인들은 이 모든 것을 갖게 됐다. 성경과 마찬가지로 코란은 신의 계시를 담은 책이다. 코란과 성경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에게 신의 뜻을 밝혀주고 있다. 성경은 수세기에 걸쳐 히브리 민족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나라를 건설했다.

그러나 코란은 단 1백년만에 서쪽으로는 북부 아프리카와 남부 유럽, 동쪽으로는 오늘날의 중국과 인도의 국경부근까지 뻗어나간 하나의 거대한 문명을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도 우즈베키스탄과 수단에서, 그리고 이란과 말레이시아에서 마치 노래 선율 같은 코란의 독송 소리가 새벽녘에서 해질녘까지 울려퍼진다.

그러나 지난해 9월 11일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 이후 코란과 이슬람교는 심판대에 올랐다. 이슬람교는 본디 편협한 종교인가. 코란은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 자들을 상대로 지하드(성전)를 벌이라고 가르치는가. 코란이 혐오하는 ‘이교도’들은 과연 누구인가. 어쨌든 유대교·기독교 신자들도 역시 일신론자들이며, 아브라함·모세·예수 등 그들의 선지자들 대부분이 코란에서도 숭배되고 있지 않은가.

유대교·기독교 신자들은 오사마 빈 라덴과 다른 이슬람 과격파들이 토해내는 장광설을 들으면서 이 위태로운 시기에 누가 과연 진정한 이슬람의 대변자인지 의아해 한다. ‘경전의 백성들’(Peoples of the Book·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과 유대교·기독교 신자를 통칭해 이렇게 부른다)이 공유하는 공통의 토대는 무엇인가. 코란과 성경에는 어떤 화해의 씨앗이 내재돼 있을까. 이슬람교도들과 유대교·기독교 신자들 사이에 수세기 동안 계속된 경전의 전쟁은 끊임없는 문명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가.

코란에 폭력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슬람’이란 말은 ‘평화’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알라가 개인들과 공동체들에 약속한 평화란 코란에 명시된 ‘바른 길’을 걷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다. 이슬람교도들이 반대 세력과 맞닥뜨렸을 때, 특히 그것이 무장세력일 경우 코란은 호전적인 대응을 권장한다. 코란의 한 구절은 “알라가 너의 손을 통해 이교도들을 징벌할 수 있도록 그들과 싸우라. 그리고 승리하라”고 가르친다. 비록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런 공격적인 문구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폭력이 행사된 이야기들이 나온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사들의 편에 서서 적군을 바다에 익사시킬 정도로 난폭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계명으로서의 권위를 갖고 있지 않다. 또 코란처럼 신의 계시 그 자체로 간주되는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은 작전에 임하면서 여호수아를 인용하지 않지만 이슬람 전사들은 군인이기도 했던 선지자 마호메트의 선례를 쉽게 내세울 수 있다.

그리고 십자군이 비록 십자가가 그려진 방패를 들고 싸웠을지라도 그들은 살육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수의 말을 인용하지는 않았다(사실 그럴 수 있는 근거도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코란은 이교도에 대한 성전을 촉구하기보다는 정의·자비·연민을 훨씬 더 강조한다.
사실 코란은 알라의 뜻을 알고 행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더 가치가 있다. 코란은 성경처럼 기도와 종교의식에 관한 법도를 가르친다.

또 결혼과 이혼, 남자와 여자의 관계, 훌륭한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 등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과 코란 모두 유대교 신자도, 기독교 신자도 아니었던 아브라함이라는 공통의 조상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학적으로 코란과 성경은 모두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시키는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언명하고 있다. 또 인간에게 회개와 복종, 그리고 청렴한 삶을 요구한다. 또 둘 다 하나님의 단죄와 최후의 심판을 경고하며, 내세에 대해 지옥과 천국의 개념을 갖고 있다.

신성한 권위

그러나 경전으로서의 성경과 코란은 전혀 다르다. 코란(‘낭송’을 뜻한다)은 특별한 체계없이 물 흐르듯 쓰여 있다. 마호메트가 받은 계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구전(口傳)되고 암송됐기 때문에 코란은 반복구로 가득차 있다. 총 1백14수라(章) 가운데 한가지 주제에만 초점을 맞춘 수라는 없다. 각각의 수라 제목은 그 수라에만 나오는 단어 하나로 돼 있다(예컨대 가장 긴 수라의 제목은 ‘암소’다). 마호메트의 말은 그의 사후에 야자잎이나 동물뼈 같은 데 기록돼 집대성되면서 대체로 긴 수라에서 짧은 수라 順으로 정리됐다. 따라서 연대순에 따른 배열이 아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코란의 뒤에 나오는 짧은 계시들은 마호메트가 메카 시절 받은 것이고 긴 계시들은 그가 훗날 고관이 된 뒤 받은 것으로 본다. 따라서 짧은 수라에서는 복종의 의무와 예언이 주를 이루는 반면 긴 수라들은 행동과 조직 규칙 등 좀더 현실적인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다. 코란의 유동적인 구조는 이슬람교도들에게조차 혼란스러울 수 있다. 최근 코란 백과사전을 편찬한 조지타운大의 제인 매콜리프 교수는 “이슬람 전문 서점에서 ‘코란은 여성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코란은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어떻게 말하나’ 같은 책들을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경처럼 코란도 그 신성한 권위를 주장한다. 그러나 유대교·기독교 신자들이 성령을 받은 인간들의 말로 성경을 받아들이는 데 비해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을 알라의 영원한 말씀 자체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마호메트는 알라의 말씀을 전달하는 매개체였을 뿐 코란의 집필자가 아니다. 게다가 마호메트는 아랍어로 계시를 들었기 때문에 코란을 번역하는 것은 애초에 신이 내린 계시의 언어를 단순히 ‘풀이’하는 차원으로 간주된다.

하버드大 중동 역사학 교수인 로이 모타헤데는 “바로 이 점에서 코란은 이슬람교도들의 ‘성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모세의 구술(口述)을 기록한 모세5경(구약성경의 제1부)에 더 가깝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독교 신학 용어를 원용하자면 코란은 ‘로고스’(하나님의 말씀)로서의 그리스도 그 자체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육체로 현현한 말씀이라면, 코란은 책으로 구현된 말씀이다.

이것은 이슬람교도들과 유대교·기독교 신자들 사이의 깊은 간극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알라는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초월적이다. 따라서 코란에는 절대 삽화가 실리지 않는다. 마호메트의 그림조차 없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최고의 죄악인 우상숭배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의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메트 생애에서 일어난 일화들을 풍성한 예술문화로 승화시켰다(이 기사와 함께 실린 그림들이 바로 그 예다).

그러나 모든 이슬람교도들은 아랍어인 코란의 음률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알라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도에는 코란이 쓰인 당대의 아랍어만 사용된다. 절대 다수의 이슬람교도들이 그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코란은 마호메트의 눈이 아닌 귀를 통해 전달된 것이기 때문이다.

노터데임大 인류학 교수로 이슬람 연구가인 패트릭 개프니 신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이 낭송되는 것을 들으며, 또 그것을 기도를 통해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임으로써 알라의 존재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가톨릭에서 예수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으며 예수를 영접하는 것과 비슷하다.”

‘경전의 백성들’

그렇다면 코란은 왜 유대교·기독교 신자들을 자기들과 같은 ‘경전의 백성들’로 인정하면서 다른 ‘이교도’들과 구별하는 것일까. 일반적 통념과 달리 여기서 말하는 ‘경전’은 성경이 아니라 신이 쓴 천상의 글이며 이슬람교도들은 이를 완벽하게 옮긴 것은 코란밖에 없다고 간주한다. 코란에 따르면 알라는 자비롭게도 성경 속의 선지자와 사자들, 그리고 성경에서 언급되지 않은 인물들을 통해 그 경전의 내용을 밝히곤 했다.

그러나 신의 계시를 받은 자들은 모두(특히 유대교·기독교 신자들) 자기도 모르게 또는 의도적으로 원래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오역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코란은 성경에 담긴 내용의 새로운 개정판이 아니라 제인 매콜리프의 말처럼 유대교 경전과 기독교 경전의 실수를 바로잡는 ‘再계시’인 것이다. 성경을 읽은 사람들은 코란에서도 아브라함·모세·다윗·세례 요한·예수, 심지어 성모 마리아(코란에서 이름이 언급되는 유일한 여성이며 신약성경에서보다 훨씬 자주 등장한다) 같은 친숙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성경에서와는 딴판이다. 코란에서 이 모든 선지자들은 이슬람교도들이다.

가령 아브라함(이브라힘)은 자기 아버지의 종교를 거부하고 알라를 따랐기 때문에 최초의 이슬람교도로 묘사된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성경에선 언급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메카에 이슬람 최고의 성지 카바를 세운 이야기도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코란에서 아브라함은 중추적 역할을 한다. 히브리인들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인 이삭을 통해 뿌리를 찾듯 코란은 아브라함과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통해 아랍인들과 마호메트로 이어지는 선지자들의 계보를 말해준다.

코란 속의 모세(무사)는 성경 속의 모습과 상당히 닮았다. 그는 파라오에 반기를 들고 기적을 행하며 사막에서 신의 계명을 받고자 산에 오른다. 그러나 코란에는 유월절(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봄의 축제) 의식이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십계명 중 유대교 신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언급도 빠져 있다. 부모에 대한 복종은 계속 강조되지만 코란 속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처럼 부모가 다신론자일 때는 불복종이 강조된다.

코란 속의 예수(이사)는 자신의 민족에 배척당하는 선지자로서 마호메트와 비슷하다. 마호메트도 처음에는 메카 사람들에게 배척당했다. 코란에서 예수는 신의 말씀을 설파하고 기적을 행하며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성경과 다른 새로운 부분은 자신의 후계자로 마호메트를 예언한 것이다. 아울러 코란은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기독교 신자들의 주장을 불경한 것으로 거부하며 삼위일체의 교리를 다신론으로 간주한다.코란에서도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잠깐 언급되지만 예수는 신비하게도 죽지 않는다. 알라가 그를 하늘로 구출했고 그는 다른 선지자들처럼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지면 지상에 강림해 최후의 심판에서 증인이 될 것으로 적혀 있다.

마호메트가 성경과 거기에 나오는 선지자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어디서 알았는지는 학문적 논쟁의 소재일 뿐이다. 코란에서는 마호메트가 메디나에서 유대인 부족을 만났다고 말한다. 심지어 마호메트는 유대교 신자들이 자신을 선지자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전까지는 추종자들로 하여금 기도할 때 예루살렘을 향해 절하게 했다.

일부 학자들은 마호메트에게 기독교 신자였던 인척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그가 사막의 수도사들로부터 단식과 금욕 의식들을 배웠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의 내용을 마호메트의 인간 관계에 연결시키려는 학문적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호메트가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고 믿으며, 이를 코란이 순수한 계시라는 증거로 간주한다. 그들에게는 이슬람이 완벽한 종교이며 코란이 완벽한 경전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전통은 코란의 모호한 구절들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신화로 변화시켰다. 가장 중요한 사례가 다음의 짧은 구절에서 발전된 이야기다. “알라는 자신의 종을 한밤중에 성스러운 사원에서 저 먼 곳의 사원으로 보냈다. 그곳은 우리가 축복하고 그에게 우리의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땅이다.”(수라 17:1) 여기서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메트가 기적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메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했으며 바로 그곳에서 마호메트가 아담에서 예수에 이르는 역대 선지자들에게 설교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발전된 또다른 이야기는 마호메트가 후일 예루살렘에서 알라의 왕좌로 승천하면서 모든 선지자들의 경배를 받은 것으로 그린다. 수피파 신비주의자들에게는 마호메트의 승천이란 영혼이 신에게로 올라가는 상징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이슬람 전통주의자들에게 그 여행은 물리적인 것이었다. 어느쪽이든 그 지정학적 중요성은 매우 크다. 승천이 시작된 곳이 이슬람의 제3대 성지인 예루살렘 성전산의 ‘바위 돔’이기 때문이다.

현재 서방과 이슬람권의 갈등에서 가장 큰 문제는 코란 자체가 아니라 그 해석 방법이다. 전세계의 이슬람교도들은 심각한 종교적 권위 부재의 위기를 겪고 있다. 코란은 정·교일치의 단일한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이상향으로 그렸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이슬람권은 통치체제와 종교적인 권위, 다시 말해 정·교 간의 긴장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슬람이 위대한 문명이었던 중세시대에는 코란을 잘 아는 율법학자들이 변화한 역사적 환경에 알라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결정했다.

분쟁이 나면 그들이 판결(파트와)을 내렸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있는 견해가 널리 인정받지 못한다. 모든 종교에서 극단적 원리주의자들이 그러하듯 극단적인 목적(자칭 ‘대의’)을 갖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인용하고 해석함으로써 명분을 찾고 있다. 가장 위험하고 명백하게 나타난 예가 오사마 빈 라덴이지만 그 외에도 그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의미의 해석

그러나 코란을 온건하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9·11 사태 이후 민간인들을 학살한 테러 행위를 비난하고 자살 테러를 코란의 가르침과 어긋난다며 거부하는 목소리가 중동 지역 곳곳에서 들렸다. 또 일부 학자들은 코란 내에서 알라가 의도적으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창조했고, 서로 다른 종교가 공존하기를 원한다는 구절을 찾아내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 소재 알-아자르 연구소의 이슬람 철학자 자와트 사이드는 “코란은 난관에 부닥친 개혁의 사자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준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도 이민 1세대·2세대 이슬람 학자들이 많다. 민주주의·표현의 자유·권리장전의 혜택을 직접 경험한 그들은 이런 이상들이 이슬람 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코란이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심지어 이슬람교도 중에는 리치먼드大 로스쿨의 아지자 Y. 알-히브리 같은 여권운동가도 있다. 그녀는 코란과 전통적인 코란 학자들의 언급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한 토대를 쌓고 있다.

성경과 코란의 진정한 연관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의 신성한 계시로서 코란과 성경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 이상의 것을 말해준다. 양쪽이 주장하듯 신이 유일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도저히 신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다는 의미다. 마호메트 자신이 주장했듯 신은 어떤 신호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따라서 그 신호의 의미는 해석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종교적인 화해의 씨앗이 놓여 있는 듯하다. 허세가 아닌 겸허야말로 신의 의중을 헤아리고 그의 뜻대로 행하려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보편적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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