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은혜 2002-04-13 17:17:40 read : 31667
고전15:50-58 // 2002-03-31
할렐루야!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이 기쁨이 얼마나 큽니까?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사순절에는 못하고 부활절에만 한다 그럽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기쁨이기 때문에 그렇고 사순절에는 우리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슬픔을 나누는 시간이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드디어 오랫동안 참았던 할렐루야를 함께 하면서 오늘 부활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십자가의 종교라 그럽니다. 그런데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기독교는 십자가를 믿는 종교다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십자가를 지고 부활을 믿는 종교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의미가 맞다고 생각합니까? 각자 잘 생각해보고 판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를 십자가를 믿는 종교다, 십자가를 지고 부활을 믿는 종교다 하는 것은 예수를 믿고 전하고 예수는 믿고 난 다음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구원입니다. 죄인이니까, 지옥가야 되니까, 죄에서 구원받자, 어떻게? 예수 믿고,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죄인이니까 지옥 간다, 그런데 천국 가고 싶다, 어떻게? 예수 믿으면 간다 이런 얘기입니다.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 받는다, 이러한 구원이 목표인 것은 예수 믿기 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종교라고 하는 말은 나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로 대속 했다,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 지셨으니 그것을 믿는다, 그래서 은혜 받았다, 감사하자, 이것을 전도하자, 그럴 때는 십자가의 종교라는 말이 십자가를 믿고 구원받는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는, 기독교를 십자가로 구원받는 종교다 하는 것은 신앙의 초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비자 받은 사람되고, 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가 된 다음에는 십자가를 믿는 종교에서 십자가를 지고 부활을 믿는 종교가 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사순절 기간 동안에 `변해야 산다` 라고 하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었는데, 우리의 변함의 최종의 목표가 뭐냐? 십자가 믿어 하나님 자녀 된다? 이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 지는 사람이 되어서 부활의 은혜를 경험해야 된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십자가 지는 사람, 생명 바치는 사람에게 다시 살게 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는 산골에 사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해 다가 장에다 내다 팔아 먹고 사는 가난한 집인데, 하루는 아빠가 몇 일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하고 두 딸만 남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밥을 지으려고 장작을 끄집어내는데, 장작 속에 숨어있던 뱀 한 마리가 뛰어 나와서 이 엄마의 팔을 물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독이 빨리 퍼지는지, 팔이 퉁퉁 부어 오르고 아프기 시작하고 몸의 기운이 빠져나갑니다. 그 자리에 둡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 딸을 생각하니까 그대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아빠가 오시기 전에 죽을 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아빠가 올 때까지 이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밥을 지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부엌에서 밥을 짓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파 오는 것은 말할 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이 아이들을 살려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밥을 짓는 것입니다. 맘이 얼마나 급하겠습니까? 얼마 안 있으면, 내가 죽을 텐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밥을 짓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자식 사랑이지요.
지난 며칠 전에 여러분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시부모님이 여행을 떠난 사이에 그 시골집을 봐주러 갔던 며느리가 집에 불이 나서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신고를 하고 들어가서 아이를 끄집어내려고 보니까 불이 너무나 많이 번졌어요. 그래서 이 아이들과 함께 그만 그 안에 갇혀서 죽고 말았습니다. 소방관들이 불을 다 끄고 들어가서 보니까 이 엄마가 아이들을 꼭 껴안고 죽어 있었어요. 소방관이 하는 말이 이게 모성이 아니겠냐고 합니다. 불타서 죽은 것도 사실이고, 비참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모성애에 소방관들이 숙연해지고 이 사랑에 감동하고 있는 거지요. 죽음은 비참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걸 보면서, 오늘 뱀에 물린 엄마가 자식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오늘 우리들이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해주신 부모님이 있기 때문일 줄로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랑을 깨닫고 오늘 말씀을 들은 후에 전화라도 한 통화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전화했냐?` 그러면 `그냥 감사해서요` 그러세요. 그 말도 생각이 안 나면 `목사님이 하라고 해서요` 그러십시오. 어떻게 해서라도 그 사랑 알고, 깨닫고, 감사하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면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사랑, 그래서 뱀에 물려서 죽어 가는 이 엄마도 아이들을 살리려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피땀 흘려 애를 썼습니다. 이제는 기진맥진해 가지고 쓰러졌습니다. 죽음만 기다리는 겁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죽지를 않습니다. 죽을 것같이 쓰러져 있는데도 죽지를 않아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하도 땀을 많이 흘려 가지고 독이 땀으로 빠져 나가서 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남을 살린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해서 이 좋은 날에, 이 기쁜 날에, 우리 장로님들이 돈을 얼마씩 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대접하겠다고 맛있는 떡을 준비했습니다. 이따 가실 때에 꼭 하나씩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부활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 나를 위해 사는 길임을 알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절에 계란을 먹지요. 우리 여전도회에서 준비를 했는데요, 이 계란 말이죠. 누가 그러더군요. 왜 부활절에 계란을 먹느냐고. 어떤 분이 말하기를 계란 속에는 생명이 있어서 이게 부화되면 병아리가 나오니까 그것을 상징했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중에 의미를 붙인 겁니다.
이 계란을 먹게 된 것은 십자군 전쟁 때의 일로, 그 일화가 있습니다. 로자린느라고 하는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중세에 이스라엘의 성지를 이슬람 교도들이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그 성지에는 지금도 이슬람 성전이 서있습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중세의 기독교인들이 이것 다시 빼앗으러 가자 해서 일으킨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군 전쟁이 오랜 시간동안 계속되면서 남편들은 다 전쟁이 나가고 부인과 자식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도적 떼가 극성을 부립니다. 때는 이 때다 해서는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은 집에 들어가서 약탈을 해갑니다.
그래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로자린느라고 하는 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피신을 떠납니다. 그리고 어느 마을에 정착을 합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잘해줘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해서 생각해낸 것이 이 계란을 나누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닭이라고 하는 것이 유럽에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겨우 무역해서 가져가면 닭 한마리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닭이 낳는 알들을 자기들이 먹지 않고 모아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모아둔 것을 부활절 날 아침에 동산 나무 사이에다가 이 계란을 숨겨놓고는 아이들을 불러모아서는 이 계란을 찾아가게 했습니다. 여러분, 산에 가서 새알하나 구한다 이거 얼마나 재미있는 일입니까? 아이들이 그것을 받아 가지고 기분 좋아서 집으로 가는 겁니다.
한 아이가 산을 넘어 왔다가 다시 산을 넘어서 가는데, 그 산 언덕에 한 거지가 누워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겁니다. 보니까 전쟁터에 나갔다 부상을 입은 부상병입니다.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그 아픔과 배고픔, 굶주림에서 아주 허덕이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아이가 자기가 먹고 싶었지만 이 계란을 그 가난한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거지가 이것을 받아 들었습니다. 이 계란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보니까 예쁘게 색칠도 했고, 그리고 그 안에 글씨도 써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가만히 보니까 어디서 많이 보던 문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래서 그것을 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이거 어디서 났느냐?` `이것은 저 아래 마을에 로자린느라고 하는 부인이 우리에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이 계란을 받아든 가난한 부상병이 누구냐면 로자린느 부인의 남편입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부상당하고 집으로 왔지만 이 부인과 아이들이 없어진 것을 알고 찾으러 다녔던 겁니다. 그리고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낙심하고 있던 차에 이 계란으로 가족을 만나고 잘살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남을 위하는 일 , 감사하는 일, 그것이 결국 내가 사는 길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러한 사실들을 적지 아니하게 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경에 신앙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믿음, 신앙이 뭡니까? 구원받은 것만 감사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로서 하나님 믿는 생활을 하는 겁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 있을 때에 그 조카 룻과 더불어서 좋은 땅, 나쁜 땅 가릴 때에,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 마음에 여유가 있잖아요. `너 좋은 것 가져라 그러면 나 나쁜 것 선택하겠다` 그 이유는 뭐냐? `땅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 아들 이삭도 보세요. 우물을 만듭니다. 이 우물, 생명 같은 것 아닙니까? 큰 사업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가져` 줍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그는 생명을 다섯 번이나 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줍니다. 왜? `하나님이 나 살게 하시지 우물이 나 살게 하는 것 아니다` 이삭은 그래서 축복 받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믿음 생활 잘한다 하는 것은 다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내가 남에게 주지만은 이거 보고 하나님이 나에게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신앙의 삶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 후의 부활,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의 시간의 나열만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생활의 원칙입니다. 십자가 후의 부활, 이것을 믿고 살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증거리가 있고, 삶의 활력이 넘치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 남을 위해 내가 죽는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십자가 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부활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내가 왜 예수를 믿는지, 금방 시들해져요. 회의가 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 지지 않으니까, 하나님 만나지 못하니까 재미없는 것 당연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재미 얻으려면 당연히 십자가 져야 됩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 했습니다. 주님 따르는 길은 십자가 길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부활의 기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교회 직분을 받는 것이 왜 축복이냐? 그것은 직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맡는 것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억지로라도 이 직분 감당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누가 나를 위해서 일을 하면 여러분 가만히 있겠어요? 못된 사람이라고 감사하게 되어 있어요.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갚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수만 배로 갚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 후의 부활, 이것은 원칙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은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주신 말씀인데요. 부활에 대해서는 15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고린도전서가 16장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16장 마지막 장은 사도바울이 앞으로 자기의 계획에 대해서 말하고 인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린도교회에 준 편지의 결론은 15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이라는 얘기를 하고 이 글을 마쳤다 하는 것은 뭘 상상해볼 수가 있는가 하면 그 앞에 십자가 했을 거다 하는 것을 추측해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보시면 고린도전서를 분명하게 보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는 것처럼 고린도전서에 보면 그렇습니다. 이 고린도전서 1장을 펴면 사도바울이 인사와 함께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해요. 그게 뭐냐면 `내가 너희들 소식을 들었는데 너희들 보니까, 너희들 가운데 게바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바울파, 그리스도파 이렇게 나누어 가지고 교인들이 서로 분쟁을 일으킨다는데 내 마음이 속상하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을 세례가 아니고 복음이다.`
세례라고 하는 것은 결혼식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하는 사람이 결혼식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결혼해서 잘 못살면은 결혼식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세례식을 전한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사람되는 예식을 거행한 것이 아니고, 복음 전했다`
그러면서 1장 후반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그러면서 2장에 가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해서 얘기하고 `우리는 다 그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가 다 동역자다` 그래서 3장에 유명한 말하잖아요.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너희들이 누구파, 누구파 그러면서 누구 밑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거 아니다. 너희들이 내 편 되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아볼로편 되었다고 좋아할 것도 못되고, 베드로파 되었다고 너희들의 신앙이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서로 누가 높으냐를 다투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동역하는 자다.`
고린도전서 4장에 가니까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열심히 충성해라 그러면서 5장부터 고린도교회의 문제점을 제시를 하는데, 그 문제점은 이것입니다. `음행하지 말라. 법정에 가서 소송하지 말라. 문제가 생길 때에 세상 법정에서 시시비비 가리지 말아라`
그리고 다시 한번 결혼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가 8장에 가면 `너희 지식적인 교만하지 말고 회개해라` 무슨 얘기냐면 이들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는 천국 분명히 간다. 천국 가는 것은 예수 믿고 가는 거지, 내가 무슨 일 해서 가는 게 아니다.` 그런 확신들이 있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런 확신 속에서 그들이 어떤 일을 행했는가 하면 우리로 말하면 고사 지낸 떡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이들은 천국에 대한 확신이 분명히 있으니까 고사떡을 먹었단 말이죠. 그런데 교회 안에 보게 되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뭐라 그러냐면 `이거 귀신에게 바쳤던 거니까 이거 먹으면 내가 귀신에게 옮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랬을 때에 이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야, 난 구원의 확신이 있어. 예수 믿으면 천당 가는 거야. 야, 이거 믿음도 제대로 안되고 구원의 확신도 없고` 그러면서 책망을 해요.
그러니까 마음에 상처를 받는 거지요. 그래서 이 교회에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처받아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얘기하는 거지요. `너희들 지식이 그렇게 구원에 확신이 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9장에 보면 "그 자유함을 너 자신을 위해 쓰지 말고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해 써라"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 쓸 때에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뭐냐? 네가 그거 안먹는다고 죽느냐? 그러니까 믿음이 약한 자 때문에 너는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해서 그거 먹지 말아라. 자유를 그들을 위해서 양보하는 것으로 사용해라.` 이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또 10장에 가서 그렇게 믿음에 확신이 있다고 하면서 점보러 다니고 무당집에 가는 것처럼 이들이 또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상 숭배하지 말아라` 그러면서 11장에 가서 `예수님이 우리 위해 하신 일이 무어냐? 몸을 찢어서 우리에게 주지 않았느냐?` 성찬식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지요. "이것을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내 피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주님이 우리에게 이것을 주셔서 우리가 은사를 받았는데, 그 은사 가운데는 이런 은사, 저런 은사가 있다. 그런데 그 은사 가운데 최고의 은사가 뭐냐? 그것은 사랑하는 거다.` 사랑해라 말이죠. 사랑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14장에 가서 `너희들이 은사를 사용하되 순서대로 잘 사용하면서 질서 있게 사용해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하나님이 역사하는데, 그 역사가 뭐냐? 부활이다.` 부활의 역사가 있다는 거지요. 그것이 15장에 나오는 거지요.
그러면서 `너희들 가운데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가 있지만은 이것은 내가 역사적으로 분명히 본 것이고 내가 경험한 것이고 이건 이렇다` 그러면서 마지막 결론을 오늘 우리에게 주고 있는 거란 말이죠. 그래서 마지막 결론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거란 말이죠.
여러분 고린도 교회의 큰 문제는 뭡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어요. 성령의 은사도 받았어요. 그러나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또 성령의 은사 받은 것, 이것으로 신앙의 목표가 딱 결정이 나고 말았어요. 그 이상의 것은 안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활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거죠.
여러분 음행을 한다, 첩을 둔다 말이죠, 돈으로 여자를 사는 것, 이건 부자들만 하는 것이란 말이죠. 쉽게 말하면 돈 자랑하는 거예요. 이게 축복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소송, 여러분 법정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립니다. 물론 정의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돈 있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권력 자랑하는 거죠. 힘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죠.
또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식입니다. 명예죠.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명예입니다. 그러니까 돈과 권력과 명예를 자랑하는 사람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에요. 구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다 자기를 위해 쓰는 거예요. 이것을 가지고 남을 위해 쓰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은혜를 가지고 정말 남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였단 말이죠.
여러분, 간디 아시죠? 인도의 간디. 이 간디가 예수님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의 정신, 십자가의 정신,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삶을 본 받을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교회는 가지 않았어요. 전도를 했거든요. 그래서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백인들의 교회였습니다. 백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인도에 와서 복음을 증거한 사람들입니다. 복음 전한 사람들이에요. 예수 믿으라고. 그런데 그 열심인 그 교회 갔거든요. 그랬더니 그 문 앞에서 못들어오게 했어요. 왜? 유색인종이 어떻게 백인교회에 오느냐?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간디가 교회를 안나갔어요. 그래서 그는 늘 얘기했어요. "나는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
여러분 왜 그렇습니까? 이게 고린도교회 형편이거든요. 구원의 확신은 있는데요,. 이들이 기껏하는 일은 뭡니까? 권력 자랑하고, 돈 자랑하고, 자기 명예 자랑하고, 이것이 자기 신앙생활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이라고 얘기한 거예요.
사도바울은 너무나 안타까워서 이 교회를 향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라는 거죠. `주님이 우리에게 몸을 나누어 주신 것처럼 이 희생을 해라. 그래야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은혜를 경험하고 싶으면 십자가 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은혜가 뭡니까? 여러분 성경 보십시다. 58절 말씀 그 위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부활의 승리를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건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내 형제들아 형제들아 건실하면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의 은혜. 딱 하나입니다. 뭐냐하면 주의 일을 힘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어요? "부활의 은혜는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이다."
여러분, 주의 일이 뭡니까? 교회에 와서 하는 일이 주의 일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편협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이 세상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머리카락 하나까지 세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의 현장 구석구석 어느 것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일이란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게 맡겨 주신 일이라 믿으면 그것이 주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게 하나님이 맡겨 주셨다. 믿으면 그 때부터 나는 주의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섬기는 자가 되구요, 나는 그의 돕는 배필이 되야 합니다. 이것은 주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왜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분쟁이 생기는 겁니다.
그것이 고린도교회입니다. 분쟁이 생기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일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일을 합니다. 사장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이 먼저 하나님이 내게 이 자리 주셨다 하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왜 분쟁이 생깁니까?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장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일을 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이 사업을 내게 주셨고, 하나님이 저 일하는 사람을 내게 보내셨다. 그러면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분쟁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은 있으면서 이것이 주의 일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 일 하다가도 분쟁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맡겨준 일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목사님이 맡겼고, 누가 맡겼다. 여러분, 그러면 안됩니다. 분쟁이 생기고 시험에 드는 단 하나의 이유는 뭡니까? 주님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더 나아가서 부활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십자가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십자가만 믿는 것으로 구원받은 것으로만 만족하는 신앙의 초보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주의 일, 그것은 모든 일들, 하나님 내게 맡겨 주신다고 믿을 때, 주의 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 유명한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의 자서전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이 사람이 피츠버그 시에 도서관과 공예당을 기증하겠다고 시의회에 제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의회가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다시 시의회에다가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이 도시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도서관도 짓고 공예당도 짓고 싶습니다.` 그런데 의회가 또 거절을 했습니다. 두 번이나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피츠버그 시의회가 카네기를 찾아왔습니다. `우리에게 도서관과 공예당을 지어 주시겠다고 했을 때 우리들이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을 다시 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카네기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떠했겠습니까?
`보시오. 내가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가서 얘기를 했는데, 당신들 거절을 했지 않소. 무슨 염치로 여기 와서 나에게 얘기를 하는 거요. 딴 데 가서 얘기해보시오.`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이들이 얘기한 액수의 4배나 되는 돈을 주어서 그 일을 하게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그의 스승이고 영국의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카네기, 자네는 자존심도 없나? 나 같으면 절대로 그런 짓 안하네. 피츠버그 시는 그런 자격이 없어. 자네가 두 번이나 얘기했을 때, 거절 했던 것 아닌가.`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에 대해서 카네기가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처음 기부를 자청했을 때 시민들에게 감사를 받기 위해서라면 아마 저도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두 번째 공예당을 짓겠다고 제의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명예라든가 기념 따위는 필요 없고 오직 피츠버그 시민을 위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 속에서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숭고한 무엇을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 우리, 교회와 나, 주의 종과 나 사이에 분쟁이 생기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내가 십자가 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십자가 지겠다고 생각하면 분쟁이 생길 이유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안지니까 그래요. 예수를 믿었으면서도 신앙생활이 성장하고 성숙해야 되는데, 성숙하지 않으니까 언제나 믿음의 초보에 남아있단 말입니다.
구원받은 것만 감사하고, 천국 가는 것만 감사하고, 하나님 자녀 된 것만 감사하고 그것 이상의 어떤 발전이 없어요. 예수를 10년, 20년, 30년 믿어도 마음 속에는 명예와 돈과 권력만 자랑하고 이것이 축복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단 말입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 생각 안해요. 그러니까 재미가 없어요. 자그마한 일이 일어나면 넘어지고 쓰러지고 그리고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 카네기의 얘기 속에서도 우리에게 주는 바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주신 바 은혜에 감사해서 하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지신 대속의 은혜의 감사를 알고 이를 위해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 부활의 은혜를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주의 일로 믿고 충성과 헌신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8절 말씀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건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항상 해야 합니다. 건실하며 흔들지 말고 변함없어야 합니다.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여러분 지혜를 어디다가 쓰시겠습니까? 주님의 일을 위해 지혜를 내놓고 그냥 하던 되던 하지 말고 좀더 잘해보려고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 남편에게 더 잘하고 저 부인에게 더 잘하고 부모에게 더 잘하고 자식에게 더 잘하고 직장에 더 잘하고 어떻게 하면 이것이 주님의 일인지 알고 더 잘해야 되요.
오늘 공무원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복지부동이란 말입니다. 시간 때우기란 말이에요. 이러면요, 주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남들이 다 복지부동해도 나는 더 힘써야 해요. 기준이 뭡니까? 없습니다. 더 힘써야 합니다. 주님처럼. 내 몸 바쳐서 그렇게 희생하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너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이라" 여러분, 수고를 해야 해요. 땀을 흘려야 됩니다. 노동해야 됩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 항상 힘쓰고 내 노력, 지혜가더욱 많아지고, 쉽게 하지 말고 땀 흘려서, 우리가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헛되지 않게 하시는 놀라운 부활의 은혜로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얘기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스위스하고 독일은 나라가 붙어 있으니까 국경이 있잖아요. 이 국경에 한 할아버지가 날마다 오토바이에 자갈을 싣고 이리 왔다 저리 왔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정보에 의하면 이 할아버지가 밀수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관원이 밀수를 한다는데, 보니까 자잘만 싣고 다니거든요. 하루는 잡아 가지고 `이 자갈 속에 뭔가를 숨겼을 거다` 하고는 그 자갈 들어있는 통을 쏟아 봤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심증은 있는데, 증거가 안나오는 거예요. 밤잠을 못자겠어요. 궁금해서 못견디겠거든요.
그래서 하루는 할아버지를 불러 가지고 얘기했어요. `할아버지, 나 할아버지가 밀수 하는 것 다 압니다. 그런데 뭘 밀수하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내가 밤잠을 못자겠습니다. 그러니 눈감아 줄테니 나에게 살짝 얘기해 주세요. 내가 절대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애기를 했습니다. `보면 모르냐? 나는 자갈을 밀수하는 게 아니고 오토바이를 밀수한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틀 좀 바꾸십시오. 맨날 자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오토바이거든요. 우리가 십자가의 종교라고 하면서 십자가를 믿는 것으로만 끝나지 마십시오. 신앙의 초보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보면 `저 십자가가 나를 구원한 십자가` 이렇게 끝나면 안됩니다. 그것은 한번이면 족합니다. 생일 잔치는 일년에 한번만 하잖아요. 나머지 시간은 생명 가지고 살아가는 데 있는 겁니다. 십자가 볼 때마다 `나 십자가 져야지` 이런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부활의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을 하실 수가 있어요. 오늘 삶의 현장 속에서 정말 부활의 은혜,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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