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아! 2002-05-14 15:59:01 read : 28410
에베소서 6:1-4 // 2002년 05월 12일
1988년 아르메니아에 대지진이 일어나, 수백 명이 죽고 부상당하는, 엄청난 지진이 있었다.
그런데 지진으로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에 갇혀 있던 두 모녀가, 14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스잔나'라는 여인과, 그의 4살 된 딸이 콘크리트 더미 속에 갇힌 지, 14일 만에 구조되어 살아났다.
구조된 다음 전해진 이야기에 의하면, 콘크리트 더미 속에 들어간 '스잔나'와 4살 된 딸,
그리고 딸아이의 고모 이렇게 세 사람이 있었는데, 고모는 며칠 못되어서 숨을 거두고 말았고,
고모가 죽어가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생명을 유지하였다.
어른은 저장된 수분과 단백질로, 10일 이상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한 3일만 수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그대로 실신해 죽고 만다.
스잔나 딸은 4살밖에 안되었기에, 사흘이 되니까 아이가 실신했다.
엄마는 딸을 살려야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물을 뜯어, 아이의 목을 축여 주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에서, 피가 계속 흐르지 않았다. 얼마 후 지혈되었다.
그 다음 날에는 다른 손가락을 물어뜯어, 아이의 목을 축여 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14일을 동안 했다.
구출되었을 때, 그의 손가락은 전부 뜯겨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피를 먹고 생명을 유지했고, 엄마는 자기 피를 흘리면서, 딸의 생명을 구해야 되겠다는 사랑의 열정, 사명감으로 하여금 살아나게 되었다.
이처럼 부모는 자녀들을 사랑하기에, 자식에 대하여 무엇이든 준다. 자기 목숨까지도 준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본능이다. 부모의 사랑은 이성으로 판단된 사랑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그런데 이렇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함은, 미천한 짐승들도 자기 새끼를 사랑한다.
등에 가시가 있는 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수컷이 산란둥지를 만들고, 암컷을 유인하여 알을 낳게 한 후, 부화된 새끼가 둥지를 떠날 때까지 보호한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알을 보호한다.
이윽고 알이 부화되면, 지친 아비 가시고기는 둥지 옆에서 죽어, 새끼 가시고기들의 먹이가 된다.
갓 부화한 펭귄은, 아직 발바닥이 너무 얇아, 얼음 위에서 살기 어렵다.
그래서 어미는 자신의 발등 위에 새끼를 올려놓고, 체온으로 새끼를 보호하고 바람막이를 하다가 죽기도 한다.
펠리컨은 부리에 있는 물고기를 넣고 있다가, 새끼가 머리를 깊숙이 넣으면 먹이를 준다.
이처럼 짐승들도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만, 새끼들은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부모는 새끼들을 먹이고 보호하지만, 어미를 공경하거나 아비를 공경하지 않는다.
원숭이 새끼들은 조금만 커지면, 먹이를 놓고 부모에게 싸우려고 달려든다고 한다.
그래서 동물들은, 아비가 누군 지는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1. 이처럼 동물 세계는 신기하게도, 부모 공경의 도리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원해서, 부모 공경의 도리를 주셨다.
인간은 부모를 공경하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영적으로도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스스로 짐승 같은 인간임을 선포하는 일이요, 또한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답게 멋있게 살기 바란다.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다.
형식과 겉치레의 효도가 아니라, 무엇이 진정한 효도인가 구체적으로 효도를 가르친다.
모세 시대의 이방 사회에서는, 늙은 부모님을 모시지 않고 들에 내다버려서, 짐승의 밥이 되기도 하고, 굶어 죽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나라에도, 고려장(高麗葬)과 같은 나쁜 풍속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성경은, 늙은 부모님을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거나, 불손한 모습만 보여도, 그 자식은 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출21:15, 17절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다.
잠30:17절에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공경하라…, 가르치고 있다.
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1절).
요즘 사회가 산업화 되다보니, 자녀를 낳아도 한둘만 낳는다. 그래서 결혼해 살면서 자기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자기를 낳아서 키워준 부모님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1절에서 바울은 "자녀들에게", 부모님에게 순종할 것을 말하고 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1-4는 하나님을 사랑함이요, 5-10계명은 인간을 사랑함이다.
인간 윤리 중에 가장 중요한 첫째 계명은, 부모를 섬기고, 공경하고, 순종하고, 효도함이다.
그래서 십계명 중 다섯째 계명으로, 인간세상에게 가장 앞서야 할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부모님께 순종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순종할 수 없다.
보이는 부모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제대로 순종할 수 없다.
늙으신 부모님에게, 자녀들이 어떻게 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은 대답은 자녀들이 자신들을 무시하지 않고,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1)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권리를 더 주장하기에, 교육 목표가 순종이 되지 못한다.
권리 회복의 위해 저항과 반역을 일삼았기에, 순종을 이야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같다.
우리 시대의 무질서, 반역과 혼란은, 순종의 모본을 보이지 않아 생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히5:8은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예수님께서 한평생 순종을 배우셨다. 순종이 이렇게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하다.
앤드류 머레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순종이라는 학교에 입학한다"고 했다.
천사장이었던 루시퍼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타락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천사와 사탄의 차이점이 어디에 있는가?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한다. 순종하지 않음이 불효요, 타락이다.
(2) 어디까지 순종을 해야 하는가?
사실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며느리들에게,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순종을 하되,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말씀한다.
부모의 요구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요구일 때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맹종이다.
그래서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였다. 설득하고 이해시켜 나가야 한다.
물론 부모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해서는 안 된다. 순종해야 한다.
(3)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순종하다) = (아래서) + (듣는다)이다. 겸손하게 들음이, 순종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말을 잘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말을 잘 듣기 위해서, 이렇게 하라.
① 이해하고 들어라.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뽕나무에 처량하게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시고,
"너는 돈만 알더니, 결국 처량하게 되었구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옷깃을 만졌을 때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부정한 병에 걸렸느냐?"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 편에서 이해해주셨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위로자가 되셨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지면, 말이 많아진다. 신체적으로 변화된다.
어려서는 기운이 발에 있어, 계속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지만,
젊어지면 그 기운이 가슴으로 온다. 그래서 사랑을 위해 살게 된다.
그러나 늙으면, 그 기운이 더 올라와 입으로 올라 온다. 그래서 말이 많아진다.
이러한 몸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잔소리한다고 짜증낼 수 있다. 먼저 부모를 이해하자.
② 공감하여 들어라.
말하는 사람의 고통과 억울함을, 함께 느끼고 들어야 한다. 김진홍 목사님의 일화다.
50살쯤 되는 사람이,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마주 앉았는데,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제시대 때 만주에서 살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끝없이 길었다. '얼마나 쌓인 한이 많으면 그럴까?'하고, 들어주는 순교 한번 해보자, 언젠가는 끝날 때가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들어주었다고 한다.
5시간 20분이 자나자, 드디어 그 사람이 일어나면서 "오늘은 간단하나마 이것으로 마치겠다"고 하면서 일어났다. 잘 들어 주었더니, 이 사람이 변화되었다.
예수 믿으라고 한마디도 안 했는데, 교회에 왔고, 한번도 빠지지 않는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고개를 끄떡이면서 듣거나, 아멘을 잘 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이 신이 난다.
그러나 옆에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으면, 이야기하는 사람이 김빠진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주면, 부모님은 기뻐하신다. 이것이 효도다.
3. 자녀들아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공경이라는 말은 인데, '가치를 많이 두어야(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녀는 마땅히 부모에게 값을 지불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푼 은혜에 대하여, 자식은 그 값을 내야 한다. 그것이 공경이다.
이 세상에서, 부모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없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는 단어( )는, 부모님과 하나님에게만 쓰여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을 위해서 지금 돈을 써야 한다. 나중에 하겠다는 말은 안 된다.
부모님은 자식이 철들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부모님의 은혜를 물질로 보답한다면, 우리가 얼마만큼의 돈으로 보상해야 할까?
전혀 비현실적인 얘기지만, 만약 수치상으로 환산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어마어마한 금액이 필요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US NEWS & REPORT는 최근호에서, 미국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 1사람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22년 동안 들어가는 비용이 최저 76만1천8백71달러(약 10억5천만 원, 1달러 1390원 기준)에서, 최고 2백78만3천2백68달러(약 38억6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마디로 어머니가 아이를 출산하는 순간부터, 낳고 기르는데 까지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더구나 이 같은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물론 여기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과 정성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
말을 뒤집으면, 부모를 공경하는 법을 배워야,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부모님을 주셨다. 부모님을 섬기는 법을 먼저 배우자.
무디는 "나는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코 불행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식에게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옳다는 말은, 부모를 공경함이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성경은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잘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부모님을 잘 섬기면, 인간들이 가장 원하는,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으로 보상해 주신다고 말씀한다.
성령을 위하여 심은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거두고, 육신을 위해서 심은 사람은, 육신의 열매를 거둔다. 눈물을 흘리며 심은 사람이, 기쁨으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 효도하지 않은 사람은 효도를 받을 수 없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였다. 그리고 후에 자신도 자식들로부터 속는다.
야곱은 아버지를 잠깐 속였지만, 자신은 아들들로부터 13년 동안이나 속아서 살았다.
자녀들에게 어떻게 존경을 받을 수 있나요?
존경은 존중에서 나오기에, 내가 아이들을 존중히 여기는 만큼, 존경이 커진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들을 존중하는데서 시작된다. 아이들을 존중할 줄 아는 부모가 되자.
결론입니다. 잘 되기를 원하십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부모님을 잘 섬기기 바란다.
오래 장수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부모님을 잘 섬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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