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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믿음이 있습니까? 2002-05-23 15:32:54 read : 23414
본문 : 열왕기하 5장 8-14절
0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0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 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과연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생이 달라질 수 있으며,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 우리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가까이하면 복이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가까이하면 해가 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잠언을 보면, 절대로 사귀면 안 되는 사람, 결코 함께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 술을 좋아하는 사람, 음식을 지나치게 탐하는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악한 사람, 반역자, 창기, 도적 등으로 이런 사람들과 사귀거나 함께 하면 많은 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이라는 사람은 그야말로 사람 잘 만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나아만은 아람나라에서 큰공을 세운 유명한 장군입니다. 그는 아람 왕이 아주 귀하게 여기는 일등공신으로 왕이 하사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말못할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피부가 이상해지면서 온몸에 문둥병이 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번쩍번쩍하는 각종 훈장으로 도배한 멋진 장군복을 입고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의 화려한 옷속에 감추어진 몸은 문둥병으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아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을 푹푹 내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 당시 이 집에는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처녀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나아만의 부인을 위해 일하는 계집종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주인 어른이 문둥병으로 근심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된 이 처녀의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을 잡아 노예로 삼은 원수이니 그것 참 잘됐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처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나아만 장군을 살리고 싶어하는 측은한 마음으로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가면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말은 믿음을 가진 처녀의 믿음의 말입니다. 이러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정보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 말은 나아만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희소식”이요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중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약이 있고 의사가 있다는 소식은 그 사람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희소식입니다.
제가 미국의 LA에 갔을 때 나이 많은 목사님 몇몇 분과 하루를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에게는 시집갈 날을 받아둔 딸이 있었는데, 갑자기 온 몸에 피부병이 번지면서 어찌해야 좋을지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고 약도 먹었으나 차도가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이를 위해 금식하며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때 누군가 LA의 플로톤이라는 곳에 가면 유명한 중국 한의사가 있는데 그분을 찾아가면 고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그 의사 분은 딸아이에게 침을 몇 대를 놓더니 약을 처방해주었습니다. 그후 침을 맞고 한약을 먹은 딸아이가 깨끗이 완치되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곧 시집갈 딸아이가 이런 의사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이런 경우 이 소식이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만이 정작 이 처녀의 말을 듣고 엘리사에게 찾아간 것을 보면 이 처녀는 나아만 부부에게 인정을 받아온 신실한 처녀였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어떻게 이 처녀의 말만 믿고 무조건 엘리사를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웬만하면 부하를 먼저 사마리아로 보내 그 계집아이의 말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아도 평소에 이 처녀를 매우 신뢰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더 이상 이 처녀에 대한 말씀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틀림없이 믿음이 좋은 처녀였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늘 믿음의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행동이 다릅니다. 삶이 다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무엇을 보고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까? 우선 말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아하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 은혜 받은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행실을 보고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말하는 것과 행실이 다르면 “말로만 예수 믿는 속이 빈 교인이구나.” 그러나 행실이 바르고 믿을만하면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구나.” 혹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구나.”하는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의 말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나아만은 이 처녀의 말을 듣자마자 믿음이 생겼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롬10:17).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동안 믿음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인줄 믿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옆자리에 앉은 친구를 통해 전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친구를 만난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더구나 이 친구의 형님이 성령충만한지라 이 형님을 따라 부흥회도 참석하고 산 기도도 가고 새벽예배에도 나가고 그러다보니 비록 제 나이가 어렸어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또 제가 어려서 나간 교회의 목사님은 기도를 많이 하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서너 시에 교회에 나와 새벽예배를 인도하시고 아침 8시, 9시까지도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매일 학교가기 전에 기도하려고 교회에 잠시 들리면 그때까지도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목사님의 기도하는 모습만 뵈어도 얼마나 은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교회는 기도하라는 설교가 필요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삶 자체가 설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려서부터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기도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좋은 목사님을 만나는 복도 큰복인 줄 믿습니다.
믿음이 생긴 나아만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엘리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결단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믿음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4: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좬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는 오로지 나아만 한 사람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나아만은 이런 사정을 허락받기 위해 왕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는 친서를 적어주고 열 달란트, 금 육천 개, 의복 열 벌을 하사품으로 내주었습니다. 나아만은 왕의 하사품을 싣고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그는 아직 병고침을 받지 않았는데도 사례품까지 준비해 간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축복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신 은혜를 인하여 당연히 감사해야 하지만, 더 나아가 주실 줄 믿고 주실 은혜와 축복을 미리 감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 자신이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오늘까지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조금만 돌이켜보면 감사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태복음 7:7-11절을 보면 좬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들이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좭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믿음, 찾는 믿음, 문을 두드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디매오처럼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으며 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가 그 옷가에 손을 댐으로써 고침을 받은 것처럼 간절히 찾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 친구를 찾아가 염치불구하고 문을 두드리며 강청하여 기어코 떡 세 덩이를 받아낸 그런 두드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을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기 수하의 장병들과 같이 먹을 양식과 금은 보화를 실은 마차를 이끄는 종들과 함께 먼저 이스라엘 왕에게 찾아가 아람 왕의 친서를 전달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왕은 그 친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친서의 내용은 좬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좭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이 글을 잃고 옷을 찢으며 속이 상하여 좬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 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좭고 외쳤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 것이라고 하며 왕을 위로했습니다.
드디어 나아만이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신이 왔다는 전갈을 받고도 나아보지 않았고 대신 하인을 시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살이 예전처럼 깨끗하게 될 것이라는 말만 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대단히 화가 나서 좬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좭라고 말하며 몹시 화가 나서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려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사가 뛰쳐나와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찾아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는 예를 갖추고 절절매며 인사할 줄 알았는데 어찌 이런 섭섭한 대접을 받으며 더구나 그가 나의 상처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고쳐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는지 단단히 화가 난 것입니다.
이런 나아만의 생각은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는 그의 교만을 꺾기 위해서 이런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자기 체면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기 생각대로 상대방으로부터 대접을 받지 못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화부터 내게 됩니다. 특별히 문둥병을 가지고 있는 나아만으로서는 신하들 앞에서 옷을 훌훌 벗고 물속에 들어가야 하는, 자신의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이 일이야말로 매우 참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신하들 앞에서 옷을 벗어 문둥병이든 몸을 보인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겸손의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려고 하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은 다름 아닌 겸손의 문입니다. 겸손해야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겸손해야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는 나아만을 겸손케 하기 위해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요단강 물에 들어가 일곱 번 씻으라고 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분 나쁘다고, 내 생각과 안 맞는다고, 때로는 부끄럽다고, 하기 싫다고 해서 불순종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행히 화를 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겠다고 큰소리치는 나아만에게 지혜로운 신하 한 사람이 좬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좭 라고 간곡히 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둥병만 낫는다면야 그보다 더 큰일을 하라 해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깨달음이 왔습니다. 드디어 겸손히 순종한 나아만은 요단강 물에 7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의 몸이 어린아이의 피부와 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한번 순종한다고 해서 즉시 큰 축복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아만은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그가 요단강 물에 한번 들어갈 때 변화가 없었습니다. 두 번, 세 번째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네 번, 다섯 번째도. 아마 성경에 기록은 되어있지 않지만 여섯 번째 들어갔을 때에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강물에 몸을 담갔을 때 드디어 큰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큰 믿음이 큰 기적을 일으키고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도 순종하는 동안 축복이 없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깨끗이 고침을 받고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좬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좭 라고 말합니다(왕하 5:17). 이는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믿음으로 살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아만 한 사람으로 인해 이방인 아람나라에도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가진 한 처녀의 믿음의 말이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침받게 하고 더 나아가 아람나라에 믿음의 사람이 생기게 한 것입니다.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는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침받은 사람은 오직 나아만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아만에게는 믿음이 있었지만, 문둥병을 앓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찾는 믿음, 감사하는 믿음,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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