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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구절 : 요 4: 3-26 주님을 만난 여인
2002-05-31 23:37:24   read : 26605



- 설 교 자 : 김형준


찬양대의 귀한 찬양 감사드립니다. 참 아름답게 하시는데 저도 한 곡 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부르고 싶은 노래의 곡목은 바로 ‘만남’입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나 슬픈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흘리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가사를 불러 드리지만 이미 여러분 머릿속에서 곡조를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노사연씨의 「만남」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노래를 듣다보면 첫사랑의 기억, 지금은 달라진 고향의 그 언덕, 어릴 때 뛰놀던 친구들, 그들과의 아름다웠던 사귐 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우리로 하여금 아련한 옛 추억으로 데려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은 만남이라고 그렇게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 이 곳, 이런 모습으로 살도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도 모르게 어릴 적부터 만났던 의미 있는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현재의 내 삶에 많게 적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 그 사람들을 심리학적 용어로는 의미 있는 타자라고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의미 있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대체로 만남이 잘못되었을 때 마음의 상처나 아픔들이 나를 주장하게 되어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되어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잘못된 만남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 인생의 길을 잃어버려 정말 가야 될 곳으로 가지 못하고 원치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죄를 짊어지고 가정의 또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짊어지며 피곤해 하고 힘들어합니다. 어제는 카드빚 때문에 일가족이 자살한 그런 일들도 있습니다만은, 잘못된 만남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왜곡시키고 힘들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어떤 만남을 가져 오셨습니까?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예전에 꿈꾸고 반드시 그렇게 살겠노라 했던 소망하는 자리에 와 있는지, 아니면 내가 원했던 모습은 아닌데 지금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잘못된 만남의 아픔을 갖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만남에 대한 갈증이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인생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안타까움이 수가성 여인 속에 있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편을 무려 다섯 번이나 바꾸어 버렸던 여인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여인을 보고 능력 있는 여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남자가 얼마나 못났으면 여자한테 다섯 번이나 바뀌는 중에 한 남자가 됐을까 얘기하지만, 어쨌든 한명의 남편과 사는 것도 힘든데 다섯 번이나 바꿀 정도면 그녀 인생에 깊은 갈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남을 그토록 사모했던 수가성 여인,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회피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나타나지 않는 중동의 정오 뙤약볕 아래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갑니다. 그 시간에 물을 길으러 간 데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남에 대한 기대들 속에서 오로지 다가왔던 것들은 깊은 상처와 아픔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그녀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편도 그 마음속에는 남편이 아니라고 생각한지 오래였던 외롭고 불행한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로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인생이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만남 중에 어떤 만남이 가장 의미 있는 만남이었습니까? 내 인생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만남, 내 인생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그런 만남,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오랫동안 교회 출석하며 신앙생활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중직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가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신앙의 새로운 변화는 없습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못하고 의미 없이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여인의 방황이 여러분의 삶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만나주시면 그 만남은 오늘 우리의 운명을 바꿀 만남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만남이 오늘 저와 여러분 속에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 여인이 우리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겠습니다. 본문 9절 말씀을 읽어보면 사마리아 여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이요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하나이까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하니라.”

역사적인 배경을 조금 설명하면, BC 721년 혹은 722년에 앗수르라는 나라가 북방이스라엘을 공격해서 완전히 점령해 버립니다. 그리고 북쪽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국으로 흩어버리고 다른 민족들을 이 지역에 이주하게 하면서 혼합 족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때 북쪽에 사는 유대인들은 외국인들과 함께 결혼하면서 혼합 족이 되기 시작했고, 순수한 혈통을 지킨 남방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짐승처럼, 개와 돼지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 가셔서 여인에게 말을 겁니다. 나에게 물 좀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이 의외로 쉬이 받아들입니다. 당신은 남자요 나는 여자요 당신은 유대인이요 나는 사마리아인..... 당신과 나는 아무 상관없는 사이인데 나에게 물 한 그릇 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그런 반문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처음에는 한사람의 남자로, 한사람의 유대인으로, 물 한 그릇 줘야할 의무조차 없는 지나가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셔서 예배는 함께 드리지만 아내의 손에 이끌려 또는 남편의 손에, 자식의 손에 이끌려 앉아 계신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습니다. 예수라는 분은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사람이니 그 분이 하신 좋은 말씀이나 들어보자, 그것도 아니면 와서 자리라도 채워주자 하는 마음으로 앉아 계신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 속에 계신 예수님을 나와는 개인적으로 상관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나갈 때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보던 관점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15절 말씀 보니까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이 전에 어떤 대화가 있었냐 하면, ‘당신이 나에게 무슨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고 반문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물과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네가 오히려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목마르지도 않고 그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물이다’ 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가만히 들어보니 예수님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 믿으면 혹시 우리 아내나 혹은 남편, 우리 가정이 좀 달라질까?’ ‘예수님 믿으면 내 몸에 건강이 회복되어질까?’ ‘예수님 믿으면 사업이 좀 괜찮아질까?’ ‘예수 믿으면 내 인생의 고독 내 인생의 방황 내 인생의 괴로움이 좀 없어질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분인지도 몰라.' 하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면 여러분 정말 잘 앉아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다시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뀝니다.

19절 말씀을 보니 여자가 이야기합니다.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으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달라집니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에게 뭔가 새롭고 진정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선지자라고 여자는 고백하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갑자기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이 찔끔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모르는 감춰진 비밀이었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알려지는 것을 피해서 물 뜨러 오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남편을 데리고 오라는데 여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남편이 없습니다.’ ‘네 말이 맞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 있는 남편도 남편으로 여기지 않으니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야. 이미 네 마음속에서 남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으니 지금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맞구나.’ 이렇듯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알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 나를 안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을 달리 볼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습니다. 여학생 22명에 남자 3명, 제가 교생 반장을 했는데 여학생들이 많으니 서로 나뉘어져 싸우고 말을 안 듣습니다. 제가 철학과에서 공부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손금을 봐주겠다고 여학생들을 다 오라고 했습니다. 손금을 보는데는 3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을 보니까 귀가 얇구먼.’ 그러면 어떤 사람은 고개를 끄떡끄떡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우뚱하지요. ‘안 듣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많구먼.’ 하면서 또 눈치를 봅니다. 그러면 고개를 끄떡끄떡 합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다고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안 듣는다고 생각하다가도 듣고 있다보면 진짜 맞는다고 고개를 끄떡끄떡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무슨 얘기를 하냐하면 ‘당신 손금을 보니깐 죽을 고비를 넘겼구먼.’ 살면서 죽을 고비 한번도 안 넘긴 분 어디 계십니까? 그러면 본인 입으로 고백합니다. ‘맞아요, 맞아요, 4살 때 죽을 고비를 넘겼데요.’ 그러자면 또 주위에 있는 사람이 ‘와’ 하고 놀랩니다. 고개를 들고 ‘아니야 또 있어.’ 말해놓고 눈치를 봅니다. ‘아! 맞아요. 2살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데요.’ 또 본인이 고백합니다. 신뢰감을 얻기 시작합니다. 여자들의 보는 눈빛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자문제로 고민하고 있구먼.’ 졸업을 앞둔 여대생이 남자가 없어도 고민이고 있어도 고민이고 하나 있어도 고민이고 둘이 있어도 고민 아니겠습니까? 그 나이에 남자 고민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잖습니까? 그러면 듣고 있는 상대방의 생각에는 딱 들어맞는 것이지요. 어떻게 그렇게 맞췄냐고 호들갑입니다. 그때는 무게를 잡아야 합니다. ‘인생이 고달파?’ 그러면 곧 저를 보는 눈빛이 교주 쳐다보듯이 됩니다. 금방 헌금이라도 내 놓을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의 과거를 안다고 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은 달라집니다. 여인도 예수님께 드린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고 우리 조상들은 그리심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데 정말 하나님은 어디서 예배 드려야 합니까? 당신은 선지자니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질문에 답을 해주셨습니다. ‘여기서도 아니고 저기서도 아니다. 하나님이 예배하게 될 자를 찾게 되는데 그것은 예배를 드리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시고 그 예배를 받으신다.’ 여자가 ‘맞아요. 맞아 메시아가 오면요 이 모든 것 우리에게 다 이야기 해 주고 우리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 그랬어요.’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결정적인 얘기를 합니다. ‘내가 바로 그로다.’ 내가 바로 네가 찾고 기다리던 메시아다 그렇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여인이 충격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타이틀입니다. 직책입니다. 저는 동안교회 담임목사 김형준입니다. 담임목사라고 하는 것은 타이틀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의미입니다. 김형준은 예수와 같은 이름입니다. ‘내가 바로 그로다.’ 이 여인 앞에 있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알다시피 기름을 부었다는 뜻 아닙니까? 메시아나 그리스도나 같은 뜻입니다. 메시아라는 말은 아람어고 그리스도는 헬라 말입니다. 뜻은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체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직위가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중요한 직분이 바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이들을 세울 땐 기름을 붓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세우고는 자기들을 위해서 지켜주고 보호해 줄 줄 알았더니, 자기들을 핍박하고 착취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오히려 백성들을 괴롭게 하는 왕을 많이 경험했었던 것입니다. 그런 왕을 겪을 때마다 어떤 마음이 생깁니까? 하나님이 보내주신 진정한 왕, 복종하고 싶고 섬기고 싶고 내 마음도 다스려 주실 완전한 왕이 오셨으면 하고 기다리지 않았겠습니까?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거짓된 가르침을 가르쳐 백성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선지자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기다렸던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살고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가 분명하게 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선지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하는 기다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진 죄와 죄책감, 인생의 무거운 짐이 말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내 짐을 대신 짊어지고 나로 하여금 자유롭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참 대제사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랍니다. 대제사장을 경험했는데 백성의 아픔과 고통을 중보하기는 커녕 백성들에게 더 큰 아픔과 고통을 주는 대제사장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한국 백성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말 대통령 같은 대통령을 모시고 싶은 마음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씨 관련 되는 친척이 계시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사실입니다만, 대통령답지 않은 대통령을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모셨지 않습니까? 지금도 마음속에 기대가 별로 되지를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나니까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좋은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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