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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계신 이
2002-06-06 13:42:48   read : 22041

요한복음 1:15-16

2001. 12. 23.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여러분 혹시 '살리에리'라는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그렇게 물어보면 잘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 나오는 궁중작곡자를 아십니까?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등장하기까지 그는 소위 잘 나가던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아주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작곡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6살 난 모차르트가 요세프 황제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청소년에 지나지 않는 그가 자기보다 더 훌륭하게 작곡하는 것을 보고 시기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어찌하여 나에게는 그러한 재능을 주지 않으셨냐고 한탄을 하고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깊은 복수심에 빠집니다. 그리고는 나중에는 모차르트를 죽이는 일을 아마도 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신착란증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고 그 창문에 앉아 빈의 시민들에게 "모차르트, 나를 용서해 다오. 내가 너를 죽였어" 하고 고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이름을 딴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는 천재 모차르트를 마주한 범용(凡庸)한 예술가 살리에리의 질투와 고뇌를 잘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살리에리를 통하여 관객에게 '자기와 같은 인간'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바로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로 자기보다 더 재능이 많은 자, 더 훌륭한 사람, 더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보통 사람들은 대개 시기와 질투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거나 사장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은 달랐습니다. 아마도 그만큼 자주 평가절하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예비자로 소개되면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때 상대적으로 세례 요한은 등안시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역전의 삶을 허락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계신 이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러한 삶이 가져올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그러한 삶을 자발적으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우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위해 역전을 허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약 육 개월 정도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근본이 태초부터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보다 먼저 계시는 분일 줄 알고 자기보다 앞에 세우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시간 관념에서 자신의 우선권을 주장하기보다는 예수님의 우선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역전의 삶을 아는 삶보다 더 어려운 삶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도 우리 한국 사람들처럼 서열의식이 아주 발달된 가치관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한 가치관과 정서 속에서 나중에 온 사람을 먼저 계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의 자존심을 모두 포기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존심은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역전의 기회는 인생에 있어 그 짜릿한 묘미를 가져다 줍니다. 이러한 역전의 묘미를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운동경기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운동경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경기 가운데 가장 멋있는 역전은 미식축구 경기였습니다. 아마도 1992년 제가 공부하던 미국의 덴버 Broncos팀이 휴스턴 Oilers팀과 경기하는데, 전반에 무려 20:0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반에 들어서 반격을 가하더니 20:16까지 따라 붙고 종료 2분을 남겨놓고는 20:23으로 뒤집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기자가 “믿기지 않는 경기였다”라는 말을 여러 번 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먼저 계시는 이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전의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이나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역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역전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도 그러한 가르침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0:1-16에 소개된 ‘포도원의 농군 비유’는 이러한 역전의 기회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에 농군이 필요했던 주인은 아침 일찍 인력시장에 나가 품꾼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래도 인원이 모자라 아침 9시, 12시, 오후 3시에 품꾼을 고용했습니다. 그래도 모자라 오후 5시에 다시 품꾼을 고용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품꾼들에게 각각 한 데나리온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 종일 일했던 사람들이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주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내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데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있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느니라. 여기에서 먼진 역전이 형성됩니다.

역전의 모습을 묘미를 더해 주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뼈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역전을 당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나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 인정하고 사는 삶입니다. 내가 잘난 것 같지만, 그 분이 더 높으신 분임을 인정하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이 세상의 삶에서 역전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이 먼저 계시는 분임을 알고 역전과 양보를 외치는 삶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역전을 기대하는 자는 더 큰 능력을 기대하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계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 자신으로서 모든 것을 알게 하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통용되도록 자신이 순종하는 삶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데, 자기보다 먼저 계신 이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은 바로 더 큰 일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분명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행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줄 알고 그러한 양보와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살 때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을 일으키십니다. 저는 지난 주간 동안 제가 이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느 여성 잡지를 우연히 읽다가 아주 합당한 예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러한 사건도 자그마한 역전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저는 믿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을 먼저 알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의 글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991년 나는 이 기도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1억 명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 나로 비행기를 타고 온 지구를 돌아다니게 하실까?” 실로 궁금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나 지하철에서나 미친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응시하며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저기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후에 저를 통해 복음을 듣게 하소서!” 1997년 한동대학 시절, ‘한몸 프로젝트’ 비전이 내 가슴에 심겨졌습니다.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을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거룩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꿈이었습니다. 놀랍게도 ‘hosanna.net'이라는 도메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꿈을 총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지원해 주셨습니다. 1999년 호산나가 5만 회원 네트워크로 성장해 갈 무렵 나는 ’한몸 프로젝트‘가 바로 오래 전 내가 기도한 ’1억 명 전도‘의 응답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는 실로 경탄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이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예견하신 하나님…. 그 분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Rebekah 창간호 9쪽 발행인, 박형석)



그는 현재 2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hosanna.net을 운영하면서 Rebekah라는 여성 잡지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먼저 계시는 분으로 인정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일을 일으키십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기에 우리로 하여금 그 무한한 가능성을 향하여 뻗어나가도록 인도하십니다. 뻗어나가게 하시되 더욱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 분은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점점 더 잘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전을 당하는 인생은 참으로 쓰디쓴 맛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역전을 당하는 삶은 우리에게 무한한 꿈을 가져다 주고 또한 이를 실현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전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역전을 당하는 삶이 가져다 주는 묘미입니다.

이제 성탄절을 비롯하여 연말을 다시 맞이하게 됩니다. 아직까지 인생에 있어 뭔가 답답하고 막막한 분이 계십니까? 한번 하나님께 역전을 당하는 삶을 살아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께 역전을 당하기를 바라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셋째, 먼저 계시고 모든 것을 먼저 아는 사람, 하나님의 역전을 기다리고 바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무엇인가 더하여 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의 제자들은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합니다. 더하는 삶은 풍요로움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 은혜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은 ‘충만’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분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으며 살아가는 제자들은 바로 충만한 것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정신으로 살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은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항상 기다리는 데에 익숙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심판을 하시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창조하실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의 여기저기에 열거되어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사업처에 잘 걸어놓는 성경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욥기 8:7에 기록된 대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우리의 처음은 힘들고 약하게 시작되었으나 점점 더 큰 성과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을 바탕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며 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삽니다.

이렇게 더해 가는 자세로 살라는 가르침은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미국에 살면서 이와 연관된 좋은 예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잔돈을 계산하는 데 우리 한국의 방법과 전혀 다르게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오천 원짜리 찌개를 먹고 만원을 지불하면 만 원에서 음식값 오천 원을 제하고 오천 원을 거스름돈으로 돌려줍니다. 다시 말하면, 빼는 계산법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예를 들면 만 원을 내면 그 주인은 자기가 오천 원짜리 찌개를 제공했으니 여기에 오천 원을 더하여 손님의 만원에 맞추는 계산법을 합니다. 그래서 계산하는데 좀더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만 원에 대한 동등한 교환이라는 개념 속에서 계산을 합니다. 빼는 계산이 아니라 자기의 것에 더하여 상대편의 것에 맞추는 계산법을 합니다. 이러한 계산법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는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서양에 전해지면서 그러한 개념으로 인해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지키려는 사람들은 구석구석까지 그 가르침을 적용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할 때 진실로 풍성함을 느끼며 살게되고 하나님이 더하여 주시는 은혜를 받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 있어 더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정말 인생이 더 발전되고 풍부해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러한 가르침을 적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의 모습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며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깎아내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깎는 계산법이 적용된 삶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도 깎아져 내려오게 되고 깎는 사람도 좋은 사람으로 존경받지 못합니다. 좀더 나은 사람을 세워주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우리 교회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좀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추켜세우기보다는 험담하고 비난하면서 가로막지는 않는가 생각해 봅시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 될수록 스스로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가는 모습은 서로 세워주고 인정해주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제 대림절 네 번째 주일에 우리는 와 있습니다. 풍선이 한참 부풀다가 막 터지려는 시점에 와 있듯이 이제 기다림의 정점에 우리는 와 있습니다. 이 기다림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 이어져야 하겠지만, 그러한 기쁨을 성탄절을 통해 잠시 맛보게 하십니다. 이제 내일이면 성탄전야를 맞이하고 모레면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면, 실로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가면 갈수록 더하여 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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