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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1부 - 새천년의 방언
2002-06-07 19:07:37   read : 26815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1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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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말씀 : 에스겔서 36:24~28

너희를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데리고 나아오며, 그 여러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다가, 너희의 나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그 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살아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纛?될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 사도행전 2:1~4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였다. 그 때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립ご醮?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복음서의 말씀 : 요한복음 7:37~39

명절의 가장 소중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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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성령강림절이 교회절기상 시작이 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이 성령의 은혜를 풍족하게 받고 서로 혀로서 말을 하는데 그말이 서로 달랐지만 그곳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은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시키는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제일 먼저 나오는 증상이 방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방언이 뭘까 하고 찾아봤더니 이 방언이란 것은 혀로 말한다는 뜻입니다. 말을 우리가 혀로 하지 혀 아닌 걸로 말하지 안잖습니까? 근데 무슨 뜻인가 하면 사도행전에 보면 불길이 솟아오르는데 불길이 처처럼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위에 내려 앉았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불길이 스스로 갈라져서 혀가 되어 사람의 혀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혀로 말하긴 하지만 혀는 도구일 뿐 사람의 혀 속에 들어온 성령의 혀가 말하는 것을 방언이라 이름합니다. 방언은 각각 다른 말로 하더라도 그 말 속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언어의 표현은 달라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 오늘 성림강림절을 맞는 여러분에게 성령의 혀가 여러분의 혀 속에 담뿍 담겨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씀이 성령의 말씀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혀로 하는 이야기, 그 혀는 우리의 혀가 아닙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오늘 에스겔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서로 계약을 맺습니다. 그 계약은 두가지 언어입니다. 하나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 너희는 나의 백성.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 되시는 여호와와 백성되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계약을 맺고 항상 대화를 이행하는 것을 구약성서에서는 영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성령은 이렇게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주인과 백성 사이에 대화의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탑을 쌓기 위해 바벨에 모였습니다. 바벨에 모여 탑을 쌓아놓고 너무나 훌륭한 건축물이기 때문에 기고만장하여 서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신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신 자기들 스스로의 지혜와 권능과 업적을 찬양했습니다. 그순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대화가 끊겼습니다. 영이 왔다갔다 할 수가 없는 단절이 생겼습니다. 똑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였지만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말을 했으나 입속에 담겨져 있던 하나님의 성령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같은 언어를 쓰지만 그 언어 속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서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선민으로 삼고 통치를 하셨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한테 준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된 나와 나의 백성된 그들과의 관계는 항상 대화를 해야 한다. 그 대화의 내용은 공의라 이름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성서 전체를 이런 측면에서 요약하면 무슨 말씀이라 할 수 있을까?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정의, 그것이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입니다. 구약성서 전체를 요약한 말씀을 전 오늘 아모스 5장 24절의 말씀으로 대신 드립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구약시대의 예언자의 임무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런 올바른 관계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사이에서도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 넘쳐야 한다. 그래야 여러분은 축복을 받습니다. 구약시대 방언은 공의라 이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공의가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의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하나의 생활 철학이었고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공의가 아닌 발언은 성령의 발언이 아니기 때문에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상숭배는 뭐냐 하면 우리의 하나님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대화의 단절 상태입니다. 그 속에는 공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공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대땅 백성들이 공의를 하나님의 방언이라 믿고 살아야 했고 그것이 무너질 때 이스라엘 백성은 벌을 받았습니다.

공의가 지배했던 시절, 그 시절에 하나의 잘못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돌과 같은 공의도 아니고 차디찬 공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이 담긴 공의여야 했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목마른 사람들은 다 나한테 나아오라. 내게 와서 물을 실컷 마셔라. 생수가 강물처럼 흐를 것이다.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아모스의 말씀 속에 예수님이 보탭니다. 그 공의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이라 써있는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공의가 되어서 여러분에게 줄테니 나한테 와서 이 물을 마셔라. 나한테 오는 이 물은 공의인 동시에 사랑의 물.

공의는 법을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을 중심으로 법에 따라 살면 공의가 유지됩니다. 사랑은 직접 몸을 던집니다. 희생의 제물이 됩니다. 그래서 공의로 하여금 인간답게 만들어줍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흐물거리는 물과 같겠지만 사랑이 없는 공의도 메마른 목석과 같겠지만 공의와 사랑은 합쳐져야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였습니다. 공의라 이름하는 구약과 사랑이라 이름하는 신약은 오늘 합해서 성령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공의를 말하십시오.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이 두가지가 중요한 사건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혀가 바람처럼 임했을 때 그 사람들 속에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길래 하는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었고 그걸 기점으로 해서 구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이분들은 결심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의 방언은 두가지입니다. 사랑하십시오. 공의를 실천하십시오.

요즘에 뉴스를 봤더니 팔레스틴 땅에서 또다시 사고가 터졌습니다. 아랍에 자살특공대라 이름하는 사람들이 차를 몰고 돌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아랍사람들로 생각하면 엄청난 공의의 실현입니다. 민족주의적 공의의 실현이었습니다. 자기들도 죽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죽고 다쳤습니다.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만 일본의 지하철에서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고려대학교 유학생 하나가 지하철에 떨어진 사람을 건져내기 위해서 뛰어 들어가서 사람을 건져내고 이 휴학생은 죽었습니다. 일본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일본의 젊은이라면 목숨을 건져서 남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집단자살 특공대의 죽음도 있고 자기 목숨을 던져 사람을 살리는 개인의 헌신도 있습니다. 죽음이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무슨 목적을 위해서 죽는가도 중요하고 왜 죽어야 하는지도 중요하고 그리고 죽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도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잡으려고 찾아온 사람에게 칼로 병사의 귀를 잘랐는데 예수의 말씀이 칼을 도로 거두어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예수께서는 아마 다시 쓰시려고 하면 강도같은 사람에게 칼을 주면 건강한 사람에게 상처를 내고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의사에게 칼을 주면 환자를 수술해서 건강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칼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누구한테 칼을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올바르지만 누가 은혜를 받느냐에 따라서 축복도 되고 저주도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모두가 받아야 하지만 성령의 은사를 받는 사람의 그릇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성령의 은사는 악령의 은사도 되고 축복의 영도 됩니다. 은사 자체가, 공의 자체가 사랑 자체 그것 가지고 논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사랑을 실천합니까? 누가 공의를 실현합니까? 예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나한테 와서 마셔라. 내가 바로 여러분과 함께 있을 하나님의 아들, 나를 여러분은 항상 함께 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주시는 방언을 할 수 있는 사람, 할 수 없는 사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방언을 받습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은사가 헛된 은사가 아니라 축복의 은사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 자신이 사랑의 화신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이 공의를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해서 모든 사람에게 비를 내려주고 햇빛도 주시고 불편부당하십니다. 근데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희는 나의 하나님 나는 너의 하나님 너희는 나의 백성 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공의롭게 이어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축복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이세상은 왜 그렇게 혼란스럽습니까? 방언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방언하셔야 됩니다.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사랑의 헌신을 하여라. 이 방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방언을 못합니까? 우리 방언하십시다.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아니고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각자의 방언을 하십시다. 우리 각자 달란트 받았지 않습니까? 각자 지혜도 받았지 않습니까? 지식도 얻었지 않습니까? 방언 그대로 하십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사랑이 깃든 공의와 공의가 실천되는 사랑, 이 두가지가 분열되면 우리의 방언은 악령의 방언이 됩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왜 오늘날의 정치가 이렇게 타락합니까? 방언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헌신적 사랑이 모자라서 그렇습니다. 왜 우리의 도덕은 이렇게 타락하고 있습니까? 방언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새천년의 방언, 그것은 새천년만의 방언이 아닙니다. 옛천년도 새천년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언은 무슨 방언이어야 됩니까? 항상 있어야할 예로부터 하나님나라로 올 때까지의 방언, 그것은 공의와 사랑이라 이름하는 두가지가 우리 가슴 속에서 울려퍼져야 합니다.

성령강림절 내내 공의와 사랑의 방언이 여러분의 언어가 되시길 바랍니다. 가정도 이 방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방언 하십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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