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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토록 사는 영생인
2002-06-13 20:01:26   read : 27209






- 14만 4천인 - 요한계시록 14:1

사도 요한은 영감을 통하여 세세토록 사는 영생인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들이 누구일까?

Ⅰ. 산 소망의 진리, 곧 부활신앙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영감의 사도 요한은 정배지 밧모섬에서 세세토록 살아계신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영광의 주로, 일곱 금촛대 사이에 서 계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계 1:13, 18).
바로 무덤에서 부활하고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신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롬 8:34, 히 7:24~25).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세세토록 살아계신다 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문제입니다. 아니 그것은 관계정도가 아니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보좌우편의 영존은 바로 택함받은 아브라함 자손들의 영생 때문에 있게 된 구속사적 대
사건이었습니다. 예수, 그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20). 그분의 승천과 보좌우편에서의 영존이 바로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부활과 승천과 영존이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산 소망의 진리는 예수 그분이 약속한 그분 자신의 재림과 함께 성취된다고 전 성경이 힘있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이 재림하는 날, 주 안에서 죽었던 자들이 먼저 살아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영화로운 부활의 영체로 구름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마침내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살전 4:16~17).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영적 부활을 체험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들을 때 그 영이 살아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요 5:24~25, 계 20:6). 그리고 예수 재림과 함께 죽을 몸도 다시 살림을 받는 부활이 있습니다(롬 8:11).
그것은 예수 재림과 함께 일어날 생명의 부활입니다(요 5:29).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확실하고 분명한 미래적 산 소망의 진리입니다.
예수께서 공개하신 약속의 진리입니다. 세세토록 사는 14만 4천인의 영생인들은 이 진리를 믿은 자들입니다.

Ⅱ. 주와 함께 있는 14만 4천인의 영생인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14만 4천인은 요한계시록 7장 4절에 나옵니다. 같은 내용으로 요한계시록 7장 9절에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다시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들은 저들의 이마에 우리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계 7:4). 저들의 이마에 아버지와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였습니다(계 14:1). 저들은 사실상 성부의 창조의 인, 성자 예수의 구속의 인, 성령의 소유의 인을 받은 자들입니다(엡 1:13, 4:30). 말하자면 구원인, 영생인을 가리킵니다. 저들은 창세 이후 역사세계 안에서 구원받기로 작정된 하나님의 예정의 총수를 가리킵니다. 은닉된 상징적인 수입니다. 그럼에도 능히 셀 수 없는 충만한 수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충만한 수(롬 11:12),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 그것을 합친 온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롬 11:26)라고 하였습니다.

Ⅲ. 시온산에 있는 영생인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시온산’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는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중에 저들은 열두 진주로 된 열린 성문으로 들어간 자들이라고 하였는데, 예외없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계 21:21~27). 그렇다면 세세토록 사는 영생인들은 세상이 아닌 시온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앞, 곧 천국에서 영생하는 불사의 실존들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 시온산은 어떤 곳인가?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곳은 어떤 곳일까?

1.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바다도 다시 있지 않은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중에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그것들은 낡은 것들이요, 후패한 것들입니다. 보이는 것들이요, 땅에 있는 것들이요, 가벼운 것들이요, 가변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잠깐 동안의 것들이었습니다. 사람의 타락으로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생산하는 곳들이었습니다(창 3:17~19, 고후 4:16~5:2).
2. 사망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 본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죄로 인한 저주였습니다. 죄의 값이었습니다(롬 6:23). 그것은 모든 인류의 원수였습니다(고전 15:26). 그렇다면 천국은 원수가 없는 곳, 저주가 없는 곳이 아닌가!


3. 애통하는 것과 곡하는 것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이 다시 말하기를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애통’과 ‘곡’은 절망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소원이 좌절될 때 빚어지는 온갖 비극들의 국면입니다. 그것은 실로 죄의 결과 인류가 만난 어둠들이었습니다. 탄식의 만가(輓歌)는 저주의 소산입니다.

4. 아픈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는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아픈 것은 육신의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들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마음의 상처들입니다. 아픈 것은 쑤시는 것이요, 불쾌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가능성을 마비시키고, 빼앗아가 버리는 정체였습니다. 아픔의 표현 중에 하나가 ‘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곡과 함께 ‘눈물’입니다. 이제 시온산에 서있는 14만 4천인은 이렇게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픔의 눈물들을 주님의 손에서 씻김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5. 성전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2절에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14만 4천인들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그리심산의 성전이나, 예루살렘의 성전이나, 이 세상 도처에 세워진 성전(예배당)에서 자유하였습니다. 땅에 있던
시온산 예루살렘 성전은 주님을 울려버린 곳이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던지던 위선의 소굴이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던 교권주의자들의 무대였습니다. 유물론적 상업주의로 강도의 굴혈이었습니다. 대체로 지상의 전투적 교회는 모든 경우에 불완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양들이 목말랐고, 불만족하였습니다. 이제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만족한 목장이 되었습니다. 시온산 자체가 성전이었습니다. 완전 무죄, 완전 영화의 세계였습니다.
6.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없어져 버린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자체가 빛의 궁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상하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계 7:16). 이제 햇빛과 달빛 아래서 역사를 광란으로 몰고 가던 이 세상 군주들의 호령과 말굽 소리는 다시 볼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7. 밤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5절에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밤은 절망과 저주의 상징입니다. 밤은 혼돈과 무질서의 상징입니다. 밤은 불신앙과 반역의 상징입니다. 밤은 배신과 배은의 상징입니다. 밤은 불안과 공포의 상징입니다. 이 밤에 원수가 가라지를 뿌렸다고 하였습니다. 이 밤에 모두가 피곤하여 잠을 잤습니다. 이 밤에 저 바벨론 제국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밤에 파수꾼들은 깨어서 고투하였습니다. 깊은 밤! 어두운 밤! 긴 밤! 실로 불안과 공포와 죽음이었습니다.
다시는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도 쓸데없다고 하였습니다(계 22:5). 실로 광명의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쓸데없어져 버린 세계는 시간 개념이 사라져 버린 세계입니다. 바로 시간의 압제에서 해방을 받은 곳이 천국이 아닌가!

8. 저주가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3절에 「다시 저주가 없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저주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 저주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형벌이었습니다. 그 저주의 내용은 영벌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입니다(계 19:20, 20:10). 그러므로 저주는 영원한 괴로움, 영원한 부끄러움, 영원한 절망, 영원한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새 하늘, 새 땅, 곧 시온산에 서 있는 14만 4천인들은 세세토록 살아 있어 주와 더불어 왕노릇 하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미래적 피조물입니다.
아니 영원의 피조물입니다. 본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는 영생하는 피조물로 지음받았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본연(本然)이 아닙니다. 죽음은 인간의 죄로 인한 이변(異變)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전 3:11). 무덤에서 부활하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세세토록 살아계신 분입니다. 바로 그분의 영존이 그분을 믿는 신자들의 영존의 근거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처음이요 마지막이십니다(계 1:17). 그는 산 자입니다. 세세토록 살아계신 분이십니다(계 1:18).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한 미래는 영생입니다. 이 세상이 아닌 새 하늘 새 땅, 곧 시온산에서의 영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나그네요, 거류자요, 외국인이요, 이방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은 현세적 삶은 잠정적이요 유한적입니다. 결코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우리는 장차 올 것을 약속받고 살아가는 미래적 피조물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 존재적 의미와 내용과 목적을 받았습니다. 바로 예수의 나라와 예수의 의를 이루기 위함입니다(마 6:33).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는 복음운동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보냄 받아 살고 있는 복음의 사명인들입니다. 인내심 있고, 용감성 있는 충성심을 나타내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전사(戰士)들로서 말입니다.
칼빈(J. Calvin)은 “인생이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초를 서도록 세워주신 초소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변화된 몸으로 승천하신 구세주의 비전은 우리의 온전한 생명(영생)에 대한 약속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들의 조국이라면 이 땅은 망명의 장소에 불과하지 않은가? 만일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참다운 생명(영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무덤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어떤 것을 잃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좋은 생명을 얻기 위하여 죽음을 바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의 공포는… 온전한 하늘나라의 영광으로 변화되기 위하여 무너지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세토록 사는 영생인들! 저들은 예수께로부터 불사조적 부활생명을 받은 자들이 아닌가! 세세토록 사시는 예수 생명의 인자(因子)를 받은 자들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께로부터 받은 생명의 매력이 아닌가! 세세토록 사는 영생! 이것은 예수께로부터 받은 생명의 매력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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