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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운영 2002-06-18 15:10:37 read : 29789
(요 5 : 16 - 18) 2002.06.09
여러분도 그러하겠지만, 저는 요사히 월드컵 축구경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축구대표팀이 너무나도 잘 하고 있기에 매우 기쁩니다. 우리 축구대표팀을 이렇게 발전한 데에는 정몽준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들에게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 가운데 특히 거스 히딩크 감독을 언급하여야 합니다. 그는 이전 한국의 전통을 깨고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이전 한국대표축구팀이 학연과 지연 등을 고려하며 선수를 선발했다면, 거스 히딩크는 그것들을 초월하여 실력과 발전 가능성을 보고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절대적인 재량권과 자유를 가지고 선수를 선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을 자기의 분석과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었고 결국 놀랄만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축구경기 후 그가 떠나면, 한국축구는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재량과 자유를 가지고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운영해 나가면서 어떤 법칙을 가지고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까? 이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때 이러한 문제에 대답을 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읽은 요한복음 5:16-18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십계명 제4조는 안식일 준수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다른 여섯 날들과는 구별시키라는 말입니다. 엿새 동안 자신의 육신을 위해 일을 한다면, 하루 안식일에는 자신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핍박은 나름대로 타당했습니다. 모세의 율법 그것도 십계명을 율법의 본질로 보고 접근할 때 예수님의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기준에서 안식일을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자의 입장과 하나님의 입장을 좀더 연관시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병자가 원하는 안식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이 고쳐주신 그 병자는 안식 즉 쉼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삼십팔 년 동안 걷지도 못하고 그냥 들것에 누워있었으니 얼마나 그 고통이 심했겠습니까? 이러한 고통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더욱이 안식을 누려야 할 안식일에도 그는 그 병으로 인해 마음의 안식도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무슨 죄로 인해 그 중한 병에 걸렸을까 하고 보는 눈총으로 인해 그 병자는 정신적인 안식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 모로 그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예수님은 그 병자를 치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유대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안식일에 안식을 주시려고 하셨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을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 그것도 십계명보다 더 태고에 전해진 하나님의 가르침을 그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20:8-11절에 그 기반을 두고 해석했다면, 예수님은 그보다 훨씬 앞선 창세기 2:1-4에서 그 본문을 찾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 하나님은 육일 동안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제칠일에는 쉬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냥 손을 놓고 계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지난 엿새 동안 하셨던 창조의 일을 그만두고 쉬셨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창조의 작업이 온전히 이루어졌기에 더 이상 창조할 일이 없었기에 쉬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일까? 이는 하나님이 그동안 창조한 것을 잘 보존시키는 일입니다. 이를 우리는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처럼 손놓고 쉴 이유도 없고 이불을 펴놓고 주무실 이유도 없습니다. 창조하는 일에 비하면 그 창조물을 잘 운영해 나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요 하나님은 쉬고 계신다고까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운영하시려는 원래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좀더 하나님의 원래적인 뜻을 따라 우리의 삶을 운영해 나아가야 합니까?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이끌어 주시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주어진 율법에서 그들의 삶의 운영원칙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에서 안식일의 의미를 찾았다면, 예수님은 타락하기 이전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서 안식일의 의미를 찾으신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한 이후 주어진 율법은 많은 제약을 가하는 것이라 한다면, 타락 이전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 가운데 그 의미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진정한 자유 속에서 안식을 누리는 모습을 예수님은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비본질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을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운영하심을 따라 살 때 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은 다른 현인들도 추구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자도 <논어> 이인편에서 朝聞道(조문도)면 夕死可矣(석사가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즉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좀더 본질적인 것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언급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아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법칙을 가장 합당하게 적용하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하나님이 이제까지 일을 하시니 자신도 안식일에 일을 하신다는 주장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보다 더 근본적인 가르침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유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안식일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판단이 달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이 만드신 원래 사람의 형태로 회복시키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태초부터 계시면서 원래 창조된 사람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면서 원래 창조된 모습으로 회복시키고 안식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당찬 예수님의 모습입니까? 우리도 이렇게 당찬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반열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의 원래 뜻을 알게 되었고 그를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옛날 우리 믿음의 선조들도 그러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인 서머나의 폴리캅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로마 총독의 회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분은 지난 86년 동안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분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총독의 제의를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신앙으로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들의 삶을 운영해 나가고자 하십니다. 우리를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시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단지 이를 잘 모르고 알아채지 못하기에 반역할 때가 많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자연과 연관된 삶도 너무 아름답게 운영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자연도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하여 안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식을 잘 사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는 상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미국 앨라배마 주의 엔터프라이즈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일찍이 목화사업을 위해 생겨난 동네였고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목화 바구미라는 벌레가 들끓기 시작해 작목이 1/3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그 다음 해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목화사업은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지역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역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도 적은 수입 혹은 실업으로 인해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농부들과 주정부 담당자들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작은 도시를 살릴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화로 인해 척박해진 땅에 땅콩과 감자 그리고 옥수수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있다 화학섬유가 나오면서 목화값을 땅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 시는 더 이상 그 피해를 보지 않아도 되었고 오히려 땅콩 산업을 이끄는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목화는 땅의 양분을 다 빨아들여 땅을 척박하게 하는 것이라면, 땅콩은 땅속에 질소를 불어넣어 기름지게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땅을 운영해 나아가야 서로 살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장 부정적일 때 또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경영하시는 가를 찾아 그 대책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마을이 거듭나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목화바구미를 위해 기념비까지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운영법칙을 발견하며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이번 주간에는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광역시장과 도지사 등 광역단체장을 비롯하여 각 구, 시와 군의 기초단체장을 뽑고 또한 시도위원들을 뽑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선거에 임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운영하시는 뜻이 어디에 있는 살펴보면서 선거에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에게 누가 더 유익할 것인지를 보고 판단합니다. 누가 외적인 이력이 화려한가, 누가 권력층에 더 가까워 이 큰 경제적 유익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주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매우 근시안적이요 비본질적인 자세를 가지고 후보를 선택하고 표를 던집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고통의 덧에 들어가는 길이라 여겨집니다.
그리스도인된 우리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신 원칙을 잘 따르려 하는 사람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좀더 세상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할 줄 알고 이를 좀더 하나님의 근본 뜻에 맞추어 해결하려는 후보를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운영하시는데, 이를 우리의 손을 통해 드러내는 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더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는 선거를 치루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로마서 8:28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것이 또한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의 운영법칙입니다. 이는 우리 개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우리 민족 전체에게도 적용되는 하나님의 운영법칙입니다. 이 운영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회복시켜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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