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령충만한 자의 삶 2002-07-29 19:23:18 read : 31839
본문 : 왕상3:4-6,행13:16-23 성령강림주일 02.5.19
오늘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당시 제자들에게 '내가 올라가면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물붓듯이 무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성
령이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임재하셨던 것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왜 우리가 성령감림절을 지키는가 하
면 성령강림이 교회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요, 교회의 지속적인 역사가
성령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이끌고 가시는 분이 성령님이
십니다. 성령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교회 안에 계
셔서 성도와 교회 안팎의 일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인도하시
며 길러주시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며 응답하시며 부흥시키시며 교회
의 사명을 다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령충만은 성도
가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사람을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신비하고 신령한 사람인가? 구름 타고
다니는 사람인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인가? 기사
와 이적이 엘리야처럼 나타나고 모세처럼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사람
이 성령의 사람인가?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
이 성령의 사람인가? 우리는 그렇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좋은 인격을 가지고 내
가정과 내 삶의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 칭찬 받는 사람, 자신의
할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경배하며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복음을 증거하
며 주어진 일에 열심을 다하여 살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 이
런 사람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고, 예쁜 처녀가 옆에 와도 조금도 마음이 움직여
지지 않는 사람을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
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런 특이한 체질을 가진 특이한 유
전자가 흐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왜 성령충만을 원하며 성령을 왜 받아야 하는가? 성령이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나의 인간됨을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던 구약의
위대한 인물 다윗을 통해서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변화되는가를 살펴
보면서 우리도 성령으로 변화받은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윗에 대한 증거가 오늘 읽은 사도행전 13장 22절 하반절에 보
니까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사무엘상 16장 13절에 보
면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
니다. 여호와의 신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신이시고,
예수님의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충만해서 하나님의 마음
에 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로서 인침을 받으면 성령을 받게 되고
성령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이요, 그 다음은 자기 가족입니
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해도, 가족이 좋은 사람이
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
녀나 배우자가 여러분을 '우리 아버지는 이렇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이런 분이십니다. 내 남편은 내 아내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것이 정
확한 평가입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그것은 가장 정확한
평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은 다윗은 그의 아들 솔
로몬으로부터 받은 평가가 오늘 읽은 말씀 열왕기상 3장 6절에 기록되
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
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라고 평가했습니다. 아들 솔로몬이 본 아버지 다
윗의 삶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서 성령이 충만한 자의 삶은 어떤 삶
인가? 성령충만 삶을 살 때에 어떤 복을 받게 되는가를 구체적으로 살
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충만 한 사람은 성실합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모든 일과 모든 사람에게 성실했습니다. 사무
엘이 이새의 아들 중의 한 사람을 취하여 왕으로 세우기 위해 기름을
부으러 왔습니다. 그때 다른 형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내가 그 왕위
를 차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름을 부어서 내가 왕으로 선
택될까?" 하면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그것만을 위해서 달려와 기다
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동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기름 부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시간에도 자기 아버
지가 맡겨 둔 양을 치기 위해서 들에 가서 양치는 목동으로서 자기 일
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시편 78편 70절로 72절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
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
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하다
는 것은 다윗처럼 맡겨진 일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계
역사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성실하게 사는 사람
은 다 인정받고, 성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 영향
을 미치고 삽니다.
사마광은 북송의 유명한 학자요, 정치가이다. 하루는 사마광의 제
자인 유안세가 그의 스승인 사마광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문자
수만 자 중에서 제일 중요한 글자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생 동안 살
아가면서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글자를 하나만 골라 주십시
오." "그것은 성(誠)이라는 글자다." "선생님, 성(誠)이란 무엇입니
까?" 사마광은 간결명쾌하게 "불망어(不妄語)"라고 대답했다. 망은 허
망할 망자다. 허망한 말과 허망한 행동, 허망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이
성(誠)입니다. 허망의 반대는 참이요, 진실이요, 정직이다. 우리는 인
생을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책중에서 성실을 가
장 강조한 것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쓴 「중용(中庸)」이라
는 책입니다. 「중용」에 보면 "성실은 사물의 시작이요, 또한 끝이
다. 성실성이 없으면 세상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誠者物之終始 不
誠無物)." 성실은 인간 최강의 힘이요, 최고의 무기요, 최대의 덕입니
다.
그러므로 학생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가정주부는 가정에서, 직장
인은 일터에서, 성도는 교회에서, 또 국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정치인
들은 정치현장에서, 경제인은 경제현장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크든
지 작든지 최선을 다 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아름답고 밝고 깨끗합니다. 개인도 잘 되고, 그
사회가 다 잘 될 수 있고, 국가가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이 충만한 사람이 많으면 그 사회는 좋은 사회가 됩니다. 성령이 충만
한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주어
진 일은 충성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비평이나 하고 앉
아 있는, 그런 사람이 많은 교회는 교회가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교회
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할 일이 많고 자신에게 주
어진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는데 성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는 일
에 관심을 둘 수가 없습니다.
잠언서 28장 18절에 보면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
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성실히 행하는 자는 자기 힘으
로 안 되는 것들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되게 하십니다. 성실하게 살
면 하나님이 도우셔서 어려움도 해결해 주시고, 고난중에서도 건져주
셔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둘째, 성령충만한 사람은 공의를 행하며 삽니다.
사무엘상 30장을 보면, 광야에 있는 다윗 공동체 600명에게 큰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다윗이 전쟁에 나간 사이 아말렉이 그들의 처자
와 소유를 탈취해 가고 없었습니다. 문제는 아말렉과 싸우러 갈 때,
200명은 뒤쳐지고, 400명만 그 싸움에 나간 데 있었습니다. 처자와 소
유물을 찾으러 온 400명은 다윗에게 불의한 요구를 합니다. 어떻게 보
면, 인간적으로 볼 때 당연한 요구를 합니다. 사무엘상 30장 22절 말
씀입니다. "다윗과 함께 갔던 자 중에 악한 자와 비류들이 다 가로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
이든지 그들에게 주지말고 각 사람의 처자만 주어서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 왔습니다. 거기에 덤으로
더 많이 갖고 왔습니다. 그런데 전투에 나간 400명만 나누고, 200명
은 함께 싸우지 않았으니까 처자만 주어서 빈 몸으로 가게 하자는 것
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악
한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한 자만 나누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성령
의 사람 다윗은 이에 어떻게 대답하는지 아십니까? 사무엘상 30장 23-
24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가로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
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를 듣
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
깃이 일반일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성령의 사람 다윗은 전쟁에서 이긴 것은 전쟁에 참여한 400명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탈취물은 전쟁터에 나
간 사람이나 나가지 않은 사람이나 다 같이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
다. 그러나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다 "아니다. 싸우
러 나간 사람만 분깃을 나누고, 싸우러 가지 않은 사람은 빈 손으로
처자만 데리고 가게 하라"고 그랬던 것입니다.
다윗의 공의로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대장
을 만들반들한 차돌맹이 하나로 넘어뜨린 후에 사울 왕으로부터 곤욕
을 치루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이 다윗의 전과를 높였습
니다. 사울은 딸 미갈까지 주어 다윗을 사위로 삼았지만 백성들의 다
윗에 대한 지지도가 날로 높아가는 정보를 듣고서 불안해서 죽이기로
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19장 1절에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
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따라서 다윗은 생명의 위협
을 느끼며 도망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히려 사울을 죽
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다윗을 추종하여 따라다니
던 부하들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죽일까요
말까요' 묻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삼
상22:4, 26:11절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
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그래서 다윗은 한 번은 사울의 옷 자락을 짤라 나왔고, 한
번은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와 같
은 경우를 두 번이나 당한 사울왕이 다윗의 의로움을 보고 한 말
이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라
고 울면서 외쳤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철저하게 공의를 앞세웁니다. 우리나라 정치
인들을 보면 공의는 없고 오직 자신만이 거룩하다고 아우성입니다. 그
래서 무차별적으로 상대방을 인신공격 합니다. 그리고 약점을 들추어
내는 데만 급급합니다. 이래서는 절대로 나라가 평화롭지 못합니다.
공의는 서로 도우며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즉 사랑하
며 살아야 합니다. 내것, 네것 너무 따지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
리 큰 공이라 해도 내 혼자 독불장군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다 함께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을 받은 자로서 공의롭게 살아가
야 합니다. 사회가 혼란하고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정의와 법이 없고 이기심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은 사랑이 아
닙니다. 공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물론 사랑 없는 공의도
공의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
까? 공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아들이 왜 구속을 당해야 합니
까? 공의롭게 행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정과 불의를 공의로 바로 세우실 분은 누구이십니까? 오직 예수
님뿐이십니다. 오직 예수님, 오직 성령, 오직 말씀이 어둡고 답답한,
부정과 불법이 판치는 이 세상을 맑고 밝고 환하게 공의로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합니다. 이사야 42장 3절로 4절 말씀이십니
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
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
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우리가 성령충만할 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공의롭게 살 수 있습
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4:6절에서 고백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
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
의 신으로 되느니라" 공의롭게 사는 것이 나의 힘으로 안 됩니다. 나
의 능력으로 안 됩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 성령으로만 됩니다. 그러
므로 교회가 가장 공의롭게 살아야 하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
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공의롭게 살지 못하면 세상에서 공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공의를 세우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
다.
셋째, 성령충만한 사람은 정직하게 삽니다.
성령은 정직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누가 잘 됩니까? 정직한 사
람이 잘 됩니다. 욥기서 8장 5-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
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
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우리가 개업하
는 가정에 가지고 가는 선물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네 시작은 미약
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적힌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온전히 다 보아야 합니다. 그것만 보면 안됩니다. 창대케 되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앞에 하신 말씀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지
런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해
야 합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이 돌아보시고 형통케 하신다고 했습니
다. 그 형통함은 나중에 창대케 되는 복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복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다윗처럼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
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 가장 큰 차이점이 뭡니까? 정직성입니다. 사
울은 죄를 지적 받았을 때, 핑계를 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죄를 지
적 받았을 때, 그 즉시 죄를 회개하고 자복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5절에 보니까 사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
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다윗은 뭐라고 말합니까? 다윗은 죄를 지적
받았을 때, 선지자 앞에서 즉시 죄를 고백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
엘하 12장 13절 상반절에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
를 범하였노라"
그렇습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그 죄를 지적 받았을 때 인정했습
니다. 회계했습니다. 핑계대지 않았습니다.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죄
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보다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지 않는 것
을 더 미워하십니다. 인간이 죄를 안 지을 수 있습니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
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 안 지은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
라, 죄를 짓고 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
가운데 전하신 첫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4장 17절 말씀이십니
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말과 행동이 정
직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향해 크게 분노하신 것 중에 하나가 뭐냐? 거
짓과 외식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로 28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
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
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
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
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우리가 정직하려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
령은 정직한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하면 우리는 정직하게 살
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
을 받았으면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우리 안에 정
직한 영이 새롭게 되기를 기도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다
윗은 시편 51편 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97:11 "악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정직한 자가 기쁨으로 삽니다. 부정직하면 태연한
척하지만 불안합니다. 어딘가 모르게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직하
게 살면 기쁨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실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불성실입니
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 힘든 일, 더러운 일을 하
지 않으려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성실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성공은 성실성에 달려있습니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성공적
인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성실하게 살 수 있습니
다.
뿐만 아니라 공의를 행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의가 무너졌습니
다. 공의가 무너지면 의인들이 고통을 받습니다. 진실하게 사는 사람
이 손해를 보게됩니다. 인간공동체가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
의가 필요합니다. 공의가 무너진 사회를 터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
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공의를 행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공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정직이 요구됩니다. 우리 사회에 지금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정직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사람대우 못받고 사는 사회가 되어
서는 안됩니다. 우리 사회가 이상한 것은 정부가 기업들이 잘못하면
어름장을 놓는 것이 있습니다.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
을 무엇을 말합니까? 결국 기업들이 세금을 정확하게 바치지 않고 있
다는 것입니다. 또 보면 근로자들이 파업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의 하나가 '준법투쟁'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일을 할 때 법대
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법대로 하면 기업이 제품생산이 그 만큼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
까? 우리 모두 정직합시다. 그리고 성실하고 공의롭게 삽시다. 이것
이 바로 성령충만 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후손에게 복을 주십니다. 성령충만한 삶
을 살았던 다윗은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오늘 구약의 본문 열왕기상 3장 6절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
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
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그 아들이 누군가 하면 사도
행전에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
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사회
에 공의를 심고, 정직하게 사는 다윗에게 아들 솔로몬만 준 것이 아니
라, 그 씨에서 메시아 예수님이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후손을 위해 무엇을 해 주시렵니까? 여러분이 성령충만
한 삶을 살면 그것이 곧 후손이 복을 받게 됩니다. 이와같은 일이 여
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수정> <삭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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