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2002-10-23 11:13:41 read : 49629
사무엘하 15:7-18 // 2002-10-20
누구든지 탁월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 누구도 남에게 뒤쳐지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1등이 되기를 원합니다. 특히 성도들 사이에도 최고가 되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의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녀를 일류로 키우기 위해 조기교육을 시키고, 막대한 돈을 써가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모두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로펌(law firm)에 다니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서울법대 출신으로 재학 당시 사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1등인지 2등인지로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의 모교에서 초청을 받아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공부를 잘해 그 학교의 전설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고3 때 전국 모의고사에서 한 번도 전국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막상 학력고사를 보던 날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제가 당연히 전국 수석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날 먹은 저녁이 심하게 체하는 바람에 시험장에 가기 전부터 시작해서 시험 치는 내내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토했습니다. 결국 그 때문에 시험을 망쳤습니다." 이러면서 그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시험을 거의 포기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도 억지로 억지로 시험을 간신히 다 마치고 나왔답니다. 그래서 고작 전국 6등밖에 못했어요." 학생들이 이야기를 듣자, 대부분이 뭐라고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그럼 난 뭐야! 나는 죽도록 공부해도 학교 수석도 못하는데 그렇다면 난 뭐야!"
그렇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1등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이 일등은 아니어도 탁월한 인생이 되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어떠한 인생이 탁월한 인생입니까? 저는 오늘 압살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탁월한 인생은 어떠한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바른 비전을 바르게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이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비전이 있습니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압살롬에게도 그런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는 왕이 될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미 첫째 아들 암논은 죽은 상태이고, 둘째 형인 길르압은 성경에서 조차 제대로 거론되지 않는 것을 보아 볼품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은 비록 암논을 죽인 살인범으로 낙인찍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벌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가만히 있어도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압살롬이 왕이 되고자 하는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왕이 되고자 하는 압살롬의 꿈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니면 옳은 것입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왜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압살롬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적 태도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 여러분, 처음 이스라엘에 왕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습니까? 오늘날 대통령을 뽑는 것처럼,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어 왕이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선지자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왕은 자기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심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셔야만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어떻게 합니까? 스스로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외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부르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성도 여러분,
이러한 압살롬의 행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멋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에 있어 목적하는 바가 있으면 무엇 합니까?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내세워가면서 자기 뜻만을 이루고자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코피 떠져가면서 공부해서 법관이 되고, 정치인이 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경제계의 거물이 된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생각과 계획, 의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뿐입니까? 살아온 경험들을 의지하고, 배워온 학문을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고, 때로는 그간 맺어온 인간관계를 내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열쇠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과연 이러한 것들이 비전을 이루는데 필수조건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비전이야말로 바른 비전입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을 보세요. 그들은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왕이 된 것은 아닙니다. 신분상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바뀐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 마음속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이 생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비전이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내가 가진 비전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것-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것-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자 하는 압살롬의 모습을 보세요. 자신의 목적만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형제들마저 모두 죽이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인생의 목적이 있으면 무엇 합니까? 바른 방법으로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까? 진실된 방법으로 이루어야 하지 않습니까? 압살롬은 한 순간도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왕이 되고자 하면서도 단 한번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계획대로만 움직였습니다.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자신을 위해 군사를 모았습니다. 백성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왕이 처리해야 할 송사문제 역시 자신이 처리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미리 사람들을 세워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도록 하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철저한 계획 속에서 움직여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토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데도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계획에 진실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지략으로 세상을 운행케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운행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압살롬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친구도 없고, 아내도 없고, 가족도 없습니다. 어제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됩니다. 왜 이런 모습이 시간이 갈수록 비일비재해지는 것입니까? 오로지 자기만 알기 때문입니다. 극도의 이기주의가 그 원인입니다.
사랑하는 춘천 중앙 교회 성도 여러분,
바른 비전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바른 비전은 내가 처한 삶이 어떠한 곳이든 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증거하는 것, 믿음으로 주위를 평강과 소망이 넘치게 하는 것-그것이 바로 바른 비전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학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때, 바른 방법으로 비전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탁월한 인생입니다.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ohmyNews) 2001년 3월 14일치에는 태백산맥의 저자인 조정래 씨가 인터뷰를 통해 우리 문단의 두 거목인 서정주와 황순원을 아주 적나라하게 평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한 기자가 조정래 씨에게 물었습니다. "작년 황순원과 서정주가 명을 달리했습니다. 서정주와는 사제지간인 걸로 압니다. 소회(所懷, 안타까운 일에 대한 마음 상태)가 없지 않았을 텐데요?" 그러자 조정래씨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서정주는 내 스승이자, 내 아내를 등단시킨 사람이고, 우리 결혼식 주례도 섰다. 하지만, 작가적 삶에서 서정주와 황순원은 대조되는 인물이다. 미당이 친일시를 쓸 때 순원은 붓을 꺾었고, 미당이 전두환을 칭송할 때 순원은 전두환이 폐간시킨 잡지의 복간을 위해 싸웠다. 미당은 이광수처럼 수십 년에 걸쳐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당이 내 아버지라도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의 3대 발명품은 종교, 정치, 문학(언어)이다. 그 중 문학은 인간을 위해 옳은 일만 하라고 발명한 것이지, 불의와 타협하라고 발명한 게 아니다."
성도 여러분,
이 기사의 내용을 들으면서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되십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래,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칭찬받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탁월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일을 해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탁월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칭찬받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칭찬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압살롬이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칭찬이 누구에게서 왔습니까? 사람에게서 왔습니다. 사무엘하 14장 25절로 26절 말씀을 봅니다. "25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년말마다 깎았으며 그 머리털을 깎을 때에 달아 본즉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그렇습니다. 압살롬에 대한 칭찬은 그의 외모에 대한 칭찬이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받는 이 정도의 칭찬이라면 다윗도 그에 못지않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2절에는 다윗의 외모에 대해서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사무엘상 16장 18절에는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고 사무엘상 17장 42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과 압살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단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압살롬은 사람의 칭찬만 받은 반면, 다윗은 사람의 칭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 이유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습니까? 골리앗을 죽이는 다윗의 모습을 떠올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골리앗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무시하는 말을 해도 모두들 그의 외모에 주눅 들어 아무도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무기라고는 물매와 돌맹이 다섯 개만 가지고 나가 싸워 골리앗을 죽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물매와 돌맹이 다섯 개가 그의 진정한 무기였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무기는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이 왜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면서까지 골리앗 앞에 나간 것입니까? 이 땅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알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까? 아직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이 땅 이스라엘을 지켜주고 계시다는 사실을 만백성으로 알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만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자 되심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탁월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것이 없어서 탁월한 인생을 살 수 없다고 좌절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능력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없어도 얼마든지 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일을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힘쓰면 됩니다. 예수님의 삶이 탁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대제사장의 무리를 심판하고 벌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행동 하나 하나를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고아원을 가도, 양로원을 방문해도, 불우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가도 별 것도 아닌 것을 쌓아놓고는 사진을 찍고, 그것을 신문지상에 올려놓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다른 사람이 좀더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6장 3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며" 그렇습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더라도 나 자신도 모르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 나의 모습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선행은 내가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다 드러냅니다. 여러분의 선행을 감추세요. 다른 사람이 알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아름다운 일을 해도,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것이 진정 중요한 것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모습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선포합니다. 뿐만 아니라, 압살롬은 다윗 왕의 모사였던 아히도벨까지 자신의 세력으로 규합했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본문 1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허겁지겁 예루살렘에서 도망갑니다. 얼마나 급히 도망가는지, 그의 후궁들도 내버려 두고 도망갑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다윗의 마음에 "내가 대단한 존재가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일등이 되어야만 영광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비록 일등은 되지 못해도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십니다. 꼭 다섯 달란트를 벌어들여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재능만큼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내가 일등이 되고자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내 위치를 알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주의를 기울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도 해야겠지만, 하나님의 칭찬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3. '묻는 자'가 탁월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세력을 완전히 전멸시키기 위해서 아히도벨과 후새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는 두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들었습니다. 아히도벨은 그 즉시 다윗을 공격할 것을 제안했고, 후새는 다윗 왕이 비록 지금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긴 했어도, 격노한 상태이며, 다윗 왕을 따르고 있는 군사들 역시 용사인터라 잘못하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라며 후일에 공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압살롬은 이 두 가지 계획을 가지고 판단해야만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라면 누구의 계획을 따르겠습니까? 만약, 저라면 아히도벨의 계획을 따를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길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상황은 밀고 나가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압살롬은 후새의 계획을 따르고자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후새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돕고자 예비해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무엘하 15장 31절입니다.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성도 여러분, 다윗이 무엇을 했다구요? 그래요.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계략이 물거품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후새라는 인물을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지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시편 3편 3절과 4절 "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4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바로, 여기에 다윗과 압살롬의 차이가 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중대한 계획을 진행시켜 감에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아히도벨과 후새가 내어놓은 계책을 놓고 "하나님! 어떠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라고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해서 응답해주실 리는 없습니다. 아무튼, 압살롬은 기도하려고 하기보다 판단하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판단하는 인생은 결코 탁월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탁월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매 순간 하나님께 묻는 사람만이 탁월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묻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짤막한 지식을 가지고 우리의 앞날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묻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물어야 합니까?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물음으로써 탁월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다윗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음으로써 실패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온갖 고통가운데서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바로 기도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이 기도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하게 한 것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예수님도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교만한 일이겠습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돈 많다고 의시될 것도 없습니다. 많이 배웠다고 자랑할 것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지식도 소용없고, 돈도 소용없고, 명예도 소용없고, 학식도 소용없고, 권력도 소용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이 세상에 그 어떠한 것도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 내가 가야 할 길을 묻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리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일등이 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만은 아닙니다. 일등이 되지 못해도 바른 비전을 가지고, 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탁월하게 하십니다. 바른 비전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주님도 당신께서 걸어가야 할 길을 물었습니다. 물어야 돼요. 사람에게 내가 가야할 길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물어야 하나님께서 내 길을 지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지도하실 수 있도록 늘 기도하여 탁월한 인생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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