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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통과 고상한 상징성 / 바른 예배 2003-08-01 17:00:12 read : 41113
안동 광덕교회, 아름다운 전통과 고상한 상징성
대교회와 도시교회의 전유물인 듯했던 교회건축 사업에 있어, 절차에 따른 기획과 올바른 설계, 그리고 착실한 시공작업의 개념이 지방의 소규모 교회들에도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교회가 발전해가는 일련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하게 접하지 못한 형태라 조금은 낯설지만, 하회마을로 잘 알려진 안동지역에 아름답고 내실있는 한 지역교회가 세워졌다.
‘소박하면서도 고상한’ 첫인상을 간직한 교회
안동 광덕교회(담임: 서철봉 목사)를 방문하며 느끼는 첫인상은 아주 착실하고 정성스럽게 교회건축의 시작과 끝이 마무리 되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에 결코 비싸게 건설되지 않은 이 건축물은 구석구석에 공간적 풍요와 조형적인 여러 가지 얘깃거리들을 담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결실은 설계자의 노력과 그 소신을 인정하고 따라준 건축주인 광덕교회가 함께 이룬 하모니의 결과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 소박하면서도 힘있고 고상하며, 독특하면서도 새로운 교회당들이 하나둘 세워져 가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갖는 문화적 성숙도를 잘 반영해주는 듯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한국교회들이 인습적 형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비기능적이고 반복적인 교회당 건물을 양산해 내었던가? 이러한 예전의 결과들은 그동안 교회들의 재정적인 궁핍이나 건설공학 기술이 부족한 탓만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교회건축을 기획하고 결정짓는 당사자들의 생각이 폐쇄적이었던 게 더 큰 이유가 아닐까. 그에 비해 광덕교회는 과감히 구태를 벗어버리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에 임하고 있다.
전통적인 주거기능의 현대화 작업
광덕교회를 방문하면 현대적인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내·외부 전체에서 풍기는 인상과 공간적 체험은 어딘가 모르게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건축문화가 흐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 건축물을 방문하여 현 시대와 교회의 기능에 맞게 번안된 전통건축의 가치를 하나둘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전통미의 그 첫 번째 이미지 요소는 바로 지붕의 현대적 형상화이다.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접하게 되는 것이 지붕이다. 처마를 잃어버린 오늘날 수많은 건축물들에 비해, 옛 건축에서 풍기던 지붕의 정취가 이 교회당에서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만약 전통건축 지붕의 모양만을 그대로 차용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나 시골의 자연적 기후조건인 강한 빛을 차단하고 무차별적인 비바람을 걷어내기에 이 처마의 기능은 필수적이기도 하다. 게다가 영국 여왕이 방문하고 갈 정도로 우리나라 전통문화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하회마을을 지척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광덕교회의 전통건축은 매우 설득력 있는 처사라 여겨진다.
도시의 건축은 도시적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산속에 있는 건축은 그 산의 풍경에 맞게 놓여져야 할 것이며, 바닷가의 교회는 그 풍토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지니는 것이 건축의 유기적인 측면일 것이다. 오늘날 건축이 쉽게 간과해버리는 것 중 가장 심각한 면은, 바로 각 지역마다의 아름다운 풍토성을 잃어버리고 뉴욕에서 서울, 아프리카에서 몽고에 이르기까지 천편일률적인 건축적 미학과 재료를 적용시키려 한 데 있다.
전통건축의 묘미와 기능성의 조화
둘째로,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반투명한 건축요소가 이 교회에서는 전반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아마 한옥에서의 생활을 한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문종이를 통해 은은하게 비취는 빛의 고상함을 잘 느껴 보았을 것이다. 건축가(별빛건축 이용우 소장)는 우리의 전통공간에서 체험되는, 빛의 독특한 동양적 특징을 효과적으로 적용시키고 있다. 그것은 유리블록의 사용인데, 유리블록은 마치 문종이와 같이 빛은 투과시키되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다.
밝은 공간을 필요로 하면서도 내부 집회에 방해되는 바깥의 전경은 가려주는 교회당 고유의 기능이 유리블록으로 멋지게 해소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내부의 벽면에서 한옥 문의 이미지가 차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의 그 의도는 더욱 확실해지는 것이다.
어설프게 전통건축의 요소를 차용하는 경우, 자칫 교회당이 절간 형태로 전락해 버리거나 그 형상을 고수하려다가 많은 기능에서 불합리성을 겪어야 하지만 이 교회에서는 그러한 위험요인들을 지혜롭게 잘 극복하고 있다. 외벽에서 기둥 사이를 메운 벽돌벽은 나무기둥 사이에 흙으로 메웠던 한옥의 벽면 모습을 연상케 하고, 내부의 둥근 기둥들 역시 한옥이나 고궁의 그것들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고상하고 새로운 성경적 상징언어들
한옥의 정서를 풍기면서도 이 교회당은 분명히 방주의 형상도 지니고 있다. 교회로 다가서면 두 팔을 벌린 듯하게 모든 이웃을 환대하는 벽면과 높이 솟은 방주 형상은 분명 교회가 지녀야 할 상징적 가치를 건축물의 형상에 표현한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가 시작되고 밤이 되면 교회 내부의 밝은 빛은 주변지역을 밝게 비출 것이다. 이 또한 ‘빛’이라는 성경적 상징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건물 꼭대기에 높이 매달려 있지 않고 땅위에 놓여진 십자가의 존재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감동을 느끼고 찬사를 보낸다. 우리 시대 수많은 교회들이 마치 상업적인 간판처럼, 높이 드높이 붉은 네온의 십자가를 우후죽순처럼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이 교회당에서는 하늘에서 인간으로까지 낮게 임하시고 고난받은 종 예수그리스도, 그가 당한 고난의 십자가, 땅에 끌리는 십자가를 표현한 듯해서 감동적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최근 하늘로 치솟는 고딕성당의 화려한 십자가보다 소박하고 작은 십자가, 땅으로 향한 십자가가 더 의미있고 고상하게 느껴져 여러 교회의 건축사업에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겸손한 상징성보다 찬란한 상업성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필자는 그러한 의도를 감지할 때마다 의아해할 수밖에 없다. 과연 오늘날의 양적이고 질적인 교회의 부흥이 교회당의 화려함과 눈에 잘 띠는 십자가 탑으로부터 비롯될 것인가.
이은석
홍익대와 파리 국립 팡테옹 소르본느(예술사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프랑스 공인 건축사이며, 현재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로 있다. 교회당 건축의 갱신을 위해 연구와 설계를 쉬지 않고 있으며, 저서로 「새로운 교회건축 이렇게 하라」와 다수의 모범적인 교회건축 작품이 있다.
Homepage http://www.koma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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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반석기도원
▶ 강화반석기도원
하나님을 닮은 바다 곁
예배처
00000000000 글·권옥경 / 사진·정화영
바다를 찾는 건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수평선 너머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있고, 그리고 그 앞에 서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장대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는 하나님을 닮았다. 또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다를 찾는다.
이러한 바다와 낙조로 유명한 강화도 화도면 장황리에 강화반석기도원이 있다. 지난 달 17일에 목동반석교회(담임목사 임창일)가 개원한 이곳은 목회자와 평신도에게 예배를 통한 쉼터로 구상되어 현재 매일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언제든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국도 변에 살구색의 현대식 건물로 세워진 기도원은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마니산 자락이 감싸고 있으며 주변에는 논과 밭 그리고 숲으로 싸여 있다. 효율성보다는 산세를 그대로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산 위에 자연스럽게 앉힌 건물은 설계 때부터 산과 하나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에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으면서도 꼼꼼히 들여다보면 세심한 감각이 돋보인다.
기도원은 2층 짜리 2개 동으로 구성되었고 둘이 하나로 엮여있는 것 같은데 크게 앞쪽이 숙소동이고 뒤쪽이 예배동이다. 건물 어디에서든 바다와 산과 숲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예배동에는 1층의 중예배실과 2층의 대예배실이 있다. 마루로 되어 있는 중예배실은 밝은 조명과 흰색 톤의 분위기로 분위기가 경쾌한데 오른편 뒤 모퉁이에 둥근 창문이 있어 바다를 볼 수 있어 좋고 창문 바깥에는 수영장이 내다 보인다.
대예배실은 극장식 계단에 노란색 장의자를 놓아 흰색 벽면과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다. 특히 반원형의 철제로 장식된 천정과 이중 벽을 만들어 놓은 벽면은 마치 미술관처럼 처리되어 있다. 강단은 자연 채광이 비취게 되었고 뒤편의 유리 창 너머로 바다를 엿볼 수 있게 하였다. 대예배실 옆에는 식당이 있는데 중앙에 뷔페식 식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숙소동은 1층에 8인실과 15인실이 있고, 2층에 8인실과 30인실이 있다. 숙소는 각 방마다 에어컨과 옷장, 그리고 개인용 사물함이 있어 사용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방은 2개가 한 쌍으로 붙어 있는데 가운데 샤워실 겸 화장실이 있다. 숙소동 옆에는 유아용과 성인용 2개의 수영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세 곳의 옥상이다.
개인기도실이 따로 없는 이곳에 이 옥상들은 좋은 기도처가 될 수 있다. 대예배실의 옥상은 소그룹이 모여 교제하거나 기도를 할 수 있고, 식당 앞의 옥상정원은 야외무대처럼 되어 있는데 별로 크지는 않지만 음료수를 마시면서 오밀조밀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전망이 좋고 넓은 옥상은 식당 위의 옥상인데,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이곳은 야외 집회도 기도회도 가능한 곳이다.
이곳은 서울에서 승용차로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먼저 352번 국도를 달려 초지대교를 지나면 강화도로 들어선 것이다. 이어 첫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마니산 이정표를 보면서 계속 직진하다가 조단(식당)을 지나 5분쯤 가면 버들횟집(식당)이라는 작은 푯말이 보이는데 여기서 좌회전해서 올라가면 수양관이다. 현재는 수련회 장소로 오픈하지 않고 목회자나 평신도들의 재충전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목회와 신학/예약문의: 032-937-3090, 홈페이지: http://www.kppc.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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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예배 하나님 중심의 성격 회복해야
우리 모두가 다 성경이 바라는 바른 교회를 이루고 섬기기를 꿈꾸고 있다. 어떻게 해야 그런 교회를 바르게 잘 섬겨갈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예배'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는 다 하는 것이기에 예배는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모든 교회가 다 예배하는데, 예배를 통해서 과연 교회의 개혁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가를 의문시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교회를 성경 말씀에 따라서 개혁하려고 할 때,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교회 예배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은 이 예배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잘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예배를 행할 것인가 하는 것에 모든 신경을 다 써야 한다. 교회 개혁은 예배의 개혁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배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들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의 성격을 회복하도록'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구속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영혼의 무릎을 끓어 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예배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상당히 인간 중심적인 특성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 이들이나, 예배를 여흥거리로 바꾸어 그런 예배를 즐기려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예배를 제대로 드린다고 하는 이들도 그 예배를 정성껏 최선을 다해 드려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는가 하는 것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는 우리네 인간 중심적이다. 물론 예배에서는 인간들이, 즉 구속받은 사람이 경배하는 것이므로 인간적 요소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따라서 비인간적 예배와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인 것이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 내가 어떤 은혜를 받는가, 내가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따라서 예배를 통해 변화하는 모습이 강조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역시 부차적인 것이다. 예배하는 일에서는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그 경배를 받으시는가 하는 것이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들의 일차적 관심은 주께서 과연 우리가 하는 경배를 받으시는가 하는 것이다. 주께서 받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 드린다고 해도 그것은 무의미한 일일뿐이다.
따라서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의 경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미가와 같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막 6:6)라고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에서 어떤 이들은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지고한 것을 다 주께 드리면 주께서 받으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고, 또 지금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고(至高)한 것을 정성을 다해 드리면 주께서 가납(加納)해 주시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최선의 것을 마련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이 주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따져 보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이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이 주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善)은 다 떨어진 누더기와 같다고 한다. 여기서 동양 사상과 기독교의 본질적 차이가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동양사상에서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최고의 것도 하나님께서 가납하실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배는 과연 어떻게 하나님께 가납되는 것일까? 성경의 가르침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그 공로만이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적(加納的)이게 하며, 따라서 우리의 경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하게 만든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할 때나 그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에 철저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의 공로에 의존해서 주께 드리는 것이 아니면 우리의 최선의 예배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못 된다. 따라서 우리 예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공로에 의존하여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온전히 성령님께 의존하여 항상 성자의 구속의 적용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님께서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구속과 관련되게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1) 성령님 안에서 (2)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3)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이 경배를 드리게 하시는 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런 경배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합당한 것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에서의 구속 공로에 의해 죄 속함을 받아 새롭게 된 사람들만이 성령님께 의존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하는 경배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높이며, 하나님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이 온 세상에 극명하게 선언되도록 한다.
여기까지 말한 것을 부정의 형태로 바꾸어 진술하면 그것에는 동의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모순에로 나아가지 않도록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한번 그 요점들을 부정의 형태로 제시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존해서 하는 경배가 아닌 것은 예배가 아니다. 둘째로, 성령님 안에서 하는 예배가 아닌 것은 예배가 아니다. 셋째로, 삼위일체 하나님께 하는 예배가 아닌 것은 예배가 아니다. 만일에 이 세 가지 요점을 잘 유념한다면, 우리는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는 배가 폭풍이라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선상에서 벌어졌던 선상 기도회 같은 것은 진정한 의미의 예배도, 기도회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의 다양한 영향 가운데서 여러 종교에 속한 이들이 각기 그들의 방식을 살리면서 함께 경배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그런 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 참으로 보편적이며, 폭 넓은 사상을 가진 것이며, 인도적 사상을 가진 이들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상당히 교조적이어서 서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예배의 본질을 가지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할 것이다.
이 문제와 연관해서 우리야 하나님을 아니까 그렇게 예배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다른 이들이 잘 모르므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은 그냥 허용하고, 심지어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들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면서 그들이 참 하나님과 참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인 십자가에 철저히 의존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앞서 이야기한 예배의 본질을 잘 의식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참으로 예배하는 이들은 아직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이들이 매우 적다는 것과 관련해서 매우 강한 선교적 동기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바르고 참된 예배는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도록, 선교하는 일에 힘쓰도록 만든다.
또한 예배에서 사람이 높임을 받거나 영예를 받도록 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에서는 하나님께서만이 높임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 어떤 사람의 영광과 뛰어남과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바른 예배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기념하는 예배도 있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을 많이 신경 써서 그들의 눈치를 보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예배 중에서 사람에게 박수를 치거나 영예를 돌려 드리는 것도 없어져야 할 일이다. 이렇게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거나 사람의 받는 은혜가 중심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즐기는 것 중심의 예배가 되어서도 안 된다. 예배는 여흥(entertainment)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는 음악회나 연극을 구경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디 우리가 하는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적 예배가 되기를 우리는 꿈꾼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만이 높임을 받으시며, 그 예배와 과정과 결과가 하나님 중심의 사상과 행동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서 수행해 나가는 이들이 되도록 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참으로 예배하는 이들을 주께서 찾으시며, 주께서 만나주시고, 주께서 이끌어 주신다. 참으로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존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들은 예배할 때마다 자신들이 주께 예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대한 벅찬 감격을 느끼게 되고 감사하며 예배할 것이다. 우리가 항상 그런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꿈꾼다.
이승구 교수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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