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1-12/ 의로 핍박받는 자/ 한경직 목사
2014-08-22 23:27:3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위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2)

오늘 이 시간은 여덟 가지 복 가운데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축복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합니다.『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이 말씀도 얼른 들을 때에는 좀 이상하게 생각이 됩니다. 핍박을 받는 것이 무슨 축복이 될 수 있을까? 또는 의를 위하는 이가 온전히 의로운 길로 가서 의를 행하는데 왜 핍박을 받을 것인가. 이와 같은 생각이 우리 머리에 자연히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깊이 생각하면 이 말씀은 진리요 또한 사실이올시다. 의의 길을 걷는 이가 핍박을 세상에서 받습니다. 흑인나라에 백인이 처음으로 가니까 그 모든 사람들이 그 백인을 가리켜서 이것은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흑인나라 사람들은 그때까지 사람이란 얼굴이 새까만 것이 사람이지 얼굴 흰 것도 사람인가. 이렇게 생각하였던 때문인 줄 생각합니다.

까마귀 청에 백로(白鷺)가 갔더니 이것은 새가 아니라고 검은 까마귀들이 내어쫓았다고 하는 옛날 이야기가 있습니다. 왜 의인이 핍박을 받는가. 이 세상이 보통은 검은데 여기 예수 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 축복을 받는 이들은 너무 흰 까닭입니다.

어두움은 빛을 필요로 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참된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이 사는 것은 마치 어두운 방에 등불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운 가운데 있던 여러 가지 추한 것이 자연히 들어 납니다.

따라서 어두운 생활을 하는 이들에 불안감을 자연히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패한 관청에 모든 것을 꼭 바르게 하는, 의를 행하는 공무원 하나가 있으면 다른 여러 부패한 공무원들에게 불안감을 줍니다. 이 사람이 가만히 있어서 무슨 말을 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책망하는 듯한 느낌을 다른 사람들이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을 싫어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비난하고 마지막에는 모함까지 할 수 있습니다. 어찌해서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까? 그 때에 파사 왕조에서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의 생활은 너무 결백하고 의로운 까닭이었습니다.

의를 행함으로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왜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까지 팔려 가게 되었고, 마지막에 억울하게 감옥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까? 어두운 세상에서 요셉이 너무 밝았던 까닭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가인이 아벨을 쳐서 죽였습니까? 성경에 있는 대로 자기의 행실은 악하고 아벨의 하는 모든 일은 의로운 까닭으로 아벨을 싫어하고 시기해서 마지막에 이와 같은 흉악한 범죄까지 행하는데 이르게 된 것입니다.

무슨 까닭으로 예수를 시기하고 여러 가지로 비난하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까지 못박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의 생활은 너무나 의로운 까닭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양의 동서를 물론하고, 때의 고금을 물론하고 언제나 있는 사실입니다.

인간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의복은 변했고 그 사람들의 주택은 변했으나 인간성 본질은 아직도 변치를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죄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오늘날도 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이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패한 학생 중에 의로운 학생이 몇 사람 있으면 이 의로운 학생들은 반드시 핍박들 받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죄악 가운데 사는 많은 군인들 가운데서 오직 결백하게 살고 깨끗이 사는 군인 몇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들도 반드시 다른 많은 군인들에게 핍박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죄악 가운데 묻혀서 있는 많은 노동자들 가운데 온전히 모든 일을 바르게 하고 정직히 하는 결백한 노동자가 몇 사람만 있으면 이 사람들은 반드시 핍박을 받는 법입니다. 사무원 가운데도 그러하고, 상계(商界)에서도 그러하고, 회사에서도 그러하고, 모든 사회에서 다 그러한 것입니다.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 것입니다. 오히려 이와 같이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아무 핍박을 받지 않고 산다고 하면 그 사람은 하늘 나라에 속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속한 증거입니다.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셋이 있었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합니다. 중앙에는 일체의 흠이 없고 일 점의 불결한 점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 좌우에는 흉악한 죄를 범한 살인 강도들이 역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결백한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흉악한 두 죄인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이상스럽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이 사실도 이 현세에서 되는 보통 현상의 한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부패한 세상에서는 이와 같이 의로운 이가 불 의한 이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지자와 추악한 죄인이 같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애국자와 살인강도가 같이 감옥에서 썩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한 사람은 너무 의로 와서 핍박을 받고 다른 사람은 너무 악해서 이 형벌을 받는 것이 현세의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온전히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 때에 욕하고 여러 가지로 거짓으로 말하며 여러 가지로 핍박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꼭 신앙 생활을 바로 하려고 하면 이 세상에서는 아무래도 핍박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미리 우리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일제 사십 년 동안에 우리 민족 가운데 누가 압박을 받지 아니하였으리오 마는 그 가운데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제일 많은 핍박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해방을 당한 이후 북한에 공산당들이 들어오고 또 6․25 때에 공산당들이 남한에 침노할 때에 어느 사람들이 핍박과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리오 마는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제일 많은 핍박과 학살을 당한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스스로 내다보면서 핍박을 받으라고 예언을 하면서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이런 핍박을 받을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당할 때에 이상히 생각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부탁하셨습니다.

왜? 예수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에 있던 선지자들이 이와 같이 핍박을 받았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당할 때에 낙심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겠습니까.

첫째는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옛날 선지자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을 잠깐 생각해 본다면 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들의 왕』이라고 불리 우는 엘리야는 그 당시 바알 우상을 섬기는 일이 성하던 때에 오직 참 신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담대히 싸우다가 아합과 이세벨에게 많은 핍박을 받은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도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사회정의를 부르짖다가 모든 권력층에게 얼마나 많은 비난과 핍박을 받았다는 것도 역시 기억하는 바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생활을 잠깐 회고하여 볼지라도 당시의 음란과 사치와 불의 한 관헌들을 향해서 담대히 그 죄를 책망하고 모든 특권 계급을 향해서 죄를 회개하라고 부르짖다가 여러 가지로 핍박을 당하였으며, 전설에 의하면 마지막에 톱으로 켬을 당해서 순교를 하였다고 하는 말씀도 우리가 기억하는 바입니다.

또는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이의 생활을 회고해 볼 때에도 그는 당시의 죄악을 책망하며 모든 자기의 민족으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눈물로 부르짖었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반발적으로 나가고 그를 핍박해서 혹은 우물 속에 잡아넣기도 하고, 혹은 결박해서 감옥 속에 넣기도 하고, 가진 구박과 모욕과 핍박을 한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선지자들의 생활을 돌아보면 그들은 의를 행하다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죄악 많은 세상에서 옳게 살려고 하다가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어떤 때에는 실직을 하고 여러 가지로 괴로운 일을 당한다고 하면 이것이야말로 작은 의미에서 우리가 선지자의 후예가 된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사실이올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당할 때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된 증거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이들에게 속합니다. 이들은 천국에 속합니다. 이미 천국에 속한 까닭에 이 세상에 살기에는 꼭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핍박을 받아서 십자가에 달려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된 집사 스데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어떻게 처음으로 순교자가 된 사실을 우리는 사도생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님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고보가 악한 왕 해롯의 칼날에 이슬이 된 것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나라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가는 곳마다 구박을 받고 가는 곳마다 핍박을 당한 사실도 우리는 기억하고, 마침내 순교한 모든 전설도 우리는 또한 아는 바입니다.

로마 시에 가면 물론 옛날부터 내려오는 유명한 예배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러 예배당 가운데 제일 유명한 예배당은 둘인 줄 생각합니다. 하나는 베드로 예배당이요, 하나는 성 바울 예배당입니다.

그런데 이 예배당이 둘 다 그들이 순교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성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자리에 성 베드로 예배당이 건축되었고, 성 바울 예배당은 성 바울이 칼에 맞아서 피를 쏟은 그 자리에 성 방울 기념 예배당이 건축된 것을 우리는 오늘날까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많은 참된 그리스도의 종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생명까지 희생하였습니다. 또는 폴리갑이나 익나디오, 쩌스틴을 비롯해서 세기를 통하여 많은 종들, 十五세기의 요한 헛쓰, 우리 한국의 주 기철 목사에 이르기까지 수 없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고 마지막에는 생명까지 바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때 의를 행하다가 핍박을 받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의 계통을 잇는 것임을 생각하여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핍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핍박이 있으면 우리는 기도도 더 하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북한에 계실 때에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까? 六․二五를 당할 때에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까? 성경도 열심(熱心)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주를 더 튼튼히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핍박이 있을 때에는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죄악의 앙금이 가 앉을 사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더 깨끗해집니다. 심령이 더 결백해 집니다. 소망이 더 빛나게 됩니다.

어느 때에 스테반이 하늘나라를 잊었으리 오 마는 스테반이 돌에 맞아서 생명이 떠나려는 그 순간에 그의 신령한 눈은 열려져서 하늘 나라의 영광을 볼 수가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능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소망이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五장 三절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이와 같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예수님께서 한 말씀 더 하시기를 하늘의 상이 있겠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十九장 二十九절에는 주님께서 직접 이런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몸으로 사도 요한 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이런 말씀으로 요한 계시록 二장 十절에 말씀하셨습니다.『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사실 우리 가운데도 일제 시대 또는 해방된 후 공산당 아래에서 욕되고 핍박받고 거짓으로 거슬려서 악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뿐더러 문자 그대로 여기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집을 잃은 이도 있고, 고향을 잃은 이도 있고 부모를 잃은 이도 있고 자매를 잃고 전토를 잃을 뿐더러 혹은 옥에서 가진 악형을 당하고 심지어 총에 맞고 구사 일생으로 살아난 이들도 우리 가운데 여러분 있을 줄 압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리라 이전에 있던 선지자들이 이와 같은 핍박을 받았느니라.』주님께서 이와 같은 의인을 위해서 핍박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이 말씀으로 위로하여 주십니다.

이 모든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이 과거 교회 역사 이천 년을 통해서 모든 참된 성도들이 하여 온 신앙 생활이올시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다가 공회(公會)에 가서 채찍으로 많이 맞고 나옵니다.

그렇지마는 사도행전에 기록한 것을 보면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있어서도 밤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찬송과 함께 큰 이적이 나타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와 같이 권면 했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움을 두려워 말며 소동하지 말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





admin

�댁쟾�쇰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