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1:5-13/ 구하라 주실 것이요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04: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十一․九)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를 마치시매 제자 가운데 하나가 와서 여쭈었습니다.『선생님이여! 요한 이 그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해서 예수 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특별히 우리가 지금 잘 외는 주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감람산 한 곳에는 예수 님께서 이 기도를 가르치신 곳이라고 해서 그 곳에 기념 예배당이 섰고 그 예배당에 들어가 보면 특별히 주님의 기도를 사십 사 개 방언(方言)으로 큰 글자로 벽에 쓴 것을 지금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주님께서 나아와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기도하는 법을 좀 더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육신이 호흡을 통해서 대기(大氣)를 접촉함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우리 영혼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접촉함으로써 그 생명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호흡은 몇 분 동안이라도 그치면 살기 어렵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기도 생활도 그치면 우리의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기도는 신앙 생활의 청우계(晴雨計)라』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청우계를 통해서 기압(氣壓)이 어떠한 것, 기후가 어떠한 것을 헤아리는 것과 같이 어떤 사람의 기도 생활을 우리가 살펴보면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이 어떠한 정도에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천사가 금 대접에 향을 가득히 담아서 하나님 보좌에 올렸는데 그 향은 곧 성도의 기도라』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도의 기도는 향연(香煙)과 같이 보좌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도란 귀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뜻인 줄 압니다. 이 기도야말로 하나님 자녀에게만 특별히 부여된 귀중한 특권인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라고 하면 먼저 간구(懇求)를 생각합니다. 물론 무엇을 청구하는 것이 기도의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간구만이 기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도의 내용을 간략하게 구분해서 말한다고 할 것이면 대략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언(無言)의 기도가 있습니다. 말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는 단순히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앙망(仰望)의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듯이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하듯이 하나님의 그 전능하신 그 권능, 바다보다 더 넓은 그 하나님의 사랑, 햇빛보다 더 밝으신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속성을 우리의 마음 눈이 고요히 바라보는 시간은 역시 기도의 시간입니다. 마치 어린애들이 부모의 무릎에 앉아서 단순히 무엇을 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다만 눈을 들어 부모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큰 행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꽃이 해를 바라보듯이 믿는 자의 영혼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데서 무언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과 같이』위를 향해서 올라간다고 말씀하였습니다.『땅 끝에 있는 사람들아, 나를 앙망하고 구원을 얻으라』 이 말씀도 역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가운데 큰 은혜를 받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올시다. 그 다음에는 우리 기도가운데는 물론 교통(交通)이 있습니다. 성도의 교통도 같은 의미로 씁니다. 곧 하나님과 나 사이에 모든 사정을 아뢰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꼭 청구는 아닙니다. 간구는 아닙니다. 혹 오래 떠났던 아들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돌아와서 그 동안 지난 모든 사정을 고(告)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먼저 감사할 것이 많은 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영적 방면(靈的方面)의 은혜, 그밖에 모든 방면의 받은 바 은혜를 자연히 감사하게 될 줄 압니다. 우리의 사정을 고할 때는 물론 우리의 허물을 가리울 수 없겠습니다. 우리의 죄 지은 것은 다 회개하고 일일이 하나님에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만 아닙니다. 우리를 염려되게 하는 것, 내 마음속에 있는 근심, 무슨 걱정되는 것 있으면 이것도 다 하나님께 아뢰고 다 주님께 맡기는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밖에 우리가 지력적(智力的)으로 일어나는 의심이라고 한다든 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일어나는 문제가 있어서 내가 해결하기 어려울 때에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솔직히 다 아뢰는 그러한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밖에 어떤 사정이든지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고하지 못할 사정이 없습니다.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그것도 고하여야 되겠습니다. 답답한 사정이 있으면 그것도 아뢰어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슬픔이 있으면 그것도 아뢰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사정을 숨김없이 하나님 앞에 아뢰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우리 기도하는 시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입니다. 셋째로 물론 중요한 부분은 기도하는 가운데 간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정을 고한다고 말했지만 사정을 다 고하게 될 때에는 자연히 간구의 목소리가 하나님 앞에 들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게 될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연히 구할 것이 많아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할 때에 무엇이나 다 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면이든지 영적 방면이나 육신 방면이나 물질 방면이나 그밖에 어떤 방면이나 일용할 양식까지 하나님 앞에 다 구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고 또한 구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구 하는데 대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충고하여 주신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구하되 먼저 구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주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먼저『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케 하여 주시며』 『나라에 임하게 하여 주시며』『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구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도록 주 기도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 모든 방면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여기에 대해서도 성경이 한 가지 주의시킨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구하지 마는 사욕(私慾)을 위해서 구하지 말고 세상에 관한 것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충고하여 주었습니다.『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이와 같이 야고보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면이든지 다 구하되 결국 우리 믿는 사람의 최종의 목적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기도여야 되겠습니다. 또한 특별히 기도를 가르칠 때에 우리에게 주의를 준 것은『나만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해서 같이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 기도에 볼 것이면 나라고 하는 말이 없고 다「우리」라는 말로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세요』『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해 주세요』『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세요』나만 위해서 기도할 것이 아니고 내 가족을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원수를 위해서도 간절히 하나님 앞에『그들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주의를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와 같이 간구의 기도를 드릴 때에『모든 기도를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라』로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자격과 공로가 없으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밑에서 십자가의 그늘 아래 나와서 기도하라는 뜻이 있고 둘째로는『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기도하라』고 요한 복음 十五장 七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정신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특별히 기도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어 주시겠다』고 이렇게도 권면 했습니다. 아마「구한다」고 하는 말은「말로 구한다」는 말 같습니다.「찾는다」고 하는 말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 나도 노력하면서 기도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어떻든지 나로 하여금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세요』간절히 기도합니다. 입으로는 기도하지마는 실지로 그와 같이 기도한다고 하면 시험받을 곳을 내가 멀리 하여야 하겠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기도하지마는 육신으로는 시험받을 곳에 놀려갑니다. 시험받을 친구를 찾아갑니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사실 시험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찾는 사람입니까? 내가 내 중심과 입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 할뿐더러 내가 내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 내 노력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문을 두드리라」하는 말은 우리의 기도가 얼른 제 때에 우리 생각에 응답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라. 문이 열리기까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이 계속해서 그냥 견인력(堅忍力)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뜻이 여기 있는 줄 압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면서 어떤 사람이 밤중에 친구가 왔는데 떡이 없습니다. 그 옆집에 가서 그 떡을 좀 달라고 구합니다. 그의 하는 말이『지금 다 문이 닫혔고 아이들이 나하고 자라에 누웠는데 이제 어떻게 일어나 줄 수가 있습니까?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하는 말이『아무래도 내 친구가 왔는데 내게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래도 꼭 좀 주세요』계속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친구를 위해서는 일어나 주지 않았지만은 그이가 그렇게 계속해서 간청을 하니까 일어나서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너희는 구하라 그런고로 너희는 찾으라, 그런고로 너희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어 주실 것이라』하셨습니다. 불의한 법관의 비유로도 예수님께서 이 뜻을 가르쳤습니다. 억울함을 당한 과부가 불의 한 법관에게 가서 신원 해 주기를 구합니다. 이 불의 한 법관은 하나님도 모르고 사람의 인륜(人倫)도 모르는 사람으로 처음에 불쌍한 과부의 서러운 사정도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가서 구할 때에 불의 한 법관도 과부를 신원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불의 한 법관도 과부가 이렇게 계속해서 구할 때에 신원 해 주었거든 하물며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믿는 자들이 계속해서 기도할 때에 응답하여 주시지 않겠느냐?』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큰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다가 얼른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기도하여야 됩니다. 내 비록 그릇된 길로 나간 아들이 얼른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지마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와 같이 계속해서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면서 주님께서 특별히 부탁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이와 같은 기도를 할 때에 무슨 기도든지「꼭 믿음으로 하라」『너희가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구하면 이루어 주시리라』『너희가 무엇이든지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기다리라 그러면 이루어 주시리라』의심치 말고 흔들리는 믿음을 가지지 말고 꼭 믿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영적 방면에서 우리가 볼 때에 이 기도는 문자 그대로 응답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반드시 만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의 자라가 반드시 우리 앞에 열립니다. 우리가 좀 더 은혜 받기 위해서, 좀 더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해서, 좀 더 성신의 충만한 은혜 받기 위해서 간구하고 찾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꼭 우리의 기도를 그대로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방면에 대한 기도도 하나님께서 역시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다른 방면에 대한 기도는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하여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혹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을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혹 있을 수 있습니다. 아들이 모르고서 돌을 달라 하면, 돌을 떡인 줄 알고 달라고 하면 그런다고 아버지가 돌을 그냥 주겠습니까? 아들은 돌을 달래도 아버지는 떡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우리 보기에는 꼭 좋은 것 같지마는 하나님 보기에는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이 잔을 나에게서 할 수만 있으면 물러가게 하여 주소서』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그 잔을 그냥 마시게 하면서 새로운 능력을 주어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만민 구원의 큰 축복을 이루신 것을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몸에 가시와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가시를 없이 해달라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새 번씩 기도하였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 내 은혜는 약한 가운데서 강하여지느니라』이렇게 응답하시면서 그 가시를 통해 사도 바울은 오히려 새로운 은혜를 받아서, 더욱 능력을 받아서 가시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사도 바울로 만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소식을 얻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기쁨을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화평을 얻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믿는 사람의 호흡과 같이 귀중한 것입니다. 성경은『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랬습니다. 무시(無時)고 기도하라고 그랬습니다. 구하라 그랬고 찾으라고 그랬고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두드리라고 그랬습니다. 합심해서 기도하라고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좀 더 배워서 어떤 경우에 있던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저녁에 잘 때에도 기도하며 무엇을 할 때든지 우리가 길을 갈 때에도 우리가 집에서 무엇을 할 때에도 항상 마음으로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면서 시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무엇을 하려고 할 때에 일만 잘하면 되는 줄 압니다. 물론 일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일보다 더 귀한 것은 생각을 하며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생각과 일보다 더 귀한 것은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일하여야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 세상에는 내 힘으로 관리할 수 없는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서 내가 바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서 내가 열심히 노력할 때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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