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6:11-23/ 비전과 순종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30:07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행 二十六․十九)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행한 연설의 한 구절입니다. 그는 二년간이나 이미 가이사랴에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마침 새 총독 베스도가 도임(到任)하자 아그립바 왕이 문안하려 가이사랴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거기 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는 가운데 벌써 유명하여진 죄 없는 죄수 사도 바울의 말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그립바 왕과 로마의 높은 관원들 앞에서 말씀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연설 가운데서 그는 자기가 본래는 유대교의 극렬 종파인 바리새인이어서 예수를 미워하고 기독교를 핍박하였지마는 변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 자기의 오래 전 경험을 다시 한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가 예수를 핍박하고 그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때가 오정쯤 되어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그에게 비치게 될 때에 그는 정신없이 쓰러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에 그는『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네가 지금까지는 나를 핍박하였지마는 장차 너를 이스라엘 사람들과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두운 데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며 사단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나라에 돌아오게 하는 큰 사도로 삼겠다고 하는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그는 하늘의 비전을 본 것입니다. 그 비전을 거스릴 수 없었습니다.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 바울은 이미 노인이었습니다. 파란 많았던 그의 일생, 백절불굴의 십자가의 투사로서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

왜 그가 三十여 년간을 갖은 핍박을 받고 갖은 위험을 무릅쓰며 온 세계를 편력하여 복음을 전파할 수밖에 없었겠는가? 그에게는 하늘에서 보이신 것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이 비전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순종할 수밖에 업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우리가 배워야 할 깊은 진리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모든 위대한 생활, 위대한 사업의 배후에는 비전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이시는 것이 있습니다. 즉 순종의 비전입니다.

아브라함의 생활을 회고해 보겠습니다.

그는 볼래 갈대아 우르에 살았습니다. 우상을 많이 숭배하는 죄악의 도성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은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려 왔습니다.『네 본토, 네 친척, 네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하늘에서 보여주신 것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비전에 순종해서 자기가 살던 땅을 떠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만국 만민의 복의 원천이 된 것입니다.

다음은 모세의 생활을 회고해 보겠습니다.

그는 바로에게 핍박을 받아서 멀리 미디안 광야에 가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시내산 가에서 양을 칩니다. 이상한 가시덤불에 불이 붙습니다. 이상한 불을 구경하느라고 가까이 가서 섰습니다. 그 때에 그는 이상한 음성을 들었습니다.『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丁寧)히 보고 그 부르짖음을 듣고 내가 너를 바로 에게 보내어 내 백성을 구원하여 내리라.』모세도 시내산 기슭에서 이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오직 지팡이 하나를 친구로 해서 애굽으로 담대히 나아간 것입니다. 비전에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주가 되고 만대 만민의 율법의 수여자가 되고 만고에 빛나는 자유의 투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아브라함이나 모세의 생활만이 아닙니다.

모든 예언자들의 생활도 이러했습니다. 이사야가 그리했고, 예레미아가 그러했고, 아모스가 그러했고, 호세아가 그러했고, 모든 사도들의 생활이 그러했고, 모든 위대한 종교가의 생활이 역시 그러한 것입니다.

또 종교 방면만이 아닙니다. 조금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모든 위대한 생활, 모든 위대한 사업, 모든 위대한 예술, 모든 위대한 음악, 모든 위대한 건축, 모든 위대한 과학적 발명이나 발견에 이르기까지 그 배후에는 먼저 비전이 있었고, 다음에는 거기에 대한 순종이 있은 것입니다.

문예부흥시대에 유명한 예술가로서 성화 마돈나를 비롯해서 많은 위대한 성화를 그린 라파엘(Raphael)에게 어떤 친구가 한 번은 그 비결을 물어 보았습니다.『당신은 어떻게 그런 위대한 작품을 내십니까?』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별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다만 어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그 그릴 그림을 내게 보여주십니다. 나는 내 마음 눈으로 보는 그 그림을 캔버스에 옮겨 놓는 것뿐입니다.』먼저 위대한 비전을 보고 거기에 순종할 때에 위대한 작품이 나타난 것입니다.


출애굽기 二十五장 四十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너는 삼가 이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式樣)대로 할지니라.』모세가 장차 하나님께서 임재(臨在)하여 계실 성막을 짓게 되었는데 미리 호렙산상에서 하나님이 성막을 어떻게 지으라는 그 식양을 보여준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 내려와서 성막을 지을 때에 자기 마음대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성막의 비전에 의지해서, 그 양식대로 지은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어떤 건축가라도 먼저 그 마음 눈에 나타나는 비전으로 보기 전에 집을 설계할 수 없고, 이와 같이 설계를 한 후에야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예배당도 먼저 건축가가 그 마음에 비전을 보고 나서 설계를 했습니다. 설계대로 이런 예배당을 지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도 역시 그렇습니다. 위대한 교회를 건설하려고 하면 거기 대해서 먼저 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보여주시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비전대로 교회를 건설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가정을 건설하려고 하더라도 거기 대해서 먼저 하늘로부터의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비전대로 가정을 건설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면 거기 대해서 먼저 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비전대로 나라를 건설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컬럼버스로 하여금 새 대륙을 발견케 하였습니까?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비전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만일 지구가 사실 둥글다고 하면 서편으로 계속 가도 반드시 떠난 곳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동양에 가기 위해서 서편으로 배를 저어 갔습니다. 그 결과 새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비전에 순종할 때에 새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一九一九년 봄에 무엇이 우리 민족대표 三十三인으로 하여금 나라가 다 망한 그 때에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三一운동을 일으키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한국이 비록 망하였지마는 장차는 반드시 독립하리라는 생각에서 독립된 한국의 비전을 미리 보고 독립만세를 부른 것입니다.

여러분, 비전은 꼭 순종의 의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 비번대로 순종치 아니하고 그 비전이 실현되지 아니하면 그것은 한 꿈에 불과합니다. 일장춘몽에 불과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정한 비전을 보여줄 때에는 그것에 순종해야지 거스르면 화가 미칩니다.

요나의 생활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저 니느웨성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내가 이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겠다 네가 가서 내 말을 전파해야.』이렇게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요나는 자기의 편견과 고집에 의해서 그 비전을 거스르고 반대방향으로 갔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바다에 던짐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하늘에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거스르는 사람의 모든 앞길과, 그 말로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역사적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하라고 하는 비전을 보여줍니다. 이 때에 내 욕심, 내 정욕, 내 편견 혹은 단순한 태만으로 말미암아 그런 비전을 거스르면 결국 내가 벌을 받는 것입니다. 발람처럼 짐승 나귀에게 책망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하늘의 비전을 보고 거기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아브라함처럼『네가 네 본토를 떠나고 친척을 떠나고 고향을 떠나서 내가 보여줄 땅으로 하라』『네가 이 죄악 세상을 떠나서 내가 장차 보여줄 나라를 향해서 가라』하는 음성을 들을 때에 그 비전을 보고『예, 제가 따라가겠습니다.』하고 순종해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천로역정(天路歷程)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독도(基督徒)에게 비전을 보여주십니다.『기독도야, 너는 이 장망성을 떠나라. 이 성은 장차 망할 성이다. 너는 장망성의 죄악을 떠나서 죄를 회개하고 새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라.』

그 비전에 순종해서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산에서 보여준 신양대로 네 집을 지으라』고 말씀했습니다.『하늘로부터 보여준 식양대로 새 사람이 되어라. 새로운 집을 지어라』하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새집에 대한 식양은 다 주를 통해서 나타납니다.『이 식양대로 네 인격의 집을 지으라. 생활의 집을 지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비전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신령한 비전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하나님을 숭배하고 이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고 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성경께서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속죄의 구주가 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진실과 사랑과 봉사와 희생의 생활이 어떠하다고 하는 것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부활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승천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하늘의 보좌 우편에 앉은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이 보여주신 비전을 보고 그를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너는 나를 따르라. 갈릴리 바닷가에서만 따를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에서만 따를 것이 아니다. 겟세마네에도 따라오너라. 골고다에도 따라오너라. 그리하면 내가 낙원까지 너와 같이 가리라.』 이 비전을 보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사명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정죄(定罪)를 받으리라.』 이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순종해서 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잠깐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잠깐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전을 거스르지 않고 일생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얼굴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활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교훈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본 주님의 얼굴, 주님의 생활, 주님의 교훈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중에는 종종 성령의 지도로써 영감의 순간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가운데 한때 비전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경험을 가졌습니다. 드로아에 가서 있을 때에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비전을 보았습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가서 빨리 와서 나를 보아달라고 하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 비전을 보고 곧 거기에 순종해서 마게도냐에 갔습니다.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결과 많은 열매를 맺힌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으로나 교회로나 종종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늘의 비전을 볼 줄 알아야 되고 거기 대한 순종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금년(一九六五)은 한국에 신교 선교사가 들어온 지 八十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었습니다.『三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라, 전국을 복음 화하라.』

기독교 한국에 대한 비전을 우리 온 한국 교회에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목사들, 장로들, 권사들, 집사들 그리고 온 교인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기독교 한국의 비전을 분명히 보아야 되겠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이 비전을 보고 거기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이 비전에 대하여 순종하려고 하면 먼저 마땅히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운동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새벽기도회도 좀더 열심(熱心)으로 해야 되겠습니다. 가정기도회 때도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정오에도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동지들끼리 모일 때도 이 운동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 자신 하나 하나가 전도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금년에 다 남녀전도 회에 가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부족합니다. 내 자신이 전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七十인 전도 대에도 가입해야 되겠습니다. 내 자신이 전도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한 걸은 더 나아가서 이 운동을 위해서 시간과 재주와 물질을 힘있는 대로 바쳐야 될 것입니다. 우리 온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하늘의 비전에 대하여 순종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금년이 바로 우리 본 교회 창립 二十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二十주년 되는 해를 맞아서 우리 영락교회에 특별히 새로운 비전을 준 줄 압니다. 그래서 금년을 二十주년 기념 전도의 해로 정했습니다.

과거 二十년 동안에 은혜 받은 것을 가사해서 二十주년기념 사업을 비전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회와 제직회에서 많이 의논하고 금년에는 경로원도 교회에 이전해서 신축하기로 계획했습니다. 모자원도 정릉에 이미 기지를 사고 이전해서 신축하기로 했습니다.

또 학교와 교회가 언제나 같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영락중학교를 밖으로 내보내서 발전시키도록 경영하고 있습니다. 교육관을 지을 수밖에 없는 까닭으로 금년에 건축을 시작하기로 계획했습니다. 교역자를 위해서 사택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영락교회가 이 비전에 순종해서 충성을 다하여야 되겠습니다. 이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재주, 우리의 물질을 바쳐야 우리 영락교회가 이 비전에 다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금년에 감사하게도 새 나라에 대한 비전을 하나님께서 우리 국민에게 주신 줄 압니다. 우리 정부에서 이 해를 일하는 해로 삼은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인 줄 압니다. 또 어제 대통령 교서에 분명히 목표를 정해서 발표했습니다. 금년이야말로 어떻든지 증산을 하고 수출을 힘쓰고 건설을 하자고 했습니다. 三대 목표를 분명히 내건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인 줄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이 언제든지 후진국으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언제든지 남의 수원국으로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자립해서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새 나라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의 새로운 정신이 필요하고 도덕적 중생이 필요합니다.

제가 새해 아침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첫째로 우리는 진실해야 될 것입니다. 진실해야 물건도 바로 만들고 외국에 수출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근면해야 됩니다. 부지런히 일해야 우리도 살고 수출할 것이 남겠습니다.

셋째는 절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소비를 절약해야 되겠습니다. 금주, 단연(斷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사치한 것을 피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국산을 애용하고 저축하는 데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절제 없이는 수출도 건설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일에 협동 협력해서 일할 줄 아는 방법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내가 바라고 기도하기는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떤 곳에 가서 일하든지 이 방면에 솔선 수범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진실, 근면, 절제, 협동에 솔선 수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밀 요리 집에 다니는 무리가 너무 많다고 합니다. 화투니 투전이니 빠찡꼬니 알 굴리기 등의 도박을 하는 무리가 많다고 떠듭니다. 극장에 다니는 무리가 너무 많습니다. 대포 집에 기웃기웃 다니는 무뢰한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새 나라의 비전을 보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이 비전에 순종하려면 이런 퇴폐(頹廢)한 모든 기풍을 일소해버리고 새로운 기풍, 새로운 정신을 이 사회에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대통령 자신을 위시해서 모든 국무위원,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고급 장교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비전에 적응한 생활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비전을 보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 하나 하나로서 또는 국민 하나 하나로서, 이 새해에 나 자신, 내 가정 내 교회, 한국교회 전체, 그리고 우리 국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아야 되겠습니다. 볼 뿐 아니라 그 비전을 순종해서 거스르지 않고 어떤 난관에 있을지라도 실천 실행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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