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9:16-27/ 침묵의 화, 전도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58:17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 九․十六)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는 부득이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하고, 자기는 그 사명을 받은 까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전도에 대한 사도의 심각한 사명감, 책임감을 우리가 이 말씀 가운데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참된 그리스도인이면 다 이와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침묵의 화」라는 문제로 이 성구를 잠시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이 시간 말씀하여 주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1)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침묵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의지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교우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을 보니,『우리 아이가 작년에는 입학시험에 떨어졌는데 금년에는 좋은 학교에 입학이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입학은 되었으나 등록금이 없어 크게 염려하였으나 본 교회 어느 집사 님께서 이 사정을 알고 대신 내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서 이 기쁨을 목사님께 알려야 하겠기에 편지를 합니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도 감사히 생각하여 기쁨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거든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이 큰사랑, 이 큰 은혜를 받고, 이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줄 모르면 우리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침묵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모든 형제에 대한 사랑도 저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생명이 곧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예수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귀한 생명이 물에 빠지는 것을 보도도 그저 지나간다고 하면 그것이 인도이겠습니까? 그게 우리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죄악에 빠져서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주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려 오신 것을 알고도, 우리가 침묵을 지키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 형제를 이웃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엘리사 선지자 때에 사마리아 성이 아름군대에게 포위를 당해서 여러 날을 지내게 될 때에 사마리아 성에 큰 기근이 생겼습니다.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아기를 삶아 먹는 비참한 비정(非情)의 일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사마리아 성밖의 어구에 문둥이 넷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우리가 어떻게 할까?』의논했습니다. 성으로 들어가도 먹을 것이 없으니 굶어 죽겠고 여기 앉아 있어도 굶어 죽겠고 하니, 우리 원수지만 아람군대의 장막에 가보자, 죽이면 죽겠고 혹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주면 살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담대히 그들의 장막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뜻밖에도 아람 군은 먹을 것, 입을 것, 장막까지 다 그냥 두고 달아나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둥이들은 장막 속에 들어가 먹고 마시고 금과 은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또 다른 장막을 뒤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들 중 하나가 하는 말이, 여기서 우리만 이럴 것이 아니라 이 기쁜 소식을 우리 성안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될 것이 아니냐? 우리만 이러다가 나중에 다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이 되겠느냐? 그러니 우리가 어서 성으로 가자고 해서 그들이 사마리아 성에 가서 이 소식을 전했다고 하는 사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기쁜 소식을 알면서도,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으로 들어가는 우리 동포에게 전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랑이겠습니까?『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분명히 화가 있을 것입니다. (3)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우리 믿는 사람으로는 최고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기도를 힘씁니다. 헌금을 드립니다. 찬송을 부릅니다. 주일학교 일도 봅니다. 성가대를 합니다. 여러 가지 구제사업을 합니다. 교육사업을 합니다. 여러 가지를 다 합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제일 큰 의무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 전도는 여러 가지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니고, 교회의 근본적인 일이요, 이 전도를 위해서 다른 사업들을 하는 것입니다. 즉 이 근본적인 목적을 위하여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것을 한다고 하더라도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목적을 우리가 저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4)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제자들입니다. 예수 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내가『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 끝날 까지 항상 계시겠다고 하신 것을 보면, 제자 뒤에 오고 오는 시대의 모근 사람에게 주신 명령이요 약속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님의 최후의 명령이요, 지상의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라 하고, 예수를 따라간다고 하면서도 예수 님의 이 지상명령을 순복 하지 않는다면 무슨 십자군이라고 하겠습니까?『만일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말씀을 우리는 깊이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5) 과거 역대 전도자들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복음을 받게 되었습니까? 나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서 복음을 들었습니까?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서 복음을 들었습니까? 그에게 또 전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二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사도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촛불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 사람이 또 전해 주었습니다. 그 촛불이 나에게까지 왔습니다. 내게 온 것은 나 혼자만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사람에게 그 불을 넘겨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그 불이 내게 와서 꺼지고 맙니다. 이 복음의 빛을 지금까지 나에게 전하여준 역대 성도의 은혜를 우리가 저버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6)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과거, 신앙의 모든 용사들의 희생과 순교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금년이 바로 토마스 목사의 순교 백주년 기념의 해입니다. 그는 첫 신교 선교사로서 一八六五년 평양 대동강에서 한문 성경을 나누어주고, 피를 흘리며 순교하였습니다. 첫 번 선교사가 한국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피를 흘리고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후 일제시대에도, 또 해방 이후 六․二五사변을 계기로 피를 흘린 순교자가 수없이 많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바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안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이들에 대한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 하는 말입니다. (7) 에스겔 三장 十七절 이하를 읽어보면 이와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일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요.』 피 값을 네 손에서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서 그의 제자로 삼으신 것은 바로 우리를 파수꾼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죄악의 길로 가면 멸망을 반드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잘 지켜서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사명을 다 해서 그들에게 경고를 하고 이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듣고 안 듣는 책임은 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을 전파해 주지 않으면 그들의 멸망 받는 것의 피 값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 한 말씀을 우리가 소흘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8)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 생명이 위험합니다. 나의 구원에 위기가 옵니다. 전도 안하고 믿는 것은 마치 촛불을 받아 가지고 말 아래 넣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 촛불을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燈檠) 위에 두어서 모든 사람에게 비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촛불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주지 않고 말 아래 둔다고 하면 그 촛불은 얼마 후에 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고이 땅 속에 묻었다가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한 달란트는 마지막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성지에 가보면 큰 바다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바다입니다. 이 바다는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받습니다. 그 다음에는 요단강을 통해서 그 물을 내보냅니다. 그러니까 갈릴리 바다에는 고기가 많고 사방에 아름다운 꽃이 많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바다 하나는 사해 죽는 바다입니다. 남에게 줄 줄을 모릅니다. 나가는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썩어서 죽은 바다 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줄을 모르면 내 은혜가 썩어서 죽은 바다같이 되고 맙니다.『내가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9) 음부에 있는 영혼의 부르짖음을 우리가 무시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十六장에 보면 유명한 부가와 나사로의 비유가 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 갔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속에 갔습니다. 이 음부에서 부자가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에 물 한 방울을 찍어 입술을 적시게 해달라고 간구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말은 그 곳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그 부자가 호소한 말은 아직까지도 이 세상에 내 동생 다섯이 있어서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죄악 가운데 사는데 나사로를 보내어 그 사람들에게 전도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음부에 있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세상에 사는 친척들을 구원해 다라고 하는 애절한 호소가 아직도 이 세상에 사무칩니다. 신령한 귀가 있는 사람은 이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이 음성을 무시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10) 한국에 무르익은 밭을 볼 때에 우리가 더욱 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 한국의 혼은 비었습니다. 재래종교는 다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생명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 갔을 때, 꿈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어떻든지 우리 고장에 와 달라고 하는 부탁의 현몽(現夢)을 듣고 갔습니다. 과연 우리의 신령한 눈이 열렸다고 하면, 우리는 한국의 빈 영혼들의 살려달라는 부르짖음을 듣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도처에 전도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곡식이 너무 익어서 희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도무지 전파하지 않고 그냥 나 혼자만 믿고 그냥 앉아 있다고 하면 가을 추수할 때에 낮잠 자는 사람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11) 우리 한국에 있어서의 복음전파는 우리 영혼만 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과 국가도 구원하는 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 과연 자유가 보존되느냐? 보존되지 못하느냐? 이 땅에 민주주의가 사느냐? 죽느냐? 이 나라가 장차 월남처럼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과 국가의 최대 원수는 이 부패, 이 부정, 밀물처럼 밀려오는 범죄, 이런 죄악의 물결입니다. 요사이 신문은 차마 볼 수 없으리만큼, 많은 죄악의 기사고 가득 차 있습니다. 지리산 도벌사건을 비롯해서 청소부 사건, 특허국(特許局) 사건, 무슨 특혜 금융사건이니 하는 여러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신문을 보니, 깡패 족보도 또 굉장한 모양입니다. 남은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선생이 술을 잔득 마시고 자다가 촛불로 불이 나서 타죽은 현상이 있는 것이 요즈음입니다. 이 죄악의 물결을 무엇으로 막아야 하겠습니까? 이것이 오늘날의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제일 중요하게 당면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막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것을 막기 위해서 새로운 생명의 물결을 우리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럴 때에 시기불변하고 복음을 가만히 가지고만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지 않고 있다면 이것을 애국적인 국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내가 화가 있으리로다. (12) 금년은 전국 복 화 운동의 해로 작정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어떤 개인의 운동이 아닙니다. 성경의 역사 가운데서 자연히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와 같이 전국적으로 복음을 일으키는 해에 내가 역시 전도자가 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제가 十二가지로 설명을 했습니다. 복음을 우리가 전파하지 않으면 열 두 가지의 화가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면 이 열 두 가지 화가 변해서 열 두 가지 복이 됩니다. 우리가 열 두 가지 화를 입겠습니까? 열 두 가지 복을 받겠습니까? 세기의 위인이란 이름을 듣는 쳐칠경(卿)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서 그 장례식을 런던 성․바울 성당에서 거행했습니다. 성 바울 성당은 영국에서 제일 큰 예배당입니다. 성 바울을 기념하여 지은 예배당이라 이름을 성 바울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당이 여러 가지로 유명하지마는 그 중에도 유명한 것은 그 종각 꼭대기에 큰 종을 달은 것입니다. 그 종의 이름은 큰 바위라(great stone)합니다. 왜 그 종을 큰 바위라고 하는 지 아십니까? 그 종에는 빙 돌아가면서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구절이 바로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성경 말씀입니다.『만일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미치리로다.』아마 이 종 둘레에 성경의 어떤 구절보다도 바울을 기념하여 예배당을 짓고 바울을 기념해서 이 종을 만들면서, 이 구절이 성경의 어떤 구절보다도 바울의 신앙과 정신을 표시한다고 여긴 까닭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종이 한 번 땡 하고 울릴 때마다 모든 영국 사람이 이 성경 구절을 듣기 위해서,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서 이 구절을 새긴 것입니다. 오늘 이 종소리를 우리 영락교회 교인들, 아니 온 한국교회 교인들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때에 복음을 전파하면 열 두 가지 축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않으면 열 두 가지 화를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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