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1:15-22/ 나오미와 룻의 가정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59:44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도록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一ㆍ十六)

지난주간은 가정주간으로 지켰습니다. 오늘을 흔히 어머니 주일로 지킵니다. 구약가운데서 사사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한 적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이름을 룻기라고 합니다. 사사기와 사무엘 서는 다 전쟁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 중간에 참으로 인정 미담의 하나인 룻기가 있습니다. 마치 가시밭 사이에 한 송이 백합화와도 같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먼저 간단히 소개합니다.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입니다. 지금부터 약 三천八백여 년 전, 유대 지방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그 때의 사회는 혼란하고 불안하던 때입니다. 그런 때에 베들레헴이란 동네에 한 가족이 살았습니다. 남편, 아내, 두 아들의 단란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곳에서 양식을 얻을 길이 없어서, 그 가족이 그 곳을 떠나 동편으로 요단강을 건너서 모압 이라고 하는 나라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가서 몇 해는 잘 살았지마는 불행히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이 있으니 그 모압 지방에서 자부를 취하여 아들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해 후, 십 년이 채 될까 말까 하여 아들이 그만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자연히 과부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두 모압 자부가 그들입니다. 이 비극의 주인공인 시어머니의 이름을 나오미라고 합니다. 또 두 자부의 이름을 하나는 룻 또 하나는 오르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가운이 기울게 되니 시어머니 나오미는 자연히 슬프고 외로운 가운데 고향이 그리워졌습니다.

이제 무슨 소망이 있는가, 고향에 돌아가서 내 백골이나 묻히자는 생각 가운데, 고향으로 떠나게 됐습니다. 아마도 작은 보따리를 챙겨 떠나게 됐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방 며느리인 두 여자도 같이 떠납니다.

『어머니 어떻게 혼자 가시겠습니까? 우리도 가겠습니다』고 하며 얼마쯤 이 셋이 서편을 향해서 걸어오다가 요단강 변에 이르렀습니다. 요단강은 유대와 모압 땅의 경계입니다. 거기에 이르러 나오미는 간절히 두 자부에게 권유합니다. 그 말씀을 제가 한번 더 자세히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

나오미는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 중엔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잇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던 지 오늘밤에 남편을 두어서 생산한다고 하자 너희가 어찌 그들을 인하여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않느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이렇게 간절히 권했습니다.

아마 이 말씀 가운데 여러분이 알아듣기 어렵고 이상한 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태 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있느냐』하는 말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는 먼저 형이 죽은 날에는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형을 위하여 아들을 낳아 주는 풍습이 있던 때입니다.

그 뜻을 의미합니다. 하여간 이렇게 간절히 돌아가라고 권하니 그 두 자부 가운데 오르바는 크게 울고 시어머니와 입을 맞추고 자기 어머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니까 나오미는 다른 자부 룻에게 계속하여 권면합니다.

네 동서가 지금 돌아가지 않았느냐 너도 어서 돌아가라고 권합니다. 그 때에 룻이 대답합니다.『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니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권해야 쓸데가 없어서 권하기를 그만 두고 나오미와 자부 룻이 요단강을 건너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가 바로 보리 추수를 할 때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보리 추수할 때가 거의 가까워 옵니다.

아마도 어떤 작은 방을 얻어서 고부간에 같이 살면서 룻이 이삭을 주워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합니다. 이삭 줍는단 말을 여기 청년들은 혹 모르기 쉬울 거예요. 무슨 뜻인고 하니 갈 을 다한 다음에 떨어진 이삭이 있으면 그것을 줍는단 말입니다.

오늘이 어머니 주일인데 나오미와 룻의 가정을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외적으로 볼 때에 불행한 가정입니다. 참으로 불우한 가정입니다. 두 과부의 가정이올시다. 고독한 가정, 눈물의 가정이올시다. 또한 가난한 가정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볼 때에는 이 가정이 보통 가정은 아닙니다. 그것은 고부간에 맺힌 그 인정과 사랑에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나오미의 말을 이미 들었습니다. 『내 딸들아 너희는 돌아가라. 네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라, 가서 결혼하고 너희 고향에서 장래를 위하여 잘 살라』고 간절히 권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 시어머니 되는 나오미는 자기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자부들의 생각만을 합니다. 그들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간절히 강권합니다. 그러나 룻의 말을 들어보세요.

『나로 하여금 돌아가라고 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유숙하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고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 죽는 곳에서 나도 죽어 그 곳에 장사되기를 나도 원합니다. 죽는 것 외에 내가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나를 벌하시기를 원합니다.』

자부된 룻은 자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아니하고 시어머니 생각만 한단 말입니다. 그 깊은 사랑 그 맺힌 인정, 룻의 일편단심은 시어머니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합니다. 요단강이 문제 아닙니다.

외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죽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를 가던지 시어머니를 봉사하고 생사를 같이 하려는 철석같은 결심이 여기에 나타납니다.

동서고금에 고부의 관계라는 것,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라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이렇지 않습니다. 스탠리 존스 박사의 저서 가운데서 본 듯 합니다. 어떤 젊은 부인이 갑자기 음식을 먹기만 하면 자꾸 토합니다.

의사에게 가서 아무리 진단해 보아야 아무 병도 없습니다. 그 다음엔 필연적으로 심리적 관계라고 생각해서 자세히 알아보니 며칠 전에 딴 곳에서 살던 시어머니가 그 곳을 떠나서 자기네와 함께 살면 좋겠다는 편지를 받았더랍니다. 아마 이 부인은 시어머니가 온다는 말만 듣고도 구역질이 났던 모양입니다.

이런 며느리도 있습니다. 제가 신의주 있을 때에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 아무 권찰은 심방도 잘하고 교회 봉사도 잘 하는데 그 며느리 가풍이 사납데, 그래서 첫 며느리는 쫓겨갔는데 둘째로 온 며느리가 견디어 낼는지 모르겠어. 이런 고부간도 있는데 어떻게 나오미와 룻은 이토록 정이 깊어졌습니까?

나오미가 좋은 시어머니가 되어서 그렇습니까? 혹은 룻이 좋은 며느리가 되어서 그렇습니까? 물론 둘 다 좋은 분이기에 그렇지요. 그러나 차례를 정하자고 하면 먼저 나오미를 칭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어머니가 있으니 이런 며느리가 있게 된 것이 아닙니까?

오늘 어머니 주일에 시어머니 되시는 분들은 나오미와 같은 시어머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며느리 되시는 분들은 다 룻과 같은 며느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오미가 룻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며느리의 사정을 얼마나 알아주었습니까? 거저 며느리의 최선을 항상 생각하고 도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런 시어머니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또 며느리 되는 룻이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얼마나 시어머니를 존경했습니까. 늙은 시어머니의 그 고독한 정을 얼마나 잘 살폈습니까. 이런 며느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을 삼사 형제씩 낳은 것은 좋지마는 낳는 대로 시어머니에게만 떠맡기지 맙시다.

나이 많으면 오금이 아픈 사정도 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아이들에게만 사다 주지 말고 시어머니께도 사다 대접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이는 늙어도 입맛은 변치 않습니다.

좋은 새 옷감이 나오게 되면 나만 먼저 사다 입지 말고 늙은 시어머님에게도 좋은 옷감을 사다가 좋은 옷을 해 올리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늙어도 새 옷들은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룻이 이렇게 끝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게 된 것은 사랑과 인정뿐이 아니고 한 가지 요소가 더 있습니다. 곧 그의 관념이올시다. 결혼은 부부일신을 의미합니다. 남편은 부모를 보양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만일 죽으면 그 며느리가 남편의 책임을 지는 것이 의리요 마땅히 할 일입니다. 룻의 중심에는 이런 의리 관념이 있는 것입니다. 고로 룻은 외로운 어머니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동양에는 유명한 진 효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진나라 땅에 어떤 여자가 출가를 했습니다. 얼마 후에 그 남편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먼 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가면서 하는 말이 내가 먼 나라에, 위험한 곳엘 가는데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은즉 내 늙은 어머니를 잘 공양해 주시오 하고 부탁합니다. 이 젊은 부인은 약속을 했습니다. 그 후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친정 식구들이 와서 너 그렇게 기다릴 것이 뭐냐 어서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 시집을 가라고 합니다. 그 때에 이 여자가 하는 말이 남편 대신에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은 의(義)요, 남편과 약속을 지키는 것은 신(信), 믿을 신자, 사람이 의리와 신의를 버리면 사람이라고 할 것이 뭡니까? 부모님이 정 그러시다 면 나는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는 더 권면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젊은 여자가 나이 많은 시어머니를 종신토록 잘 모셨다고 합니다. 그 뒤에 나라에 알리는 바가 되어서 천자가 큰 효부의 표창을 했다고 합니다.

고부간에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의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도 이런 얘기를 한 줄로 알지마는 미국에 있을 때 폐가 약하여 알바벌드란 요양원에 二년 동안 있을 때에 어떤 젊은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원장의 비서인데 그이의 얘기를 듣고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원래 대학을 졸업하면서 어떤 남자와 약혼이 되었어요. 그 남자는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동안에 폐가 약해졌어요.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고 알바벌드 요양원에 왔습니다.

그러자 약혼한 이 여자는 약혼자를 따라 멀리서 저 버지아란 곳에서 살았는데 알바버드까지 와서 원장의 비서로 취직하여 남편의 병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오래 애썼으나 낫지를 않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좋은 약이 없던 때입니다.

아무리 보아야 세상에 살 희망이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그 곳 목사에게 가서 내가 병석에 있는 환자와 결혼할 터이니 주례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목사가 처음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나 간절히 원하므로 죽어 가는 환자와 이 여자가 병원의 한방에서 결혼하여 부부가 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정성껏 간호했지마는 그 후 얼마 안돼서 남편이 죽었습니다. 이 부인이 하는 말이 내가 그이와 한번 약속을 했는데 그 남자의 성이라도 계승하려고 결혼했노라고, 미국의 풍속은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와 결혼하면 여자는 남편의 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 뜻입니다.

미세스 벤디벤트라는 유명한 여자입니다. 지금까지 그 병원에서 총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의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 의입니다.

일생의 고락을 함께 하겠노라 는 서약을 헌신처럼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의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도 이 의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로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의입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싶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합니다. 부자간, 고부간, 우리 가정에 의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이 가정이 이렇게 사랑과 의로 뭉치게 된 또 다른 원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오미와 룻의 신앙입니다 룻의 말을 들어보세요.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음 외에 어머니를 떠날 것이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모압 백성은 원래 그모스라는 우상을 섬기는 백성입니다.

룻도 물론 이런 우상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룻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까? 그것은 나오미에게서 전도를 받은 까닭입니다. 나오미는 이미 룻의 마음속에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굳게 심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그 고부간은 신앙으로 뭉친 가정이 되었습니다. 신앙으로 하나가 된 가정입니다.

여러분, 마음으로 대답해 보세요. 여러 시어머니들 가운데 며느리를 전도해서 믿게 한 분들이 몇 분이나 됩니까?

어떤 권찰님이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그 가정의 시어머니는 잘 믿는데 자부는 예배당엘 나오지 않아요. 마침 시어머니는 없고 예배당엘 안 나오는데 자부만 있으니까 자부더러 예배당에 나오라고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부가 얼른 대답하는 말이 『아니요, 우리 시어머니가 나가는 교회는 안 나가요』하더랍니다. 물론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참 신앙의 시금석은 가족에게까지 전도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여러 시어머님들, 며느리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여러 자부 님들, 시어머니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여러 믿는 아내들이여 믿지 않는 남편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믿는 남편들이여, 믿지 아니하는 아내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믿는 자녀 여러분! 믿지 않는 부모님들이 감화 받으리 만큼 신앙 생활을 바로 합니까?

참 신앙은 가족들에게 참으로 전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말한 대로 나오미와 룻의 가정은 불우한 가정이요, 가난한 가정이요, 고독한 가정입니다. 그러나 이 가정에는 사랑과 의와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환난과 모든 슬픔 그리고 고독도 이기고 돌파해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을 다 읽어보면 하나님은 이 가정을 다른 방면으로 크게 축복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친족이 되는 보아스라고 하는 분과 결국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아들이 바로 다윗 왕의 조부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할머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기대 이상의 축복을 이런 가정에 하나님께서 더하신 것입니다.

나물을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송아지를 잡아먹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가정은 집이 아닙니다. 집이 큰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크거나 작거나 그 가정에 참된 사랑 의리, 신앙이 있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어떠한 슬픔 어떠한 역경이 닥쳐와도 능히 돌파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 변한다고 하니까 무엇이나 변하는 줄로 생각하는 이들이 혹 있는 것 같습니다. 외적 생활, 형식적인 윤리 사상은 혹시 변할 수가 있지마는 가정의 근본적인 기초는 변하지 아니합니다.

사랑, 의리, 믿음은 영원한 우리 가정의 정신적인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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