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5:17-21/ 화해의 직책 /한경직 목사 2014-08-25 14:38:49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고린도후서 5장 18절을 다시 봉독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오늘 읽은 고린도후서 5장 18절로 21절까지에는 ‘화목’이란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다섯 번이나 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여기에서 ‘화목’이란 말씀은 지금 보통으로 쓰는 말로 하면 ‘화해’라는 뜻입니다. 원수 되었던 이들이 화해하고 다시 친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에는, 말하자면 하나님과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후에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되었고, 사실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또한 맞는 이야기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들은 또 인간 자신들이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는 불화와 싸움이 가득하게 되었고, 또 인간이 사는 사회, 그리고 민족간에도 국제간에도 모두 처참한 싸움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과 화해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고, 또 인간 상호간에도 서로 화해하게 하셨고, 또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이 화해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직책을 주신 것입니다.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는 이러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의 상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전에는 원수였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화해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귀중한 책임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사명을 받은 우리는 이 화해의 직책을 옳게 감당하기 위하여 몇 가지 명심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먼저 내 자신이 하나님과 화해하여야 될 것입니다. 내 자신이 먼저 솔직히 중심으로 내 속에 도사린 온갖 죄악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온전히 받고, 하나님의 친구 혹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큰 전신의 목욕과 같은 회개가 필요할 뿐더러, 매일매일 내 발을 주님께 씻기는 매일의 회개와 갱신의 신앙생활이 또한 필요합니다. 화해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 간격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화해의 크신 축복을 받아 사죄의 안심과 축복을 풍성히 받아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확신과 능력이 또한 그 마음 속에 넘쳐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 오는 화평의 넘치는 축복이 우리 마음 속에 가득할 때에, 우리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이 화해와 화평의 복음을 힘있게 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우선 내 자신이 이러한 넘치는 축복과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이러한 심령에게 더하여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우리는 언제나 기도의 생활을 계속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화평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평화의 사자들이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러한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은 또한 우리 형제간에 자매간에, 곧 우리 믿는 이들 사이에 아무리 작은 일로라도 성도간에 화평을 깨치는 요소가 있으면 즉시 그것들을 제해 버리고, 형제간의 화해와 화목을 항상 힘써야 할 것은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들이므로 때로는 실수할 때에도 있고, 작은 일들로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고, 실수할 때가 없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로 피차에 상심되고 형제 화목을 깨칠 때가 없지 아니합니다. 이런 일들이 비록 작은 일로 일어날 수 있지만, 곧 화해하지 아니하면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므로 작은 감정이 퍼져 교회의 화평을 깨뜨릴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불행하게 교회가 분규에 빠져 어지럽게 되기도 하고, 심하면 분열의 참극도 빚어내게 되는 것을 우리는 한국교계에서 종종 목도합니다. 그러므로 조심하여야 합니다. 주님 말씀과 같이 무슨 오해나 불화가 있으면 곧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그 오해를 풀고 화해하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온유와 겸손의 주님의 마음이 필요하고 오래 참는 사랑이 필요하고, 또 언제나 각각 내 자신을 살펴 회개하는 자성과 기도가 필요하고, 언제나 내 자신의 무슨 욕심이나 야심이 없는가, 스스로 삼가며 화해하여야 합니다. 병균이 크게 번지기 전에 약을 써야 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무슨 오해나 불평이 커지기 전에 피차에 양보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 해결하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해야 교회가 손해를 입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이 불평과 불화로 가득한 세상에서 화평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해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에 서로 용서하고 화평하고 같이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듣건대 유명한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에는 부자(父子), 곧 아버지와 아들간의 화해에 대한 두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고 합니다. 첫째 그림에는 성난 아버지가 손에 채찍을 들고 불량한 아들을 내어 쫓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노기가 등등합니다. 뒤에 앉은 어머니는 어찌할 줄을 몰라 눈물만 흘립니다. 어머니 옆에 앉은 어린 동생들은 어리둥절하여 아버지의 얼굴만 쳐다봅니다. 이렇게 불량한 아들은 아버지와 싸우고 멀리 집을 떠나 방탕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그림이 있습니다. 방 안에 있는 아버지는 중병으로 인사불성이 되어 정신없이 천정만 쳐다보고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창문을 막 열고 들어오는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에 아버지와 싸우고 나갔던 그 아들이 방금 돌아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슬픈 일은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아버지는 벌써 정신을 잃었습니다. 화해의 기회는 지나갔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은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화해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화해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여야 화해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중대한 사명을 맡은 우리 믿는 이들은 언제나 하나님 주시는 화해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화해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불화의 세상에서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도 지장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화해는 내가 먼저 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상대방이 내게 와서 잘못을 고백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상대방은 어떠하든지 내가 먼저 화해의 정신을 가지고 그런 분을 찾아가서 어떤 오해가 있으면 오해를 풀고 불평이 있으면 그 불평을 잘 설명해 주어서 내가 먼저 화해를 성취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 한국 교회 위에 이러한 믿는 사람들, 형제간의 화해의 축복을 풍성히 내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이렇게 우리 모두가 내 자신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또 믿는 우리들 서로서로가 화해의 축복을 풍성히 받은 후에 우리는 마음과 뜻을 합하여 한 목소리로 화해의 복음을 우리 사회와 우리나라와 아니 온 세계에 힘있게 전파하여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먼저 화평을 하여야 우리 인류가 축복을 받습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이 세계의 역사도 실상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맷돌이 천천히 돌아가는 것 같지만, 매우 보드랍게 갈아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정의의 맷돌, 하나님의 맷돌에서 피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죄는 회개하여야 삽니다. 죄는 회개하여야 개인도 살고, 가족도 살고, 민족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까지 보내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이렇게 만민 구원의 큰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주님을 믿고 참으로 죄를 회개하면 흰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희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여야 개인도 축복을 받고, 민족도 축복을 받고, 세계도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구원의 이 화해의 복음을 어느 때나 어디서나 크게 전파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참으로 복을 받는 길이요, 또 이 복음으로 회개한 백성들이 사는 그 나라도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화해의 복음을 싸움과 전쟁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먼저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화해의 사자들은 우리 사회, 국가 그리고 온 세계 어디서나 화해의 직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 금년 여름에는 미국 사람들이 구라파, 혹은 중동 여러 나라에 도무지 관광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보도하였습디다. 평균 매년 약 600만 명이 여름마다 구라파(유럽)에 관광을 갔는데, 금년에는 도무지 관광을 가지 않아 구라파에 있는 관광호텔이나 유흥업소들이 모두 울상이라고 합니다. 왜 금년에는 미국 사람들이 구라파 관광을 가지 아니하는가?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도처에 테러가 너무 많은 까닭이라고 합니다. 미국이 세계 최대 강국이라고 하지만, 그 국민을 이 테러에서 보호할 방법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며칠 전에 멕시코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를 TV를 통하여 우리 안방에서 모두 구경하였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실로 지금은 살기에 편한 그러한 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또한 큰 공포에 항상 싸여 살기 마련입니다. 도처에 테러, 혁명, 폭동, 사고, 또 언제 핵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러한 세상에서 전인류는 떨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인류가 원하는 모든 것이 거의 준비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그것은 평화가 없습니다. 도처에 분규, 분쟁, 폭동, 테러, 데모, 냉전, 열전으로 가득합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뿐 아니라, 전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곳에 섞여 살든지 화해의 직책을 다하는 화해의 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도처에 분규와 분쟁과 데모와 소요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작은 상점에서 큰 공장, 학교, 아니 국회에 미치기까지 싸움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사회적 사명이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어디서나 화해의 직책을 가진 화해의 사자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학교에서도, 공장에서도, 회사에서도, 상점에서도, 어떤 모임에서든지 우리 믿는 이들의 첫째 사명은 화해의 직책이라는 것을 잊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는 그 기도에서 “주여 나로 하여금 화해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늘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러한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쟁의 도구가 되지 말고, 어디서든 화해의 도구가 되게 하여 달라고 항상 기도하는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싸움이 너무 많은데 믿는 사람들까지도 싸움만 하게 되면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산상보훈에서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만한 우리 크리스천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찬송을 드리나이다. 가물어 메마른 이 땅에 단비를 주시는 모든 축복을 감사드립니다. 가물어 메마른 우리 심령의 밭에도 이 시간 위로부터 하나님 사랑의 풍성한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고 이런 사람들과 화목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우리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시면서 화평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을 불러서 이 화해의 복음을 세상에 또한 전파하라는 위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시간 여기 나와 예배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하나가 하나님과의 아무 간격이 없는 내 자신을 돌아볼 때 회개할 것은 온전히 회개해서 하나님과의 간격이 없는 이런 은혜를 먼저 주시고, 또 우리 형제간에 자매간에 우리 믿는 이들 사이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불화한 마음이 있으면 화평의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화평케 해 주시기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해서 우리가 화해의 풍성한 은혜를 먼저 받고 이 불화와 싸움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화평과 화해의 복음을 전파하고, 또 여러 가지로 싸움이 계속되는 이러한 세상에서 어디서 살든지 화해의 도구가 되어서 내가 있는 그 직장, 내가 있는 그 자리를 좀더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저희에게 이 귀한 사명을 주신 것을 항상 기억하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이 땅에 평화를 주시고,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땅, 38선이 있는 이 땅, 이 작은 나라에 평화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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