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22:16-21/ 성경의 마지막 부름 / 한경직 목사
2014-08-26 10:31:18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17절을 다시 봉독하겠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으로 마칩니다. 창세기는 만물의 시작을 말하여 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시작하여 인간의 창조, 죄의 기원, 구원의 역사의 시작 등 온갖 처음 되는 일을 가르쳐 줍니다.

반면에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만물의 마지막을 가르쳐 줍니다. 마지막 환난, 마지막 전쟁, 최후의 심판, 현 우주 자체의 최후를 미리 가르쳐 줍니다. 물론 인류의 종말도 포함됩니다.

그러면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사이에 있는 모든 책들은 무엇을 말하여 주는가? 한마디로 죄로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올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십니다. 죄인을 불러 구원하십니다.

온 성경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가득합니다.

창세기 3장에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하신 열매를 먹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숨기는 인간 타락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내버리지 아니합니다. 창세기 3장 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아담을 그냥 두시지 아니하시고 또한 부르신 것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사람의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하여 전인류가 홍수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는 비참한 기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7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그러한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을 불러내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죄인을 불러 구원하셨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렇게 죄인을 부르십니다.

또 이사야 55장에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식량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악인은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 하시리라”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또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는 다음과 같이도 부르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께서는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죄인을 부르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노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또 여러분 가운데 마태복음 11장 28절을 기억하시는 이들이 많을 줄 생각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그리고 요한복음 7장 37절에 있는 주님의 부름도 기억하실 이가 많을 줄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그뿐만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방에 보내셔서 또한 죄인을 부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죄인을 부르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에는 최후의 부름 곧 성경의 마지막 부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 한 절 가운데 ‘오라’ 하는 말이 세 번이나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여기에 간절한 하나님의 마지막 부름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라고 친히 부르십니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 마음 속에 고요히, 그러나 분명히 부르십니다. 때로는 이성을 통하여 부르십니다. 때로는 양심을 통하여 부르십니다. 혹은 인간 생활의 쓰고 단 경험을 통하여 부르십니다. 민족과 국가의 역사를 통하여도 또한 고요히 부르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랑의 음성을 소멸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또 신부가 오라고 부르십니다. 신부는 물론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곳저곳에 높이 솟은 십자가가 죄인을 부릅니다. 아침 저녁으로 울리는 종소리가 또한 죄인을 부릅니다. 일찍이 어떤 분이 백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에 본 교회에서 아침 저녁으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회개하였다고 제게 말합디다.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고 회개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 소리, 경건히 드리는 기도의 소리, 또는 설교를 듣고 돌아오는 이들이 많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온 교회가 오라고 부릅니다.

또 듣는 자도 오라고 같이 외치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이들 하나하나에게 부탁하는 말씀인 줄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기쁜 부름의 소식을 널리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무릇 목마른 자는 다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원하는 자는 와서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나 부르십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초청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원해야 그 부름을 듣고 원하고 와서 생명수를 마십니다.

성령께서도 억지로는 무슨 일을 못합니다. 소를 물가로 인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물을 마시게는 못합니다. 어린아기도 그렇습니다. 젖꼭지를 아기 입에까지 넣어 줄 수는 있으나 억지로 빨게는 못합니다. 내가 원해야 빱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죄인을 부르시어 생명수가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억지로 마시게는 못합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여 스스로 내가 마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때때로 두드리십니다. 그러나 그 여는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내가 열어야 주님이 들어오십니다.

여러분, 중심에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중심에 은혜를 받을 마음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도 외면하지 마십시다.

우리는 이 마지막 부름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또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비행기로 여행을 하시는 이들은 누구나 당하는 경험입니다. 비행기가 떠날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게 되면 확성기를 통하여 지금 아무 데로 가는 아무 비행기를 탑승할 분은 아무 문으로 나가라고 크게 외칩니다. 이렇게 몇 번 외치다가 마지막 얼마 후에는 다시 그 비행기를 타실 분은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면서 계속해서 하는 말은, 이것은 마지막 부름입니다. This is last call. Last call. 마지막 부름입니다. 외칩니다.

이 마지막 부름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요? 이 마지막 부름에도 나가지 아니하면 문은 닫힙니다. 비행기를 놓칩니다. 타지 못합니다. 여러분, 성경의 이 마지막 부름을 주의하여 들으셔야 합니다. 주님께 올 수 있는 기회도 그 한계가 있습니다. 오라고 부르실 때에 곧 오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최후에 쓴 편지 곧 디모데후서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겨울 전에 오라”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때에 노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불원간 최후의 날이 자기에게 임할 것을 예감하면서 당시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가장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재촉합니다. 겨울 전에 오라고 재촉합니다. 왜 겨울 전에 오라고 합니까? 그때에는 겨울에는 배가 다니지 못하던 때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속히 오라는 뜻입니다.

주님께 오는 데도 기회가 있습니다. 주님의 이 마지막 부름을 우리는 꼭 들어야 합니다. 겨울 전에 와야 합니다.

미국에 이민가서 사는 한 교우가 얼마 전에 편지로 자기의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자기는 몇 해 전에 세례를 받기는 받았지만, 사실 그때에는 자기 죄를 온전히 회개하지는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온전히 죄를 회개하고 감사해서 이 사실을 제게 고백하면서 알린다고 하였습디다. 세례는 물론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회개가 없는 세례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께 오라는 말은 온전히 회개하면서 주를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1장을 읽어 보면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의 회개는 없이 성전 뜰만 밟는 이들을 책망한 말씀이올시다. 오늘 이러한 이들은 없습니까? 성전 뜰만 밟아서는 아니됩니다. 주님께 참으로 중심으로 오셔야 합니다. 생명수를 마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주여” 찬송을 부른다고 다 주께 오는 것도 아닙니다. 중심으로 옛것을 온전히 벗어 버리고 주님께 오셔야 합니다.

1979년도 거의 저물었습니다. 성경의 이 마지막 부름을 놓치지 마십시다. 겨울 전에 오십시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심령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나의 영적 주소가 어디입니까? 스스로 살피십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은 간곡히 부르십니다.

슬픔과 고통의 짐을 진 사람은 없습니까? 근심과 염려의 짐을 진 이는 없습니까? 낙심과 절망의 짐을 진 이는 없습니까? 아니,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지금까지도 마음의 불안과 번민 속에서 허덕이는 이는 없습니까? “무릇 목마른 자는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주님은 부르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심령이 기갈한 이들도 주께 나오셔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모두 주님께 나와서 새로운 사람이 될 때에 나라도 바로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경의 이 마지막 부름에 응하여 이 모든 무거운 짐은 벗어 버리고, 기쁨과 화평으로 충만하고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아버지의 사랑에 넘치는 부르는 음성을 저희들이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이 성경의 마지막 부름을 경히 듣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하나가 이 부름을 듣고 겸손히 모든 것을 주님께 가지고 나와서 주님과 함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풍성한 생명을 우리 모두가 얻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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