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6:1-8/ 큰 비전, 큰 믿음, 큰 사랑 / 한경직 목사
2014-08-27 10:01:20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렇게 예언자 이사야는 그가 젊었을 때에 성전에서 본 영적 체험을 묘사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보았다고 여기에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신령한 눈으로 본 것을 의미합니다. 곧 영견(靈見), 영적으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신령한 눈으로 무엇을 보는 것을 요새는 흔히 ‘비전(vision)’이란 말로 사용합니다. 본래는 영어이지만, 이제는 한국말이 거의 되었으므로 그냥 나도 ‘비전’이란 말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사야는 그때에 성전 안에서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에 대한 큰 비전을 보았습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그의 비전은 그의 생활을 변케 하였고, 그의 일생을 또한 지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것을 그는 항상 직감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 비전이 이사야로 하여금 위대한 예언자로 만든 것입니다. 그는 또한 그때에 하나님에 대한 큰 비전을 보았을 뿐더러, 인간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를 또한 바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는 그 자신의 죄와 모든 인간의 죄에 대한 비전을 또한 본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죄를 깨닫는 사람들에게 사죄의 축복을 주시는 비전도 또한 보고 체험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사야는 이 큰 비전을 통해서 그의 사명에 대한 비전도 또한 확실히 본 것입니다. 그는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는 곧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렇게 그는 이 큰 비전을 통하여 그의 사명, 그의 의무, 곧 그의 일생의 사업을 또한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그들의 비전을 통하여 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비전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어떤 이는 자기의 일상 생활과 그 일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는 물 끓는 차 주전자에서도 증기기관을 보았고, 떨어지는 사과 한 알 가운데에서도 중력의 법칙을 본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발명가가 되고, 예술가가 되고, 또는 하나님의 위대한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비전이 없으면 백성은 망한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우리는 다 이 비전이 필요합니다. 곧 신령한 눈으로 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그가 가지는 비전, 곧 영적으로 보는 것 이상의 무엇을 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곧 하나님은 그에게 성막을 어떻게 지을 것을 산에서 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곧 모세는 산에서 성막에 대한 비전을 보았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제직들은 성막 곧 교회에 대한 큰 비전을 먼저 보아야 교회를 바로 봉사하고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 하나하나는 특별히 정치가들, 지도자들은 국가에 대한 큰 비전이 있어야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우리는 다 이 세계에 대한 큰 비전이 있어야 온 세계 인류가 자유와 평화와 번영으로 살 만한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우리 자신들을 참 된 그리스도인의 인격으로 건설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대해서도 영광스러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야곱의 우물가에 서서 계실 때에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을 보시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일찍이 하셨습니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여기에 밭에 대한 예수님의 비전이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특별히 한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추수할 곡식이 무르익은 이 밭에 대한 큰 비전이 필요합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전에 우리 원주에 있는 국군 제1군 사령부와 또 그곳에 있는 몇 부대를 방문하였습니다. 내가 그때 깊이 감사히 생각한 것은, 우리 국군에서 일하는 군목들과 고급 장교들이 모두 전군신자화운동에 대한 큰 비전을 보고 노력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기독공보에서 보셨을 줄 알지만, 어떤 부대에서는 하루에 장병 1,000여 명이 일시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기독교인의 비례의 수가 5할이 넘는 부대들도 이제는 여럿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 군대 안에서 이런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실로 감격한 일입니다.

우리 총회 안에도 이 1984년에 맞을 선교 100주년을 내다보면서 전국복음화운동을 전개한 것입니다. 우리 신자 하나하나가 이 전국복음화에 대한 큰 비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전도에도 제일 먼저 비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큰 비전, 교회에 대한 큰 비전, 국가에 대한 큰 비전, 세계에 대한 큰 비전, 자신에 대한 큰 비전, 특별히 이 때에 전국복음화에 대한 큰 비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말씀드리기 원하는 것은, 이렇게 큰 비전이 먼저 필요하나, 비전이 비전에만 그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비전은 꼭 실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비전을 성취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읽어 보세요. 이스라엘 전역사를 통하여 그들의 비전을 실천한 이들은 다 위대한 신앙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믿음으로’라는 말을 우리는 11장에서 여러 번 발견하는 것입니다.

큰 믿음이 있어야 큰 비전을 실현케 됩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의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한 한 가나안 여인에게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여자의 믿음이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면서 그 소원대로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큰 믿음이 있어야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큰 믿음의 소유자라고 칭찬을 받은 이가 한 분 더 있습니다. 그는 곧 가버나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성경을 읽노라면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산상보훈을 가르치실 때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 다음에는 무슨 말씀이 있는 줄 아십니까?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작은 자들아”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이 작다고 책망조로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혹은 마태복음 8장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실 때에 큰 노을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니 제자들은 겁이 나서 그때 주무시던 예수를 깨웠습니다. 이때 주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해서는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대로, 당시에 그 제자들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너무 작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믿기는 믿으면서도 항상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의심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작은 믿음으로는 부족합니다. 갈릴리 바다가 때때로 풍파가 높은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환난과 질고와 재난과 빈궁과 전쟁과 슬픔과 죽음이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고해 같은 세상을 건너갈 때에 큰 믿음의 배가 필요합니다. 작은 배로는 안 됩니다. 믿음은 영혼의 배입니다. 믿음의 배는 커야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우리는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정시(正視)하셔야 합니다. 이 시대를 가리켜 과학시대, 원자시대, 혁명시대, 혹은 우주시대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과연 신앙의 시대는 아닙니다. 반대로 신앙이 없는 시대입니다. 유물론, 세속주의, 공산주의, 도덕적 허무주의의 시대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은 방패라고 하였습니다. 이 믿음의 방패로 모든 마귀의 화전을 소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큰 방패가 필요합니다. 손바닥 넓이 만한 작은 방패로는 안 됩니다.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큰 믿음으로라야 큰 비전이 실현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때는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신 적이 종종 있습니다. 믿음대로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이 있는 이들은 큰일을 하였고, 작은 믿음이 있는 이들은 작은 일을 하였고, 믿음이 아주 없는 이들은 아무것도 가치 있는 일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수가 아무리 풍성하나 그 물을 길어낼 수 있는 만큼 믿음의 그릇에 의지해서 그 물을 인간이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세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올시다. 그는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이올시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올시다. 그는 모든 것을 성취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큰 신앙만이 위대하신 하나님을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크신 능력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인도에 처음으로 간 개척 선교사 윌리엄 케리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께 큰일들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들을 계획하라.” 위대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지금 큰 비전과 큰 믿음에 대해서 잠깐 말했는데, 이 큰 비전과 믿음을 뒷받침하는 위대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곧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곧 사랑장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제일 큰 것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큰 비전과 큰 믿음과 함께 큰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이처럼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독생자까지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그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그리스도는 이렇게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그의 생명까지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

주님은 큰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부탁하십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본받아 서로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작은 사랑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형제간에도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위대한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이기주의로 전락될 수도 있고, 혹은 정욕으로 타락될 수도 있습니다. 애국심이란 고귀한 나라에 대한 사랑도 외국인을 미워하는 감정으로 타락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사랑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크신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도 13장, 사랑장에서 가장 알아듣기 쉽게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봉사를 의미합니다. 사랑은 용서를 의미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가리워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이웃에 대하여, 같이 있는 형제들에 대하여, 모든 인간들에 대하여, 심지어 원수들에 대하여도 이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나라를 위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위하여 이 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파에 싸여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는 모든 대중과 특별히 아직도 구주를 알지 못하고 죄악의 바다에 빠져 헤매는 이런 영들을 향하여 이 큰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한 번밖에 지나가지 못하는 인생행로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이 큰 사랑입니다.

이 새해를 당하여 우리는 이 큰 비전, 이 큰 믿음, 이 큰 사랑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에 대하여는 물론, 우리 교회, 우리 민족, 우리 세계에 대하여도 큰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산을 옮길 만한 큰 믿음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해야 합니다. 봉사와 희생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크신 사랑을 가슴에 안고, 이 1972년에 용감히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이 세 가지가 필요하지만, 특별히 청년시대에 청년들이 이 세 가지 보배를 가슴에 안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일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요, 참된 행복과 성공이 따를 것입니다. 우리 영락 교인들은 우리 영락교회에 대하여 큰 비전을 가지고, 특별히 전국복음화에 대한 큰 비전을 가지며,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큰 비전을 가지고, 큰 믿음과 사랑으로 만사에 임하여야 되겠습니다. 전능하신 우리 크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같이 하시고,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전능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시간 우리의 신령한 눈을 열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따라서 내 자신 내 교회 내 나라 온 세계에 대한 다른 비전을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을 가지고 이 비전을 실행키 위해서 용감히 일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 보여주신 십자가의 크신 사랑을 가슴에 안고 금년 1년의 인생길을 오직 사랑으로 걸어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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