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3:1-9/ 특권과 의무 / 한경직 목사
2014-08-27 11:21:02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오늘 아침 이 간단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 모퉁이에 무화과를 한 그루 심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포도 모퉁이에 무화과를 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는 오래 열매를 맺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이 과원지기에게 하는 말이,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의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이 말을 들은 과원지기는 대답하기를,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그대로 두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리면 좋고, 그렇지 아니하면 찍어 버리도록 하시옵소서.”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비유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비유는 첫째로 특권과 의무의 원칙을 교훈하십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좋은 땅을 차지하고 섰습니다. 그래서 아래로는 흙으로부터 좋은 양분을 섭취하고, 위로는 햇빛과 공기의 혜택을 입으며 또한 때때로 우로, 비와 이슬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과수원지기는 그 나무 아래의 풀을 뽑으며 둘러 파고 거름도 주며 또한 잘 가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무화과나무는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아니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심는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보기 좋으라고 관상목으로 심은 것은 아닙니다. 또는 이후에 혹은 목재로 쓰기 위해서 심은 것도 아닙니다.

무화과나무는 목재로 사용되는 나무는 못됩니다. 무화과나무를 심는 목적은 오직 하나인데, 그것은 열매를 얻기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이 열매를 맺으라고 인간과 자연, 곧 하늘과 땅은 많은 특권을 이 무화과나무에게 부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특권을 받은 나무가 그의 책임, 곧 의무를 다하지 않은, 다시 말하면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을 보고 주인은 노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를 찍으라 하였습니다. 3년이나 기다렸다고 하는 것을 보니 열매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열매를 맺지 않으니 찍어 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특권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릅니다.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마치 이 무화과나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구원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로 삼아 주시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많은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 목적은 곧 열매를 맺으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많은 특권을 누리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하는 큰 의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에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과 행실에서 열매가 맺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전도나 봉사나 온갖 헌신을 위해서 열매가 맺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직장과 사업처에서 열매가 맺혀야 할 것입니다. 3년이나 계속해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그 주인이 노해서 찍으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어요.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 주님은 이 엄숙한 진리를, 특권이 있는 곳에 의무가 따른다고 하는 진리를, 반드시 너희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는 이 엄숙한 진리를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주의하여 들어보세요.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의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그 다음에 무슨 말씀이 있는지 아십니까? “어찌 땅만 버리느냐” 어찌 땅만 버리느냐? 그 주인이 말하였습니다. 어찌 땅만 버리느냐? 곧 땅만 버리는 쓸데없는 존재란 말입니다. 땅만 버리는 쓸데없는 존재는 없애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둘째의 진리가 있습니다. 곧 열매 없는 생활, 다시 말하면 아무 쓸데없는 생활은 그 자체가 곧 죄입니다. 왜? 공연히 땅만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낭비합니다.

죄 가운데에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적극적인 죄입니다. 적극적으로 나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도둑질을 합니다. 음란한 행위를 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적극적인 죄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둘째로는 소극적인 죄가 있습니다. 땅만 버리는 죄가 있습니다. 낭비하는 죄가 있습니다. 곧 마땅히 할 것을 하지 아니하는 죄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말하자면 이 둘째 범주에 속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곧 열매를 맺을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아니하였습니다.

여러분, 달란트의 비유를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달란트 비유 가운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있습니다. 그 한 달란트를 받았던 종이 마지막에 회계할 때에 한 달란트를 그냥 가지고 올 때에, 그가 얼마나 주인에게 책망을 받았고, 책망을 받았을 뿐더러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쫓김을 당한 사실을 여러분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무슨 적극적 의미의 죄는 지은 것이 없습니다. 남을 속인 일이 없고, 남의 것을 도적질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극적 의미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곧 한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해서 이익을 얻으라고 하였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그냥 묻어만 두었던 것입니다.

이런 진리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실로 송구한 마음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고 우리가 열매를 꼭 맺어야 할 때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우리가 큰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은 쓸데없는 존재를 용납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쓸데없는 존재를 항상 그냥 두지는 아니합니다. “저 쓸데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이 나라, 이 사회에 심어진, 혹은 이 교회에 심어진 무화과나무인데 우리가 무슨 열매를 맺는가? 우리가 무슨 열매를 남기고 가는가? 그저 많은 혜택만 받고 가는가? 깊이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 혹은 이 사회라고 하는 창고에 많은 열매, 좋은 열매를 맺어서 이 창고에 진선미(眞善美)의 보물을 남기고 갈 것인가? 그저 남이 남긴 보물을 소비만 하다가 그저 갈 것인가? 깊이 생각할 일입니다. 아무것도 더 남기지 못하고 소비만 하고 가는 것은 소극적 의미에서 큰 죄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방면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을 따라서 내 교회와 내 사회를 위하여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엄숙한 진리를 이 비유는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과수원지기의 호소하는 말을 주의하여 들어보십시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만일 실과가 열면 참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찍어 버리시옵소서.” 실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여기에서 과원지기는 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한 번 더, 1년 더 기회를 주자고, 열매 맺을 기회를 주자고 호소합니다. 곧 제 2의 기회를, 두 번째 기회를 주자고 호소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제 2의 기회, 곧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첫번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였으나, 회개하고 한 번 더 열매를 맺을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올시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요나에게도 둘째 기회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아신 바와 같이 요나는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러서 처음에는 다시스로 도망을 가다가 큰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적적으로 구원해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고, 재기해서 니느웨 성으로 가서 결국은 많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열매 없는 모든 무화과나무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재기의 기회를 주십니다. 두 번째 열매 맺는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와 같은 이도 처음에는 예수를 3번씩 부인하는 큰 참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재기할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셔서 오순절부터 많은 열매를 맺는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마가 요한 같은 청년도 첫 번째 여행 때에 바울과 바나바를 버리고 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열매 없는 청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재기할 수 있는 회개의 기회를 주어서 사실 그 후에 돌아와 많은 열매를 맺은 기독청년이 된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 아신 바와 같이 마가복음을 기록한 유명한 기독 청년이올시다.

위대한 사도 바울 자신도 처음에는 아무 열매 없던 맹목적인 바리새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회개의 기회를 주어서 문자 그대로 그의 생활을 다시 돌이켜서 많은 열매를 맺는 위대한 이방의 사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희망의 기쁨의 소식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나는 열매 없는 나무다.’ 하고 스스로 탄식하는 영혼이 있습니까? ‘나는 지금까지는 무슨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하면서 스스로 슬퍼하는 심령이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세요. 너무 상심하지도 마세요. 절망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둘째 기회를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요나에게도 주셨고, 베드로에게도 주셨고, 마가에게도 주셨고, 바울에게도 주셨거늘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시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둘째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과거의 열매 없는 생활의 소극적 죄를 회개하고, 이제부터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열매 있는 생활을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큰 은혜를 주셔서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놀라운 열매를 앞으로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 엄숙한 경고를 우리는 또한 분명하게 들어야 합니다.

1년 더 은혜를 주고 기회를 주어도 끝까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마지막에는 찍어 버린다는 엄숙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올시다. 인내의 하나님이올시다. 제2의 기회를 주시면서 오래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의 인내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마지막엔 부득이 찍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이제 도끼를 나무뿌리에 놓았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경고했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한 열매 없는 노아의 세대를 홍수로 멸하셨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는 열매 없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로 멸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비유는 당시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포도원 모퉁이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입니다. 두루 파고 거름도 주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이 이 무화과나무를 가꾼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최후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문자 그대로, 그 교훈과 그 생활과 그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최후로 회개의 둘째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회개하고 열매를 맺으라고. 그러나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말씀으로 최후로 회개하라는 호소를 하였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므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지 약 40년 후, 곧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은 다시 망하여 버린 것입니다. 실로 비참하고도 가혹한, 냉엄한 역사적 산 교훈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한 무화과나무임을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또 우리나라, 혹은 우리 사회가, 혹은 우리 민족이 한 무화과나무임도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그 중간에 있는 모든 단체들, 교회까지도 한 무화과나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 신자 하나하나의 존재의 목적은 열매를 맺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 혹은 민족의 존재의 목적도 열매를 맺는 데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의 목적도 열매를 맺는 데 있습니다. 무슨 정당이나 단체의 존재의 목적도 열매를 맺는 데 있습니다. 무슨 학교나 모든 기관들의 존재의 목적도 열매를 맺는 데 있습니다.

특권이 있는 곳에는 의무가 반드시 따릅니다. 열매를 맺을 책임이 따릅니다. 특권만 누리고 열매가 없는 생활은 소극적 의미에서 죄악의 생활로써 이런 생활은, 이런 존재는 오래 그냥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제 2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과거에는 열매 없는 생활을 하였으나 앞으로는 꼭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 맺는 나무, 열매 맺는 신자, 열매 맺는 교회, 열매 맺는 민족과 나라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이 시간 주님께서 주시는 이 엄숙한 교훈을 저희들이 받았습니다. 듣는 자만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하나는 무화과나무인 것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도 한 무화과나무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단체도, 우리 사회도, 우리 민족도, 우리나라도 한 무화과나무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열매 맺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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