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6:14-17/ 우리와 함께 한자가 /조용기 목사 2014-09-03 11:30:03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와 함께 한자가 저와 함께 한자보다 많으니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랍 왕은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를 포로로 잡기를 간청하고 소원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왜냐하면 아랍 왕이 여러 번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계획을 세우고 대 군대를 보내서 이스라엘을 습격할 때마다 이스라엘 왕이 미리 알고 군대를 가지고 와서 아랍 왕이 오는 군대를 지키고서 아랍 왕의 모든 공격을 저지해 버리고 맙니다. 한두 번이 아닌지라 너무 답답해서 아랍 왕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아본즉 이스라엘은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종이 있어서 그가 벌써 그 영으로 아랍 왕이 침실에서 자기 마음으로 계획한 일까지 다 알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상세히 구하므로 이스라엘 왕이 그 정보를 얻어서 아랍 왕을 미리 막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랍 왕은 계획을 세우고 엘리사를 포로로 잡으려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하루는 엘리사가 도단성에 거한다는 말을 듣고 대 군대를 동원해서 그 도단성을 겹겹이 둘러싸서 쥐새끼 한 마리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른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일어나서 밖에 나와보고 그만 혼비백산했습니다. 온 도단성 주위에 겹겹이 아랍의 군대의 깃발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아람의 병사들과 전차들이 꽉 둘러 찾습니다. 그래서 그는 벌벌 떨면서 주인에게 들어와서 말했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오리까. 그 말을 듣자 엘리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러고 난 다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 종의 눈을 열게 하여 주옵소서. 보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그 종의 눈을 열매 종이 쳐다보니까 저 아랍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서 보내온 불말과 불병거가 산과 들에 가득하게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자 엘리사의 종은 용기 백배하고 마음에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위대한 은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들도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수많은 원수들이 둘러 쌓여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태어날 때부터 벌써 저 아랍군대가 도단성을 둘러쌓듯이 여러분과 나는 원수에게 둘러 쌓여서 오늘 이 시간까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원수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의 원수는 죄입니다. 죄는 무자비하게 우리를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끌어내려서 인본주의적으로 살게 합니다. 마치 온 천지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활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인간은 기회만 얻으면 윤리와 도덕을 짓밟아 버리고 양심을 거슬려서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없는 세계 속에서 사람들이 진실로 그 양심대로 살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 부패하고 죄악이 관여하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해도 우리는 끊임없이 유혹을 당하고 죄에 잡히고 죄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원수 때문에 몸서리치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는 끊임없이 병이 와서 물고 찢고 도적질하고 죽입니다. 여러분 마치 병은 전갈처럼 우리를 물고 찢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 한국에도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병이 들었다면 암이 걸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암 노이로제에 걸려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옛날에는 암이 걸렸다고 하면 50세 이상 되어야 걸리는데 이제는 20때 30때가 암에 걸려 처참한 지경이 되어서 찾아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오늘날 병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병이 들어보지 않는 사람은 병의 고통과 절망상황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병은 우리에게 둘러 진을 쳐서 우리에게 고통과 괴로움과 절망을 가져옵니다. 이도 우리의 원수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생활고와 저주가 또 우리를 둘러 진을 치고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낭패와 실망을 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오는 줄 아십니까. 배가 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배가 고픈 슬픔을 모릅니다. 여러분 헐벗고 있을 곳이 없어 방황해 보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좌절되고 절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지금 아프리카 지구에는 지금 굶주림이 휩쓸려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생활고와 저주라는 것은 마치 원수와 같이 우리를 둘러 진을 치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서 예배보고 있지만 우리 한국도 오늘 우리 사천만 동포가 사백억불이상의 빚을 짊어지고 태어날 때부터 벌써 백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태어납니다. 오늘 우리 한국 전 민족은 빚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국가 빚 백만원 이상 지고 태어납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우리는 빚더미 위에 올라앉고 말 것입니다. 저는 심히 우려하고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속히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식으로 사치와 연락을 하지말고 근검절약해서 사백억불이 넘는 외국에 걸머진 빚을 우리가 갚아야 민족으로써의 긍지를 가지고 살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미움은 우리의 주위를 휩싸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시기 분노 분쟁 싸움 전쟁 살상 같은 이런 미움이 마치 지옥 불같이 타고 있습니다. 이 미움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우며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얼마나 많은 나라와 나라가 싸워서 수많은 익명이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공포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 확신 때문에 공포는 마치 밤에 다가오는 무서운 울음소리같이 우리의 심령이 해쳐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찢고 있습니다. 불안과 초조에 떨게 합니다. 좌절감과 절감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종국적으로 가서 아무래도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죽음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도 다가와서 인생을 다 산산히 깨드려 버리고 빼앗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엘리사를 잡으려고 겹겹이 진을 친 아랍군대와 흡사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어떠한 사람도 제가 말한 이러한 삶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에게서 피할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과학을 발전시키고 문화를 창달시키고 사회생활을 부요케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다가온 이 원수에게서 우리 스스로를 완전히 자유케 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이 원수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시켜 줄까요. 우리의 엘리사는 어디에 있나요. 오 주여. 우리는 어찌하오리까. 우리는 누구에게 가서 이 부르짖음을 외쳐야 할까요. 오늘 둘째로 내가 여러분께 말씀하고 싶은 것은 우리도 우리의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사의 종에게는 엘리사가 있어서 우리와 같이 있는 이가 저들보다 많다고 한 것처럼 여러분과 나도 이 원수에 둘러 쌓여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어려운 고충에 있지만 우리의 엘리사에게 찾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엘리사는 누구일까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 하셔서 승천하사 지금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나사렛 예수께서 여러분과 나의 엘리사가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엘리사 예수께서는 우리보고 손을 내밀어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원하건데 저들의 눈을 들어 보게 하소서. 원래 여러분 아담은 두 눈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았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만 가지고서 사물을 바라보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영의 눈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저녁 서늘할 때 하나님께서 동산에 나타나시는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대화하면 거니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타락했을 때 그의 영의 눈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자 영의 눈은 잃어버리고 그때로 시작해서 육신의 눈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후손인 여러분과 나에게는 육신의 눈밖에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 밖에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에게 둘러 쌓여 이 엘리사의 종처럼 오 주여 우리는 어찌하오리까. 어찌하오리까. 이제는 우리는 이와 같은 삶 속에서 절망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둘러싼 죄를 보십시오. 영을 보십시오. 생활고와 저주 미움 공포 좌절감 절망 죽음이 마치 마귀와 같이 둘러쌓고 물고 찢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찌할까요. 우리는 그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께 밤에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이여. 선생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 틀림없습니다. 하늘에서 오시지 않고는 이런 일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기를 이 사람아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오늘날 여러분과 나도 예수 앞에 나와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영안이 열려지지 않습니다. 거듭난 다는 것은 무슨 종교를 받아드린다는 것도 아니요. 윤리와 도덕적인 좋은 행실을 하면 열리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는 죄를 짓고 불의하며 흉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주신 나사렛 예수 앞에 나올 때 그 보혈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나의 죄가 용서받고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거듭나서 영생을 얻고 나면 우리의 영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영의 눈을 뜨지 않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오직 둘러 쌓여있는 원수들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회개하고 아버지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영의 눈을 뜨게 해서 보게 합니다. 영의 눈을 떠서 무엇을 보게 할까요. 우리 주위에 둘러 쌓여 있는 원수들보다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는 하나님 은총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모두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원수보다 우리와 같이 한 자가 더 많도록 만들어준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말한 것처럼 저들보다도 우리와 같이 계신 자가 더 많다고 하는 이러한 확신을 얻을 때 여러분 마음속에 놀라운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살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를 둘러 진을 치고 우리를 돌보와주실 우리편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우리편일까요. 십자가를 통하여 죄의 용서와 의가 우리를 통해서 나래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나오면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하나도 남김없이 그 속에서 다 청산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다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모두다 도말시켜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오늘 용서와 의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과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 짓은 그래도 못난 그대로 오지만 십자가에 밑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 피로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용서와 의로움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와 의로써 둘러 진쳐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십자가 앞에 나오면 여러분과 나에게 치료의 은혜가 그 속에서 날개를 펴고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이 세상에서 수없이 많은 고통과 질병을 당하고 있지만 성경에는 밝히 말씀하기를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고 가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았으므로 너희가 병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그 위대한 능력으로 병 고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 전에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 서울대학 병원에 입원한 한 젊은 청년인데 뇌 암이 걸렸는데 뇌종양으로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했습니다. 절망에 처해서 갈 때 올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소문해서 성도들의 안내를 받아서 조용목 목사님 집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감히 우리 집은 찾아오지 못하고 조용목 목사님 집에 찾아가서 밤에 주무시는 것을 깨워서 그래서 간단히 안수를 받았습니다. 반신 불구가 되어서 움직이지 못하는데 기도를 받고 문간에 나오자 말자 오른 손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의학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이제는 뇌종양이 다 사라지고 살아났습니다. 이제는 건강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것도 오늘날도 주님께서 십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베풀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치료는 우리 주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편에 서서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우리는 축복과 해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여러분과 내가 오늘날 저주에서 모두다 속량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유하신 자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의 가나하심을 위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고 주님께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저주에서 해방과 축복이 날개를 펴고 우리를 지키려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또 우리에게 넘쳐옵니다. 미움으로 꽉 들어찬 세계지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은바 되어서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 부모 형제 처자를 사랑하고 우리 이웃과 원수까지라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또 믿음에 평안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통해서 믿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믿음이 날개를 펴고 우리를 품어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눈에는 아무증거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는 믿음 위에 굳세게 서서 믿습니다 로 나갈 수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고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것은 그 자체로 좋아서 좋고, 좋지 않는 것은 종국적으로 가서 주님께서 합동하여 유익이 되게 만들어주실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알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평안이 우리를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이 와서 우리를 좌절감에서 지켜내 줍니다. 바울선생은 말씀하기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라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심으로 우리는 좌절감에 짓눌려서 인생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조차도 두려워 할 것이 없는 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천국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망아 너희이기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아 너희 속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사망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생과 천국을 가슴속에 누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여러분 우리가 만일 눈을 뜨면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편으로 우리를 도우기 위해서 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이 원수와 우리 사이를 둘러 진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의의 위대한 힘과 치료와 저주에서 해방과 축복과 십자가의 사랑과 믿음과 평안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영생과 천국이 여러분과 나를 진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 그리스도 앞에서 영안을 열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께 다가와서 여러분의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기를 위해서 예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옛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우리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믿지 않는 사람은 감각을 가지고 살고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여러분 무엇을 믿을까요. 여러분 믿는다는 것은 영적 사실을 밝히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체험한 것을 믿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 영적인 사실을 믿습니다. 여기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허락해 주신 이 영적인 사실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세상 눈에 안보여도 좋습니다. 세상 귀에 안 들려도 좋습니다. 세상 사람처럼 손으로 못 만져도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영원히 하늘에 높이 두셨사오며 주께서 주의 말씀을 모든 주의 이름 위에 높이 있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이 거역되거나 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내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 말씀으로 찾아 나가야 합니다. 말씀 없는 기초의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무엇을 믿나요. 계시된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이지 나의 감각이나 나의 느낌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영적이 사실을 밝히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마음그대로 늘 불안 초조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믿고 강하고 담대해야 되요. 이제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진취적이 될 것을 마음에 약속해야 합니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 것을 마음에 작정해야 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나갈 것을 마음속에 작정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거듭거듭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마음을 지극히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주를 믿고 마음이 새로워진 사람은 마음이 담대하고 강하여 주의 말씀을 믿고 두려워 말고 주춤주춤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의인이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면은 하나님 말씀에 항상 귀를 기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으면서 나며 들으면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주일 교회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요. 수요일 날도 말씀을 들어야 할것이요. 내가 성경을 통해서 자꾸 말씀을 듣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귀로들을 때 이것이 마음속에 믿음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늘 입으로 시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늘 못살겠다. 안 된다. 못한다. 절망이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고 입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늘 시인해서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저가 책찍을 맞으므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하나님께서 나와같이 계시므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착한 일을 넘치게 해 주신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와 함께 할지어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말씀을 입으로 늘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입에서 하나님 말씀이 떠나지 말도록 여러분께서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이 환경가운데 다가오는 마귀의 여러 가지 억압과 암시는 받아서 그것을 즉시로 입으로 시인해 주는 것입니다. 아이구 낭패 났어요. 우리는 망했어요. 우리 가정은 파괴되었어요. 우리의 가정은 다 식어져 버리고 말았어요. 나는 이제 실패자입니다. 너무나도 마귀가 주는 암시는 잘 받아서 입으로 시인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이 마치 활화산처럼 타고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말씀은 받아서 입으로 시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체험한 것만 입으로 고백한다면 여러분은 실패한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려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사람이 떡으로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시인할 때 이 말씀이 마귀의 권세를 내어쫓고 이 말씀이 하나님 앞에 증거가 되고 이 말씀이 여러분의 큰 믿음의 원동력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아무리 입으로 주여 주여 해도 아무리 철야하고 금식한다고 해도 그 자체만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그와 같은 노력 위에 반드시 실천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하지 않고서 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가장 근원적인 믿음의 실천을 해야 됩니다. 근원적인 믿음의 실천이란 성도는 성수 주일하여 교회 나오는 것 이것 믿음의 실천입니다. 우리 성도는 반드시 자기 수입 중에 십일조를 주님께 드리는 것 이것도 믿음의 실천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는 필요 없다. 십일조는 옛날 구약시대에 하는 일이다. 십일조를 오늘날 낼 필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왜냐하면 결사적으로 자기 마음속에 탐욕과 욕심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것을 못하게 하려고 타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차라리 내가 굶을지언정 내가 헐벗을지언정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도적질하고는 살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사람에게 속한 것은 사람이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가이사에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한 것처럼 이삭과 야곱이 십일조를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다 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십일조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고 그 다음 우리는 전도하는 믿음에 실천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가 내 속에 있으면 내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여러분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담대하게 믿음을 실천하고 나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엘리사는 아랍군대에게 사로잡히기는커녕 오히려 아랍군대를 다 이끌어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 성내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섭리입니까. 원수에게 잡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원수를 사로잡아서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까지 데리고 왔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원수에게 포로로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는 원수들을 포로로 잡아서 만일 앞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죄를 포로로 잡아야 할 것이요. 병을 박살을 내고 포로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과 저주를 포로로 잡아야 할 것이요. 미움을 포로로 잡아야 할 것이요. 불안, 초조, 절망을 포로로 잡아야 할 것이요. 죽음조차도 우리가 포로로 잡아서 그를 격파해 버리고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 사람들에게 영광된 위대한 삶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눈을 뜨고 보면은 우리편에 있는 자가 원수 편에 있는 자보다 더 많습니다. 십자가 앞에 오늘 이 시간에 성령으로 눈을 뜨고 그 다음 믿음으로 그대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이 세상에 고아와 같이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아 십자가 밑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원수들보다도 우리를 위한 자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엘리사의 기도를 듣고 그 종의 눈을 떠서 온 산과 들에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한 것을 보게한 것처럼 오늘 제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이 자리에 예배 온 모든 성도들의 눈을 떠서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주신 은혜가 우리 주위에 가득차게 된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죄의 원수가 있으면 용서하는 그리스도 은혜가 있고 질병이 있으면 치료하는 질병의 원수가 있고 저주와 가난이 있으면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한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불안과 공포대신에 평안과 확신이 있으며 미움대신에 사랑이 있고 절망대신에 소망이 있으며 죽음대신에 영생부활 천국이 있는 것을 바라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와 같이 계신 자가 저들과 같이 있는 자 들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지금부터 이제는 담대한 믿음으로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는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두다 믿음에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가 나타나서 포로로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모든 부정적인 세력을 포로로 잡아서 섭리하여 모든 사람들 앞에 증거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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