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9-10/ 셋째 하늘, 마음 하늘/ 조용기 목사 2014-09-20 08:08:25 오늘 저는 “셋째 하늘, 마음 하늘”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1958년도에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충격적인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농부의 부인이 중풍으로 죽어가다가 최자실 목사님과 제가 가서 전도하고 안수기도해준 이후로 건강하게 나아서 7년 동안 드러누워 있던 자리를 박차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하루 제게 찾아와서 “목사님! 너무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니까 선물을 좀 보내고 싶은데 농촌에서 선물이라는 것이 쌀밖에 더 있습니까? 쌀이라도 택배로 좀 보내고 싶은데 하나님 주소를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더라구요. 정말 땅을 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황했습니다. “아니 자매님! 하나님이 계신 주소라구요?” “그래요.” “나도 몰라요.” 그러니까 아연실색을 하는 겁니다. “어떻게 주의 종이 하나님 주소도 모르면서 주의 종 노릇하느냐” 굉장한 충격을 제가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본론] 1.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늘나라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유대인들은 삼층천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히브리어로 쉐마엠인데 복수로 하늘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냥 하늘이 아니고 하늘들인 것입니다. 히브리인의 마음속에는 하늘이 삼층천으로 되어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대기층 하늘은 공중의 새, 구름, 공기, 수증기가 있는 성층권, 오존층, 중간권, 절리층 같은 이런 하늘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 20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고 했습니다. 새가 날라 다니는 이러한 궁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둘째 하늘은 별들의 세계인 우주층 하늘입니다. 대기층이 아니고 그 위에 올라가면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별들의 하늘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태양계가 소속한 곳은 은하성자입니다. 이 은하성자에 별이 2천억 개가 있는데 우리 지구는 그중에 조그마한 별입니다. 우리 태양계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365일 한바퀴 도는 조그마한 별입니다. 바로 둘째 하늘 해와 달과 별, 은하계 우주공간인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4절과 1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셋째 하늘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성경에 보면 셋째하늘은 영적인 하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는 하늘이지만 셋째 하늘은 3차원을 뛰어 넘은 영적인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셋째 하늘에 갔다 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에는 천사와 먼저 간 성도가 있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처소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로 2절에 보면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분은 사도요한 뿐 아니라 바울선생도 올라갔다가 내려왔으며 그 이후로도 하나님이 특별히 택한 많은 사람들이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간증을 한 것을 우리가 듣기도 하고 읽어 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보통사람들은 이 셋째 하늘에 올라가 볼 수 없잖아요? 그러면 이 셋째 하늘인 영적인 하늘이 우리 일반사람이 다 접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주소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영혼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우리의 마음이 성전이 되고 그 마음속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와서 계시기 때문에 바로 하늘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소가 어디 있냐고 하면은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이 하나님의 주소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로 21절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안에 바울이 갔다 온 셋째 하늘이 성령의 능력으로 시방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기도문 중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 이후로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여 계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시고 난 이후로 주님께서는 하늘나라가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할 때 빨리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하옵시며. 그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구원받은 여러분 속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 속에 지금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5절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늘나라의 임금이신 하나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면 나라가 우리 속에 와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나라에 입적을 해서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나라 백성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와서 보좌를 배설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소가 바로 여러분의 주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떠나서 구만리장천에 계시지 않습니다. 3차원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개념으로 생각하지만 3차원의 세계를 떠난 4차원 이상의 영원의 차원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없습니다. 영원은 언제나 우리와 같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삼층천에 계신 하나님 그 삼층천이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우리 속에 와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무디로 불리는 이성봉 목사님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때 목포에서 피난생활을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 세 숫가락으로 견디면서 공산치하에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다가 잡혀서 인민소에 들어가서 신문을 받게 된 것입니다. 빨치산에 의해 무시무시한 고문을 받고 이성봉 목사님이 심문을 당했습니다. 그때 공산군 두목이 이성봉 목사님을 취조하면서 “당신 예수쟁인데 천국 봤냐? 천국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천국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못하리니 내 마음에 있습니다.” 이 말에 “천국이 내 마음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증명해 봐라. 보여다오. 어디 네 마음에 천국이 있느냐?” 그때 이성봉 목사님은 “나는 이미 천국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당신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는 천국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죽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평안합니다. 이것이 천국이 내속에 들어와 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나를 잡아서 취조하며 고민하는 당신들을 내가 미워하지도 아니하고 당신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데 두렵지도 않고 마음이 편안하니 이것이 천국이 내속에 들어와 있는 증거요, 이것을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두목이 하는 말이 “허~ 예수쟁이 말 잘한다더니 참 말 잘하는 구나!” 그러면서 정말 희한하게 그 공산군 두목이 목사님을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성봉 목사님은 순교를 당하지 않고 살아서 수복된 이후에 열심히 전국 방방곡곡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성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밖으로 나가지 말라. 내 자신에게로 돌아가라. 진리는 속사람 안에 거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찾아서 우리가 동분서주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 산에 하늘나라가 있다. 이 동리에 하늘나라가 있다. 저 교회에 하늘나라가 있다. 그렇게 방황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나라는 하늘나라의 임금인 예수를 구주로 모신 그곳에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오늘 여러분 안에 임하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하늘나라가 임하옵시며 그리고 하늘나라는 어디에서 또 임하시느냐 예배 공동체 안에 임하십니다. 성경에는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안에 있겠노라 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 임금이신데 임금님이 계신 곳에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 혼자 집에서 예배드린다. 나는 산에 가서 나 혼자 예배드린다. 그러면 안 됩니다.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가 강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주님 이름으로 함께 모일 때 그 가운데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구역예배로 모입니까? 주일날 교회로 모이고 삼일날도 교회에 모이는데 또 왜 구역에 모입니까? 우리 지역 사회 속에 구역원들이 함께 모여 하늘나라가 지역 사회 속에 임하여 역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역 외에 두 세 사람 이상 모여서 예배드린 곳에 하늘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보면 우리가 모여서 찬양하면 찬양을 통하여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역대로 부흥이 일어날 때는 언제나 힘차게 찬양을 부를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힘차게 찬송을 부를 때 그 가운데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시편 103편 22절에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기독교 신앙의 특이한 점은 찬양이 있습니다. 혼자 있어도 찬양하고 두 세 사람이 모여도 찬양하고 좋을 때도 뛰고 춤추며 찬양하고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치면서도 찬양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의 특성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하나님의 보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이란 보좌에 왕림하여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딱 다물고 찬송을 안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지 아니한 증거인 것입니다. 찬송이 함께 기쁘게 박수치며 찬미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찬송은 언제나 하나님의 큰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도 선교사로 갔던 스캇 목사님이 한번은 복음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원주민 얘기를 듣고 그들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간단한 짐과 바이올린을 챙겨서 무작정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들이 나오더니 대뜸 창을 들이대며 목사님을 둘러쌌습니다. 시퍼런 창끝이 목 밑에서 번쩍였습니다. 목사님은 말 한마디 못해보고 “야~ 이제는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찬양이라도 부를 심산으로 가지고 간 바이올린을 끄집어내어서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찬송가 36장인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 하여라 금 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이 찬양을 눈을 감고 바이올린을 켜면서 불렀습니다. 그런데 1절을 부르고 2절을 부르는데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서 혹시 이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나 하고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떠봤는데 놀랍게도 원주민들이 창을 전부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찬양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하니까 모든 마음속에 적개심과 미움이 다 사라지고 그 은혜가 그 원주민들의 마음을 녹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힘차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옛날에 제가 개척교회를 할 때는 정신이상에 들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는 정신병원도 없고 정신병 들린 사람들이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가족들의 손에 끌려서 우리교회 찾아와서 제가 매일같이 귀신 쫓는다고 혼이 났습니다. 귀신이 호락호락 나가야 쉽지요. 좀처럼 안나갑니다. 보통 3시간, 6시간 어떤 귀신은 일주일씩 기도하고 싸워야 됩니다. 그런데 귀신하고 싸울 때 제일 큰 무기가 뭐냐. 찬송입니다. 힘차게 함께 모여서 찬송을 자꾸 부르면 귀신이 가장 미워하고 무서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찬송입니다. 찬송할 때 하늘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빛의 나라이기 때문에 어두움의 나라인 귀신은 빛을 보고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힘차게 부를 때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회개기도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에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이 아무리 우리 곁에 와있어도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속에는 천국이 들어올 수 없어요.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장독 뚜껑을 닫아 놓으면 장독 속에 물 한방울도 안 들어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깨어져서 회개해야 되는데요. 요한계시록 3장 19절로 20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회개가 마음 문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 문을 열어 제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와 더불어 먹고 우리와 더불어 마시리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유명한 그림 보면 예수님이 대문밖에 두드리고 서있는 것 보이지요. 문고리가 안에 있습니다. 문고리가 밖에 있으면 예수님이 열고 들어오시지요. 주 예수 대문밖에 기다려 서있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 우리 문고리가 안에 있기 때문에 회개를 통해서 문고리만 열어 제키면 주님은 언제든지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우리와 더불어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1907년 길선주 목사님이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매일 1,500여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는데 길선주 목사님이 설교를 하려니까 성령의 기름부음이 한방울도 없습니다. 너무나 메마르고 답답하고 회개하는 사람은 없고 눈만 말똥말똥하게 있습니다. 견디다 못해서 길선주 목사님이 숙소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왜 설교하는데 성령께서 조금도 역사하지 아니하고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마음 가운데 “네가 사기 쳤던 죄를 회개하라.”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정말 크게 사기 쳤던 적이 있어요. 자기하고 절친한 친구가 병이 들어 세상을 뜨는데 죽기 전에 자기에게 유언을 말했습니다. “내 부동산이 있는데 우리 집사람은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니까 네가 이 부동산을 다 처리해서 우리 집사람에게 돈을 갖다 주어라. 우리 집사람은 부동산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의 유언을 따라 친구가 죽고 난 다음 친구의 부동산을 다 처리해 가지고서 그중에 백 원을 떼먹어 버렸습니다. 나머지 돈을 그 과부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못 봤으니까 입을 싹 닦아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길선주 목사님이 목사가 되고 난 다음에 아무리 설교를 해도 은혜가 없어요.그 백 원 사기 친 것이 하나님과 길선주 목사 사이를 막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길목사님이 그 다음 강단에 서서 성도들에게 자기의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나는 과부의 돈 백 원을 떼먹은 흉악한 죄인입니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강단에 엎드려서 땅을 치고 회개를 하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백 원을 마련해서 과부에게 갖다 갚았습니다. 그러자 성령의 불이 떨어졌어요. 온 교인들이 땅을 치고 회개하고 성도들이 죄지은 것을 다 회개하고 도적질 한 것도 도로 갚고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가 마음대로 됩니까? 내가 아무리 회개하려고 해도 말뚱말뚱 한데 회개 어떻게 돼요. 마음이 뜨거워져야 회개가 되지 회개만큼 힘든 것이 없습니다. 회개하라고 고함친다고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려고 결심하고 한번 엎드려 기도해 보십시오. 회개가 나오는가. 입이 딱 닫혀서 한마디도 안나오지. 성령이 역사해야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 말로다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나 혼자 회개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안 될 때라도 두 세 사람이 모여서 하늘나라가 임하여서 성령이 역사하면 회개가 나옵니다. 아무리 생나무라도 장작불이 활활 타는 곳에 던져 놓으면 같이 불붙는 것처럼 아무리 생자라도 함께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들어오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회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두 세 사람 이상 모여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합동으로 회개할 때 덤으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길선주 목사님을 통해서 1907년에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이 우리 한국을 휩쓸었습니다. 한국의 오순절이 바로 그때로부터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증거 중에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와서 오늘 말씀 듣고 있잖아요.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하늘나라가 임재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읽든지 말씀을 듣든지 말씀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9절과 23절에도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기 때문에 마귀는 어찌하든지 말씀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 읽지 말라. 말씀을 빼앗고 말씀을 못 보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모대학교수 사모님이 예수를 믿고 열심히 교회 나왔는데 제게 와서 “우리집 심방좀 해주십시오. 우리 남편은 마음이 착하고 좋은 분인데도 하나님 말씀이 눈에 안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짜겠지. 거짓말로 그러지 마세요.” “아니에요. 우리 남편이 신문을 읽으라면 술술술 잘 읽는데 성경을 펼쳐서 같이 읽자면 캄캄해서 못 읽습니다.” 희안하다. 그래서 그 집에 내가 찾아갔습니다. 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하고 그 다음 “교수님 이 성경을 좀 읽어 주십시오.” 그러니까 눈을 자꾸 비비면서 “성경을 못 읽는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이 “이거 보세요. 이 성경 못 읽는다구요···” 그러면서 그 부인이 신문을 딱 가지고 와서 “여보 이 신문 읽어 보세요.”하니 줄줄줄 잘 읽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렇습니까?” 그랬더니 “모르겠어요. 신문은 눈에 잘 들어오는데 성경만 펼치면 눈이 캄캄해 집니다. 전혀 안보입니다.” 마귀가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말씀에 눈을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드리고 안수하고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고 난 다음 그 다음에 성경을 읽으라니까 보더니만 성경을 줄줄 읽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천국을 가져오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마귀는 말씀 증거를 훼방합니다. 말씀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요? 말씀이 임하면 천국이 임하면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의 심정을 변화시키는 것 중에 큰 능력이 말씀 증거에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막가파가 사람을 잡아서 사람의 인육을 먹은 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막가파가 교도소에 있을 때 얼마나 흉악했던지 아무도 근처에 못 갔는데 장로님 한분이 우리 국민일보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가 세상 뉴스는 보고 싶으니까 국민일보를 읽다가 선교란에 말씀을 접하고 난 다음 말씀이 그 마음속에 큰 변화를 일으켜서 그 장로님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그래서 찾아가서 성경을 풀어 주고 구원의 도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가 말씀을 읽고 막가파 두목이 완전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사형을 받기 전에 3백 명을 전도해서 구원으로 인도한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변화시킨 것입니다. 국가권력도 그를 재활시키지 못하고 변화시키지 못했는데 우리 국민일보 미션란을 통해서 말씀을 받고 말씀을 통하여 그 일생이 변화되고 같은 교도소에 있는 3백여 명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변화시키고 나중에 사형을 받는 날 장로님을 청해서 기도를 받고 난 다음 “장로님! 제가 먼저가니 뒤에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하고서 할렐루야~ 하고 천국으로 갔습니다. 할렐루야~ 20세기에 들어서 강력한 첫 번째 부흥운동은 1904년 영국의 웨일스 지방에서 일어났습니다. 웨일스 부흥운동의 주인공은 이반 로버트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전형적인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성직자가 되기 위해 26살에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웨일스는 신앙이 침체되어 있어서 늘 이것을 가슴 아파하며 10년째 하나님이여 웨일스에 부흥을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1904년 봄 어느 날 밤, 로버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충만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기쁨이십니다.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나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하나님이 충만하면 그 증거로써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형식과 의식을 다 지켜도 기쁨이 없이 얼굴이 길쭉하고 늘 우울한 사람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믿는 신앙의 열매는 가장 두드러진 것이 기쁨입니다. 기뻐야 돼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로버트는 비로소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마음속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해 가을 학교 근처에서 열린 특별집회에 참석해서 성령으로부터 도덕적으로 타락한 영국을 구하라는 소명을 마음속에 받았습니다. 얼마 후 로버트는 한 목사님의 허락을 받아 광산의 강단에 올라가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는데 그 말씀을 선포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목사님을 위시해서 17명이 한꺼번에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5개월 만에 웨일스 시민 10만 명이 이 로버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2년 만에 영국국민 2백만 명이 회개운동에 참여해서 학생, 법조인, 주부, 교사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통렬한 회개운동을 펼쳤습니다. 재판관들은 법정에서 재판을 중단하고 피고를 위해서 기도회를 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영국의 신문은 부흥의 불길이 웨일스에서 오늘 어디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다. 그것을 보고했습니다. 부흥의 불길이 오는 곳마다 극장은 문을 닫고 술집은 다 문을 닫고 감옥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서 감옥 문을 닫고 경찰서가 폐업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거대한 부흥이 웨일스를 통해서 영국 전역을 뒤흔든 것은 말씀을 증거하므로 말미암아 말씀을 통해서 하늘나라가 임하였던 것입니다. 말씀이 증거 된 곳에 하늘나라가 임하므로 오늘도 우리가 말씀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여기에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의 임재 중에 하늘나라가 오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성령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세계가 아닌 성령이 오시면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임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와 같이 하늘나라는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임하시고 찬양할 때 임하시고 회개하고 기도할 때 임하시고 말씀을 전할 때 임하시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할 때 하늘나라가 임하시는데 이 하늘나라가 무슨 문자적인 하늘나라요, 그림에 그려 넣은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위엄이 따르는 것이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라에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하늘나라가 이미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몸찢고 피흘려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거기에서 임하셨습니다. 하늘나라가 임하셔서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우리 속에 임하시고 두 세 사람이 모일 때 강력하게 임하시고 찬양 속에 임하시고 기도 속에 임하시고 회개 속에 임하시고 말씀 증거 속에 임하시고 성령 안에 임하셨을 때 그 하늘나라의 권세와 능력과 위엄이 나타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권세와 능력과 위엄이 뭡니까? 여러분! 하늘나라의 권세와 능력과 위엄은 죄인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된다. 하늘나라는 회개시키는 역사인 것입니다. 새카맣게 세상 때가 묻은 사람을 하늘나라에 들어오면 하늘나라가 임재하시면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게 해서 말씀과 성령으로 보혈로 깨끗이 씻어주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하늘나라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죽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하늘나라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통회하고 자복 할 수 있는 것은 하늘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임하시면 또한 귀신이 쫓겨나야 됩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귀신에 대한 소리를 별로 듣지 않잖아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하신 사역 중에 가장 많은 사역이 귀신 쫓아낸 것입니다. 주님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가장 먼저 행하신 것이 귀신을 쫓아냈다고 말하고 열두제자와 칠십인의 제자를 불러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고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했고 주님이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유언으로 남긴 것도 제일 처음 대목이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온 세상이 귀신으로 꽉 들어차 있어요. 더러운 귀신, 악한 귀신, 음란한 귀신, 담배 피는 귀신, 술 마시는 귀신, 미워하는 귀신, 살인귀신, 온갖 귀신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오늘날은 더 문명하게 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성과 과학을 주장하므로 말미암아 귀신같은 소리하지 마라. 그렇게 말을 해서 귀신이 있음에도 없는 것처럼 합니다. 그것이 귀신이 가장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하던 그 당시와 똑같이 사탄 밑에서 귀신들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수없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하늘나라가 임하셨으므로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귀신이 와서 미워하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들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좌절,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고 이런 것들이 현실적으로 내 심리적인 변화라고 생각하지만 배후에 귀신이 와서 흑암의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을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늘 밥 먹듯이 쫓아내야 돼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귀신을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인도에 선교하러 갔을 때 그곳에 계시던 선교사 지금은 천국 가셨습니다만 인도 캘거타에서 큰 고아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사역하는 목사님인데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계속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이 놈의 귀신아 물러가라! 귀신아 떠나가라!” 그래요. 그래서 나는 그때 귀신의 역사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안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람이 귀신중독에 걸렸구나. 무슨 목사님이 계속해서 귀신만 쫓아내냐. 그런데 그분이 나중에 하는 말이 인도에는 귀신이 얼마나 많은지 말로다 할 수없다. 너무나 힌두이즘을 통한 귀신들이 역사하기 때문에 자기가 계속 귀신을 쫓아내야 밝은 마음, 깨끗한 마음, 안정된 마음, 능력 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서 늘 귀신을 쫓아낸다고 그랬었습니다. 여러분 파리가 밥을 차려 놓으면 자꾸 밥상에 붙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자꾸 쫓아내야지. 자꾸 쫓아내야지. 제가 솔로몬군도에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밥을 먹으려는데 파리가 얼마나 달려드는지 말도 못해요. 파리가 내 밥숟가락 뜨는 것보다 더 빨리 와서 그냥 달라붙어요. 그 한편으로 파리를 쫓으면서 한편으로 밥을 빨리 입에 넣어야지 늦게 넣으면 밥에 파리가 먼저 먹으니까 자꾸 쫓아내야 돼요. 귀신이 파리처럼 달려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령뿐 아니라 여러분 남편, 아내, 자녀들 속에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사고를 하게 하는 것은 다 귀신입니다. 하나님은 바르게 생각하게 하고 귀신을 삐뚫어지게 생각하는 것 입니다. 잘못된 생각, 잘못된 마음의 가정, 잘못된 슬픔, 마음의 고통, 괴로움 다 귀신인 것입니다. 귀신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에게 천국이 임하면 천국의 열매는 귀신을 쫓아내야 돼요. 귀신과 함께 밥을 먹으면 안돼요. 귀신을 내어 쫓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있으면 귀신은 쫓겨 나가야 돼요.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으면 병이 나아야 합니다. 병 고침은 바로 하늘나라의 기초입니다. 하늘나라의 기초는 치료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는데 치료가 없으면 그 하늘나라는 종이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속에 지금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습니다.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였으면 교회 예배드릴 때 병이 나아야 합니다. 왜요. 안 나으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늘나라가 치료하는 권세와 능력과 위엄으로 임하라고 주님이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4장 23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천국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시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자가 다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권세와 위엄과 능력인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말했었으며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병 고치는 나라인 것입니다. 치료하는 나라가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시면 영육간에 가난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가난은 하늘나라에 소속된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세상나라로 쫓겨났을 때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저주가 따랐습니다. 세상나라에서 하늘나라로 들어오면 하늘나라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속량하는 넘치는 은혜가 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은 저주를 우리가 왜 받아요. 예수님의 나라, 하늘나라에 들어왔으니 우리는 저주에서 속량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곳이 하늘나라인데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면 이속에서 저주가 낙엽 떨어지듯이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위해서 예수님이 풍찬노숙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능력과 권세가 없어서 헐벗고 굶주리고 산과 들에서 주무시고 고통을 당하셨나요? 주님께서 말하기를 너희를 위해서 내가 가난하게 된 것은 나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6장 14절에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라는 말씀이 하늘나라에 임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신 곳에는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풍랑은 원수마귀가 일으켜도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케 하지 않으셨습니까? 마가복음 4장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시편 46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속에 풍랑이 일어나고 가정에 풍랑이 일어나고 생활에 풍랑이 일어났을 때 교회에 와서 하늘나라 안에 우리가 예배드리고 회개하고 말씀 듣고 찬양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나라 야훼 샬롬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오면 하늘나라 역사는 죽은 심령을 되살립니다. 한주일 내내 세상살이에 너무나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마음이 가라앉았을지라도 성일날 주일에 교회에 와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 속에 들어오면 심령이 살아납니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아주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왜냐 세상 나라가 떠나가고 마귀가 떠나가고 하나님의 생기가 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5절로 6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오면 주님은 항상 우리의 심령을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별난 사람들이에요. 왜냐 그들 가슴속에 하늘나라를 모시고 다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첫째로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둘째 궁창 하늘이 생겨나라 하니 하늘이 생겨났습니다. 온 세상이 죄와 마귀로 말미암아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데 예수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취자 우리 속에 하늘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들어오시고 난 다음 하늘이 우리 속에 생겨납니다. 우리 속에 궁창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상사람 속에는 빛도 없고 궁창도 없습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음속에 혼돈만 있지 궁창이 없습니다. 우리는 빛을 품은 사람, 궁창을 품은 사람인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옆에 분들에게 ‘당신 속에 하늘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마음속에 하늘이 임하였다. 어떤 하늘입니까? 대기층입니까? 별들의 하늘입니까? 바울이 올라갔다온 영적인 하늘입니까? 영적인 하늘이 우리 속에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하늘이 우리 속에 임하여 있기 때문에 우리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 버리면 우리는 눈 깜박할 사이에 삼층천에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 삼층천이 이미 우리 속에 임하여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셋째 하늘이 우리 속에 임하여 계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임하여 계시고 예배 공동체 속에 우리가 찬양할 때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가 말씀들을 때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할 때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늘나라가 우리 속에 와계신 놀라운 은총을 받은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늘을 가지고 있는 사람,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의 영광이 임하여 있는 백성들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마음속 하늘과 예배 공동체 하늘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임하여 계시고 거기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고 그것이 하나님 영광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외로운 사람이나 버림받은 사람이나 짓밟힌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속에 빛이 있고 하늘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빛이 있고 하늘이 있으면 흑암과 무의미와 공동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하늘나라는 이것이 이뤄지는 나라가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 땅에 살면서 우리 속에 하늘나라를 모시고 살고 하늘이 우리 속에 임하여 있으니 감사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예배 공동체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여 계시고 하늘나라의 속성인 회개와 구원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치료와 풍랑을 잠잠케 하는 것과 심령을 새롭게 하는 역사가 열매 맺게 됨을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배 공동체 속에 임한 하늘나라로 인하여 변화 받고 능력과 영광과 축복이 임한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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