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조용기 목사 2014-09-27 12:09:10 저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시골에 겨울철에 시골에서 꿩 사냥을 했습니다. 총으로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활로 사냥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겨울밤에 사람들이 다 모여서 콩에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비상을 넣고 밥풀로 구멍을 메웁니다. 밤늦게까지 콩을 잔뜩 구멍을 뚫어서 비상을 넣어서 밥풀로 메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비탈에 있는 밭으로 나가서 꿩이 지나갈 곳에 콩을 뿌려 놓습니다. 평소에 콩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뀡이 지나가는 곳에 콩을 뿌려 놓고 밭 언덕에 엎드려서 쪼그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침 해가 뜰쯤 되면 꿩들이 산에서 내려와서 밭에 먹이를 구하러 오는데 그들이 오자마자 왠 떡인지 콩이 많이 와있거든.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하고서 처음에는 먹지 않습니다. 콩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데 제가 항상 보니까 장끼 즉 숫 꿩이 콩을 먹으려고 하면 까투리 즉 암꿩이 몸을 밀어서 못먹게 막아요. 그러면 저놈의 암꿩이 안달을 하냐고 합니다. 몇 번 숫 꿩이 먹으려고 하면 암꿩이 막고 막다가 나중에는 암꿩이 먼저 콩을 주어 먹습니다. 그러면 숫 꿩이 따라서 먹습니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그냥 콱콱콱 집어 먹어요. 얼마 있지 아니하면 꿩 두 마리가 퍼드득 퍼드득 하고 뻗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뛰어가서 그 꿩을 잡아서 내장을 뜯어내고 꿩국을 끓여서 먹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유혹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꿩도 알아요. 거기에 콩이 있을 리가 없는데 겨울철에... 자기들 길목에 콩이 있을 리가 없는데 있느냐. 틀림없이 독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혹에 견디지 못해서 그 콩을 먹고 죽는 것을 본 것입니다. <본론> 1. 마음에 욕망이 있는 곳에 유혹이 있다 유혹의 뒤에는 항상 우리 오늘날에도 마귀의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는 흉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욕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유혹이 있는 것입니다. 아담 부부에게 욕망의 눈을 뜨게 한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2:17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었습니다. 조금도 타협 없이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죽는다. 그런데 마귀는 아담과 하와에게 와서 욕망의 눈을 뜨게 한 것입니다. 창3:4~5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너희들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마음에 욕망을 심어준 것입니다. 정상적이 아닌 욕망인 것입니다. 분수를 뛰어넘은 욕망인 것입니다.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탐욕을 심어준 것입니다. 탐욕이 있는 곳에 유혹은 쉽게 침투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탐욕을 심어주고 난 다음에 마귀가 이끄는 데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매 그것을 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게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수단을 마귀가 예수님께 사용했는데 예수님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나아지려는 욕망도 탐욕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욕망과 탐욕이 없으므로 유혹이 예수님을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십 주 사십 야 금식하고 난 다음 주렸는데 육신의 정욕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덩이들을 떡덩이가 되게 해서 구복을 채워라"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해서 구복을 채우는데 사용하라는 유혹을 한 것입니다. 마음의 욕망을 통해서 유혹을 했는데 예수님은 권능을 사용해서 자기 구복을 채울 욕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대답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단호하게 마귀의 유혹을 거절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러자 안목의 정욕을 가지고 유혹을 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라! 기적을 행해서 발이 사뿐히 땅위에 뛰어 내리면 수많은 사람이 너를 보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명예를 얻고 지위를 얻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아들을 권세를 가지고 명예를 얻으라." 그러한 유혹을 했으나 그러나 예수님은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혹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7) 그러자 마귀는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서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말하기를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 마귀에게 경배하면 천하 모든 영광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천하 부귀영화 공명을 얻겠다는 탐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유혹이 예수님께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예수님은 유혹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마음속에 탐욕이 없었기 때문에 유혹이 아무리 건드려도 예수님은 요지부동 했습니다. 성경에는 약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마음의 보좌를 점령하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욕심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유혹에 들어와서 욕심에 올가미를 씌워서 마음대로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사기, 협박, 불법, 폭력, 부도덕 무엇이든지 행하여서 도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딤전 6:9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부하려고 하는 탐욕이 마음속에 꽉 차니까 그때부터 시험이 다가와서 올무를 걸고 여러 어리석고 해로운 일을 하고 파멸과 멸망에 떨어지게 만들어 놓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람을 유혹할 때 즐겨쓰는 네 마디 말이 있습니다. 첫째 말이 "이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 하며 유혹의 첫 걸음을 사소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큰 물고기도 작은 미끼에 걸려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탄이 말하기를 "딱 한 번인데 뭘 주저거리느냐. 한번만 죄를 짓고 그 다음에는 안 지어도 좋다." 이렇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죄를 짓고 나면 "너 한번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별 도리 없다. 두 번 세 번으로 가자" 끌고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너는 아직 젊어" 이렇게 말하면서 유혹을 끊기로 결단하려는 마음을 미루도록 합니다. “아직 젊은데 뭘 유혹을 끊고서 세상을 등지고 살려고 하느냐.”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에 넘어가 젊은 시절을 허송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넷째는 "누구나 이렇게 사는데 너라고 해서 뭐 특별히 야단법석이냐? 너도 일반 사람과 같이 보통으로 살아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이러한 말들을 통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 뒤에는 항상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면 그때부터 파멸이 시작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2. 욕망이란 우상 욕망이라는 우상을 우리 마음속에 세워 놓으면 그 우상에 절하고 유혹에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유능한 왕이었습니다. 인물도 잘나고 키도 크고 능력도 있는 초대 왕으로써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쳐서 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보내어서 사울 왕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을 쳐들어와서 멸망시키려던 아말렉을 기억하노니 사울은 가서 아말렉을 쳐서 아각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과 모든 짐승을 다 멸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울왕은 아말렉을 쳐서 그 왕 아각을 사로잡고 소유물을 다 멸하지 않고 그중에 좋은 것은 남겼습니다. 삼상15:9에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왜냐 탐욕이 들어와서 탐욕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너무나 소와 양과 짐승들이 살찌고 좋으니까 "아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가자!"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제켜놓고 욕망의 우상에 엎드려서 절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통하여 사탄이 타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 변명했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야훼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 15:15) 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아각을 살려오고 살찐 짐승을 살려왔냐고 하니까 "아, 백성들이 좋은 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살려 놓자고 해서 끌고 왔습니다." 변명입니다. 일단 욕심이 생겨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나니까 자기 행동을 타당화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엄중하게 심판했습니다. 삼상15:22에 "사무엘이 이르되 야훼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왕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당신을 버려서 다시 왕이 되지 않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탐욕이 우상이 되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이 끄는데로 욕심을 따라 행하게 되고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도 지울 수 없는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하루는 늦잠을 자고 오후에 느즈막에 잠옷 바람으로 일어나서 지붕 위 정원을 거닐고 있다가 저 멀리에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마음에 현혹이 되었습니다. 유혹이 들어오자 그는 유혹의 욕심이 끌리는데로 남의 처인 밧세바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간음을 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덮기 위해서 그 남편을 일선에 있는 전투장에서 불러서 동침을 시키려고 하나 남편이 순종하지 않고 늘 왕의 시위대 뜰에서 잠을 자고 자기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였었습니다. 그러자 요압장군에게 편지를 써서 "일선에 돌아가거든 이 사람을 죽게 하라." 요압이 그 편지를 받고 이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무서운 전투장에 보내어서 적의 화살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그 사람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다윗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전쟁에서는 죽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느니라." 자기의 죄악을 타당화 했습니다. 그럴 때 선지자 나단이 와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삼하12:9~10에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야훼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탐욕의 우상에 무릎을 꿇고 탐욕이 시키는데로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간음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일선에 칼에 맞아 죽게 한 죄로 말미암아 다윗의 집안에 칼이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그 친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켜 맨발로 보좌에서 쫓겨나는 비극이 생겼고 형제들끼리 싸워서 죽이는 비극이 그 가정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유혹을 우상으로 삼아서 유혹에 넘어지게 한 다음에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보면 가룟 유다가 권력과 돈을 사랑해서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 만주가 될 줄 알았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겠다고 하니까 화가 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서 권력과 돈을 얻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13:2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왜, 마음에 권력이나 돈을 탐욕 하던 가룟 유다이기 때문에 권력과 탐욕을 원하고 있으므로 그 틈을 타서 마귀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준 것입니다. 마26:14~16에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은 삼십이란 그때 종의 값입니다. 예수님을 종의 값을 받고서 팔려고 한 것은 그 마음속에 권력과 금전을 탐욕을 삼고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면 한자리 얻어 돈도 벌것이라 생각했는데 십자가에 돌아가시겠다고 하니까 그만 마음에 탐욕이 다 무너진 것을 생각하고 팔아서 권력이나 돈을 얻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팔았던 것입니다. 탐욕과 욕심이 사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 다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난 6월에 초등학생을 유괴해서 저수지에 빠뜨려 죽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은 거액의 빚을 져서 시달리다가 아이를 납치해서 돈을 받아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합니다. 8월에는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젊은 여성을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기로 아예 작정하고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젊은 여성 회사원 2명을 동시에 납치해서 살해하고 그녀들이 갖고 있던 현금 카드로 현금을 인출했습니다. 이것뿐 아닙니다. 제주도에서는 중국산 생선을 국내산으로 속여서 수천 만원을 판매하다가 구속된 일도 있고, 심지어 장애인후원단체를 빙자해서 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가로챈 사람들이 경찰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돈을 목적으로 사람이 수단이 되는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욕심이 마음의 보좌를 점령하면 사기, 협박, 불법, 폭력, 부도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범죄를 하는 것 입입니다. 결국에 그 범죄로 말미암아 일생이 파멸에 내어 던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시험이란 다시 말하면 유혹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라. 특정한 사람만 유혹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도 유혹에 떨어졌습니다. 사울 왕도 유혹에 떨어졌습니다. 다윗 왕도 유혹에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도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서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중에서 매일같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3.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시험 즉, 유혹에 들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기로 마음속에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기로 마음에 작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중심이 잡히지 아니하면 바람이 부는 데로 물결 치는 데로 일렁거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마음에 결심을 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신10:12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야훼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마음에 결정을 해야 유혹이 달라붙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떡보다도 명예보다도 부귀영화 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탐욕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탐욕이 예수 그리스도를 끌고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고 십자가에 나를 거룩해 하신 내 모습을 상항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내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받아야 할 내 자신을 못 박아서 처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의 옛 허수아비 같은 인생을 다 처치되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고 거룩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새로 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진실한 모습은 십자가에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 모습이 된 것인 것입니다. 나의 새로운 신분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다가 따먹은 것처럼 바라보면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든지 우리가 그것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에서 내 옛사람은 청산되고 나는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사람이 되었다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새롭게 된 나를 바라보고 그것을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고 옛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옛 사람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새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새사람을 바라 보십시오. 옛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새사람을 믿으십시오. 새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탐욕이 여러분 속에 들어오지 않고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엡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갈아입는 일을 매일같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거기에서 옛사람이 죽은 것을 생각하고 벗어버리고 거기에서 새사람이 된 것을 입는 마음의 기도를 항상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저 십자가를 통하여 옛사람은 죽었으니 벗어 버리고 저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새사람이 되었으므로 이를 받아 입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새사람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이 된 것을 십자가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새사람이 된 나를 꿈꾸고 새사람이 된 것을 믿고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항상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이것을 반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새로워져야 되고, 자화상이 새로워져야 되고, 믿음이 새로워져야 되고, 말이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복하므로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련을 아주 잘 받은 개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개의 복종심을 정기적으로 점검했습니다. 어느 날은 그 개 앞에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를 던져 주고 주인이 개가 먹으려고 할 때 "먹지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개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가 자기 앞에 떨어진데도 불구하고 먹지 않고 주인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말해도 주인이 옮겨가는데로 따라가면 주인만 바라보고 고깃덩어리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개가 고깃덩어리를 바라보면 도저히 유혹에 이기지 못해서 나중에 얻어 맞을지 언정 고깃덩어리를 먹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고깃덩어리가 눈에 안보이므로 탐욕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을 기록한 것을 보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여러 형태의 유혹을 만날 때 우리도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유혹이 있는 곳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인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고깃덩어리를 바라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우리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요사이 잘못된 텔레비전을 바라보면 많은 젊은이들이 유혹을 받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음란하고 부패한 것을 바라보고 난 다음에 올바른 행동을 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생각하는 가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바라보면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항상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시험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유혹이 있는 곳을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1:1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말아야 되고 죄인이 가는 길에 서지 말아야 되고 오만한 자가 앉는 자리에 앉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꾀를 피하고 길을 피하고 자리를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피하는 것이 이기는 도리인 것입니다. 병균이 드글 드글하고 호혈자나 에이즈가 드글 드글한데 그 속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병이 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호혈자가 있으면 그곳을 피해야 되고 에이즈가 있으면 그곳을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피하지 않고 나는 그 안에 들어가서 산다고 하는 사람은 백발백중 그 병에 걸려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피하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유혹은 피해야 되는 것입니다. 유혹 속에 들어 앉아 가지고서 유혹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한 어린 아이가 서서 빵가게 앞에 서서 땀을 버럭버럭 흘리며 손을 쥐고서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빵을 훔쳐 먹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야 이 사람아, 빵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려고 주먹을 쥐고 버둥거리고 있느냐. 빵가게 앞을 떠나가라. 빵가게 앞을 떠나가면 그런 애쓸 필요 없이 이길 수가 있다."고 말했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빵을 안보면 유혹을 안 당하는 것입니다. 술집 곁에 어슬렁대면 술을 마시게 돼요. 술집 곁을 떠나야 돼요. 도박꾼들이 있는 곳에 어슬렁대면 도박을 하게 돼요. 음란한 곳에 가서 얼릉 거리면 음란하게 돼요. 유혹을 피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벧후1:4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피해서 십자가를 바라보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유혹이 되는 친구를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혼자가 못살잖아요. 두 세 사람 친구가 있습니다. 많이 있는 사람은 많이 있기도 한 것입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결코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쁜 친구를 만나면 도리 없이 물이 듭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잠 1:10)고 잠언 서에 말했는데 고전15:33~34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친해서 따라다니면 백발백중 따라가는 것입니다. 친구의 꾀임에 한 두번 거절하다가 그 다음에는 넘어가는 것입니다. 열 번 찍어 넘어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친한 친구가 자꾸 꾀고, 자꾸 꾀고, 자꾸 꾀면 나중에 마귀가 한번만 단지 한번만 그리고 난 다음에 한번 빠지고 난 다음에 나중에는 죄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히3:13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좋은 친구를 만나면 서로 권고합니다. 서로 격려합니다. 서로 위로합니다. 서로 힘을 더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서로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의 친구를 만나면 자꾸 유혹합니다. 자꾸 죄를 짓게 합니다. 친구와 함께 뒤로 물러가고 물러가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려면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되고, 뒤로 침륜에 빠지려면 나쁜 친구를 사귀어야 되는 것입니다. 유혹이 되는 친구를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유혹에 들지 않게 주님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26:40~41에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육신이 약하다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유혹에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유혹이 다가오거든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정 36년 때 신사참배를 안 한다고 길선주 목사와 유명한 주의 종을 일본 경찰들이 붙잡아다가 평양 기생집에 갖다 놓고 아주 아름다운 기생이 술을 한상 차려가지고 와서 유혹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기생이 술상을 들고 들어오자 길선주 목사가 하는 말이 "하나님! 길선주 죽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길선주 죽습니다." 외치니까 기생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쳐버리고 그는 술 방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험을 당하면 부르짖어야 돼요. 길거리에 걸어가다가 강도를 만나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우리 주님께서 응답해 주는 것입니다. 벧전5:8~9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유혹에 들지 않게 기도하고 부르짖고 대적하면 유혹과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유혹은 바로 마귀의 촉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인터넷을 통해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한 시각장애인 복음가수가 쓴 간증을 읽고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용은 그렇습니다. 그 복음 가수가 열 살 때 주일날이었는데 아버지가 자꾸 사냥을 가자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열렬한 크리스챤 이었습니다. "아니다. 주일날은 교회가야 된다. 안 된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뭐, 한번 빼먹는다고 하나님이 지옥 보낼 턱이 없다. 야! 너 아버지 따라서 사냥가자!" 엄마는 "안 된다. 교회가야 된다." 아버지는 "하루쯤 교회 안가도 상관없다." 그만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서 그는 아버지와 사냥을 갔습니다.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뛰어가는데 아버지가 토끼를 따라 사냥총을 가지고서 뛰어 갔다가 토끼를 놓치고 말았는데 풀숲에 보니까 하늘하늘 하거든. 아들 머리털이 하늘하늘 한 것을 토끼의 꼬리인줄 알고서 쐈는데 아들이 맞았습니다. 장님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일날 하루 어머니 따라서 교회 갔더라면 장님이 안 되었을 건데 하루 주일날 안 가는데 무슨 일 있겠느냐. 아버지 따라갔다가 아버지의 총을 맞아 평생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훗날에 시각장애인 복음 가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한번이라는 것을 쉽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딱 이번 한번만'이라는 말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위와 명예, 권세와 돈 또는 영화와 쾌락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를 죽음의 고통으로 몰고 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유혹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지위를 주겠다. 명예를 주겠다. 권세를 주겠다. 돈을 주겠다. 영화를 주겠다. 쾌락을 주겠다고 온갖 달콤한 약속을 다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유혹에 마음을 맡기면 그때부터 무서운 지배자가 되어 사정없이 죄악으로 끌고 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일단 유혹의 욕심에 넘어지면 그 결과는 돈도 명예도 건강도 가정도 짓밟고 죽음의 고통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보고 매일같이 시험 즉 유혹에 들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도를 하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유혹을 당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죄악이 꽉 들어차고 죄악 가운데 마귀가 항상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잡는 미끼가 바로 입니다. 미끼를 콱 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마귀의 낚시 바늘에 걸리게 되면 한량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은 안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 속에 24시간 유혹에 노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의 무서운 배후를 알고 우리는 항상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주님 중심으로 서서 유혹을 대적하고 유혹에서 이겨나도록 늘 기도하여 주님의 백성으로써 승리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끊임없이 유혹을 당합니다. 아담도 유혹을 당해서 넘어졌고, 예수님도 유혹을 당했으나 이겼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유혹을 안 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는 어릴 때 유혹을, 젊을 때는 젊은이의 유혹을, 중년은 중년의 유혹을, 장년은 장년의 유혹을 당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욕심이 잉태하면 유혹을 당하면 죄를 짓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여 그러므로 원하오니 주님께서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 옛사람을 청산하고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은즉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새롭게 된 나를 생각하고 나를 꿈꾸고 나를 믿고 새롭게 되었다고 시인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유혹을 이기게 도와 주시옵소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아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은 새사람을 입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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