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을 입자(2)
2001-12-08 15:30:12



(엡 4:28-32)

(엡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 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엡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옷 입는 것과 같습니다. 헌 옷은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과거에 속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벗어버려야 할 옛사람은 무엇이고 입어야 할 새사람은 어떤 존재입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그 가운데 두 가지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거짓된 것을 벗어버리고 진실한 것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잘못된 감정을 벗어버리고 잘 조절된 감정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우리가 벗어버리고 입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더 있는데,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세 번째로, 일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도적질을 벗어버리고 부지런히 일해서 선하게 써야 합니다.

여기 28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세 종류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거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거미는 거미줄만 쳐놓고 거기에 걸려드는 곤충의 피를 빨면서 삽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자기 손으로는 아무 일도 안하고, 남이 힘들여 모아 놓은 재산을 훔치고 빼앗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개미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개미는 거미처럼 남의 것을 훔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일해서 자기를 위해 자기 종족들을 위해서만 삽니다. 이처럼 남의 것을 도적질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일하고 돈버는 것이 자기만을 위해서 이 땅에 쌓아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꿀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꿀벌은 거미와 달리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또한 개미와 달리 또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남을 위해서 쓰는 곤충입니다. 이 세상에 부지런히 일해서 모은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줄 아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꿀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에는 늘 남의 것을 도둑질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잘못해서 법에 걸리면 교도소에 들어가지만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았어도 남의 것을 도적질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둑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당에도 도둑이 들어와서 헌금에 손을 댄다든지 혹은 옆 사람의 가방을 뒤지는 일도 있습니다. 눈감고 기도하는 동안에 훔쳐 가지고 달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 험한 세상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집에서 개와 닭을 키웠는데 그 둘이 서로 싸움을 합니다. 개가 먼저 닭을 꾸짖습니다. "네 놈은 아침에 주인이 일어나라고 시간을 알려주는 동물로 이것을 위해서 키워주고 밥을 주고 하는데 너는 왜 아침이 되어도 울지 않느냐?"
화가 난 닭이 개에게 고함을 칩니다. "내가 울지 않는 이유는 시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내 임무인데 밥하는 가정부까지 시계를 다 차고 있는데 내가 뭐 때문에 구차스럽게 울겠는가? 그런 너는 도적을 지키라고 있는데 왜 짖지 않느냐?"
그랬더니 개가 대답합니다. "나도 할 말이 있다. 내가 짖는 것은 도적을 쫓기 위함인데 우리 집 주인이 도적 중에 가장 큰 도적놈인데 어디에 대고 짖겠느냐? 내가 짖었다간 밥도 못 얻어먹는다" 이 시대를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도적질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좋은 목적을 위해 도적질을 한다고 가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로빈 훗과 같은 사람, 부자의 재산을 도적질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 준 일 같은 것은 의로운 도적이라고 해서 의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신창원이라는 도적이 붙잡히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 사람이 부잣집만 골라 털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법이나 목적이 어떻든 그것은 도적질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기적인 목적으로 남의 것을 훔친다든지, 국가나 회사의 것을 훔치는 것은 도적질이 아니겠습니까? 그밖에도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이중장부를 만드는 일, 공적인 것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일들도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물건의 값을 속이거나 질을 속여서 돈을 버는 행위, 또 회사에서 노동을 착취하여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일이나노동자들이 정당한 노동을 하지 않고 임금을 받는 일들도 따지고 보면 다 도적질입니다.
요즈음 많이 유행하는 도적질에는 소위 무단 복제 같은 것, 책이나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하는 행위들도 다 도적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 상표를 도용하여 가짜를 만들어 이태원에 가면 정품과 똑같은 것이 팔립니다. 믿는 성도들도 사면서 싸게 샀다고 좋아하고, 이렇게 만드는 기술이 좋다고 말하지만 이런 것이 다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그밖에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적은 도적질도 있습니다.
요즈음은 그런 일 별로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수돗물이 귀하고 그 수돗물 값 내는 것도 크게 부담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 심지어는 믿음 좋다고 하는 권사님, 집사님들도 집에 가보면 수도꼭지를 조금씩 틀어 놓아서 미터는 돌아가지 않고 물을 받아쓰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전기 값이 부담이 되니까 전기 미터를 거치지 않고 공짜 전기를 쓰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예산을 절약하여 충성한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전혀 도적질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다 도적질입니다. 정당한 노력을 하지 않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남의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다 도적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면 새사람답게 살아야 하는데, 이런 도적질은 새사람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고 옛 사람의 행위인데 이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적질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렸으면 이제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 새 사람의 삶이 무엇입니까?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빈궁한 자에게 구제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면 옛사람의 구습에 속한 도적질을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정당한 방법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정당한 대가를 가지고 꿀벌과 같이 남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삶의 자세가 새사람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그밖에도 우리는 남을 돕기 위해서 구제헌금을, 장학헌금을, 선교헌금 등을 합니다. 이런 것이 새 사람의 삶입니다. 과거에는 남의 것을 등쳐먹고 살고, 자기 것만 취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우리 삶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이마에 땀을 흘려 열심히 일하고 그 얻은 것을 가지고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산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새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지금 그런 사람 보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으면 바른 언어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기 29절을 읽어봅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면 언어생활에 있어서도 벗어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까? 여기 보니까,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 했습니다.
여기 더러운 말이라는 헬라어 'Sapros'란 말이 썩은 열매란 뜻입니다. 우리가 옛 사람에게 속했을 때는 우리 마음이 썩었기 때문에 우리 입에서 나온 말도 부패한 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으면 그야말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입에서는 새 말이 나와야 합니다.그런 새 말이 무엇입니까?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말입니다. 또 선한 말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끼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에 세 가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이 말이 진실 된 말인가? 우리들의 말 가운데에는 진실 되지 못하고 거짓된 말이 많습니다. 과장된 말, 남을 속이는 말이 많습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 말이 선한 말인가? 진실한 말 가운데서도 듣는 사람에게 선한 말이 있을 수 있고 악한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무슨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잘못을 덮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선하겠습니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면 악한 말이 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로는 이 말이 꼭 필요한 말인가? 진실되고 선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지금 이 시간에 꼭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지금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은 대학입시에 떨어져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아들이 대학에 붙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 말은 거짓된 것 아닙니다. 또 악한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말은 그 시간에 꼭 필요한 말은 아닙니다. 덕을 세우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을 할 때 늘 이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우리가 과거에 옛 사람에 속했을 때는 아무 말이나 다 했지만 이제는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에 꼭 필요한 말, 선한 말을 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4에도 보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히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누추한 말이란 지저분한 말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말 가운데 지저분한 말 얼마나 많습니까? 음담패설 같은 것, 요즘 유머라는 것 보면 지저분한 얘기를 하면서 깔깔대고 웃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말도 새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또 어리석은 말이란 생각이 없는 말입니다. 얼마나 생각이 없이 하는 말이 많습니까? 말에는 세금 안 든다고 함부로 하다가 남에게 상처 주고 많은 사람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 희롱의 말이란 남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남의 말 하기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특별히 남의 좋은 말보다는 남의 흉을 보는 일을 얼마나 즐깁니까? 그래서 그런 말 있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남의 흉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 없다" 물론 재미있는 말이지만 이런 것은 과거에 옛 사람에 속했을 때 하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감사하고 이웃에게 감사하고, 늘 우리 속에 감사하는 말과 덕을 끼치는 말, 은혜를 받게 하는 말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말 습관을 되풀이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목사는 목사에게 어울리는 말이 있습니다. 강단에서 제가 어울리지 않게 음담패설이나 하고 남 흉보는 말을 하거나 웃기는 말을 하면 여러분들이 웃을 수는 있지만, 목사답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세상에 나가면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으로 죄씻음을 받고 이제는 새생명을 가지고 새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새사람에게는 새사람으로서의 옷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사람이 되었으면 새사람다운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새사람다운 일을 하고, 새사람다운 말을 합시다.


마지막으로, 새 사람에게는 또 한 가지 벗어버려야 하고 입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 31절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옛 사람에 속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마음에 악독한 마음을 가지고 복수할 생각을 합니다. 노하고 분내고 떠듭니다.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에 예수 모를 때에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마음 속에 악의를 가지고 기회만 있으면 원수를 갚으려는 독한 마음을 가진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으므로 이것도 달라져야 합니다.
32절에 보니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인자하심과 불쌍히 여김과 용서함을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에게 이런 인자와 긍휼과 용서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마태복음 18장에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임금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금 일만 달란트가 얼마나 큰 돈인지 예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주석가의 말에 의하면 한 달란트는 육천 데나리온이고 일만 탈란트는 미국 돈으로 일천 육백 오십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2백 억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역사가 요셉푸스의 말에 의하면 당시 유대 전국이 로마에 바친 세금이 년 팔백 달란트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만 달란트의 돈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아주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다 하나님이 담당해주시고, 우리는 거저 용서를 받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런 용서를 받은 우리기에 이 용서를 안다면,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했을 때, 속으로 분노하지 말고, 독한 마음으로 원수갚으려 하거나 훼방하려하지 말고 마음을 넓혀 남을 인자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용서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런 용서는 기껏해야 백데나리온 밖에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사람이 된 사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렇게 해야 새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런 것을 잘 지켜도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아서 이제는 새사람이 되어 새생명을 가지고 삽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이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새사람이 되었으니 새사람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살아가는데에도 옷이 중요합니다. 옷이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해주고 인격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옷이 날개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목사인데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닐 수 있습니까? 저에게 맞는 옷이 있습니다. 어울리는 옷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었으면 새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는데, 그 옷은 이제 우리가 진실한 인격, 잘 조절된 감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남을 돕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의 말이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고,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치며 감사하는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자비롭게 여겨주고 긍휼히 여겨주고 용서해줄 수 있는 마음,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새사람의 옷을 입지 않고 계속 옛사람의 옷을 입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탕자와 같이 회개하고 돌아와 아버지가 새 옷을 입혀줬는데 우리는 옛날 돼지칠 때 더러운 옷이 좋다고 입고 있으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거짓된 것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요령이라고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화가 나서 막 입에 거품을 물고 화를 내고 노하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귀의 자녀에게나 어울립니다. 믿는 사람들이 도둑질 같은 심보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어울리지 않고, 믿는 사람들이 입에 할 말, 안 할말 가리지 않고 되는 대로 말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어울리지 않고, 무엇보다 믿는 사람들이 남을 용서하지 않고 마음에 꽁해서 독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제 우리가 새사람이 되었으니 새사람의 옷을 입자고 합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엡 4:30의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새사람으로 거듭났을 때, 우리 안에는 새로운 영,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과 마음 속의 뜻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사람의 옷을 입고 살아갈 때는 성령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다시 옛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식하면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한 인격을 가지고, 폭발하는 감정을 버리고 조절된 감정을 가지며, 남을 속이고 도적질하는 심보가 아닌 내 손으로 열심히 일하고 남을 돕는 선한 마음을 가짐으로, 또 모든 옛사람의 말을 버리고 새사람의 말을 함으로, 옛사람의 독한 마음을 버리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을 입고 삽시다. 우리가 아침에 나갈 때, 거울을 보면서 옷을 봅니다. 이것이 내게 어울리고 괜찮은지 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매일 말씀을 보면서 오늘 내가 과연 새사람에 맞는 옷을 입고 있는가 생각합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식하고 늘 의지하며 부족해서 넘어질 때, 곧 옛 옷을 입고 멋있는 척 생각할 때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 날마다 새사람의 옷을 갈아입고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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