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 가지 시험을 이길 힘을 주는 사십 일 2001-12-25 20:24:35 본문 마 4: 1∼11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며 모범적인 기도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수적인 기원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원이 들어 있는데, 양식 문제, 우리의 육신과 이 땅 위에서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는 문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다른 분야에서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남겨도 경제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재선되지 못하는 사례를 많이 봅니다. 그와 같은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라는 기원이 들어 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해 달라는 기원입니다. 시험을 이겨야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그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성실하게 살다가 시험에 빠져 그의 일생을 그르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시험 가운데서도 물질의 시험, 인기의 시험, 권세의 시험은 우리가 싸워야 할 3대 시험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라면 이성의 시험을 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의 시험, 인기의 시험, 권세의 시험을 모두 이기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물질의 시험이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는 시험은 인기의 시험이요,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권세의 시험입니다. 물질, 인기, 권세, 모두 필요한 것들이고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좋은 목적을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을 통해서 얻으라고 하는데 문제가 있고 이것이 시험이 됩니다. 물질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은 땀 흘려 얻어야 합니다. 노동에서 온 소득이 값진 것입니다.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갑니다. 불로소득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쁜 사람들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때 '한'은 땀이라는 뜻입니다. 불한당은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버는 무리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고급 불한당들이 너무 많습니다. 인기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인기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성전은 예배 드리는 곳이지 인기 얻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권세는 누구나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해야 그 권세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엎드려 경배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권세를 얻은 사람은 그 권세를 마귀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이 시험들을 이기셨습니까? 먼저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물질의 시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으로 물리치셨고, 두 번째 인기의 시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신명기 6장 16절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세 번째 권세의 시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신명기 6장 13절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말씀이 발의 등이고 길에 빛이었으며 삶의 원리였고 시험을 이기는 무기였습니다. 말씀이 장롱 깊은 곳에 감춰둔 패물이 아니었습니다. 패물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이 되고 때때로 장식용으로 쓰일 뿐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말씀이 필요할 때마다 들고 나와서 사용하는 삽이나 망치나 톱 같은 도구였습니다. 말씀으로 이기시는데 말씀의 바른 이해와 바른 사용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귀는 두 번째 시험을 걸 때 말씀을 들고 나왔습니다. '네가 말씀을 무기로 삼느냐? 그러면 나도 말씀으로 공격하겠다'는 작전계획을 세운 것 같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면서 시편 91편 11절 11절과 12절의 말씀을 미끼로 던졌습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예수님이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셨다면 이 미끼에 걸려들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모르는 것보다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사용하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개를 훈련시키는 방법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바닥에 고기 덩어리를 놓습니다. 개가 반가워서 그 고기 덩어리를 물면 조련사는 개를 때려주고 고기를 뺏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개는 어떻게 변합니까? 고기 덩어리가 놓여있을 때 고기 덩어리를 보지 않고 주인을 봅니다. 주인이 고개를 끄덕여야 고기를 입에 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기를 입에 물어보아야 먹지 못하고 도로 빼앗기고 얻어맞기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아주 달콤해 보이는 일을 만났을 때 그 일에 덤벼들기에 앞서서 말씀을 보아야합니다. 말씀에 "그 일을 해도 좋다"고 되어 있을 때 그 일에 손을 대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얻어맞게 됩니다. 여러분, 말씀을 익히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사용해서 시험들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있는데 성도는 말씀으로 물질의 유혹을 물리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나는 말씀 없는 떡보다 떡 없는 말씀을 택하겠다"고 말할 정도가 되어야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자기 존재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 이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과 두 번째 시험에서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렇게 해 보아라"고 말합니다. 매우 교묘한 미끼입니다. 예수님에게 자기 존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었다면 정말 그렇게 해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자신부터 사랑과 희생의 삶을 살아야하고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도록 해야합니다. 그런 방법 대신에 당장 박수 받을 일부터 하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시험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백성들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의 꿈을 강조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의 북한동포들만큼이나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시험을 물리치지 못했다면 예수님은 김일성 수준의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하나님의 아들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경건하게 예배드리도록 가르치는 일입니다. 성전에 와서 신기한 재주보고 박수 치도록 하는 일이 아닙니다. 희랍의 한 신전에서 화재가 났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누군가가 불을 질렀습니다. 신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희랍에서는 대단히 큰 사건이었습니다. 당국에서는 신전에 불을 지른 사람은 자수를 하라고 공고했습니다. 신전에 불을 지른 것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이지만 자수하면 너그럽게 벌을 감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수십 명이 자수를 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한 사람도 진범이 아니었습니다. 왜 거짓 자수를 했느냐고 추궁을 하자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전에 불을 질렀다면 아주 유명해지는 것 아닙니까? 너그럽게 처벌한다고 했으니 약간의 벌을 받고 유명해진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했다고 합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 유명해지겠다는 것은 이런 것을 통해 유명해지겠다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성전에서 뛰어내려서 인기 얻고 박수 받으려는 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변질시키고 무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경건하게 예배 드리도록 하고 한 분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인기 대신에 조롱과 멸시와 고난을 받더라도 그 길을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시험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도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성도의 본분이 무엇인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도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르게 안다면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도이기 때문에 받는 시험이 있다면 찬송가 383장을 자주 부르시기 바랍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 성도이고, 기쁨이 충만해야 하는 것이 성도이고,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것이 성도이고, 어느 경우나 양심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 것이 성도이고, 고난을 영광으로 알아야 성도이고 원수도 사랑해야 성도이고 인자한 언어행실로 신앙을 전파해야 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이런 것들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을 바로 알 때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네가 성도라면 좀 더 평안하게, 좀 더 인정받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속삭임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 일을 금식기도 하셨기에 이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 금식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이 시험이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십 일을 금식하셔서 주리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마귀가 시험을 걸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시험, 인기의 시험, 권력의 시험은 사십 일 금식기도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떡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구원 사역의 무대에 데뷔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인기를 끌며 박수를 받는 가운데 화려하게 등장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권력을 가지고 지배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예수님은 사십 일 금식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십 일 금식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겪어야 할, 불시로 찾아오는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4장 2절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육신은 주리셨으나 그 영은 대단히 맑아졌을 것입니다. 그의 영에는 힘이 넘쳐흘렀을 것입니다. 그 힘 가지고 세 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귀는 오판을 했습니다. '저 예수가 지금 대단히 굶주려 있으니까 지금 이런 시험을 걸면 문제없이 걸려들리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맑아지고 힘을 얻고 그 안에 기쁨이 있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장로회 신학대학 명예교수로 계시는 주선애(朱善愛) 권사님은 신학생 시절에 매우 가난했습니다. 아침에 죽 한 그릇을 먹고 학교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앞이 캄캄해지기도 하고 영양부족으로 책의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예수님도 굶주리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배고픈 것을 이겼습니다. 배가 고플수록 사명감에 더욱 불타게 되었습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내 일생을 바치리라"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무의촌에 가서 가난한 이웃을 도우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겠다고 독학으로 산파 공부를 해서 조산원(助産員) 면허를 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분을 조산원으로 사용하지 않고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교수가 되게 해서 목사를 양성하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간증을 하나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제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아무래도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에 대해 처음에는 대해 막연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교기관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가져야 되는 관심 정도였습니다. 1970년대 말부터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중국성도들을 직접, 간접으로 대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의 아시안 게임 때 선수촌 종교관 채플린으로 선발되어 일하면서 아시아의 영적 빈곤을 보고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아시아의 복음화율은 2%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슬람이 의외로 강합니다. 이슬람 신도들은 하루에 몇 번씩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들이 성지로 여기는 메카를 향해 엎드려 절을 하는데 그 시간이 되면 선수촌 여기저기에서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88년 올림픽 때 선수촌 채플린으로 일하면서 선교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같은 해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 시카고 부근 휘튼에서 제1회 한인선교대회를 열었습니다. 주최측에서 풀 기자 두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풀 기자는 기자들을 대표해서 취재를 해서 기사를 써 가지고 모든 보도기관에 공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선발되어 대회에 참석했는데 이 대회에서 가슴이 더욱 뜨거워지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때 제가 쓴 기사는 아주 잘된 것으로 평가받고 그 뒤에도 오랫동안 대회를 소개하는 책자에 인용되고 있는데 은혜를 많이 받았기에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1990년 여름에 충현교회에서 아시아복음화 대회가 한 주일동안 열렸는데 온전한 금식을 해가면서 이 대회의 모든 순서에 참석했습니다. 식사하는 시간에는 골방을 찾아서 기도하며 묵상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마음에는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쁨이 더 커졌습니다. 그 한 주간의 금식기도가 저의 관심을 선교에 붙들어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 때는 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해서 가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 선교사로 가려고 모든 수속을 마쳤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때 북경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게 되었는데 여기에 선교하기 위해서 가려는 단체들이 많았습니다. 그 단체들의 초청을 받고 중국선교에 대해 가르쳐야할 약속들이 많았습니다. 금식을 하면서 그 강연들을 다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끝 날에 광주에 있는 충현기도원에 가서 한 단체의 모임에서 강연을 하고는 돌아오는 길에 역시 광주에 있는 충현교회 묘지에 들렸습니다. 홍콩에서 선교사로서 중국선교를 하다가 돌아가신 홍종만(洪鍾萬)이라는 목사님의 묘소가 거기 있는데 그 묘소를 찾았습니다. 한 주일을 금식하고 어떻게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 묘소까지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는지 자신도 몰랐습니다. 영이 맑아지면 육신도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얻은 영적인 힘을 가지고 물질과 인기와 권세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모두 40일 금식기도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을 기도와 묵상과 성경 읽기, 필사, 집회 참석, 선행, 구제, 올해는 특별히 전도에 힘쓰면서 보낼 수는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처음에는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을 그저 며칠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가지고는 안 되겠다. 늘여야겠다' 했습니다. 사순절을 영어로 렌트(Le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늘이다'라는 뜻을 가진 Length에서 왔습니다. '얼마로 늘일 것인가?' 성서에 40일과 관련된 일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고 40일로 늘여서 오늘날의 사순절이라는 절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40일과 관련된 성서의 일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기록, 예수님께서 40일을 광야에서 금식기도하신 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욕구를 믿음의 욕구라고 할 수도 있고 신비에의 욕구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파지는데 영적인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우리의 영이 기갈에 시달립니다. 아모스는 양식이 없어 주리는 것과 물이 없어 갈함보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을 더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암8: 11). 공산주의 사회는 경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또 영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 사회입니다. 올해의 사순절에 영적인 욕구를 채우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칼 융(Carl Jung)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의사요 심리학자였습니다. 많은 정신병자, 성격 파탄자, 히스테리 환자들이 융을 찾아옵니다. 그들을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믿음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병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융은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한 그룹의 환자들에게 약과 의학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하고 한 그룹의 환자들에게는 영적 욕구를 채워주는 신앙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했습니다. 약과 의학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일단 나았다가도 재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치료받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한 부호가 심한 불면증으로 견디다 못해 융을 찾아왔는데 융은 그 부호를 수도원으로 보내 하루에 주기도문을 3백 번씩 외우게 했습니다. 부호는 불만스러웠지만 불면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마치 요단 강에 들어가 일곱 번 목욕하는 나아만과 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주기도문을 6천 번 외우고 났을 때 불면증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그의 몸에서는 힘이 솟아났습니다. 금식기도를 하면 육신은 굶주리더라도 영적인 욕구가 충족디며 힘이 솟습니다. 예수님은 그 힘을 가지고 세 가지 시험을 이겼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금식은 이기기 위해 하는 절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도 40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8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민족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선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올해의 사순절을 경건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늘 만나는 시험, 물질 우선주의에 빠지기 쉬운 시험, 부당한 방법으로 물질을 얻으려는 시험, 인기를 얻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시험, 권세를 얻기 위해 마귀에게 절하는 시험, 세 가지 시험을 이겨야하겠습니다. 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생활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인으로서의 나도 파멸에 빠집니다. 사순절을 잘 보내 우리를 파멸에 빠뜨리기 쉬운 세 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어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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