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혜로운 사람과 시간
2001-12-28 13:46:52

에베소서 5:15-20

일시: 03/18/2001(주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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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신문에「100세 시대를 준비하자」는 특집을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건강관리를 잘만 하면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꾸민 특집 같았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다 보니까 은퇴후의 생활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은퇴 후의 생애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십니까? 신문에 보니, 3년 후에 퇴직을 하게 되는 지금 48세 된 어떤 회사 연구원은 한의과(韓醫科)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또 미국의 어떤 50대 중반의 남자는 자기가 살 수 있는 수명을 83세 까지라고 보고, 지금부터 계획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언제까지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이처럼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하는 것은 아주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혜로운 사람의 시간 관리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모든 사람에게는 하루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재산은 차이가 있고, 또 재능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져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에게도 24시간을 주셨고, 평범한 시골 농부에게도 24시간이 주어진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우리 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낭비하여 인생을 공허하게 끝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각자 주신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이 시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聖)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참으로 있다는 것은 현재 아니냐. 과거라는 것은 이미 지나갔으니 기억 속에 와 있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안 왔으니 기대가 현재 속에 와 있다. 그러니 현재 속에서 과거가 기억으로 와 있고, 미래는 기대로 현재 속에 와 있는 것이 현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과거나 미래는 나의 시간이 아니며 '현재 이 시간'만이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간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크로노스는 뜻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요, 카이로스는 약속된 어떤 것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합니다. 즉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 다시 말해 이 땅에 얼마나 오래 머무느냐 하는, 양적인 시간(크로노스)에 관심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의미 있는 시간(카이로스)을 살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세월을 아끼라"(16절)고 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시간을 잘 활용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봅시다.

1.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17절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늘 주의 뜻을 살피며 삽니다.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만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이 때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을 표준새번역에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즉 주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엇이 생명의 길이고, 무엇이 사망의 길인지, 무엇이 축복의 길이며, 무엇이 멸망의 길인지 도무지 모릅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며, 늘 주님의 뜻을 살피기 위해 애를 씁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주님을 본받아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계속 외부적인 일, 눈에 보이는 것을 얻으려고 허둥대지 않고, 조용히 주님의 뜻을 살피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는 서두르지 아니하고, 차분하고 평온하게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열매맺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용히 주님의 뜻을 살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골방'입니다. 함 석헌 선생이 쓴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있어 소개합니다.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님 맞으러 어디 갔던가
네 거리에던가
님은 티끌을 싫어해
네거리로는 아니 오시네

그대는 님 어디다 영접하려나
화려한 응접실엔가
님은 손 노릇을 좋아 않아
응접실에는 아니 오시네

......
님은 은밀한 곳에만 오시는 지극한 님
사람 안보는 그윽한 곳에서
귀에다 입을 대고 있는 말을 다 하시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자 하신다네

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껌껌한 지붕 밑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네 문 密密이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 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우리는 골방 은밀한 곳, 마음 깊이 주님을 생각하고, 주의 뜻을 조용히 살피며 사는 삶을 주님이 기뻐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10절에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2. 세상 낙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18절 앞부분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술 취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했는데, 술 취함은 넓게 보아 사치, 방탕, 무절제한 생활, 세상의 것에 중독 된 생활을 가리킵니다. 요즘은 술이나 마약에 중독 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기가 막힌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청소년들이 상상도 못 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 남자아이들과, 중학교 3학년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와서 한 방에 모여 프로판 가스통을 들여놓고 흡입하며 담뱃불을 붙이다가 그만 그것이 폭발하여 중상을 입은 일이 생겼습니다. 어른들이 세상 쾌락에 도취되어 사는 것을 보고 이제는 아이들이 닮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극히 일부의 이야기라 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가 아시아에서 성적으로 가장 자유 분방하고, 그 정도를 넘은 나라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요즘 강원도 산골에 만들어 놓은 도박장 문제도 심각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농사 자금을 갖다가 다 날려 버리고, 폐인이 되고, 가정까지 파탄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세상 낙에 도취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악한 때에 세상 낙에 빠져 지내지 말고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합니다.

3. 열매맺는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은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어 놓고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해서 왔으나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찍어 버리라고 그 포도원 지기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무 쓸모 없이 땅만 버리게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때 그 포도원 지기는 한 해만 더 기회를 주면 열심히 거름을 주고 가꾸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철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때 찍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바로 '우리 자신'을 비유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열매 맺지 못하면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 충만한 생활을 힘써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생활이란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려면 우리는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찬미하는 생활입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습니다. 주정뱅이는 음탕하고 타락한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기쁨을 찬양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뻐하며 환희의 찬미를 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도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20절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늘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그런데 삶의 조건이나 환경을 보면, 감사하기가 어렵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오늘 본문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면 감사할 수 없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또 앞으로 돌보아 주실 것을 믿을 때,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감사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할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이 때 성령이 여러분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최고 경영자, 또는 지도자가 된 사람들은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늘 감사하며 사셨습니다. 죽은 나사로에게 일어나라고 명하기 바로 전에 예수님은 항상 자신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중의 하나도 당신에게 베드로, 요한, 야고보, 마리아, 마리다와 다른 제자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열린 마음, 경청하는 마음, 신앙으로 충만한 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리더십의 핵심 요소이다. 더 큰 힘(Higher Power)이나 더 나은 길에 의해서 생성되는,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JESUS CEO―최고 경영자 예수』(도서 출판 한언)에서 로리 베스존스가 한 말은 맞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세상 낙에 취하지 않고, 성령 충만함으로써 열매 맺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도, 늘 주님의 은혜를 찬미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삽시다. 이렇게 악한 때에 주님이 주신 세월(시간)을 아끼며,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복되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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