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이대로 2001-12-28 21:09:29 본문 : 삿3:15-30 '꼴찌 탈출'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꼴찌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합숙 훈련을 몇 달시켜서 꼴찌를 탈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더 라고요. 전국의 꼴찌들 가운데 인터뷰를 해서 방송사에서 뽑혀야 돼요. 꼴찌들에게 아나운서 가 물어요. "자네는 몇 등인가?" 했더니 "48등 합니다" 그 옆의 학생이 "36등 합니다"고 대 답합니다. 그래서 "너는 공부를 잘하는데 왜 여기 왔니?" 그랬더니, 뒷머리를 긁으며 "우리 반은 모두 36명인데요" 그래서 그 꼴찌 10명을 모아놓고 시험을 칩니다. 어떤 애를 뽑을지 시험을 치는데, "고사 성어" 하니까 비명을 지릅니다. 아나운서가 "쉬운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한자도 아니고 한 글로 쓰는 거다"라고 말했어요. 문제가 "어떤 사람이 질문을 하면 완전히 다른 대답을 하는 것. 동쪽을 물으면 다른 쪽을 대답하는 것" 이렇게 질문하며 힌트까지 줬어요. 답은 '동문서 답' 아닙니까? 이것을 한글로 쓰라고 했는데, 10명 대부분이 뭐라고 썼는가? '사오정'이라고 썼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더 쉬운 문제를 냅니다. 우리 나라 속담을 쓰는 것입니다. '어물전 망신은 ( )가 시킨다' 이 문제를 내니까 '어물전'이 뭐냐고 물어서 설명을 해 주었어요. 이 문제의 답은 '꼴뚜기'가 아닙니까? 그런데 학생들의 대부분은 답을 '오징어'라고 썼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데리고 꼴찌를 벗어나게 합니다. 리얼해요. 제가 보니 가장 중요한 방향이 서로 협력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존감을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꼴찌하는 학생들을 모아 놓으니까 꼴찌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약점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 국 꼴찌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쩌면 저렇게 우리 믿음의 인생과 같을까? 생각해봅니다. 건강한 삶을 살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건강한 자아상입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 만이 건강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왜곡된 두 가지의 극단 적인 자아상을 갖기가 쉽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다 나쁜 것인데, 우리는 이 두 가지의 극단적 자아상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나는 아주 교만한 자아상이고, 또 하나는 자학 하는 자아상입니다. 이 두 가지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극단적인 자아상 입니다. 하나는 아주 교만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 또 하나는 늘 자학을 하면서 사는 사람입 니다. "나 같은 건 죽어야 해" 하면서 말입니다. 흔히 교만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의 배후 에는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월감의 소산, 그것이 교만한 자아상을 만드는 원인이라 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자학하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흔히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습니 다. 따라서 이것은 '열등감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 못지 않게 열등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큰 문제입니다. "전 못해요. 전 본래 그런 모양이에요." 그것은 이 세상을 살면서 무수한 죄의 영향력으로 파괴되고 부서진 자아 상입니다. 심한 열등의식으로 고생한 사람들도 있고, 인정을 받지 못해서 주눅이 들어 잇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늘 자기에게 비관적으로 생각해 온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발 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잘믿지 못하는 것입니 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열등감이 나쁩니까? 첫째, 열등감은 우리 속에 있는 잠재력을 마비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의 달란트를 주셨 는데 "난 안돼!" 라고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꿈, 희망을 꺾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쓸모 없고 나약한 패배자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만든 세상이 더 러운 세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둘째, 열등감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리 고 다르다는 것을 공격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강한 열등감 때문입니다. 셋째, 열등감은 하나님의 사역에 큰 방해가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훌륭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못해' 라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교회학교에서 얼마든 지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하고 포기합니 다. 결국 하나님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이면서 하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 되서야 "껄껄"하고 갑니다 사실 우리모두는 믿음의 꼴찌 콤플렉스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약점 투성이입니다. 믿음 생활 10년 해도 변화가 이렇게 힘들까? 많은 이유가 있지만 우리의 꼴찌 콤플렉스 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벗어나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 능력 있는 자만을 쓰신다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사람은 진짜 평생 꼴찌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인정하되 그 무력함 때문에 열등감에 빠지는 것 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인 겸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무력함과 연약함과 과오를 알아야 합니다. 또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 함을 알기에 강하신 하나님 앞에 나오며, 무력함을 알기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 니다. 그리고 겸허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건강한 성격 적 자아상은 이 두 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도 아니며, 열등감에 빠져 있는 사람 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되,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의 지하는 자를 쓰실 것입니다. 주님은 원래 약한 자, 비천한 자. 가난한자에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사실 어려운 이야기 이지만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을 정말 싫어합니다.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십니다. 성경을 보세요, 사실 강하다면 삼손처럼 강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머리카락만 자 르지 않으면 천하 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이 있을 때에는 누구에게 관심이 있었습니까? 데릴라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비단 삼손의 모습입니까?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권 력, 힘이 있을 때 우리는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꼴찌를 연약한 자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선 깊은 수렁에 들어가 본 사람을 원하십니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린 후에야 하나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하나님 께서 주신 힘이었지만 자기의 힘이었습니다. 말츠라는 심리학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의 95%의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약점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는 약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 냐?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느냐 여하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링컨! 학력의 약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링컨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학교에 갈 수 없 었고,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성경은 링컨에게 인류를 향한 꿈을 갖게 해 주었고 때때로 실패할 때마다 용기와 소망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는 변호사가 되었고 국회의원이 되었고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루즈벨트! 신체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사람이지요. 그러나 최고의 실력 있는 대통령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거짓 없이 솔직하게 봅시다. 겁을 내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보면 이 어려움을 거뜬히 이 겨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입니 다." 베토벤은 귀머거리였지요 음악가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고의 작곡가, 악단의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최고의 부를 누렸던 카네기와 록펠러! 훗날 카네기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당 신은 어떻게 하여 그 엄청난 부를 모을 수 있었습니까?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 문입니다. 록펠러에게 물었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가난한 어머니로부터 기도하는 법을 내가 배웠습니다. 부하신 하나님을 나는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고통에는 언제나 뜻이 있습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언제나 슬픔과 고통 속에서 만 들어집니다. 인간의 죄된 것을 가장 솔직하고 진실하게 만들어내는 장소는 바로 슬픔과 고 통의 현장 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약점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약점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습니다. 약점 때문에 도리어 성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성령님은 우리 의 연약함을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연약하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를 싫어하 고 버린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은 오히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사는 에훗입니다. 그는 에글론 왕을 죽여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 래서 많은 공물을 모아서 왕을 만나러 갑니다. 왕을 만나러 갈 때에 오른쪽 바지 주머니 속 에 45cm 되는 칼을 숨겨서 들어갑니다. 공물을 바치고 아부를 떠는 척 하다가 독대를 청하 게 됩니다. 은밀한 얘기를 왕께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독대하는 자리에서 칼을 뽑아 에글론의 배를 찌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킵니다. 본문에 보면 에훗의 특징에 관하여 에훗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짤막하게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 두 번째 그는 왼손잡이였다. 이 베냐민이라는 뜻이 퍽 재미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벤"이란 말은 "아들"이란 뜻입니다. "야민"이란 말은 "오른 손"이 란 뜻입니다. "베냐민"이란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힘이 있는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오른손의 지파의 아들이 하나 태어났는데 왼손잡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가 바로 에훗입니 다. 우리는 왼손잡이 하니까 오른손보다도 왼손을 더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오른 손 불구자였다는 얘기입니다. 오른손의 아들이 오른손을 쓰지 못했다. 세상적으로는 끝장난 사람이었다. 그 왼손잡이를 하나님이 들어 쓰셨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정상적인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자를 택하셨습니다. 그 가 에훗입니다. 한 성경학자는 에훗을 연구하다 말고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던 에훗, 그는 자신의 단점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다. 그랬더 니 주님의 오른손이 에훗의 오른손이 되었다. 오른손을 쓰지 못했던 에훗, 의지할 것이 없는 힘없는 에훗,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오른손 없는 에훗을 하나님이 붙들어서 하나님이 친히 에훗의 오른손이 되어 주셨다. 하나님의 오른손이 에훗의 오른손이 되어 주셨습니다. 약점과 부족함이 하나님을 의뢰하 게 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의탁할 때 주님의 오른손이 에훗과 함께 하셨습니 다. 여러분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연약함이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절망 하거나 좌절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에훗처럼 신체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신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환경적 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가족 가운데 그 약점 때문에 여러분을 불행하게 하고 있습니 까? 그 약점 때문에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약점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내 약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에훗이 왼손잡이라는 것만 가지고 평생을 보냈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약점을 인정했을 때 그곳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는 약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 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생애를 읽어보면, 아주 흥미있는 표현이 그의 생애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39:3) 보디발이 자기 집에 들어 온 요셉을 가만히 보면서 뭐라고 증언했습니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구나."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더라" 이것이 요셉의 삶의 비밀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분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괴로워하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꼴찌탈출 프로그램에 나오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오려고 하는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탈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창피해서 나올 수 없거든요. 그러나 자기를 인정할 때 변화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약점이 무엇입니까? 인정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것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할 것이 없어요? 자기의 약점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룬너의 신학자의 기도문 가운데 그런 기도문이 나옵니다.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내가 고칠 수 없는 것은 담대히 받 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내게 주시고, 내가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게 주시옵소서." 또한 내 약점 안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떨어진 돌에도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은혜를 받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약점 안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병이든 것이 축복입니까? 아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분들은 다릅니다.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님이 계십니다. 큰 교회를 하십니다. 폐렴에서 시작해서 병을 달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만 암에 걸리셨습니다. 큰 교회입니다. 기독공보에 나온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님의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시이지요, 저는 이 시를 읽고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읽어 드리겠습니 다. 나는 좋다. 내가 암병이라면 모든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좋다. 내가 치료된다면 그들에게 또한 희망이 되어 좋다. 치료되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어 좋다. 내가 암병이 아니라면 모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심되지 않아 좋다. 나는 이일로 내 인생을 돌아보며 단 한번 위대한 결단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음을 감사할 수 있어 나는 언제나 이래도 저래도 좋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숨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 약점으로부터 감사를 발견하면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가지고 믿음을 버리게 합니다. 끈질기게 고통스럽게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열등감을 십자가에서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당당하게 일어서십 시오. 그리고 당당한 그리스도인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 시간 그 열등감을 잡아주시길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할 수 없다는 말 대신에 할 수 있다는 말로, 불평하는 말 대신 감사의 말로, 못났다는 말 대신에 쓸모 있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목사가 되어서 가장 힘든 것은 병 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심방 가서 예 배드리러 가서 기침하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지 모릅니다. 바울의 몸에는 가시 즉, 간질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많은 성도들 앞에서 하나님은 살아 계 신다고 하나님은 능력있는 분이라고. 그가 죽은 자를 살리며 병든 자를 낫게 하며 기적을 일으키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몸에는 무서운 병이 있었습니다. 하 나님 앞에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이 많은 성도들 앞에서 간질병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았을 때 뭐라 그러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나를 살려주십시오. 세 번 간절하게 기도했으나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 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9). 사도 바울은 감사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나는 나의 약점으로 도리어 크게 기뻐한다. 나는 나의 약점을 자랑하노라. 그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는 것을 내가 깨달았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인정하십시다. 실수하고 부족합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나의 약한 곳에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무디가 복음을 전하고 난 후 한 소녀가 달려왔습니다. "선생님 나는 주님의 더 풍요를 깨 닫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성경책을 읽으려무나.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세 계가 가득히 펼쳐져 있단다. 네가 가지고 있는 건강을 주님 앞에 드리려무나. 하나님께서 네 게 주신 작은 재물이라도 하나님 앞에 드리며 살려무나." 이 아이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조용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나는 글을 배우지 못했어요. 글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깨달을 수 있나요. 주님을 만날 수 있나요. 제게는 건강이 없어요. 몸이 약해 요. 이 몸도 주님이 받으실까요. 우리 어머니는 가난해요. 내 아버지는 가난해요. 나는 가진 것이 없어요. 그래도 주님이 날 기뻐해 주실까요. 추한 이 몸을 주님이 받으실까요." 이 딸 아이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고 있었고, 순간 얼굴을 바라보던 몇몇 사람들이 딸아이와 함께 맨 바닥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내 모습 이대로 주여 받아 주시옵소서' 엘리자 헤밀턴이란 여사가 그 숭고한 모습을 바라보며 한 쪽 모퉁이에서 조용히 시를 써 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주의 크신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연약한 우리를 받으시옵소서. 약한 대로 모자란 대로 못난 모습 그대로 주여 받아 주시옵소서. 그 시를 읽던 생키의 가슴속에 성령이 감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같은 어떤 뜨거움이 일 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피아노를 두드리며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설교 다음에 부를 찬송 349장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이 살길이요, 변화될 길입니다. 날마다 매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때에만 승리의 삶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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