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만남은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합니다
2002-01-06 18:35:58

2001. 04. 22. . 요한3:16



I. 누리지 못하는 풍성한 삶

어떤 사람이 호화 여객선을 타고 세계 이곳 저곳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비싼 배표를 사느라 돈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2주일 동안 먹을 치즈와 과자부스러기, 캔 몇개를 준비해서 배에 탔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아 보이는 다른 사람들은 식사 때마다 뷔페를 즐기기도 하고 고급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습니다. 배가 목적지에 도착한 후 선장이 인사를 합니다. "행복한 여행이 되셨는지요?" "네, 좋은 구경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돈이 모자라서 지즈조각, 과자부스러기, 캔 몇 개로 식사를 하느라고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그때 선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이 배 안의 모든 뷔페와 엄청난 음식들이 당신의 배삯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단 말입니까?"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이 청년처럼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될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당신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생명을 얻고 기기다 프리미엄으로 더 풍성한 삶을 얻는 것 -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사랑을 이렇게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틴 루터가 작은 복음이라고 불렀던 요한복음 3장 16절은 어른이나 어린이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암송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그 말씀을 암송하면서도 정작 이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데에 오늘 그 문제점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말씀에 근거하여 「좋은 만남은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의 이 둔한 혀가 하나님의 그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자못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늘의 가장 멋진 천사 가브리엘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셔서 설교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그도 역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합니다" 이 말씀외에 또 다른 무슨 설교가 있겠습니까?

II. 풍성의 차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씀은 입으로만 그 맛을 음미하고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그냥 얘기가 아닙니다. 생각할 수록 신비한 얘기입니다. 생각할 수록 감격스러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누가 누구를 사랑했느냐 하는 것을 깊이 있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으로 그 놀라우신 주님께서 높고 높은 곳에 계신 그분이 무가치한 나를 사랑했다. 보잘 것 없는 나를 사랑했다는 이 사실을 제외해 놓고 세상에서 아무나, 아무 곳에나 쓰는 평범한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만 가지고는 그분의 풍성한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분이 그토록 우리를 사랑했더란 말입니까? 여러분이 고상한 학력을 가졌기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한 것입니까? 여러분의 삶이 거룩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한 것입니까? 정말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남달랐기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한 것이었습니까?

우리는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배반자였습니다. 반역자였습니다. 사랑스럽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은 존재였습니다. 일찍이 마틴 루터는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하나님이라고 하면 이 세상사람들 죄악을 보며 사람마다 머리 위에 불을 내려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모조리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존재가 나요 여러분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을 소중하다 말씀하시고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여기에 바로 그 풍성함의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풍성함의 차원은 시공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사랑하사" 라는 말이 헬라어 원문엔 "아가페쎈" 입니다. 헬라어에서는 현재능동직설법이라고 합니다. 못난 과거에도 사랑했습니다. 별로 쓸모없는 지금도 사랑하십니다. 기대할 것 없는 내일도 사랑할 것이란 말입니다. 사랑할만해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 가치가 있는 자를 골라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무가치한 자를 사랑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 사랑의 차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밥을 먹고 사는 것 같지만 사랑을 먹고 삽니다. 사람이 참으로 아픈 것은 배가 고플 때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어서 괴롭고 아픈 것입니다. 배신한 사랑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어린 아이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 이것을 제일 먼저 압니다. 이것 때문에 평안하고 행복해 합니다. 이것이 깨질 때 온갖 문제가 생깁니다. 젖을 빠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빠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나 보십시오.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낍니다. 투정하고 말썽을 피웁니다. 사랑이 갈라지는 아픔을 느꼈다는 것이지요. 풍성한 삶이 깨어지는 자리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먹지 못하는 곳입니다.

III. 얼마만큼의 풍성인가? - "이처럼"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어거스틴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는데 천하에 사랑할 대상이라고는 너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내어 주신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대관령 산봉에 풀을 뜯는 가축이 아니었습니다. 금은 보석이 아니었습니다. 아파트가 아니었습니다. 신도시 땅이 아니었습니다. 주식이나 증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주만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분,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전을 다 펼쳐놓고 찾아본들 어떤 단어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아름다운 단어를 찾아내서 그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주경가들이 "이처럼"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많은 논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 앞부분을 받아서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요한복음 3장 16절 안에서 "이처럼"이란 단어를 이해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받는 것이 옳다고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때 이들의 학설 가운데 어떤 학설도 우리는 버릴 것이 없습니다. 왜요? 그분은 학설 가운데 다 포용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한 두 사람의 주장이나 학설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이 말은 우선 용서받을 수 없는 자를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자를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1. 이때 "이처럼" 이 말은 우선 14절 15절 말씀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 사건은 민수기 21장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광야 여행길에서 백성들이 걸핏하면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불뱀에 물려 온 백성이 죽게 생겼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백성들의 대표가 모세를 찾아와서 우리가 잘못했으니 우리를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죽어가는 백성들을 사정을 가슴에 끌어안고 모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백성을 이대로 죽어가게 하겠습니까? 이 백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내 백성을 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모든 백성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광야 가운데 장대를 매달아라. 그리고 놋뱀을 거기에 매달아라. 누구든지 놋뱀을 쳐다본즉 살게 될 것이다."

백성들은 하나님에 약속의 말씀을 믿고 구름떼처럼 몰려나와서 놋뱀을 바라보았습니다. 장대 높이 달려있는 그 뱀을 쳐다본즉 그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별의별 약을 다 써도 낫지 않는데 내가 그걸 쳐다 봐? 고집 부리던 사람들은 예외없이 모두 다 죽어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용서받을 수 없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구속하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했다 그 얘기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온갖 저주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가 바로 당신을 위한 죽음이란 걸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바로 우리의 죽음을 대신한 죽음이었고 누구든지 그분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놋뱀을 쳐다보듯 주님만을 신뢰하면 그 풍성한 사랑이 나의 몫이 됩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요.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값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받은 용서의 값이 얼마나 될까요? 내 생명의 값이 예수님하고 맞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사랑, 용서하시는 사랑은 독생자를 내어 주고 얻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은 너무나 풍성하십니다. 돌아기만 하면 어떤 잘못도 아무리 무서운 죄도 용서받습니다.

어떤 젊은 전도사에게 며칠 있으면 약혼을 하게된 처녀교인이 찾아왔습니다. "반듯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데 사실 자신은 옛날 시골에서 철없던 시절 남자를 만나 동거까지 했던 흠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고백하고 파혼을 당하는 것이 평생 죄짐을 지고 사는 것 보다 차라리 낫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그 상담을 받고 젊은 전도사가 담임 목사님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회개했으면 하나님은 이미 기억도 하지 않고 계시니 감사함으로 결혼하여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젊은 전도사가 신이나서 이 젊은 청년을 찾아가 목사님의 말씀을 전했고 성경 말씀을 펼쳐서 하나님의 용서를 선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 -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이미 사라졌습니다. 당신은깨끗해 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진정한 풍성입니다.

어떤 수도원의 주방장의 어린아들이 매일 예수님을 만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원장이 그 아이를 불러 물었습니다. "네가 매일 예수님을 만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 천연덕스럽게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 세가지를 물어보고 내게 대답을 해 다오. 첫째, 원장님 등에 점이 있는데 몇 개나 있느냐? 둘째, 원장님이 학창시절 특별히 공부를 못한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이 무엇이냐? 셋째, 원장님을 괴롭히는 죄가 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그 다음날 달려온 아이가 대답합니다. 원장님 등 뒤에 점이 다섯 개 있습니다. 그리고 학창시절 수학은 늘 D학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의 죄는 예수님께 고백하고 용서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억이 나지 않는 답니다. 할렐루야!

우리 인간은 내 약점이, 어제의 실수가, 과거의 실패가 쓰라린 고통의 순간들이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겠다 말씀하시면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 너의 죄를 도말했느니라! 기억도 하지 아니하리라!

2. 나아가, "이처럼"이라는 말이 주는 풍성함은 16절 안에서 우리가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의 사랑은 - 너무 높아서 바라볼 수도 없는 예수 사랑의 높이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히 너무 깊어서 들여다 볼 수 없는 예수 사랑의 그 깊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우리가 안을 수 없는 예수 사랑의 크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고귀한 예수 사랑의 질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구원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배신자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끝까지 찾아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팔레스타인에 많은 양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 사나운 이리떼가 나타나 모든 양들을 물고 찟고 죽였습니다. 들판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나머지 양들은 혼비백산 산으로 들로 개울로 골짜기로 다 도망을 갔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주인은 도망친 양떼를 찾아 나섭니다. 놀란 양들은 가랑잎 소리에도 후딱 후딱 도망을 갑니다. 주인도 못 알아봅니다. 자기 모습하고 조금만 다른 무엇이 나타나기만 하면 도망을 갑니다. 가시덤불에 찔려서 음메~음메~ 소리를 지릅니다. 허겁지겁 도망 가다가 더 이상 달려갈 수 없을 때까지 도망을 가서 들판에 벌렁 나자빠져서 네 다리를 부들 부들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도망가다가 저 죽을 줄 모르고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서 피투성이가 되어 음메~ 소리지르며 죽어가는 양들이 있었습니다. 찟어지는 고통을 안고 아버지는 양을 찾아보았지만 한 마리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보다못해 그 아들이 아버지 제게 맡겨주십시오. 죽은 양 한 마리의 가죽을 뒤집어 썼습니다. 음메~ 음메~ 양소리를 내며 양을 찾아다녔습니다. 양처럼 벌벌 기어서 양을 부릅니다. 손바닥은 물집이 생겨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리는 끊어지는 고통으로 신음해야 했습니다. 무릎은 찟겨져 피가 땅바닥에 줄줄 흘러 내립니다. 양처럼 양의 소리를 내고 양처럼 언덕을 기어다니며 양을 찾아냅니다. 한 마리의 양을 안심시켜서 데려다 놓고 또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안심시켜서 데려다 놓고 양을 다 찾았을 때 이 아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기진맥진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 몰인정한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구요? 그런 바보같은 아들이 어디 있느냐구요? 양 몇마리 찾아내자고 자식을 죽이는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구요? 그보다 더 엄청난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 아니었습니까? 천국 잃은 하나님의 자식들을 찾기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위에 보내주셨습니다. 사탄에게 찟겨진 내 영혼 너희 영혼을 찾아내기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날카로운 창에 찔려 물과 피를 남김없이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각기 제길로 갔거늘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바로 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 하나님의 외아들을 죽이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이처럼 풍성한 사랑"이란 예수님 - 독생자를 내어 주시고 무가치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용서하시는 사랑입니다. 끝이 없는 사랑입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IV. 누가 이 풍성한 삶을 누리는가? - 믿는자마다

어떻게 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까? 누가 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처방전은 "믿는자마다"입니다. 오직 믿기만 하면입니다. 믿는 자는 누구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처방전을 일컬어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국민일보 지난 2월 21일자 신문에 "탈주범 신창원 - 독실한 기독신자되다. 증오심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창원이란 사람 - 여러 사람을 죽이며 경찰들을 우롱하고 2년 6개월동안 도피행각을 벌였던 그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평생 어릴 때부터 누구로부터 사랑이란 걸 받아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하고 살았는데 감옥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한마디에 굳었던 그의 심령이 녹아지기 시작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한마디에 옛날 고재봉이가 돌아왔고, 막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막가파가 돌아왔습니다. 이 얼마나 어마 어마한 능력입니까?

마음을 열어 영접하기만 하면 그 풍성한 사랑은 바로 당신의 것이 됩니다. 이 시간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입을 열어 주님은 나의 구세주라고 나의 하나님 만왕의 왕이라고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이 이시간 여러분들을 찾아가 주셔서 여러분을 구원하고 건져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서 자식의 신분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이 순간 여러분의 신분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지고 미래가 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비젼이 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축복의 분량이 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이 분명히 이 세상을 사랑했지만 구원받는 자는 "믿는자마다"입니다. 이 풍성한 사랑이 온 땅에 가득하지만 오직 믿는 자만이 그 풍성한 사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내 생명이 다하는 날 주님을 모시지 못한 사람,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 누구라도 버림을 받습니다.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문 앞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얘기를 조각화 한 것입니다만 지옥문 앞에서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거기서는 이미 끝장난 운명이지요.

「15분」이라는 연극 각본이 있습니다. 유망한 청년이 30세에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앞두고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해 놓고 그만 병이 들어 의사로부터 15분 후면 죽는다는 선고를 받게 됩니다. 불안과 초조에 떨며 몸부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15분, 14분, 12분, 11분 지나갑니다. 그때 "편지요" 하는 소리와 함께 배달된 편지 내용은 억만장자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고 그 삼촌의 재산상속자가 귀하라는 변호사의 통보서였습니다. 청년이 몇분 남았느냐고 물어 보는 시간에, 시계는 청년의 생명이 10분 9분 8분이 남았음을 가리키는 때 "편지요" 하면서 또 한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는데 내용은 박사 학위 논문 통과 통지서였습니다. 시간은 생명이 7분 6분 5분 4분 남았음을 가리키는데 또 "편지요" 하면서 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는데 내용인즉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이 결혼을 승낙했다는 애인의 편지였습니다. 시계는 멈추어지지 않고 3분 2분 1분이 지나면서 그 청년은 숨을 멈추는 것으로 그 연극의 각본은 끝이 납니다. 억만장자의 상속권도, 박사학위도, 결혼승낙도 그 청년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 15분은 15개월이 될 수도 있고 15년이 될 수도 있고 150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가치가 아니면 아무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지십니까? 주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누리며 살아가십니까?

V.가장 귀한 만남

교회를 잘 나가지 않던 한 어린아이가 주일 아침에 일어나더니 "엄마, 나 친구들하고 교회 갈래" 교회 갔더오더니 "엄마, 교회에서 무지무지 재미있었어." 그 다음 주일도 또 교회 갔다 왔습니다. 그렇게 몇번 하길래 엄마가 물었지요? "얘야, 교회가니까 무엇이 제일 재미있든?" "찬송도, 하나님 말씀도,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참 재미있어. 그런데 엄마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한참 예배를 드리면 돈주머니가 우리 앞을 지나가 그래서 내가 지난 주일날 돈을 몇 개 가져 왔거든. 다음 주일 가선 좀 더 많이 가져올래. 교회가면 무지무지 재미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과 멋진 만남을 위해서입니다. 전기의 플러스(+) 극과 마이너스(-) 극이 만나는 순간 스파크가 일어나듯이 한번만 그분과 접촉되어지면 영원에 접촉되어지면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탈무드 신학교 입학을 위해 면접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왜 당신은 이 학교에 들어오려고 하오?" 대부분 학생들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학교가 좋아서" "이 학교는 공부를 잘 가르치기 때문에"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시험에서 떨어졌고 공부를 하려면 도서관으로 가면 된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탈무드 신학교에 합격한 사람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좋은 랍비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공부도, 인생도, 행복도,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만남은 아름다운 삶을 낳습니다. 귀한 만남은 귀한 인생을 만듭니다. 행복한 배우자와의 만남은 행복한 가정을 만듭니다. 복된 성도들의 만남은 복된 교회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지치고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넘어지고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교회에 찾아와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십시요. 나의 빈잔을 채우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나십시요. 거기 풍성한 삶이 있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한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주님 앞에 돌아오면 용서해 주신다. 이 한가지 사실 때문에 베드로는 다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똑같이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지금이라도 주님 앞에 돌아가면 나를 용서해 주신다.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엄청난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목 매달아 죽었습니다. 창자가 흘러나와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 이 사실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고백이 되고 있습니까? 거기 복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풍성한 삶이 있습니다.

"사랑의 주님과의 만남!" 이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능력의 만남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과의 만남!" 지친 인생을 일으켜 세우는 힘과 용기를 주는 만남 아니었습니까?
"예수님과의 만남!" 고독에 외로워 지쳐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위로의 만남이 아니었습니까?
"성령님과의 접촉!"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지는 치료하는 능력이 아니었습니까?
"나를 붙들어 주시는 피묻은 예수님의 손!" 방황하는 사람을 붙들어 주는 사랑의 손이 아니었습니까?

기억하십시다.
좋은 만남은 분명히 우리의 삶을 풍성케 합니다. 이 풍성한 삶을 약속해 주는 좋은 만남의 자리가 있습니다.

1) 이 예배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십시요. 이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찬양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말씀속에서 당신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요.
2) 진정 풍성한 삶을 원하신다면 예배경험을 확장하십시요. 주일 낮에만 나오시던 분들이 주일밤 찬양예배에 나오신다면 새로운 예배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의 풍성이 더해지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언제나 공동체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공동체안에 임재하십니다.

우리교회에 준비된 아름다운 공동체가 있습니다. 마을마다 가정에서 모이는 목장모임입니다. 목장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토록 아름다운 천국가족의 기쁨과 능력을 누렸던 가정교회입니다. 일찍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소그룹이 모이는 가정교회, 목장을 통해

- 천국가족을 경험했습니다.
-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 그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 저 멀리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내재해 계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치료되었습니다.
- 영광스런 찬미를 경험했습니다.
- 이웃을 섬기고 도왔습니다.
- 칭송을 받았습니다.
- 새로 믿기로 작정하는 새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 하나님나라 확장을 경험했습니다.
- 섬기는 지도력을 통해 풍성한 복을 누렸습니다.

지금 한소망교회에 청장년 교우 3,000여 가족이 있습니다. 이번 한주간 동안 "좋은 동네 좋은 모임" - 목장모임을 통해 모두 만나십시요. 한분도 빠짐없이 반드시 참여하십시요. 그리고 천국가족, 그 풍성한 만남, 천국공동체 - 그 복된 삶의 비전을 가지십시요. 어떤 목장에 참여해야 할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교역자 누구에게나 문의해 주십시요. 정성껏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지역에서 내일의 천국가족이 될 태신자들 2,000 내지 3,000 이웃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목장에 참여하여 작은 천국을 경험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초대교회의 원형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토록 원했던 교회의 모습입니다. 1세기를 정복했던 교회의 능력이요 미래사회와 세계를 구원할 주님의 청사진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당신이 이땅에 하나님의 자녀로 존재하는 하나 만으로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지금 그 사랑이 풍성히 넘치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 세상역사는 더 지속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 우리 생명은 더 연장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부자가 되고 건강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진정한 만남!
미래의 천국가족들과의 설레이는 만남!
이 만남은 당신의 삶을 풍성케 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속에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받고 있지요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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